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WTO(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해 지난 16년 동안 쌀을 제외한 모든 농산물을 관세화 방식으로 시장개방했다. WTO는 만일의 경우 외국 농산물의 과다수입으로 인해 국내 농산물가격이 폭락할 때 특별긴급수입제한조치(SSG)에 의해 구제받을 수 있도록 제도화 했다.

그러나 관세화에 의한 무역자유화 조치에 만족하지 않은 미국은 세계 최대경제권인 유럽연합(EU) 27개국에 효과적으로 맞서기 위해, 1994년 캐나다, 미국 멕시코를 따로 묶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체제를 출범시켰다. 이것이 바로 FTA의 원조이다. 모든 경제, 무역 활동을 무관세로 통합하여 하나의 경제공동체로 새로이 태어난 것이다.

이에 자극받아 세계각국은 WTO체제 안에서 별도로 양자간 무관세 자유무역협정을 맺기 시작했다. 짝짓기 행위가 번성하여 2011년 현재 세계무역기구에 등록된 FTA는 무려 202개나 된다. 그러나 미국의 FTA는 그 후 15년간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며 11개를 체결하는데 그쳤다.

모두들 기피하는 미국 FTA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체결한 FTA가 8건 45개국(그 중 5건 16개국은 발효 중)이고, 동시 다발로 진행 중인 FTA가 8건에 13개국, 그리고 준비 중인 것만도 7건에 13개국인 점에 비추어 보면 미국의 자유무혁협정 체결 성과는 아주 지지부진한 편이다. 초기 북미 3국에 의한 NAFTA를 제외하고는 세계 유수의 국가들이 미국과 FTA 맺기를 기피하고 있는 것이다. 스위스, 타일랜드, 남미 15개국, 아랍에미레이트, 카타르 등등이 미국과 한참 FTA 협상 도중 불균형한 협정내용에 불만, 중단 포기하였다. 일본, 중국, EU등은 아예 미국과 FTA 협상을 할 염두마저 없는 듯하다.

그 이유는 2005년의 세계은행(IBRD) 연례보고서에 명백히 밝혀져 있다. 세계의 자유무역협정(FTA)은 대체로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되는데 그중 미국식 FTA가 가장 혹독하고 종속적인 유형인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NAFTA에 의한 멕시코의 피해사례가 그 산 증거이다.

첫 번째 유형은 남·남(South-South Type) 형(型)이다. 예컨대, 한-칠레, 한-싱가포르, 한-아세안 FTA처럼 합의된 상품과 서비스 부문에 대해서만 관세철폐 조건하의 무역자유화를 규정하는 비교적 단순한 협정방식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가 2003년 최초로 칠레와 FTA를 체결할 때 협상기간이 무려 3년 3개월이나 걸렸고 도중에 결렬·중단하는 사태가 발생하는 등 옥신각신하는 과정이 있었다. 그래도 한국의 가장 취약 부문인 사과, 배, 낙농, 육류, 쌀 등에 대해 예외조치를 인정받았다.

물론 정부는 시설 포도, 키위 등 과일농가들에게 상당한 보상조치를 해 주었다. 한-칠레 FTA 결과 우리나라의 농산물 수입증가액이 2003년의 영(zero)에서 2009년 1490억 원으로 늘어났다.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2005년 3월 국회모임에서 농산물 수입증가액이 40억 원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고 정부는 연간 586억 원의 증가를 예상했는데 이것과 대비된다.

두 번째 유형은 EU형(型)이다. 주요 협상내용은 재화와 용역의 관세철폐 및 무역조건 개선,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 등과 관련된 자유무역 촉진이다. 문화, 교육, 지적재산권 등 비경제적 요인들과 경제관련 법규 및 정책에 대해서는 구속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그럼에도 한-EU 협정에서 보듯 우리나라는 장차 농산물, 특히 낙농, 양돈 등 축산업에서 큰 피해가 예상되고 있다. 그리고 SSM(대형유통기업) 규제에 관한 국내 입법조치마저 지레 멈칫하고 있다. 또, EU가 한국산 제품들에 대하여 반덤핑조치를 남발하지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세 번째 유형은 미합중국(U.S.A.)과의 FTA이다. NAFTA와 한-미 FTA에서 보듯 미국은 상대국가의 모든 경제활동과 이해관련 각종 정책 규범에 대하여 미국표준에 부응하도록 종합적으로 동조화시키는 것을 협정의 본질로 두고 있다. 앞의 두 유형처럼 무역자유화와 관세철폐는 말할 것도 없고, 투자 및 일반경제정책의 법규와 규범, 그리고 지적재산권, 교육·문화·오락 산업 정책의 동조화 조치를 포함하는 포괄적인 경제통합 협정을 추진한다. 그것이 미국식이다. 다만, 노동 이동의 경우 호주에 대해서만은 전문직 종사자의 미국취업을 1만 5천 명까지 허용하였으나, 우리나라는 거절당했다.

