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은 많은데 입을 옷이 없다?
2천조원 규모 패션시장의 환경 영향
트렌드냐 기능이냐...옷을 보는 시선들

역사 이후로 인류는 늘 무언가를 더하기 위해 살아왔습니다. 과거보다 더 많은 자본, 나아진 기술, 늘어나는 사업영역에 이르기까지, 미지의 분야를 개척하고 예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며 문명을 발전시켰습니다. 그 결과, 인류는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지구의 건강이 위협받기 시작했습니다. 인류가 무언가를 많이 사용하고 또 많이 버릴수록 지구에 꼭 필요한 자원과 요소들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열대우림이 줄어들거나 빙하가 녹고 그 과정에서 생태계의 한 축을 이루던 동물과 식물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에 주목해야 합니다. 적게 사용하고 덜 버려야 합니다. 에너지나 자원을 덜 쓰고 폐기물이나 쓰레기를 적게 버리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환경적인’ 일입니다. 인류는 무엇을 줄여야 할까요.

줄여야 산다 열 여덟번째 시리즈는 패스트패션입니다. 매년 수많은 옷이 만들어지고 그 옷은 대부분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한 채 그대로 버려집니다. 이런 경향을 두고 패션에서의 기후긍정성이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인류는 옷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할까요? [편집자 주]

 
 
패스트패션은 비싸고 질 좋은 옷을 오래 입기보다는 최신 유행을 좇아 한철 입고 버릴 저렴한 옷을 사자는 풍조를 만연케 한다.(권오경 기자).2018.8.31/그린포스트코리아
전 세계 섬유 생산은 1975년 이후 2019년까지 약 3배 정도 증가했다. 사진은 독자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로 기사 특정 내용과 관계없음. (본사 DB).2018.8.31/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살면서 한 번쯤 해보는 생각이 있다. ‘옷은 많은데 입을게 없다’는 생각이다. 패션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겠지만 옷차림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면 아무래도 저런 마음이 종종 들 터다. 옷장에 옷이 가득 차 있는데 마땅히 입을만한 옷이 없는 상태 말이다.

기자도 그런 적이 있다. 직업적인 이유가 컸다. 지금은 환경경제신문 기자지만 과거 오랫동안 월간 매거진에서 일했다. 요즘은 환경이나 경제 관련 인사들과 주로 이야기를 나누지만 예전에는 연예인이나 디자이너, 아티스트나 작가 등을 주로 만났다. 그 때는 옷차림이 지금과 조금 달랐다. 요즘의 기자는 깔끔하고 단정하면서 편하게 입는 게 예의지만, 그 시절에는 ‘트렌디’하게 입는 게 중요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 중 몇몇은 옆사람이 어느 브랜드의 무슨 옷을 입었는지에 관심이 많았다.

그 시절에는 기자도 패션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다. 버려지는 것 보다는 내가 사는 물건에 관심이 더 많던 시절이었다. 옷 사는 게 취미이자 힐링이었다. 백화점에 한번 가면 6시간씩 돌아다녔다. 커다란 쇼핑백을 양손에 들고, 손이 모자라 팔뚝에까지 쇼핑백을 걸고 백화점을 나올때면 세상이 모두 내 것 같았다. 카드값을 버는 수고로움보다 손에 들린 쇼핑백이 주는 기쁨이 훨씬 컸다.

그 시절 가을의 기억은 이랬다. 비슷한 색의 트렌치코트가 6~7벌 있지만 간절기는 짧았다. 며칠만 지나면 계절이 변했고 철 지난 옷은 옷장 구석이나 수납박스 안쪽에 봉인됐다. 그러다 연말이 지나고 나이 한 살 더 먹으면 작년에 트렌디하던 옷이 곧 ‘구식’이 됐다. 옷을 많이 사는데 입을게 없었다. 꽉 찬 옷장이 마치 밑 빠진 독 같았다. 질 좋고 오래 입을 ‘기본아이템’을 잘 갖춰놓으면 좋았을텐데 매 시즌 유행을 따라 다녔더니 옷장에는 형형색색 철 지난 옷들만 쌓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철 없던 과거다

◇ 2천조원 규모 패션시장의 환경 영향

요즘은 옷이나 가방을 거의 사지 않는다. 주변에서는 ‘나이 먹더니 철 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과거 부모님은 ‘그렇게 옷값으로 월급 다 쓰면 늙어서 어떻게 할래’하셨다. 그때는 반발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동의한다. 이렇게 옷을 많이 사면 나중에 큰일난다. 가진 돈을 옷값으로 다 써서 문제일까? 아니다. 그게 아니고, 패션 산업 역시 지구 환경 오염에 적잖은 지분을 가지고 있어서다.

