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째 식탁 위의 강자...라면의 2가지 환경
소비자에게 물어봤다 “라면 비닐 어때요?”
라면비닐 어떻게 처리될까? 물질재활용(X) 에너지재활용(O)
“라면봉지, 과자봉지 등과 같이 분리 배출해야”

환경의 사전적(표준국어대사전) 의미는 ‘생물에게 직접·간접으로 영향을 주는 자연적 조건이나 사회적 상황’ 또는 ‘생활하는 주위의 상태’입니다. 쉽게 말하면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바로 나의 환경이라는 의미겠지요.

저널리스트 겸 논픽션 작가 율라 비스는 자신의 저서 <면역에 관하여>에서 ‘우리 모두는 서로의 환경’이라고 말했습니다. 꼭 그 구절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이 책은 뉴욕 타임스와 시카고 트리뷴 등에서 출간 당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고 빌 게이츠와 마크 저커버그가 추천 도서로 선정했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누구의 환경인가요?

주변의 모든 것과 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환경이라면, 인류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대부분의 물건 역시 환경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24시간 우리 곁에서 제 기능을 발휘하며 환경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는 생활 속 제품들을 소개합니다. 열 한번째는 우리나라가 평균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먹는다는 ‘라면’입니다. [편집자 주]

재포장과 묶음 상품 관련 논란이 뜨겁다. 비판이 거세지자 환경부는 관련 내용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소비자들의 반응도 엇갈린다. 사진은 서울의 한 마트에 진열된 5개들이 라면 모습. 환경부는 “라면 5개들이 번들 묶음 할인 제품의 경우 공장에서 출시되는 제품(종합제품)이므로 재포장이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한 기자 2020.06.20)/그린포스트코리아
60년 가까운 세월동안 라면은 식탁위의 강자였다. 그런데 라면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있다. 사진은 독자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로 기사 특정 내용과 관계없음 (본사 DB)/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대한민국은 라면공화국이다. 라면은 수많은 한국 사람에게 소울푸드이자 훌륭한 야식이고 해장국이면서 때로는 든든한 한 끼다. 누구나 자기가 맛본 최고의 ‘인생라면’이 하나씩 있을터다. 낚시나 바다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도 바다에서 갓 잡아올린 해산물로 끓인 라면맛이라면 한번쯤 맛보고 싶지 않을까.

우리는 라면을 얼마나 먹을까. 조선일보가 지난 2일 세계인스턴트라면협회(WINA)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세계 라면 판매량은 연간 1064억 개고 그 중 한국은 39억 개로 7번째 시장 규모다. ‘라면공화국’이라는 이름에 맞지 않는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1인당 소비량(75.1개)은 세계 1위다. 2위권 국가가 56~57개 수준이므로 우리는 1년에 세계 2위 소비국보다 20개 정도 많은 라면을 먹는다는 얘기다.

코로나19로 집콕 경향이 늘었거나 최근 1~2년 새 달라진 경기 영향으로 갑자기 라면 소비가 늘어난걸까? 그렇지는 않다. 연합뉴스와 한겨레 등이 지난 2015년 11월 보도한 바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우리나라 국민 1인당 면류 소비량은 연간 13.3㎏이었다. 종류별로 보면 유탕면류(라면)가 9.15kg으로 전체 소비량의 69%를 차지했다. 그때도 국민 1인당 연간 라면 섭취는 다른 아시아 국가보다 적어도 20개 이상 많았다. 당시 보도는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펴낸 ‘2015 가공식품 세분화 현황 면류편’ 보고서에 따른 것이다.

◇ 60년째 식탁위의 강자, 라면의 역사

시장에서 라면이 쌓아온 역사를 잠깐 돌아보자. 우리나라 라면의 출발은 삼양이다. 삼양식품 창업자인 고 전중윤 명예회장이 1960년대 남대문시장에서 이른바 ‘꿀꿀이죽’ 먹으려고 길게 줄 지어 선 노동자들을 보고 새 먹거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라면 개발에 나섰다.

1963년에에 10원짜리 삼양라면이 세상에 처음 나왔다. 당시로서도 담배 한갑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다. ‘여러 사람이 최대한 많이 라면을 먹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싼 값을 책정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삼양라면은 1965년 정부가 추진한 혼분식 장려운동 등에 힘입어 판매량이 늘었고 1969년에는 국내 최초로 베트남에 라면을 수출했다.

그 이후 세대에서 라면시장 1위를 차지한 건 농심 신라면이다. 1990년대 후반 이후 매운라면이 대세가 되면서 매운콩라면(빙그레), 쇠고기맵다면(삼양), 맵시면(야쿠르트) 등 이른바 ‘빨간’ 라면이 줄줄이 출시됐으나 모두 신라면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후 된장라면, 닭고기국물 등 흰국물 위주의 라면, 부대찌개 라면이나 감자탕면, 마라탕면 등 시대적 유행흐름을 탄 라면들이 줄줄이 출시됐다.