그 대신에 한-미 FTA에서 투자자가 정부를 상대로 제3의 기관에 손해배상 소송을 할 수 있는 ISD 조항을 비롯해 체결된 협정조문을 되물릴 수 없는 역진(ratchet)방지조항, 개성공단제품의 한국산 인정 지연조치, 특정품목(예, 자동차)에 대한 협정위반시 무관세혜택 철회(snap-back)조치를 포함시켰다.

뿐만 아니라 노무현 정권이 한-미 FTA 추진의 이유로 내세웠던 서비스 산업부문의 개방에 있어 열거된 업종(negative list)외에 무제한 허용, 금융·외환 위기시 외환유출입통제의 불가능, 외국산 섬유원사(原絲) 사용제품을 국산으로 불인정 하는 것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일방적 조치들이 포함됐다. 이렇듯 한·미 FTA는 태생 자체가 불균형, 불균등하다.

그리고 한-미 FTA 발효 첫 년도에 그동안 WTO 체제하에서 5-40%의 관세를 부과해 오던 농수축산물의 관세가 약 38%의 품목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5년 내에 60%의 품목이 무관세로 자유화 된다. 10년 이내엔 90% 농축산물이 관세없이 자유로이 수입개방 되며, 최종 15년 이내에 모든 농축산물들은 관세 부담없이 수입할 수 있게 됐다. 이리하여 FTA로 미국은 약 110억 러(약 12조 원)의 수출이 늘게 된다. 반면 한국은 자동차 등에서 예상되던 약간의 수출증가마저 지난 연평도 사태 때의 추가 재협상으로 모호하게 됐다고 하나, 애당초 전체적으로 얻는 것보다 잃을 것이 훨씬 더 많은 불균형한 협정이었다.

한-미 FTA, 일종의 '경제항복문서'나 다름없어

이는 일종의 '경제항복문서'나 다름없다. 한국은 한-미 FTA로 인해 30여 개의 경제·무역 관련법규를 고치거나 제정하도록 합의했으나 미국은 반덤핑조항 개선, 개성제품의 국산 제품 인정 등 우리 측이 요구한 4가지 개정사항을 모두 거절했다. 위에서 보듯 3가지 FTA 유형 중 미국형이 '가장 지독하다(the most tough and hard one)'는 세계은행의 연례보고서는 틀린 말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는 정권 초기에는 우리나라가 농업이 없는 싱가포르나 홍콩과 같을 수 없다며 미국, EU, 중국 등 농업강국과의 FTA를 최후의 고려대상으로 미뤘으나 2006년 1월 참으로 급작스럽게 한미 FTA 협상개시를 선언하며 부랴부랴 11개월 18일 만에 전격적으로 타결을 보았다.

FTA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는 광우병 의심 쇠고기 수입허용, 스크린 쿼터 50% 축소, 복제약품 가격조정 등 4가지 선행조건도 미리 양보해주었다. 마치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 그리고 협상주역들은 모두 영전하였다. 곧이어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의도 이루어졌다.

2008년 1월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청와대로 고 노무현 대통령을 방문해 한-미 FTA를 가리켜 노 대통령에게 "가장 잘한 치적"이라며 치켜세우기까지 했다. 퇴임 후 김해 봉하마을에 은거해 있던 고 노대통령은 2008년 말 세계 금융위기 사태를 지켜보면서 두 차례나 인터넷에 한국과 미국의 경제상황이 달라졌으니 한-미 FTA가 개정되도록 재협상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이명박 정권은 이전 정권보다 FTA를 더 사랑하고 특히 한·미 FTA 협정을 보물신줏단지처럼 떠받들고 있다. 미국의 추가, 재협상 요구에서도 선선히 양보하고 모두 들어주었다. 미국은 광우병 의심 30개월령 이상 쇠고기와 부산물도 국회비준이 끝나면 양보받을 것이라며 들떠 있다. (이 정부는 내친김에 한국 농수축산업의 킬러, 중국과도 FTA를 서둘고 있다.)

FTA 만능론에 빠져 있는 사람들(어느 정당, 어느 정치인, 어느 언론, 교수, 종파, 사회지도자를 막론하고)은 돈만 있으면, OECD국가 중 식량자급률이 최하위권(26%)인 우리나라의 부족한 식량과 식품일랑 얼마든지 사 올 수 있고, 환경생태계는 막개발로 망가져도 돈만 벌면 그만이라는 물신(物神) 사상으로 중독되어 있다.

FTA에 미친 사람들이 이명박 대통령 혼자이거나 이 정권 하나뿐이라면, 이렇게 재협상을 거치면서까지 허망하게 내주기만 한 굴욕스런 협상, 불평등한 망국적인 협정, 청사에 기리 부끄러운 불공정한 자유무역협정이 존재할 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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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본고는 필자가 지난 2010년 4월 미국 샌디에고 UCSD(Univ. of California, San Diego)에서 강연한 영문원고를 농훈칼럼(한국농어민신문, 2011. 6.2)으로 다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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