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법인 절반가량은 순손실이력…은행권 동남아 진출 3년간 78% 증가

돈의 가치는 분명하지만, 금융을 둘러싼 시장은 늘 불확실합니다. 금융시장이 불건전하다는 얘기가 아니라 돈의 흐름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호황과 불황이 예고 없이 닥치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돈줄'을 꽉 막거나 반대로 확 풀어버리기도 합니다.

시중은행들은 여러 변수와 싸우고 있습니다. 물 밑에서 잠자는 코로나 발(發) 잠재 부실을 떨쳐내기 위해 잰걸음을 걷는가 하면, 손익변동이 큰 해외시장 변수를 다스리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녹색금융 체계를 부지런히 세우는 것도 새로운 숙제입니다.

2021년 늦봄, 시중은행의 치열하고 흥미로운 행보를 3차례에 걸쳐 들여다봅니다. 두 번째는 코로나19로 불안정한 글로벌경기 속 해외진출 현황을 집어봤습니다.[편집자 주] 

윤면식 한국은행 부총재가 가계부채 급증 등 금융불균형으로 인한 부작용을 경고했다. (픽사베이 제공) 2018.6.8/그린포스트코리아
시중은행의 글로벌사업이 증가하는 반면 리스크는 커지고 있다.(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박은경 기자] 국내 금융사의 해외 진출이 양적, 질적 측면에서 일제히 리스크가 증가하면서 시중은행의 글로벌 사업도 성패의 기로에 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도 동남아를 중심으로 적극적 진출에 나섰지만 미얀마 쿠데타 등 은행이 통제하기 어려운 리스크가 늘어나며 손실 위험이 커졌다.

28일 한국신용평가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9월말 기준 4대 시중은행(신한·국민·하나·우리은행)의 해외 소재 종속기업 및 관계기업 장부금액 합계는 8조 4천억원에 이른다. 대륙별로 △동남아 4조 5천억원 △중국 2조 9천억원 △아메리카 1조 1천억원 △유럽과 일본이 각각 4천억원 규모다. 2017년도 6조 9천억원 대비 약 18% 가량 확대된 수준으로, 동남아 시장의 경우 약 3년 만에 1조 9천억원에서 78%(3조 5천억원) 가량 증가했다.

국내 48개 금융사가 투자한 167개 해외금융사까지 포함할 경우 국내 금융사의 해외법인 총자산 규모는 123조원까지 확대된다. 이는 지방은행지주 중 규모가 가장 큰 BNK금융지주의 114조원(지난해 12월말 기준) 보다 크다.

◇코로나19에도 식지 않는 글로벌 열기…해외법인 절반가량은 손실 발생

반면 해외시장 리스크는 과거 대비 늘어났다. 시장에선 고객의 자산을 책임지는 금융업 특성을 고려해 금융사의 해외투자 익스포저(손실범위)를 해외법인 총자산으로 판단하는데, 은행의 연결 자기자본 대비 해외 금융사 총자산 비율은 55%까지 증가했다. 이 경우 극단적으로 해외 총자산 전액이 손상 처리되면 자본비율이 절반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 국내 저금리·저성장 기조를 고려하면 해외 익스포저는 앞으로도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167개 해외법인 중 최근 3년 간 한 번 이상 당기순손실이 발생한 곳은 83개사에 달한다. 약 49.4%가량이 손실 발생이력이 있는 셈이다. 2번 이상의 손실이 발생한 법인도 22%에 달했다. 이중 4대 은행이 적극적 러시를 펼쳤던 동남아, 중국 등에선 손익 변동성이 더욱 큰 것으로 파악됐다. 한 번 이상 순손실이 발생한 법인 중에서도 동남아 법인들이 절반가량을 차지했다. 이자이익 등 핵심이익 창출 규모는 성장세를 보이는 반면 대손비용 등 비용 측면서 변동성이 높은 탓이다.

때문에 동남아시장 편중 현상이 심화될수록 위험부담도 상승한다. 동남아 금융사에 대한 국내 금융사의 투자 비중은 2017년 27.1%에서 2020년 9월 말 42.8%까지 증가했는데, 최근에는 동남아 진출시 은행보단 증권, 캐피탈 등의 비중을 키우고 있다. 은행업으로 진출하는 경우도 전통적 현지 상업은행보단 수신기능을 보유한 소액대출 금융기관을 인수하는 사례가 늘어나 리스크도 커지는 중이다. 소액대출 금융기관은 전통적인 상업은행대비 차주 구성 및 대출포트폴리오 다각화 수준이 열위하고, 유사시 정부의 지원 가능성도 기대하기 힘들어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높다.

