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텀블러 사용...일회용컵 사용 정말 줄어들까?
당신의 텀블러는 여러 번 사용되고 있나요?
가지고만 있고 사용하지 않는다면 문제
‘에코템’ 텀블러가 정말로 환경적이기 위한 조건

환경의 사전적(표준국어대사전) 의미는 ‘생물에게 직접·간접으로 영향을 주는 자연적 조건이나 사회적 상황’ 또는 ‘생활하는 주위의 상태’입니다. 쉽게 말하면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바로 나의 환경이라는 의미겠지요.

저널리스트 겸 논픽션 작가 율라 비스는 자신의 저서 <면역에 관하여>에서 ‘우리 모두는 서로의 환경’이라고 말했습니다. 꼭 그 구절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이 책은 뉴욕 타임스와 시카고 트리뷴 등에서 출간 당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고 빌 게이츠와 마크 저커버그가 추천 도서로 선정했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누구의 환경인가요?

주변의 모든 것과 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환경이라면, 인류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대부분의 물건 역시 환경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24시간 우리 곁에서 제 기능을 발휘하며 환경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는 생활 속 제품들을 소개합니다. 아홉 번째는 일회용품 사용을 줄여줄 것으로 기대하는 텀블러입니다. [편집자 주]

텀블러는 환경적이지만, 텀블러 여러개를 돌려쓰는 것은 환경적이지 않을 확률이 높다. 용맹하지만 '애정 결핍'에 걸린 가상의 전사 텀블러와 그 동료(?)들의 사진. 저 텀블러의 주인이 기자인지 아닌지는 프라이버시상 비밀이다. (이한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텀블러는 환경적이다. 꾸준히, 오래 사용한다면 더 환경적인 아이템이 된다. 하지만 가지고 있으면서 쓰지 않으면 반대가 될 수도 있다. 사진은 독자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로 사진 속 제품이나 브랜드 등은 기사 특정내용과 관계없음. (본사 DB)/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텀블러는 대표적인 ‘에코템’이다. 일회용컵 사용을 줄일 수 있어서다. 잘 사용하면 종이컵이나 플라스틱컵 사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텀블러 사용을 권하는 목소리가 여러 곳에서 들려오는 이유다. 하지만 텀블러가 언제나, 그러니까 항상 환경적일까? 참고로 아래 기사 내용을 미리 들은 지인 중 한 명은 ‘필요 이상으로 딴죽을 거는 것 같다’고 했고, 또 한명은 ‘그런 부분도 같이 생각해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이 기사가 언급하는 내용은 이렇다. 텀블러를 꾸준히 사용하면 일회용컵 사용을 줄일 수 있지만,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면서 여러 종류를 소유(정확히 말하면 소장)만 한다면 환경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텀블러 하나를 생산하는데도 에너지를 사용하고 탄소가 배출되며 혹시 버려지면 그 과정에서도 그만큼의 ‘품’이 필요해서다.

본지 기사에서 몇 번 언급한 바 있지만, 텀블러 하나를 생산하고 폐기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는 일회용컵 하나를 만들고 폐기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보다 많다. 텀블러가 환경적이려면, 일정 기간 이상 꾸준히 사용해 ‘손익분기’를 맞춰야 한다는 의미다. 소비자들은, 그리고 텀블러 생산자들은 그렇게 하고 있을까?

◇ 늘어나는 텀블러 사용...일회용컵 사용 정말 줄어들까?

텀블러 사용을 권하는 목소리는 많은 곳에서 들린다. 최근 사례만 봐도 지난 3월 25일, 국내 한 대형금융사가 고객과 임직원을 대상으로 텀블러 관련 캠페인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일회용컵 대신 개인 텀블러 사용을 장려하려는 취지다. 앞서 한 지자체는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자원순환 조성에 앞장서겠다며 청사 주변 카페를 대상으로 텀블러 사용시 할인 혜택 적용을 협의해 텀블러 사용을 독려했다.

국내 한 대기업은 지난 2월부터 자사 사업장 중 한곳을 ’일회용 컵 사용 없는 시범빌딩’으로 운영한다고 밝혔다, 첫날에는 회장이 출근길에 텀블러를 가지고 행사장을 찾아 커피를 담는 모습도 보였다. 앞서 지난달에는 탄소를 줄이고 지구를 구하자는 내용이 새겨진 텀블러를 직원들에게 나눠줬다.

텀블러를 쓰는 사람이 늘어나고, 일회용컵 사용 횟수는 줄어들고 있을까? ‘그렇다’고 대답하기는 어렵다. 여성환경연대가 지난해 5월 21일부터 6월 1일까지 서울 시내 커피 전문점 68곳의 일회용컵 사용 현황을 조사한 결과, 조사 대상 중 절반 이상 매장에서 일회용컵을 사용하고 있었다.

물론 일회용컵 사용을 나쁘게만 볼 수는 없다. 코로나19 확산가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면서 위생을 위해 일회용품 사용이 늘어난 측면도 있어서다. 하지만 버려지는 쓰레기의 양을 생각하면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건 중요한 숙제다. 일회용 대신 다회용을 사용하자는 것도 위생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버려지는 것을 줄여보자는 취지다.

◇ 당신의 텀블러는 여러번 사용되고 있나요?