그 와중에 인기의 한 축을 든든히 지킨 건 짜장라면이다. 농심이 1970년 2월 롯데짜장면을 출시했고 1978년에는 삼선짜장면, 1983년에는 농심짜장면을 각각 출시했다. 그런데 당시 제품은 스프가 면에 잘 섞이지 않고 뭉치는 문제가 있었다. 잘 풀어지라고 물을 많이 남기면 맛이 싱거워졌다. 농심은 연구를 거듭하다 ‘그래뉼 공법’을 라면 스프 제조에 처음 도입했다. 모래처럼 고운 가루 타입 과립 스프가 그때 나왔다. 그게 짜파게티의 시작이다.

◇ 라면에서 관찰하는 2가지 환경 영향

6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라면은, 어떤 제품은 ‘사나이를 울리고’ 또 어떤 제품은 ‘일요일은 누군가를 요리사로 만들면서’ 식탁 위의 강자가 됐다. 그런데 라면에 어떤 환경 영향이 있을까. 쉽게 생각해보면 두 가지다. 먹고 남겨 버리는 라면국물이 수질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조리 과정에서 버려지는 비닐의 환경 영향이 있다.

정부 블로그 '정책공감'에 따르면 라면국물 150ml를 정화하는데 물 564 리터가 필요하다. 너무 많은 물이 필요한 것 아니냐며 놀라지 말자. 된장찌개 150ml를 정화하려면 물 1680 리터, 우유 200ml를 정화하려면 물 7500 리터가 필요하다. 소주 한 병(360ml)을 물고기가 살 수 있을 정도로 희석하려면 깨끗한 물 1만 8180 리터가 있어야 한다. 싱크대에 자꾸 무언가를 흘려보내면 수만 리터의 깨끗한 물이 투입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비닐은 어떨까. 이 기사에서는 비닐 얘기를 좀 더 많이 할 예정이다. 직관적인 숫자로만 보자. 1년에 라면을 75개 먹으면 라면봉지가 75개, 스프봉지가 75~150개 나온다. 5개씩 묶어파는 라면을 샀으면 제품을 묶은 커다랑 봉투도 15개 나온다. 스프가 몇 개나 들어있는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비닐 쓰레기를 200여 개 이상은 버려야 한다는 의미다.

물론 스프가 하나만 들어있는 제품도 있다. 하지만 스프가 3개씩 들어있는 제품도 있다는 걸 생각하자. 최근 부쩍 늘어난 인기로 지난해 판매량이 수억 건에 달했던 한 라면도 스프가 3종류다. 게다가 저건 ‘1인당’ 평균이다. 라면을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우리나라 전 국민을 대상으로 나눈 것이니 저 숫자에 곱하기 5천만을 해보면 그게 곧 우리가 1년 동안 버리는 라면 관련 쓰레기다.

라면 비닐을 줄일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해 제조사의 입장을 정리하면 이렇다. 싼값에 더 많은 제품을 구매하려는 소비자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묶음상품 판매가 반드시 필요하고, 라면을 낱개로 유통하면 보관 과정에서 파손 우려가 있는데다, 습기나 냄새 등에도 취약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본지는 지난 3월 26일 [소비자는 불편할 준비가 되어 있다] 기사에서 관련 입장을 취재한 바 있다.

◇ 소비자에게 물어봤다 “라면 비닐 어때요?”

그 기사를 본 소비자들의 반응은 어떨까. 기자가 주위 지인과 소비자들에게 해당 기사를 보여주고 의견을 물어보았다 기자는 라면에서 나오는 비닐 쓰레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5개씩 비닐로 묶어 파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려달라고 했다. 그러자 소비자들은 ‘포장을 줄이면 좋겠다’고 말했다.

송파구에 사는 소비자 정모씨(42)는 “종이로 포장하는 방법도 있고, 비닐보다 더 작은 크기의 띠지로 묶는 방법도 있는데 낱개로 유통하면 깨질까봐 비닐로 5개씩 포장한다는 말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씨는 “5개로 묶어놓았고, 비닐은 단단한 소재도 아닌데 하나만 떨어트리면 5개가 모두 깨지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덧붙였다.

잠원동에 사는 소비자 최모씨(40)는 “라면은 보통 1개나 2개 끓여 먹는데 굳이 5개가 들어있을 필요는 없다”면서 “2개나 4개가 아니고 굳이 5개인 이유는 한 번에 최대한 많이 팔고, 2개씩 먹는 사람이 한 묶음을 다 먹으면 또 사게 하려는 계산인 것 같다”고 주장했다. 최씨는 ‘5개 사는 대신 단위당 가격이 저렴하다는 장점도 있지 않느냐’고 기자가 묻자 “낱개로 5개를 구매하는 고객에게는 할인을 해주면 된다”고 말했다.

