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패션의 치명적인 환경 문제
지속가능한 패션 플랫폼 ‘중고 거래’
경제성·희소성·친환경 세 박자 고루 갖춘 놀이 공간

지난 2월 19일부터 3월 4일까지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서 열린 지속가능한 패션 플랫폼 ‘어플릭시’ 팝업 스토어. (곽은영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지난 2월 19일부터 3월 4일까지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서 열린 지속가능한 패션 플랫폼 ‘어플릭시’ 팝업 스토어. (곽은영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코리아 곽은영 기자] 우리가 매일 입고 벗고 세탁하는 옷은 공교롭게도 환경오염의 원인으로 꼽히는 것 중 하나다. 패션 산업은 석유 산업 다음으로 환경을 파괴하는 주범으로 지목된다. 특히 패스트패션 시장이 커지면서 패션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ZARA, H&M, 탑텐, 에잇세컨즈 등으로 대표되는 수많은 SPA 브랜드는 2000년대 후반부터 트렌드를 반영한 패션 의류를 저렴한 가격에 쏟아내면서 시장을 장악했다. 소비자는 ‘깊이 고민할 필요 없이 한 철 입기에 괜찮은 옷’으로 만들어진 옷들을 고민 없이 소비했다. 

◇ 패스트패션의 치명적인 환경 문제 

빠른 제작과 유통은 패스트패션의 장점이자 한계로 지적된다. 맥킨지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매년 소비되는 의류는 1000억벌이 넘는다. 그리고 한 해에 버려지는 옷만 9200만톤에 이른다. 문제는 옷이 만들어지면서 발생하는 온실가스와 착용 과정에서 생기는 미세플라스틱, 폐기되는 옷들로 발생하는 유해성분들이다. 

패션 업계에서는 패션의 환경적 영향을 자각하며 패스트패션의 치명적인 환경 문제를 보완할 나름의 대안책들을 내놓고 있다. 그 중 하나는 컨셔스(Conscious) 패션이다. 말 그대로 ‘의식 있는’ 패션이란 뜻이다. 합성소재 대신 옥수수, 파인애플, 대나무, 선인장 등 천연소재를 섬유로 활용해 옷을 생산, 소각이나 매립 시 환경적인 영향을 줄이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세컨핸드(Secondhand) 패션이다. 문자 그대로 보면 중고를 뜻한다. 즉, 한 번 사용했던 것을 의미한다. 옷이 제조 과정과 폐기 과정에서 많은 유해 물질을 생산한다면 최대한 많이 입고 순환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국내외 패션 브랜드에서는 이 세컨핸드를 콘셉트로 중고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일례로 ‘리바이스’가 지난해 중고시장에 뛰어든 것을 들 수 있다. 리바이스는 바이백 프로그램인 ‘세컨핸드’를 런칭, 빈티지 라인을 구성했다. 오래된 청바지나 재킷을 가져오면 할인 쿠폰을 제공해 다른 제품을 살 수 있도록 하고 수거된 옷은 리뉴얼해 다시 판매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반환경 제품의 대표 제품으로 알려진 청바지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친환경적인 라인을 확대하려는 것으로 분석된다. 

폐기되는 트럭의 방수포와 자동차 운전벨트 등을 업사이클링해 가방을 만들고 있는 스위스의 ‘프라이탁’은 지난해 11월 블랙프라이데이 하루 동안 온라인몰을 닫고 이용자들끼리 프라이탁 가방을 교환할 수 있는 중고 거래 플랫폼 ‘스왑’만 운영했다. 수수료 없이 서로 가방을 교환하는 시스템 아래에서 있는 가방을 나눠쓰고 바꿔쓰면서 패션계의 순환 경제를 권장하기 위함이었다. 당시 국내에서만 1천여 건의 교환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패션연구소는 2020 패션시장 전망 보고서를 통해 지속 가능 패션은 앞으로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속 가능성은 시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가치이고 패션 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 지속가능한 패션 플랫폼 ‘중고 거래’

패션 업계 내부적으로 소재와 재고 의류에 대한 고민이 이뤄지고 있다면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중고거래 플랫폼이 지속가능한 패션의 하나의 대안으로 등장했다. 중고나라, 당근마켓, 번개장터 등 생활 전반에 걸친 중고 플랫폼을 비롯해 어플릭시, 마켓인유 등 중고 패션에 초점을 맞춘 플랫폼도 늘고 있다. 

‘마켓인유’의 경우 안 입는 옷을 판매하고 빈티지 제품을 득템하는 장소로 유명하다. 홍대입구점과 망원역점 오프라인 매장과 온라인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쓸모가 남은 물건을 적절한 보상과 함께 나누고 공유한다’는 콘셉트로 중고문화와 공유문화가 공존하는 플랫폼이다. 마켓인유는 제품에 대한 철저한 검수를 원칙으로 한다. 판매를 원하는 경우 온라인을 통해 회수 신청을 하면 방문 수거해 가 오염 여부 등에 대한 검수 진행 후 매입을 진행한다. 제품은 드라이크리닝 후 판매한다. 판매자에게는 적립금이 주어진다. 

