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퍼리스 12개월차, 종이 쓰지 않고 일해보니

 

기업이나 정부가 아닌 일반 소비자가 실천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친환경’ 노하우는 ‘쓰레기를 덜 버리는 것’입니다. 플라스틱이든, 음식물 쓰레기든, 아니면 사용하고 남은 무엇이든...기본적으로 덜 버리는게 가장 환경적입니다.

그린포스트코리아 편집국은 지난해 ‘미션 임파서블’에 도전했습니다.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주말 이틀을 살아보자는 도전이었습니다. 도전에 성공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이틀 동안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게 말 그대로 ‘불가능한 미션’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환경을 포기할 순 없습니다. 하여, 두 번째 도전을 시작합니다. ‘제로웨이스트’입니다. 이틀 내내 쓰레기를 ‘제로’로 만들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것부터 실천하기로 했습니다. 쓰레기를 배출하던 과거의 습관을 하나씩 바꿔보려 합니다. 평소의 습관이 모여 그 사람의 인생과 운명이 결정된다면, 작은 습관을 계속 바꾸면서 결국 인생과 운명도 바꿀 수 있으니까요.

불편하고 귀찮은 일이지만 그래도 한번 해보겠습니다. 제로웨이스트는 아니고 차선책으로 ‘로우웨이스트’입니다. 스물 여덟 번째는 종이 없이 일하는 방법입니다. [편집자 주]

업종과 직무에 따라 다르겠지만, 2021년의 기자도 어쩌면 '종이 없이' 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기자가 한번 도전해봤다. (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업종과 직무에 따라 다르겠지만, 2021년의 기자도 어쩌면 '종이 없이' 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기자가 한번 도전해봤다. (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기자는 올해로 21년차다. 세기가 바뀌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자로 일했으니 제법 긴 시간이 지났다.

업무 환경이 많이 변했다. ‘라떼’는 태블릿이나 노트북 대신 수첩을 가지고 다녔다. 세로로 길쭉하고 손바닥보다 조금 큰 모양인데 다들 그걸 ‘기자수첩’이라고 불렀다. 거기에 볼펜을 가지고 다니며 메모하는 게 ‘취재기자’의 모습이었다. 서랍에 수첩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게 ‘연륜있는 기자의 포스’라고 느껴지기도 하던 시절이었다.

스마트폰도 없었다. 휴대전화가 있었으나 녹음 같은 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소위 ‘녹음기’라고 부르는 보이스레코더를 가지고 다녔다. 한 손에 수첩 들고 다른 한손에 녹음기를 들면 손이 모자라 가방을 들기도 불편했었다.

그 시절에도 ‘라떼’ 선배들이 있었다. 이제는 모두 은퇴했을 그 세대 선배들은 내게 인터뷰할 때 노트북은 물론이고 녹음기도 절대 꺼내지 말라고 했다. 마치 형사가 취조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취재원이 자기 속내를 충분히 털어놓지 못한다는 이유였다. 너무 티나게 받아적지도 말라고 했다. 그저 대화를 하듯, 상대의 눈을 보며 자연스럽게 얘기하다 은근슬쩍, 중요한 말만 조용히 눈치껏 받아적으라고 했다. 그게 취재의 기술이라고 했다. 그게 꼭 필요한 스킬이었는지 아닌지 지금은 잘 모르겠다.

2021년의 내게는 수첩이 없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이 있어서다. 녹음도 되고 메모도 되고, 머리를 조금만 굴리면 녹음한 걸 바로 텍스트로 만들수도 있다.

수첩을 없앤지는 꽤 됐지만 한동안 수첩 대신 다이어리가 있었다. 가죽 표지가 씌워진 적당한 크기의 다이어리에 명함 몇 개를 넣고, 앤티크한 디자인의 펜을 꽂아 가지고 다녔다. 중요한 취재원과 ‘미팅’을 할 때 격식있어 보여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기자는 상대가 다이어리를 들었든, 맨손에 청바지를 입었든 전혀 상관하지 않았으나 기자의 주위에는 그런 걸 신경쓰는 사람이 참 많았다.

미팅 자리에서는 A4용지 뭉치가 오가는 경우가 많았다. 기획안을 전달하거나 자료를 건네받을때다. 기획안을 컬러프린트로 인쇄해 전달하는게 ‘격식과 매너’로 여겨지기도 했다.

◇ 종이 없이 취재하기, 불편해도 할 만 하다.

작년 봄, 수첩과 다이어리와 종이 기획안을 모두 없앴다. 그린포스트에 입사하고 나서다.

지금도 기억난다. 입사 후 첫 회의 할 때, 기자들이 다음 주 기획안을 모두 A4용지에 프린트해서 사람 숫자대로 나눠 가진 다음 의견을 나눴다. 7명의 기자가 49장의 기획안을 출력했다. 1~2시간 남짓 회의를 위해 수십장의 종이가 사용되고 곧 버려졌다.

회의실에서는 자원순환이나 재활용 정책, 일회용품이나 플라스틱 사용 줄이는 방법 등을 열심히 토론했는데 그 회의가 끝나자마자 종이가 이렇게 버려지는 건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다. 버려지는 것들의 환경 영향과 그로 인해 생기는 기후위기를 얘기하면서 회의실 쓰레기통에 스테이플러 박힌 종이뭉치가 가득 담기는 건 이상했다. 그래서 기획안을 출력하지 않고 노트북에 파일로 띄워 회의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다이어리도 사용하지 않는다. 가지고 있는 제품이야 어쩔 수 없지만 2021년 버전은 구매하지 않았다. (참고로 달력도 안 샀다) 취재원과 만나 얘기를 나누다 중요한 얘기가 있으면 ‘잠시 제가 메모 좀 하겠습니다’라고 양해를 구하고 스마트폰 메모장에 간단히 적어둔다.

진지한 얘기를 나눌때는 처음부터 노트북을 편다. ‘라떼’시절 선배들 얘기처럼 취재원이 살짝 불편해하는 기색이 느껴질 때도 있지만 “말씀하시는 내용의 맥락과 취지가 어그러지지 않게 그대로 확실히 잘 적어두려고 한다”고 말하면 다들 이해했다.

자료는 메일이나 메신저로 주고받는다.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절대 출력하지 않는다. 기자도 X세대 옛날 사람이라 프린트물을 넘겨가며 보는 게 편하다. 하지만 불편해도 PDF파일 일일이 확대해가며 읽는다. 200쪽이 넘는 자료에서 특정 부분만 필요한 경우도 있는데, 그걸 위해 종이 200장과 잉크를 써가며 출력하는 건 너무 비효율이라고 느껴서다.

기자는 사무직이면서 현장직인 직업이다. 사무실이기 때문에, 변수가 많은 현장이기 때문에 ‘종이’가 필요한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종이가 없어도 일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 그리고 한가지 확실한 건, 후배 세대 기자들은 종이가 없어도 기자보다 덜 불편해한다. 어떤 경우 종이를 오히려 더 불편해하기도 한다. 결국 습관의 문제인 것 같다.

종이를 출력하지 않으면서 일한지 이제 1년이 됐다. 편리함을 위해서든 환경을 위해서든, 나는 앞으로도 ‘페이퍼리스 기자’로 남을 생각이다. Z세대 기자에게는 신기한 일이 아니겠지만 말이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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