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백, 131번 사용해야 일회용보다 환경적
묻으면 자연으로 돌아가는 생분해...사실은 태운다?
“무엇을 쓰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

역사 이후로 인류는 늘 무언가를 더하기 위해 살아왔습니다. 과거보다 더 많은 자본, 나아진 기술, 늘어나는 사업영역에 이르기까지, 미지의 분야를 개척하고 예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며 문명을 발전시켰습니다. 그 결과, 인류는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지구의 건강이 위협받기 시작했습니다. 인류가 무언가를 많이 사용하고 또 많이 버릴수록 지구에 꼭 필요한 자원과 요소들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열대우림이 줄어들거나 빙하가 녹고 그 과정에서 생태계의 한 축을 이루던 동물과 식물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에 주목해야 합니다. 적게 사용하고 덜 버려야 합니다. 에너지나 자원을 덜 쓰고 폐기물이나 쓰레기를 적게 버리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환경적인’ 일입니다. 인류는 무엇을 줄여야 할까요.

줄여야 산다 열 아홉번째 시리즈는 비닐입니다. 가볍고, 편리하고, 깨끗하고, 심지어 가격도 저렴한 비닐(봉투 등)은 소비자들의 생활 속에 깊이 들어와 있습니다. 비닐과 환경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요? [편집자 주]

사진 속 가방은 기자가 지난 2017년 해외여행 당시 쇼핑한 에코백이고, 비닐봉투는 지난해 5월 집 근처 편의점에서 구매한 것이다. 사진은 6월 14일 촬영했다. 귀여운 디자인의 튼튼한 에코백과 낡은 비닐봉투 중에서 뭐가 더 환경적일까? 그걸 판단하려면 얼마나 사용했는지가 중요하다. (이한 기자 2021.6.14)/그린포스트코리아
사진 속 가방은 기자가 지난 2017년 해외여행 당시 쇼핑한 에코백이고, 비닐봉투는 지난해 5월 집 근처 편의점에서 구매한 것이다. 사진은 6월 14일 촬영했다. 귀여운 디자인의 튼튼한 에코백과 낡은 비닐봉투 중에서 뭐가 더 환경적일까? 그걸 판단하려면 얼마나 사용했는지가 중요하다. (본사 DB)/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일회용 비닐을 둘러싼 문제의 대안으로는 크게 두가지가 거론된다. 하나는 다회용 에코백, 그리고 또 하나는 생분해 소재다. 그러면 에코백과 생분해 비닐은 정말로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

비닐 관련 제품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환경적인 지적들은 대개 ‘일회용’과 관련이 있다. 한 번만 쓰고 금새 버려지면 썩지 않고 오랫동안 남아 지구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다. ‘자원순환’이 이뤄져야 하는데 순환되지 않고 그냥 ‘잘못 버려진 쓰레기’로 남는다는 뜻이다.

◇ 에코백, 131번 사용해야 일회용보다 환경적

하나씩 짚어보자. 에코백은 무조건 환경적일까? 전문가들은 에코백이 정말로 지구에 좋은 영향을 미치려면 최소한 131번은 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까닭일까. 환경부가 지난해 10월 공식 블로그 ‘환경부와 친해지구’를 통해 이 내용을 설명한 바 있다. 환경부는 “다회용품을 오래 사용하지 않거나 혹은 쓰지 않고 보관만 할 경우에 일회용품보다 몇 배 혹은 몇백 배의 환경오염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른바, 리바운드 효과다.

이와 관련한 지적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어져왔다. 지난 2011년 영국 환경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종이봉투가 일회용 폴리에틸렌 비닐봉지보다 더 적은 환경 영향을 미치려면 최소한 3번 이상 재사용해야 한다. 천 등으로 만든 에코백도 마찬가지다. 뉴욕타임즈는 지난 2019년, “면화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비료와 살충제 등이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수질오염을 일으킨다”고 지적하면서 “일회용 비닐봉지보다 환경 영향을 적게 미치려면 에코백을 131회 정도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환경부 역시 앞서 언급한 블로그에서 영국 환경청 포장 가방의 수명주기 평가를 인용해 관련 내용을 밝혔다. 환경부는 해당 게시물에서 “제품 생산시 발생하는 탄소의 양을 고려할 때, 종이봉투는 비닐봉지 보다 3번 이상 재사용해야 환경 보호 효과가 있고, 면 재질 에코백은 131번 정도 재사용해야 환경보호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에코백이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에코백이나 장바구니를 마련해놓고 충분히 사용하지 않으면 또 다른 환경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비닐봉투를 줄이려고 에코백이나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는 것은 좋지만, 평소 장바구니 등을 잘 활용하지 않으면서 디자인 등에 혹해 가방만 많이 구매하면 그것은 환경적인 소비라고 볼 수 없다.

