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구속력 지닌 '파리 의정서' 채택될지도 초미 관심

'함께 2도 이하로'라는 캐치 프레이즈를 걸어 놓은 프랑스 파리 기후변화총회장의 독일관 모습

 

[환경TV뉴스] 신준섭 기자 = "지구 온도 상승을 산업혁명 이전 2.0도로 억제하면 기후변화에 따른 극심한 피해, 인간이 겪어야 할 피해를 상당 부분 막을 수 있다는 게 과학계의 결론이다". "아니다 1.5도 수준까지 더 내려야 한다"  

전자는 전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기후변화 연구기구인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 이회성 의장의 말이고, 후자는 전세계 환경단체와 당장 해수면 상승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몰디브 등군소도서국가연합(AOSIS)이 요구하는 수준이다.

일단 2.0도 이하로 억제해야 한다는 데엔 선진국과 개도국간 이견이 별로 없다. 

다만 이 '2.0도'가 선진국 입장에선 최대 억제치인 반면, 환경단체와 개도국은 그걸로는 부족하다는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합의안 도출에 어려움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2.0도냐 1.5도냐. 지구의 미래를 결정할 결정은 이번 주 프랑스 파리에서 결정난다.

'후반전'인 당사국총회 고위급 회담 개회사를 하고 있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출처=UNFCCC

 


각국 고위급 회담 개시, 합의안 도출할까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는 7일(이하 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2주차 일정의 핵심인 '각국 고위급 회담'을 시작했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비롯, 각국의 장관급 고위 인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결론'을 내기위한 '후반전 회담'에 돌입한 것이다.

반 총장은 이날 개회사를 통해 지난달 30일 각국 정상들의 개막식 기조연설을 언급하며 "이렇게 많은 국가의 수장들이 한 자리에 같은 시기에 동일한 목적으로 모인 적이 없었다"면서 "이들은 어떠한 장애물이더라도 없애는 데 동참할 것이란 확신을 줬다"고 말했다.

합의안 도출을 '정상들의 이름으로' 강력하게 촉구한 것이다.

이들의 협상은 현지시간으로 5일 난상토론 끝에 도출한 '합의문' 초안을 검토하는 데서 부터 시작했다. 이른바 '더반플랫폼 특별작업반 회의(ADP)'를 통해 올해까지 완료하기로 한 세계 평균 온도 2도 이하 안정화를 위한 전세계적 합의문이다.

ADP가 우여곡절 끝에 내놓은 36쪽 분량의 합의문만 본다면 논의할 사항이 많지 않은 듯 보인다. 한국이 2020년까지 배출전망치(BAU) 대비 30%의 온실가스를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던 2009년 코펜하게 총회 때는 이맘 때 초안만도 300쪽 분량이었다. 분량만 놓고 보면 10분의 1 정도다.

하지만 합의문 페이지가 적다고 공식 합의에 도달하기가 쉬운 것만은 아니다. 해당 합의문에 추후 논의 사항이 줄줄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첫 주의 회의를 거치면서 이견이 나온 부분을 묶은 것만도 괄호 700개나 된다. 

오는 11일까지 4일이란 협상 기간 동안 전세계 국가가 동의할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선 많많치 않은 분량이다. 최재철 외교부 기후변화대사는 "기어가는 속도였다"는 말로 협상 진척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음을 내비쳤다. 

최 대사는"150개국 넘는 정상이 참여해 꼭 성공해야 한다고 정치적 의지를 보였는데, 실질적으로 들어가니 각 나라마다 다시 한 번 자기 입장에 집착하기 시작했다"고 협상장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환경단체들이 '1.5도 이하'를 촉구하는 림보 퍼포먼스를 연출하고 있다

 


2.0도, 1.5도 논쟁부터 평가 주기까지
4일 남은 협상, 쟁점 사안 여전히 무더기

그나마 나아진 점은 과거 협상에 비해 좁혀진 선택지다. 일례로 지구 평균 온도의 억제 목표는 '2도 훨씬 아래'와 '1.5도 이하' 등 2개 문구 중 하나만 선택하면 된다. 2011년 남아공 더반 협상 때만 해도 이 부분에만 괄호가 6개 달려 있었다.

환경부 장관만도 4명인 몰디브의 쏘릭 이브라힘 환경·에너지부 장관은 "전세계 국가들이 제시한 자발적 감축 양은 부족하다"면서도 "일단 이것을 유지하고 모니터링하는 게 중요하다. 후퇴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쏘릭 장관은 그러면서 "그러다보면 1.5도까지 감축하지 않을까 본다"고 에둘러 1.5도 감축안 채택을 호소했다. 몰디브는 올해부터 AOSIS의 의장 국가를 맡았다.

쟁점 사항은 억제해야 할 목표 온도 외에도 더 있다. 당장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재원 마련 방안과 탄소 배출권거래제와 같은 시장의 활용 여부부터 개발도상국의 '손실 및 피해(loss and damage)' 보상, 5년마다 한 번씩으로 잠정 모아진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 상황 보고·검토 절차 등 어느 것 하나 만만한 문제가 없다.