패션매거진 ‘엘르’가 지난해 2월호 컬럼을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매년 1천억장의 옷이 생산된다. 조선일보 최근 보도에 의하면 매년 옷과 신발이 6천만톤 넘게 만들어지고 이 중 70%가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한 채 곧바로 쓰레기매립장으로 간다.

국제학술지 출판사 스프링거 네이처가 발간하는 ‘환경위생저널’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매년 800억벌의 의류가 소비된다. 그 과정에서 물 집약적인 면화의 증가, 처리되지 않은 염료의 지역 수원 방출 등 섬유 제조업과 관련한 환경적 사회적 비용이 점점 확산되고 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이 서울환경연합 등과 함께 진행한 ‘대담한쓰레기대담’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전 세계 섬유시장 규모는 1억 1천만톤 정도고 전 세계 패션시장 규모는 약 1조 9천억 달러다. 한화 기준 2천조원 규모다. 그 중 한국이 약 40조원 규모인데, 이는 지난 2000년 20조 규모에 비해 2배 가까이 증가한 숫자다.

옷장에 걸린 옷들은 적잖은 에너지와 염료 등을 바탕으로 생산되면서 그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청바지 한 벌을 만들기 위해 물 수천리터가 사용된다. 1만리터가 넘는다는 조사도 있다. 천을 짜고 염료를 빼면서 나온 물질 중 일부는 폐수가 되어 하수도로 흘러간다. 티셔츠의 주재료인 면화를 재배하는데도 전 세계 농약의 10%가 투입된다.

그렇게 지구 환경에 영향을 미치며 만들어진 다음 소비자가 구입한 옷은 그래도 수년간 사용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옷은 땅에 묻히거나 불태워진다. 근본적인 문제는 패션이 단순한 ‘의’를 넘어 ‘멋내기’의 역할까지 겸하면서 필연적으로 생겼다. 홍수열 소장은 앞서 언급한 대담에서 “과거에는 패션 신제품이 1년에 2번 나왔는데 요즘 패스트패션은 약 한달 주기로 신제품이 출시된다”라고 지적했다.

◇ 트렌드냐 기능이냐...옷을 보는 시선들

이것은 옷을 보는 시선의 문제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과거의 기자에게 패션은 ‘지름신’이나 ‘트렌드’ 또는 ‘멋내기’ 같은 용어로 설명하는 가치였다. 패션이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가 사실 그렇다. 만일 옷을 몸을 가리고 비바람과 추위를 막는 용도로만 본다면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옷의 품질들은 매우 훌륭하다. 하지만 매년, 매 시즌 유행에 맞춰 새 상품이 만들어지는 지금의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그렇다고 이런 경향을 무조건 비판적으로 보기도 어렵다. 소비재를 만드는 어떤 분야든 디자인에 신경 쓰고 주기적으로 신제품을 출시하며 소비자의 소유욕을 자극한다. 옷이나 가방 같은 제품들만 그러는 게 아니라는 의미다. 다만. ‘유행 맞는 제품을 사서 한 계절 바짝 입고 버리는’ 경향이 환경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홍수열 소장은 의류가 버려지는 과정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홍 소장은 앞서 언급한 대담에서 “의류는 대부분 매립 또는 소각하고, 섬유는 다시 섬유로 재활용하기가 어렵다”고 지적하면서 “1년에 의류쓰레기가 4800만톤 나오는데 그 중 75%가 소각되고 50만톤이 미세섬유로 바다에 유출되며 1%만 섬유로 재활용된다”고 밝혔다.

버려지는 옷을 줄일 수 있을까? 긍정적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인구가 계속 늘어나고 섬유 생산 역시 늘어나는 추세여서다. 대담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섬유 생산은 1975년 이후 2019년까지 약 3배 정도 증가했다. 현재 전 세계 인구는 약 79억명 내외인데 인구가 앞으로 약 100억명 가량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는 시선도 많다. 당연한 얘기지만, 인류는 누구나 옷을 입는다.

‘즐여야 산다’ 3편에서는 가성비와 효율성을 높인 패스트패션 산업이 환경에 미칠 수 있는 영향과 그런 경향을 줄이려는 업계의 노력 등을 구체적으로 짚어본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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