더욱이 동남아 등이 속한 신흥국 경제위기론도 확산되고 있다. 국제금융센터에 의하면 신흥국의 가계 및 기업부채는 GDP(국내총생산)대비 147.3%로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13.9%포인트 증가했다. 부채 규모도 239억달러로, 지난해 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디폴트 선언과 코로나19 충격에 따른 부진으로 1999년 통계 이래 역대 최고수준을 찍었다. 동남아 등 신흥국 내 은행에선 좀비기업이 늘면서 부실자산(NPA)도 지난 2019년 5.4%에서 지난해 6.2%로 확대됐다.

◇커지는 위험부담에도 동남아러시는 지속…성장성·모바일 보급률 높아 

그럼에도 은행권이 동남아 러시를 펼치는 건 타 대륙에 비해 진입장벽이 낮고 빠른 경제성장 및 소득증가가 기대되는 만큼 성장가능성도 높아서다. 또 동남아 국가는 인구 비중 대비 모바일 이용률도 비교적 높아 디지털 중심의 시장 확대에도 용이하다.

국가별로 외국계 금융기관의 진입장벽 및 규제 수준은 다르지만 필리핀,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 등은 진입규제가 낮아 국내 금융사도 적극적으로 진출해있다.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은 상대적으로 규제 장벽이 높지만 경제규모와 성장성 등을 고려한 진출이 늘고 있다.

은행별로 국민은행은 △중국 유한공사 △KB캄보디아 은행 △인도네시아 '부코핀은행' 및 이슬람대출 기관 'PT Bank Syariah Bukopin' 과 할부금협력기관 'PT Bukopin Finance' 등을 운영중이다. 신한은행도 △중국유한공사 △신한캄보디아은행 △신한베트남은행 △신한인도네시아은행 △신한인도파이낸스 △미얀마 신한파이크로파이낸스 등이 있다. 우리은행은 △인도네시아 우리소다라은행 △캄보디아 'WM파이낸스' 저축은행 △소액대출기관 '우리파이낸스 미얀마' △우리웰스뱅크필리핀 △베트남우리은행 등이 있다. 하나은행은 중국 유한공사 등에 진출해있다.

국내 은행이 동남아 러시를 펼쳐온 만큼 위험부담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지난해 9월말 기준 동남아 지역 법인의 평균 총자산순이익률(ROA)은 0.76%로 해외국가들 중 가장 높은 수익성을 보이고 있다. 이는 국내 금융사가 현지 은행뿐 아니라 소액대출회사나 저축은행 등으로 진출하면서 평균 대출취급금리가 높고, 신용수요도 풍부해 높은 여신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덕분이다.

더불어 저금리·저성장이 고착화된 선진국 대비 상대적으로 높은 GDP 성장률도 높아 진출 시 포섭할 수 있는 잠재 수요도 풍부하다. 실제 지난해 캄보디아와 인도네시아는 실질 GDP성장률이 미국과 독일 보다 양호한 성장그래프를 보였다. 모바일보급률 또한 캄보디아와 미얀마는 100%를 상회하고 베트남은 90%, 인도네시아도 60% 수준이다.

◇미얀마 쿠데타發 여파는 제한적…글로벌사업 선별적 확대 추진

쿠데타 발생으로 현지 직원이 철수하는 등 사태가 발생했던 미얀마 리스크의 경우도 제한적이다. 미얀마 현지법인서 발생하는 이익 규모가 각 사별로 유의미한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은행별로 국민은행과 농협은행이 미얀마 법인에 각각 224억원과 226억원의 투자지분을 갖고 있어 타행대비 위험부담이 큰 축에 속한다.

김정훈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미얀마 현지법인에서 발생하는 이익규모가 각 금융사의 외형 대비 유의적인 수준이 아닌 만큼 미얀마에 진출한 각 금융사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최근 국내 금융사의 해외진출은 통제할 수 없는 이벤트 리스크가 과거 대비 확대되고 있지만, 수익성을 제고하기 위한 이러한 움직임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에 발맞춘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해외진출시 리스크는 커졌지만 성장성을 고려한 글로벌시장 개척은 지속될 전망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코로나19 영향으로 해외진출 전략이 다소 위축된 상태지만 상대적으로 성장률 감소폭이 작은 동남아 국가와 미·중갈등 확대에 따른 수혜국들을 중심으로 글로벌사업의 선별적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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