◇ 묻으면 자연으로 돌아가는 생분해...사실은 태운다?

생분해 비닐은 어떨까. 생분해 비닐은 최근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기자도 지난해 집 근처 약국에서 생분해 (비닐)봉투를 받았다. 봉투는 받지 않겠다고 했는데 약사가 ‘이건 생분해 비닐이라서 괜찮다’며 처방받은 약을 담아줬다.

봉투 아랫부분에는 “이 쇼핑백은 100% 생분해성 수지로 제작되었으며 폐기 시 스스로 분해되어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친환경 제품입니다. 생분해성 봉투는 폐기 시 일반쓰레기와 함께 버려주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다른 비닐봉투에 비해 얇고 가벼운 느낌이었다.

땅에 묻으면 자연적으로 처리돼 퇴비화하거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취지인데, 현재 우리나라 생활폐기물은 대부분 쓰레기를 태운 다음 그 재를 땅에 묻는 방식으로 처리한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도 이 문제를 지적했다.

홍 소장은 지난해 위 문제와 관련해 본지 취재에 응하면서 “현재 생분해 비닐은 종량제봉투에 배출하라고 권하는데, 태운다는 관점에서 보면 생분히 비닐이 분해가 된다는 건 큰 의미가 없다”라고 말했다. 홍 소장은 “태우는 걸 고려하면 생분해 비닐 여부보다 바이오 플라스틱이냐 아니냐가 더 중요하며, 현실적으로 가정에서 그냥 배출하면서 재활용도 안 되고, 분리배출 해도 어차피 소각된다면 그건 넌센스”라고 말했다.

생분해 비닐이 땅속에서 자연적으로 분해하려면 일정한 온도(50~60도)가 유지돼 미생물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등 필요한 조건이 있다. 하지만 현재 국내 매립지 토양 상태가 여기에 미치지 못하다는 지적도 있다. 김태희 자원순환사회연대 국장도 이런 문제를 언급한 바 있다. 김 국장은 지난해 이 문제에 대해 “생분해를 위해 필요한 조건이 맞아야 분해가 이뤄지는데 현재 우리나라 매립지 토양 상태로는 그걸 맞추기가 어렵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면서 “생분해는 매립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쓰레기를 태우는) 지금 현실과는 맞지 않으며 실제로는 자연으로 돌아가지도 않는다”고 덧붙였다.

자원순환사회연대가 환경부의 ‘수도권매립지 종량제쓰레기 직매립 금지’에 대해 “발표를 환영하지만 폐기물 원천 감량이 더 중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매립이냐 소각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쓰레기를 줄이는 게 근본적으로 중요하다는 의미다. (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비닐이나 플라스틱의 환경 영향을 두고 "소재 자체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그걸 사용하는 사람들의 습관이 더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 “무엇을 쓰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

비용 문제도 있다. 일회용품을 많이 사용하는 이유 중 하나는 가격이 저렴해서다. 생분해 소재는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더 많이 투입된다. 실제로 제주특별자치도 농업기술원 제주농업기술센터가 지난해 3월부터 7월까지 생분해성 멀칭 비닐을 이용해 단호박을 재배할 때 생육과 수량에 미치는 영향을 실증 시험한 바 있는데 당시에도 이런 문제가 제기된 바 있다.

당시 실험 결과 결과 생분해성 멀칭비닐이 농촌의 환경을 개선시키고 품질이나 생산성 면에서 경쟁력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일반 비닐에 비해 3배 정도 비싸 경제성이 떨어지므로 농가의 가격부담이 높다’는 점이 과제로 지적됐다. 본지에서도 지난해 ‘환경경제용어사전’ 등의 기사를 통해 이 문제를 언급한 바 있다.

이런 여러 가지 문제를 두고 일각에서는 소재 자체도 중요하지만 제품을 사용하는 습관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플라스틱이나 비닐이 무조건 나쁘다는 인식보다는 한번 쓰고 쉽게 버리는 ‘1회용품’에 대한 위기감을 갖자는 지적이다.

이동학 쓰레기센터 대표는 지난 4월 제2차 열린소통포럼에서 “한 번 쓰고 버리거나 불필요하게 사용되는 플라스틱이 문제”라고 말했다. 소재 자체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그걸 사용하는 사람들의 습관, 그리고 그 구조를 만드는 정책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당시 그는 “공유컵 보증금제도나 다회용기 배달서비스 등을 통해 일회용품 사용을 줄여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플라스틱을 두고 제기된 지적이지만 비닐에도 적용할 수 있다. 게다가, 앞선 기사에서 언급한 것처럼 비닐도 플라스틱이다.

‘줄여야 산다’ 4편에서는 일회용 비닐 사용을 줄이기 위한 기업들의 최근 움직임을 보도한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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