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포스트코리아 곽은영 기자] 최근 구제역, 조류인프루엔자, 아프리카돼지열병 등 가축 전염병이 유행할 때마다 해결법으로 나오는 ‘살처분’에 대한 기사를 썼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축 전염병이 돌면 ‘법적으로’ 동물을 살처분한다. ‘가축 전염병 예방법’ 제20조에 따라서 고병원성 감염병에 걸린 가축이 발생하면 해당 지역은 물론 주변 지역까지 예방적 살처분을 진행한다. 

문제는 살처분이 안고 있는 윤리적 환경적 문제점이다. 이에 대한 정부의 입장과 동물단체의 입장은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정부 측에선 예방적 살처분이 가축의 질병 관리와 방역을 위한 가장 확실하고도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한다. 공장식 축산업이 대부분인 국내에서 축산 산업을 보호하는 최선의 방어법이란 얘기다. 
 
반면 동물단체에선 질병에 감염되지도 않은 건강한 동물들의 생명을 예방적 차원에서 박탈하는 살처분을 “동물학대이자 집단학살”이라고 명명하며 살처분으로 낭비되는 혈세, 가축 매립으로 인한 토양과 지하수 오염 등 환경적 심각성을 조명한다. 살처분에는 동물권, 환경문제, 예산문제, 살처분 인력의 외상후 스트레스까지 다양한 문제가 얽혀있음을 지적하며 동물복지와 예방백신을 기준으로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기적인 방역: 살처분. 백신 딜레마’에선 동물의 법적인 위치에 대해 “동물은 민법상으로는 물건이자 재산이자 소유권의 객체이고 형법상으로는 재물에 해당된다”고 말하고 있다. 기존 법체계에 동물 생명이나 존엄성을 반영하는 내용이 없다 보니 가축전염병 방역에서도 손쉽게 살처분이라는 수단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살처분과 관련한 이러한 자료들을 보다 보니 최근에 읽은 몇 가지 주제가 떠올랐다. 동물의 얼굴과 동물의 이름에 대한 것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동물도 얼굴이 있고 이름이 있다.

작가 김한민은 ‘아무튼, 비건’에서 프랑스 철학자 레비나스의 말을 인용하며 “얼굴은 하나의 명령”이라고 말했다. 모든 얼굴은 언어를 초월해 우리에게 말을 건다. “나를 사랑하라, 나를 죽이지 마라, 형제여 자매여...” 그리고 우리가 얼굴 있는 것을 먹는 꺼림칙함을 본능적으로 안다고 했다. 

내가 먹는 음식에 한때 얼굴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있었던가. 언젠가 식탁에 올라온 생선구이의 머리가 보기 싫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싫다는 감정보다 꺼림칙함에 더 가까웠던 게 아닌가 한다. 생선은 그나마 얼굴을 마주하기라도 할 수 있지 대부분의 경우 생명을 가졌던 동물이 식탁에 오를 때면 ‘고기’의 형태가 되어 얼굴은 일찌감치 사라져 있다.

이 고기라는 단어에 대해 김선오 시인은 그의 시집 ‘나이트 사커’에서 말하고 있다. 그는 시를 통해 감자는 감자고 미역은 미역인데 돼지나 소나 닭에만 고기라는 말이 붙는 이상함에 대해서 말한다. “고기라니, 너무 이상한 말이다. (중략) ‘고기를 먹는다’라는 문장 속에는 오로지 먹기 위해 동물을 탄생시키고 고통 속에 살게 하다 죽인 뒤 가공하는 과정 모두가 은폐되어 있다. 고기라는 단어 자체가 도축의 현장으로부터 인간의 눈을 가리고 동물의 피 냄새로부터 인간의 코를 막기 위해 존재하는 말이라는 것. 고기에는 동물이 부재한다.”

동물의 얼굴과 그들의 이름을 가린 고기라는 말에는 오랫동안 무차별적으로 살처분이 행해져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있는 게 아닐까. 생명은 지워지고 목적만 남았을 때의 모습이란 이런 게 아닐까.   

유네스코 세계 동물권리 선언문에는 ‘모든 동물은 태어나면서부터 평등한 생명권과 존재할 권리를 가진다’고 ‘어떤 동물도 잘못된 처우나 잔인한 행위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선언이 무색하게 동물의 생명권과 존재할 권리는 너무 쉽게 지워지고 만다.

동물의 존재 이유란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님에도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동물에 가축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이들을 키우는 일부터 먹고 죽이는 일까지 인간 중심의 기준을 만들어왔다. 이 기준에 동물들은 동의한 적이 없다. 동물권, 동물복지에는 그 ‘동의한 적 없음‘에 대한 느낌표가 있다. 한 번쯤 생각해보자. 동물이 얼굴과 이름을 잃은 그 자리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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