사회적 기업 ‘아름다운 가게’도 자원순환에 역할을 하고 있다. 물건의 재사용과 재순환을 통해 사회의 생태적·친환경적 변화에 기여한다는 미션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입지 않는 옷과 신발 등을 기부하면 기부영수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 

최근에는 중고 패션 플랫폼 ‘어플릭시’가 백화점에서 팝업 스토어를 진행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어플릭시는 지난해 5월 런칭해 명품이나 디자이너 브랜드의 빈티지, 세컨핸드 제품들을 판매하는 지속가능한 패션 플랫폼이다. 취급 상품이 고가인 만큼 명품 감정사가 정품 인증을 하고 선별 및 검수에 공을 들이고 있다. 어플릭시에서는 모든 판매 제품을 ‘트렌저’라고 부르고 있다. 제품에 중고나 빈티지가 아닌 ‘보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은 브랜드 아이덴티티이기도 하다. 

어플릭시 관계자에 따르면 백화점 팝업 스토어는 현대백화점 측에서 먼저 제안한 것이다. 현대백화점은 무역센터점에서 어플릭시의 팝업 스토어를 연 것 외에 여의도 더현대 서울에 중고거래 플랫폼 번개장터의 오프라인 공간인 ‘브그즈트 랩(BGZT LAB)’도 입점시켰다. 한정판 스니커즈 리셀(re-sell) 매장 형태로 구하기 어려운 운동화 300여족을 직접 신어보고 구매할 수 있다.  

현대백화점은 이밖에 아름다운 가게와 손잡고 헌 옷·신발·가방 등 재판매가 가능한 품목을 상시 기부받는 ‘365 리사이클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업계 유일의 친환경 캠페인으로 최근에는 16개 전 점포로 운영을 확대했다. 지난해까지 현대백화점이 기부 받은 헌 옷과 잡화류는 약 50만여점. 이는 아름다운 가게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다시 판매된다. 수익금은 청각장애아동 수술비 및 소외계층 방한용품 지원 등 사회공헌활동에 사용된다. 

◇ 경제성·희소성·친환경 세 박자 고루 갖춘 놀이 공간

소비자들이 중고 거래를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인 것이다. 판매자는 물건을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하고 구매자는 싼 값에 구매할 수 있다. 양쪽에 모두 합리적인 소비와 판매라는 만족감이 돌아간다. 

품절됐거나 절판된 제품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희소성은 중고 제품을 통한 재테크까지 가능하게 한다. 실제로 절판되거나 구하기 어려운 운동화를 판매하고 있는 번개장터는 스니커즈 덕후들의 성지라고 불린다. 지난해 번개장터에서 거래된 패션 의류 및 잡화 거래액이 4500억원에 이른다는 것만 봐도 소비자 니즈를 짐작할 수 있다. 

최근에는 환경적인 고려까지 더해졌다. 옷이 지구를 해치는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중고나 빈티지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중고란 결국 제품의 가치를 유지하면서 자원순환을 한다는 의미를 안고 있다.

업계에서는 중고 거래 플랫폼과 관련 캠페인이 확장되고 있는 배경에는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고 확고한 자기신념과 취향을 갖고 중고 거래에 대한 인식 전환을 이끌어낸 MZ세대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번개장터의 경우 스니커스 리셀 매장으로 스니커즈 마니아층이 많은 만큼 오프라인 유통업계에서 그동안 주지 못했던 즐거움의 장을 제공하기 위해서 마련됐다”며 “어플릭시 팝업 스토어 역시 같은 이유로 취향과 가치소비를 중요시하는 MZ세대의 관심도에 따른 변화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과거 세대가 중고 의류를 일부 마니아층이 선호하는 ‘구제’라고 불렀다면 MZ세대는 ‘N차 신상’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어떤 신상도 사는 순간 중고가 되어버린다는 것을 인식하고 중요한 건 필요한 순간 가장 합리적인 형태로 내 손에 들어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에게 중고 거래 플랫폼은 합리적인 소비를 했다는 만족감, 쇼핑을 뛰어넘어 재테크의 즐거움과 가치소비 등 다양한 즐거움이 존재하는 놀이 공간으로 통한다.

환경을 대하는 MZ세대의 적극적인 태도도 변화를 만들었다. MZ세대는 기후위기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세대다. 이들은 자신들이 살아갈 환경을 위한 소비가 개성있고 트렌디한 것, 소위 ‘힙’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친환경 재질로 만든 옷, 빈티지 제품을 사는 것을 힙하다고 생각하는 MZ세대들에게 중고 거래는 의식 있는 소비자가 할 수 있는 가장 똑똑한 선택이다. 이들의 지지로 유통시장의 패러다임은 지속적으로 바뀌어나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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