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공약이 담긴 인쇄물 여러장을 보며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지난 주말, 1층 우편함에 커다란 꾸러미가 꽂혀 있었다. 요즘은 우편함으로 무언가 주고받는 일이 드물다. 편지를 주고받은 건 20년 전 군대에서가 마지막이었고, 택배는 우편함 대신 주로 집 앞으로 온다. 도대체 이게 뭘까 싶어 꺼내봤더니 서울특별시장보궐선거 투표안내문과 선거공보물이었다. 아 그래, 선거철이었다.

기자는 누구에게 투표할지 이미 마음을 정했다. 그래서 공보물을 자세히 읽어볼 필요가 없었다. 투표하려는 후보자가 무슨 공약을 내놓고 있는지도 평소에 찾아봐서 알고 있다. 그러다보니 ‘요즘도 이런걸 보내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유권자에게 정보를 알리려면 공보물이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공보물을 꺼내봤다. 직업정신이 발동해 어떤 후보가 무슨 환경 공약을 내놓았는지 읽어봤다. 그럴듯한 얘기들이 많았다. 에너지제로 건물을 확대하고 학교들을 그린스마트 스쿨로 전환하겠다는 후보도 있었고, 지상철 지하화를 통해 삶의 질 공간을 확대하고 녹색도시 서울을 만들겠다는 후보고 있었다. 고탄소배출 산업군을 전환하고 그린리모델링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내용도 있었다. 어떤 후보자는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 테헤란로를 2차선으로 바꾸고 내연차의 도심 진임을 금지하겠다고도 했다.

그런데, 하나하나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피식 웃음이 났다. 저렇게 좋은(?) 환경공약을 얘기하는 공보물 자체가 환경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지난해 4월, 총선을 앞두고 기자가 ‘인쇄된 공보물 56매...총선, 환경·경제적 대안 없나?’라는 기사를 쓴 적이 있다. 지금 이 기사와 같은 이유로 취재를 시작했고, 매우 비슷한 맥락으로 내용을 구성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는데,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는 총선보다 더 환경적으로 변했을까?

그린포스트만의 지적이 아니다. <선거공보물 받자마자 쓰레기통 직행>이라는 기사가 2018년 경인일보에 실렸다. 비슷한 시기에 <쓰레기로 전락한 선거공보물>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서울신문에도 게재됐다. 그 뿐이 아니다. ‘선거공보물이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면서 자원과 혈세가 낭비된다’는 내용의 기사, ‘선거 후 남은 현수막이 애물단지가 되었다’는 기사가 3년전에도, 그리고 4년 전에도 있었다.

‘버려지는 선거 공보물이 수천톤이며 재활용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기사도 있었고, ‘뜯지도 않은 선거공보물이 재활용센터로 팔려나간다’는 기사도 있었다. 그런 내용의 기사들은 시기를 가리지 않았다. 11년 전 5월 연합뉴스 기사에는 ‘아무개씨는 선거공보물을 펼쳐보지도 않고 재활용 수거함에 넣어 버렸다’는 구절이 있었고, <받자마자 쓰레기로 전락한 선거 공보물>이라는 제목의 충북일보 기사는 작년에 보도됐다. 달라진 게 별로 없다는 얘기겠다.

◇ 공보물과 현수막...환경·비용면에서 시대와 잘 맞는가

언론에서만 괜히 트집을 잡으려고 문제를 제기하는걸까?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김미화 자원순환사회연대 이사장도 이 문제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 당시 김 이사장은 “인쇄매체 홍보물을 가가호호 발송하는 것은 비용이나 환경 측면에서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종이 공보물과 플랜카드 사용 등이 과도한 것은 아닌지에 대해 선관위가 꼼꼼히 따져보고 이제는 적극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작년 총선에도 그리고 올해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도, 공보물 중 일부는 페이지가 많아 ‘중철’ 처리돼 있었다. 중철은 일반적인 책처럼 제본한 것이 아니라 두께가 얇아 인쇄물 가운데를 스테이플러로 고정한 것을 말한다. 재활용품을 배출하는 기본적인 원칙은 서로 다른 것들을 섞지 않는 것이다. 종이를 버릴때는 철심을 분리하라는 의미다. 하지만 유권자들이 그렇게 하고 있을까? 적어도 기자는, 철심을 제거해 종이만 따로 내놓거나 공보물 중에서 코팅된 종이와 그렇지 않은 종이를 꼼꼼하게 분리해 버린다는 지인은 거의 만나보지 못했다.

김미화 이사장도 지난해 본지 취재에 응하면서 이 부분을 지적한 바 있다. 당시 김 이사장은 “재활용을 위해서는 종이를 물에 불린 다음 갈아서 처리하는 과정이 있는데, 스테이플러 심이나 이물질이 섞여 있으면 기계에 걸리는 등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재활용이 쉽지 않을 수 있는 또 다른 원인도 있다. 다채로운 색의 디자인이다. 선거 공보물은 정당이 주로 사용하는 색깔이나 후보자의 밝고 신선한 이미지 등을 강조하기 위해 여러 가지 색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김 이사장은 “인쇄물에 컬러가 많으면 처리 과정에서 색을 모두 빼기 위해 화학물질 등을 투입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또 다른 환경오염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 선거 알리는 방법의 ‘뉴노멀’을 찾는다면?

공보물이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다. 중요한 선거를 치르면서 공보물을 없앨 수는 없다. 기자야 평소 수시로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스마트폰을 사용하며 여러 뉴스와 정보를 검색한다. 그래서 선거 관련 소식과 정보를 비교적 많이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게 익숙하지 않거나, 선거 정보를 찾아볼 시간이나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은 사람도 있다. 스마트폰 화면에서 ‘휘리릭’ 넘겨보는 정보가 더 편한 사람도 있지만, 커다란 종이에 인쇄한 글자를 천천히 꼼꼼하게 읽어보고 싶은 사람도 있을테다.

공보물 등은 후보자들에게 ‘형평성’도 제공한다. 유명한 후보자나 규모가 큰 정당 소속 후보자는 이름과 기호, 공약 등을 알릴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다. 하지만 군소정당이거나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후보자, 선거운동에 투입할 자본 등이 적은 후보자는 유권자에게 자신을 알릴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어 공보물 등에 공을 들여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공보물 (또는 현수막)을 제작해 배송하고 선거 이후 그걸 처리하는데 투입되는 자원과 비용 등을 고려하면, 이 문제를 계속 과거와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해야 하는지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기자가 부모님께 ‘선거 공보물이 반드시 필요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래도 한번씩 읽어 보는게 좋다”고 답하셨다. 하지만 또래 지인이나 후배들에게 물어봤더니 “이메일이나 QR코드로 받고 원하는 사람만 우편으로 받을 수 있게 선택하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았다.

기자는 통신요금이나 공과금 고지서를 모두 이메일로 받는다. 처음에는 어색했다. 그런데 손에 익으니 이제는 그게 당연해졌다. 예전에는 봉투 뜯어 고지서를 펴고 쭉 읽어 보는게 당연했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그냥 메일로 확인 하는게 ‘뉴노멀’이 됐다.

4년 또는 5년마다 치르는 큰 선거에서 공보물과 현수막을 (과거와 똑같이) 제작해야 하는지, 선거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후보자들을 유권자에게 제대로 알리자는 취지를 잘 살리면서도 조금 더 환경적으로 선거를 치르는 방법은 없는지 생각해보아야 할 때다.

지난해 4월과 비슷한 주장을 또 하는 이유는, 1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으면 10년 후에도 달라지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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