기자도 텀블러를 가지고 다닌다. 평소 기자는 노트북과 마우스, 전원 아답터와 보조배터리 등이 모두 들어가는 커다란 백팩에 짐을 담는다, 차도 가지고 다닌다. 그래서 커다란 텀블러를 가지고 다녀도 어깨가 아프거나 불편하지는 않다. (내연기관차를 매일 타고 다니는 것에 대한 환경적인 영향은 나중에 따로 기사화할 계획이다)

기자는 실제 소비자들에게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가지고 다니지 않거나, 가지고 다니기는 하는데 사무실에만 두고 카페에는 가져가지 않는다고 대답한 사람이 많았다. 부지런히 가지고 다니는데, 어려움이 많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소비자 윤모씨(38)는 사무실에 텀블러를 두고 물컵으로 쓴다고 했다. 지하철을 타고 시청역 근처로 출퇴근하는데 텀블러를 매일 들고 다니기는 귀찮다고 했다. 카페에 갈때도 텀블러를 들고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다.

윤씨는 “카페에 가는 건 주로 출퇴근할때나 점심 먹고 나서인데 텀블러는 사무실에 있고, 밥 먹으러 갈 때부터 텀블러를 들고 나가려면 번거로워 점심 시간에 커피를 마실때는 일회용 컵을 받아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윤씨는 “점심에 받은 일회용 컵을 물컵이나 양치컵으로 사용하려고 해봤지만 커피향이 배어 있어서 잘 안 된다”고 했다.

분당에서 종로까지 출퇴근하는 소비자 김모씨(44)도 비슷한 이유로 일회용컵을 계속 사용한다고 했다. 김씨는 “커다란 텀블러를 가방에 매일 넣어 다니기가 아무래도 불편하고, 점심에 굳이 들고 나가지도 않으니 점심시간에는 꼭 일회용컵이 하나씩 생긴다”고 말했다.

모든 소비자가 텀블러를 들고 다닐 수는 없다. 일회용컵 사용 자체를 막을 수도 없다. 하지만 일회용컵을 아무데나 버리는 건 문제다. 손 닿는 모든 곳을 쓰레기통처럼 쓰는 저런 사람들은 유치원에서 뭘 배웠을까? (이한 기자 2020.12.20)/그린포스트코리아
길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일회용컵의 모습. 텀블러를 사용하면 이런 모습이 줄어들 수 있다. 그런데, 저 음료잔의 원래 주인들도 혹시 텀블러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을까? (본사 DB)/그린포스트코리아

◇ 가지고만 있고 사용하지 않는다면 문제

물론, 사무실에 텀블러를 두는 것도 의미가 있다. 종이컵 등 일회용컵 사용을 줄일 수 있어서다. 한번 마시고 습관적으로 버려지는 종이컵 개수를 생각하면 하루 종일 텀블러 하나로 그걸 (심지어 오랫동안) 대신할 수 있다는 건 매력적이다.

문제는 텀블러를 가지고 있는데 사용하지 않는 경우다. 특히, 텀블러 여러개를 수집 용도로 모아 가지고 있으면서 사용은 하지 않는 경우라면 이런 케이스는 ‘환경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텀블러를 소비하는 것은 소비자 개인의 자유고 그걸 모으는 것도 건전한 취미가 될 수 있지만, 제품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있다는 의미다.

인기 카페 프랜차이즈 등에서는 시즌마다 다양한 디자인의 텀블러를 출시한다. 물론 기업이 일정한 주기마다 신제품을 출시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텀블러는 제품 자체가 가진 긍정적인 영향력도 있다. 하지만 텀블러 신상이 매시즌마다 출시되는 건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려는 취지보다는 MD상품 매출을 올리는 마케팅 수단으로 읽히기도 한다.

텀블러가 환경적이려면 꾸준히, 또 오래 사용해야 한다. KBS가 기후변화행동연구소와 함께 연구한 바에 따르면, 300ml 용량 텀블러를 매일 1번씩 쓰면 2주 만에 플라스틱컵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상쇄한다. 한 달이 지나면 종이컵 온실가스배출량보다 적어진다. 6개월 후에는 플라스틱 컵 온실가스 배출량이 텀블러의 약 12배가 된다. 물론 플라스틱컵 또는 종이컵 역시 매일 1번씩 사용한다고 가정했을때다.

◇ ‘에코템’ 텀블러가 정말로 환경적이기 위한 조건

다행인 것은, 카페 브랜드 등에서도 텀블러가 제품 자체의 취지대로 환경에 더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여러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스타벅스는 플라스틱 소모품이나 플라스틱 텀블러 등에 관해서도 지속적으로 개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지난해 “플라스틱 사용 절감을 위해 그리너 스타벅스 캠페인 이후 스테인리스 소재 대비 플라스틱 소재 텀블러 상품 출시 비율을 점진적으로 줄여나가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생활용품 기업 락앤락도 지난해 연중 캠페인 ‘러브 포 플래닛(Love for planet)’ 일환으로 텀블러를 수거해 재활용하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연말까지 서울 및 수도권에 위치한 플레이스엘엘 매장에서 진행한 해당 이벤트는, 오래되거나 사용하지 않는 텀블러를 가져오면 락앤락 텀블러 제품을 최대 40% 할인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쿠폰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당시 락앤락은 "매장에서 수거한 텀블러는 스테인리스 소재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에 기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락앤락에 따르면 텀블러는 내병, 외병, 뚜껑, 차망, 손잡이 등이 다양한 재질로 구성돼 있어 제대로 분리 배출하면 재활용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다.

텀블러는 ‘에코템’이다. 하지만 텀블러가 정말로 환경적이려면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소유욕을 바탕으로 가지고만 있거나, 사용하지 않는 것 보다는 꾸준히 오래쓰는 것. ‘귀찮음’이라는 제약이 있어도 일회용품 대신 한번 더 사용하기다. 텀블러의 환경적인 취지는 소유보다 사용에 있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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