송파구에 사는 또 다른 소비자 이모씨(44)는 스프 봉지에 대한 아쉬움을 얘기했다. 이씨는 “해외 브랜드 라면 중에서는 스프가 비닐 없이 고체형태로 들어있거나 처음부터 면에 스프가 스며든 상태로 제조돼 포장재 안에는 그냥 면만 있는 제품도 있다”면서 “라면 하나 먹을때마다 비닐 쓰레기가 줄줄이 나오는 건 요즘 추세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씨의 주장은 기자의 견해와 같았다. 기자도 해외 브랜드 라면 중에서 스프비닐이 없는 컵라면 2종류, 스프가 처음부터 면에 스며들어 나온 봉지라면 1종류를 여러 번 먹어보았다. 스프봉지를 버리지 않아도 되어서 쓰레기가 줄었다. (다만, 스프가 들어있지 않은 봉지라면 제품은 국내 4개씩 비닐로 묶음 포장 되어 있었다)

국내 대형마트에서는 봉지라면을 묶음 포장으로만 판매하고 있다. 낱개 판매는 찾아볼 수 없다. 이유가 무엇일까. 사진은 왼쪽부터 홈플러스, 이마트, 롯데마트에 봉지라면 묶음 포장 제품들이 진열된 모습. (곽은영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대형마트 매장이 진열된 라면 모습 (본사 DB)/그린포스트코리아

◇ 라면비닐은 재활용 된다? 안 된다?

쏟아지는 라면 비닐은 어떻게 처리될까. 라면 비닐이나 과자 봉지 같은 것들이 재활용이 잘 안되서 일반쓰레기로 버려진다는 얘기가 많이 알려져있다 하지만, 라면 비닐들은 비교적 재활용이 잘 된다. 대신 한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깨끗한 상태로 배출하는 게 좋다. 그리고 알아야 할 게 있다. 소비자가 흔히 상상하는 방식이 아니라 좀 다른 형태로 재활용된다.

김미화 자원순환사회연대 이사장이 본지와의 통화에서 이 문제에 대해 설명했다. 김 이사장은 “라면봉지나 과자봉지는 이물질이 묻어있거나 여러 가지 색깔로 글씨나 그림 등이 인쇄돼 있어서 재활용품 질이 떨어져 물질재활용이 어렵다”고 말했다. 쉽게 말하면 ‘다시 쓰기 좋을 만큼 깨끗한(?)’ 비닐이 아니어서 그걸 가지고 재활용하면 재활용 제품의 품질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김 이사장은 “(라면봉지 등은) 에너지재활용에 주로 사용한다”면서 “에너지재활용도 정부 재활용분류에 의한 엄연한 재활용 방법인 만큼, 물질재활용이 어렵다고 해서 ‘재활용이 안된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물질재활용과 에너지재활용에 대해 먼저 짚고 넘어가자. 물질재활용은 쉽게 말해 폐기물을 원료로 가공해서 제품으로 만드는 활동을 뜻한다. 에너지재활용(또는 에너지회수)는 태워서 에너지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어감상 재활용은 그 물건을 재료로 또 다른 물건을 만든다는 느낌이 강하지만, 태워서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 역시 재활용의 범위로 볼 수 있다.

◇ “라면봉지, 과자봉지 등과 같이 분리 배출해야”

물론 선별장에 재활용품이 너무 많이 쌓이고, 오염되거나 재활용 자체가 어려운 것들이 마구 뒤섞여 있으면 제대로 골라지지 않고 버려지는(?) 것들이 있는 건 사실이다. 김 이사장은 “선별장에서 그런 식으로 나오는 ‘종말품’이 50% 이상 되는 경우도 있고, 그 중에서도 에너지로 가는 경우, 그대로 매립소각 되는 경우가 있겠지만, 라면봉지나 과자봉지는 일반비닐봉지와 같이 분리배출 하면 된다”고 말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도 “라면봉지와 과자봉지는 비닐류 재활용으로 분리배출하면 된다”고 말했다. 기자가 ‘에너지재활용으로 주로 활용한다고 보면 되느냐’고 묻자 그렇다고 답했다.

환경부와 한국환경공단이 운영하는 ‘내 손안의 분리배출 앱’에서도 비닐포장재와 1회용 비닐봉투 버리는 방법은 이렇게 안내한다. “내용물을 비우고 물로 헹구는 등 이물질을 제거하여 배출합니다. 흩날리지 않도록 봉투에 담아 배출합니다” 그리고 해당 설명에는 유명 라면 제품 봉지가 예시로 제시된다.

한 사람당 1년에 75개, 한 번에 국물 150ml씩 남긴다면 그걸 정화하는데 필요한 물이 4만 2300리터, 그와 함께 버려지는 비닐 쓰레기가 200여개다. ‘소울푸드’ 라면이 환경에 미치고 있는 영향이다. 기자 역시 라면 없이는 못 사는 사람이어서 ‘먹지 말자’는 얘기를 할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지구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줄이는 방법은 찾아야 할 때가 됐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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