그 중심에는 미국 등의 선진국 그룹과 인도를 위시한 G77 등 개발도상국 그룹의 의견차가 있다. 선진국과 개도국의 입장차를 줄여가는 것이 700개에 달하는 소위 '괄호'를 없애는 핵심 작업이다. 여기에 한국 등 중간자적 위치에 있는 국가들 역시 동의해야만 작업은 마무리된다.

최 대사는 "계획대로라면 오는 9일 합의문이 나오고 10일부터 각 그룹별로 전문가 2명이 살펴 보고 합의를 해야 되는데, 현 추세로 보기에는 그 일정을 맞추기가 정말 힘들어 보인다"고 우려했다.

독특한 복장으로 회의장에 출석한 '페루 정글 개발을 위한 범종족협회'(AIDESEP) 관계자들. 출처=UNFCCC

 


법적 구속력 있는 '의정서' 나올까..다수결 아닌 '만장일치'
선진국 사이에도 입장 엇갈려

최 대사 말처럼 일정을 맞추지 못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기후변화총회 결과물이 다수결 원칙이 아닌 '만장일치'를 원칙으로 하는 국제 협상이다보니 과거 협상에서도 결론을 발표해야 할 시기를 넘어서는 일이 종종 있었다.

올해 협상도 일정은 오는 11일까지지만, 2020년 이후의 '신기후체제'를 확정하는 회의인만큼 더 길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문제는 일정이 길어지는 것보다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하거나 합의안을 도출하더라도 구속력이나 이른바 발표문의 '격'이 어느 수위에서 결정되느냐 이다.

실제 지난 5일 ADP는 당초 고위급 회담에 제출할 초안에 외교 의전상 결과물이라는 뜻의 '파리 합의문(Paris Agreement)'이라는 형식을 취하기로 했다. 하지만 실무 회의 과정에서 중국이 반대하는 바람에 '파리 결과문(Paris Outcome)'으로 문서의 수위가 강등됐다.

특히 신경전이 첨예한 부분은 ADP가 중점적으로 다뤘던 각국의 자발적 감축 방안(INDC), 즉 전세계 185개국이 내놓은 온살가스 감축 방안의 '국제법적 구속력' 부분이다. 각국이 내놓은 감축분에 법적 효력을 부여하자는 얘기다. 여기에 대해서는 선진국들조차 입장이 크게 상반된다.

유럽연합(EU)은 법적 구속력을 지녀야 한다는 개도국의 입장을 수용하고 있지만 미국을 비롯한 다른 대다수 선진국들은 이 부분에 반대하고 있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출처=UNFCCC

 

한국 정부, 국제법적 강제력 부과에 반대
윤성규 환경부 장관 '구속력 부과해야' 발언 해프닝...실무진이 발언 의도 '정정'

이 과정에서 윤성규 환경부 장관이 '법적 구속력 부과'에 동의하지 않고 있는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에 배치되는 것으로 비칠 수 있을 만한 발언을 해 실무진이 '발언 의도'를 정정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국 등 5개국이 속한 '환경건전성그룹(EIG)'은 지난 1일 '법적 구속력이 있는 국제적 프레임워크(legally-binding global framework)'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대표 발언에 나선 윤성규 환경부 장관은 글로벌 프레임워크가 법적 구속력을 지닌 '파리 의정서(Paris Protocol)'의 형태냐는 한국기자들의 질문에 "그렇다"고 응답했다. 

이에대해 실무진은 감축안 자체에 강제력을 부과하자는 것이 아니라 각국이 제출한 자발적 감축안이 제대로 실행되고 있는지 주기적 검토에 대해서 법적 구속력을 부여하자는 뜻이라고 정정했다.

즉 감축안의 '내용'이 아니라 감축안 검토 여부 등 구조나 '형식'에 대해서만 구속력을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장관 발언 한마디에 실무진이 일일이 '주석'을 달아줄 만큼 '법적 구속력'이란 단어는 이번 기후변화협상 당사국총회에서 가장 민감한 단어다.

최 대사는 "'자발적 기여 방안'이라고 했기 때문에 대부분 국가가 감축 방안을 제출했고 이상적인 목표를 제출한 것"이라며 "법적 구속력과 같은 강제성을 띈 목표치를 제출하라고 했으면 어느 나라나 최소한의 목표치만 제출하지 않았겠냐"고 반문했다. 

자발적 기여 방안이라고 했기 때문에 각 나라가 어느 정도 '성의' 보인 목표치를 제출한 것이란 설명이다. 최 대사는 "자발적 기여방안 이라는 당초 취지를 본다면 결과물도 강제성을 띄기 힘들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때문에 이번 당사국총회에서 법적 구속력이 없는 결과물이 나왔을 때, 각 나라가 자발적으로 제출한 감축안을 실행하는 지 등도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이다.  

이 의장은 "법적 구속력이 없어도 압박감을 주는 게 당연히 존재할 것"이라면서 "총배출량의 80% 정도를 20개 국가가 내고 있는데, 분명한 사실은 이 국가들은 서로 비교할 거다. 이것은 제가 봐선 법적 구속력보다 더 큰 압박이다"라며 합의안 도출 자체가 중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sman321@eco-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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