지난해 축구장 13배 모래사장 소실

경북 포항에 있는 도구해수욕장은 연안침식으로 인해 백사장이 유실, 해수욕장 기능이 떨어지고 있다. [출처=포항시]

 


희고 고운 모래로 매년 피서객들의 발길이 잇따르던 경북 동해 연안의 백사장이 사라지고 있다. 해양수산부와 경북도는 180여억원을 들여 해안 시설을 정비, 연안 침식을 막겠다는 계획이지만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 피서객들의 안전까지 위협받고 있다. 

17일 해수부와 경북도에 따르면 지난해 도내 41곳의 백사장은 축구장 면적(7140㎡)의 13.5배인 9만6329㎡가 사라졌다. 모래 양으로 따지자면 25톤짜리 트럭 1만2857대 분량이다. 전년과 비교했을 때 면적(7만6007㎡)은 27%, 모래 양은 72% 늘어난 수치다. 

울진 11곳과 영덕 9곳의 백사장 평균 폭은 전년보다 6.5%씩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포항 백사장 8곳은 4.2%, 경주 9곳은 0.3%씩 폭이 좁아졌다. 울릉 4곳은 3.6%가량 폭이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경북 동해안 연안침식 등급평가 지도. [출처=경북도]

 

상황이 이렇다 보니 침식 등급이 A(양호)인 곳은 경북도에 단 한 곳도 없었다. B등급(보통)은 2015년 8곳에서 9곳으로 늘었다. C등급(우려)도 27곳에서 28곳으로 증가했다. D등급(심각)은 6곳에서 4곳으로 감소했다. 침식 우심지역(C+D 등급) 비율은 전년 81%에서 78%로 다소 줄었지만, 전국 평균인 58%보다 크게 높다. 이는 울산(100%), 강원(97.6%)에 이어 세 번째다. 

해수부 연안계획과 임서준 사무관은 "이처럼 연안 침식이 발생하는 데는 여러 원인이 있지만 크게 2가지 이유가 있다"며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과 무분별하게 진행됐던 항만조성사업"이라고 밝혔다.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은 전 세계적 현상이다. 문제는 해수면 상승 속도. 우리나라의 경우 매년 2.5㎜씩 해수면이 높아지고 있는데, 이는 IPCC(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가 발표한 전 세계 평균값(2.0㎜/yr)보다 높다. 해역별로 보면 남해, 동해, 서해가 각각 2.9㎜, 2.7㎜, 1.3㎜씩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일반적으로 파랑의 힘은 수심이 깊어질수록 강해진다. 1㎜당 3배 정도다. 우리나라에서 해수면이 1년에 2.5㎜씩 높아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파랑의 힘도 7.44배씩 강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파랑과 마주해야 하는 연안은 침식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1960~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무분별하게 시행됐던 항만 조성 사업도 연안 침식을 가속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항만을 조성하기 위해선 바다를 매립해야한다. 이 과정에서 파랑이 꺾여 들어가는 회절 현상이 발생하면서 모래가 쌓인 곳엔 침식이, 모래가 없던 곳엔 되려 모래가 쌓이는 현상이 나타난다. 

항만 조성 사업으로 백사장을 잃은 대표적인 곳은 포항 남구 송도동에 있는 송도해수욕장이다. 너비 70m에 길이 3㎞로, 피서객의 발길이 잇따르던 이 해수욕장은 이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1970년대 중화학공업을 육성하기 위해 정부가 인근의 영일만을 매립, 포항제철소를 세우면서 모래가 급격하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송도해수욕장은 2007년 폐장, 안전을 이유로 방문객들의 접근도 제한되는 상황에 놓였다.

경북 포항시 남구 송도동에 있던 송도해수욕장은 백사장 유실로 2007년 폐장했다. [출처=포항시 공식 블로그]

 



경북 동해안 일대의 백사장이 하나둘씩 사라질 위기에 놓이자, 해수부와 경북도는 올해부터 181억원을 들여 연안 정비 사업을 추진한다. 침식이 심각한 수준을 기준으로 △경주 하서리 △울진 금음리 △울릉 남양1리 △울진 월송지구 △경주 나정지구 △울진 산포지구 △울릉 남양3리 △포항 도구해수욕장 등 8곳엔 바닷속 방파제인 ‘잠제’가 설치된다. 기존에 설치된 둑도 보수될 예정이다. 

포항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기후변화와 같은 자연적인 현상은 어쩔 수 없더라도, 인간의 잘못으로 연안이 침식되고 있는 현상은 막아야 하지 않겠냐"며 "해수부는 항만개발사업을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아무렇지 않아 보이지만, 연안이 침식되면 해일과 태풍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돼 인근에 사는 주민들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는 지경에 놓인다"고 말했다.

bakjunyoung@eco-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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