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왜 나만 가지고 그래?” 익숙한 얘기다. 누구나 살면서 그런 얘기를 한번쯤은 듣거나 또 해봤을 터다. 유명인이 실제로 저런 말을 했다는 얘기도 가끔 들린다, 아무래도 문맥상 ‘떳떳하고 잘못이 없다’는 의미보다는 ‘다른 사람들도 다 비슷한 잘못을 하는데 왜 억울하게 유독 나한테만 그러느냐’는 의미로 읽힌다.

며칠 전, 일회용품 쓰레기 문제를 다룬 기사 댓글을 봤다. 유독 눈길이 가는 글이 있었다. “요즘 왜 이렇게 일반인한테만 눈치를 줘? 과대포장 기업만 단속해도 쓰레기가 10분의 1은 줄어들텐데”라는 댓글이었다. 그 아래에는 “재활용 잘 되는 용기로 통일시키면 되잖아, 개인한테만 자꾸 쓰지 말라고 하지 말고”라는 글도 있었다. 기자에게는 둘 다 이렇게 읽혔다. “기업이 먼저 나서면 되는데 왜 자꾸 소비자에게만 환경을 실천하라고 해?”

기자에게 직접 그런 불만을 털어놓은 사람도 있다. 서울 강동구에 사는 한 소비자는 기자가 ‘분리배출에 대한 자세한 가이드를 알고 있느냐’고 묻자 “일반인들이 정보를 찾아보고 외우기 어려우니까 패키지나 포장지를 환경적인 소재로 대체하거나 통일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는데, 요즘은 개인에게만 계속 무언가를 열심히 하라고 독려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 소비자는 “조금만 사용해도 금방 뜨거워지는 가전제품을 만들어놓고 그걸 구매한 소비자에게 ‘발열이 있으니까 하루에 5분만 쓰세요’라고 말하면 소비자들이 뭐라고 하겠느냐”라고 반문하면서 “발열 문제를 없애는 건 기업의 숙제인 것처럼, 분리수거 쉽고 재활용 잘 되는 제품을 기업이 만들어야 하는데 요즘은 너무 소비자의 환경의식만 강조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소비자 윤모씨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페트병에 붙은 라벨지를 제거하는 문제를 가지고 기자와 대화를 나누면서다.

윤씨는 “어떤 제품은 비닐이 잘 뜯어지는데 반대로 어떤 제품은 칼집을 내지 않으면 전혀 떼어지지 않고, 접착제가 잔뜩 발라져 있어 떼어내도 끈끈이가 남는다”면서 “분리배출 노력을 모두 소비자에게만 전가하고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얘기 역시 기자에게는 이렇게 들렸다. “기업이 노력하면 되는데, 왜 자꾸 소비자한테만 노력하라고 해?”

쓰레기와 폐기물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람들도 기자에게 그런 얘기를 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기업이 물건을 잘못 만들면 그 이후에 소비자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재활용 안 되는 제품을 만들면 열심히 분리해봤자 버려지면 그만이다”라고 말했다. 쓰레기가 되는 과정까지 고려해 제품을 설계를 하고 그 다음에 소비자 실천을 강조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동학 쓰레기센터 대표는 “정책적인 관점에서 기업들이 쓰레기가 덜 나오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한다”면서 “시민들이 불편을 감수하지 않아도 쓰레기가 덜 나오는 체계와 방법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기자는 요즘 제로웨이스트에 도전하고 있다. 쓰레기를 없앤 게 아니라 테마를 하나씩 정해 버리는 것을 줄이려는 시도이니 정확히 말하면 ‘로우웨이스트’다. 그런데 어려움이 많다. 노력과 실천만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이 있어서다.

예를 들면 이런 경우다. 식용유 페트병을 버리려니 몸체와 다른 소재의 플라스틱 손잡이가 단단하게 고정돼 있고, 참기름 병을 씻어서 버리려고 했는데 뚜껑이 단단히 고정돼 힘을 줘도 열리지 않았다. 일회용 비닐봉투를 버리지 않고 6개월째 쓰고 있지만 배달음식 2인분을 한번 시켜먹으니 플라스틱 용기와 그릇 12개가 나왔다.

‘나 하나쯤이야’라는 마음이 나쁘다는 건 어릴 때 어른들한테 배웠다. 유치원 선생님도, 도덕 교과서에서도 그런 마음 대신 ‘나부터라도’라는 마음을 가지라고 가르쳤다. 그래서 나부터라도 실천하려고 노력 중이다. 하지만 자꾸 “왜 나만 가지고 그래”하는 생각이 기자 역시 든다.

만일 버려져도 안전하다면, 여러 번 사용해도 안전하고 깨끗한 제품이나 시스템이 있다면, 여러 소재 플라스틱이 뒤섞이지 않게 처음부터 같은 소재로 제품이 만들어졌다면 소비자들이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 기업이 그런 제품 많이 만들어 충분히 공급하면, 소비자들은 적은 실천만으로도 많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며칠 전 읽은 기사의 또 다른 댓글을 하나 소개한다. 기자는 그 네티즌의 통찰력과 비유력에 감탄했다. 기자가 읽은 글의 내용은 이랬다. “애초에 분리수거 되게 만들거나 친환경 포장을 해! 시공사가 부실공사해서 방음이 안 되는데 ‘층간소음이 문제니까 발소리 내지 말고 조용히 사세요’라고 강요 하는거랑 비슷하잖아!”

돌고 돌아, 결국 그 얘기다.

“왜 소비자만 가지고 그래?”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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