텀블러가 정말로 일회용보다 환경적이려면...

기업이나 정부가 아닌 일반 소비자가 실천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친환경’ 노하우는 ‘쓰레기를 덜 버리는 것’입니다. 플라스틱이든, 음식물 쓰레기든, 아니면 사용하고 남은 무엇이든...기본적으로 덜 버리는게 가장 환경적입니다.

그린포스트코리아 편집국은 지난 2~3월 ‘미션 임파서블’에 도전했습니다.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주말 이틀을 살아보자는 도전이었습니다. 도전에 성공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이틀 동안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게 말 그대로 ‘불가능한 미션’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환경을 포기할 순 없습니다. 하여, 두 번째 도전을 시작합니다. ‘제로웨이스트’입니다. 이틀 내내 쓰레기를 ‘제로’로 만들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것부터 실천하기로 했습니다. 쓰레기를 배출하던 과거의 습관을 하나씩 바꿔보려 합니다. 평소의 습관이 모여 그 사람의 인생과 운명이 결정된다면, 작은 습관을 계속 바꾸면서 결국 인생과 운명도 바꿀 수 있을테니까요.

불편하고 귀찮은 일이지만 그래도 한번 해보겠습니다. 네 번째 도전입니다. 이번에는 조금 부끄러운 과거입니다. 기자는 텀블러를 수집하던 버릇이 있었는데, 최근 그 버릇을 고쳤습니다. [편집자 주]

 
텀블러는 환경적이지만, 텀블러 여러개를 돌려쓰는 것은 환경적이지 않을 확률이 높다. 용맹하지만 '애정 결핍'에 걸린 가상의 전사 텀블러와 그 동료(?)들의 사진. 저 텀블러의 주인이 기자인지 아닌지는 프라이버시상 비밀이다. (이한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텀블러는 환경적이지만, 텀블러 여러개를 돌려쓰는 것은 환경적이지 않을 확률이 높다. (이한 기자 2020.3.13)/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기자는 70년대생으로 80년대에 초등학교를, 90년대에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급식 대신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던 시절이다. 그때는 도시락을 두 개씩 싸들고 학교에 갔고 마실 물도 가지고 다녔다.

겨울이면 어머니는 ‘마호병’이라고 부르는 통에 뜨거운 물을 담아주셨다. 이름이 왜 마호병이라고 물어봤는데 어머니도 잘 모른다고 했다. 원래부터 그렇게 불렀단다. 나중에 일본어를 배우고 나서야 마호가 ‘마법’의 일본어 발음이라는 걸 알았다. 뜨거운 물이 빨리 식지 않고 보온이 유지되는 걸 그 시절 어른들은 아마도 마법같은 일로 여겼나보다.

‘마호병’이 낡은 게 싫었다. 기자는 새것과 예쁜 것을 좋아했다. 반면 부모님은 알뜰하고 검소하셨다. 물통을 사달라는 기자와 ‘멀쩡한데 왜 사느냐’는 어머니의 대립이 사뭇 팽팽했다. 설날과 추석때 받은 돈을 모아 은빛으로 번쩍이는 새 물통을 몰래 샀다. 부모님의 말을 거역하고 일탈(?)을 감행한 인생 첫 경험이다.

◇ 보유 대신 실사용...텀블러 주6일제 7개월차

그때부터 시작됐을까. 내 힘으로 돈을 벌면서 기자는 텀블러 수집이라는 취미가 생겼다. 분홍색과 빨간색 위주로, 디자인이 예쁜 텀블러만 보면 지갑을 열었다. 국내에 정식 수입되지 않은 텀블러를 ‘득템’하는 순간이 가장 기뻤다. 계절마다 새 디자인을 내는 ‘별다방’은 기자에겐 축복이었다. 같은 디자인 텀블러를 서로 다른 색으로 3개 산 적도 있다. 잘 쓰지도 않았다. 텀블러를 한쪽벽에 전시해두고 그냥 보기만 하는 걸로도 좋았다. 카페에서야 어차피 일회용컵을 썼으니까. 지금 돌아보면, (환경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부끄러운 과거다.

일회용컵을 쓰지 말자고 생각한 건 지난 3월, 그러니까 약 7개월여 전 부터다. 텀블러가 너무 많아서 이것만 가지고 돌려 써도 평생 못 쓸 것 같다는 마음이 첫 번째였고 두 번째가 환경적인 이유였다. 일회용컵 줄이려고 텀블러를 장만한 게 아니라, 텀블러를 사모으면서 쓰지도 않고 소장만 하다가 뒤늦게 가지고 다니기 시작했으니 순서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만일 타임머신이 생겨 과거로 돌아간다면 로또 번호만 챙길 게 아니라 텀블러 수집 습관을 버리라는 얘기도 같이 해야 할 정도다.

기자는 2005년에 담배를 끊었다, 그런데 텀블러 수집을 끊고 나서 금연보다 더 쎈 금단증상을 견뎌야 했다. 금단증상이 가장 심했던 것 최근이다. 다이소에서 가을 한정 갈색 다람쥐와 도토리 모양 텀블러를 봤을 때, 그리고 스타벅스에서 파란 하늘과 초승달 디자인의 여름밤 샤시텀블러를 출시했을때다. 하지만 생활 속 곳곳에서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해보자고 해놓고 텀블러를 사 모으는 건 앞뒤가 너무 맞지 않는 일이어서 포기했다.

지금은 텀블러를 2개만 가지고 돌려가며 쓴다. 하나는 월수금, 하나는 화목토에 사용하는 텀블러고 일요일은 가능하면 외출을 안 한다. (그 이유는 다음 주 제로웨이스트 도전기에서 설명하겠다) 집에서야 머그잔을 사용하니 텀블러 쓸 일이 없고, 카페에서도 다른 음료가 담겨있는 상황이 아니면 대부분 텀블러에 받아 마신다. 이제는 단순 보유가 아니라 ‘실사용’하고 주6일 매일 쓴다.

◇ 생산하려면 무엇이든 탄소가 필요...중요한건 횟수

제로웨이스트가 안 되면 로우웨이스트라도 실천하자는 마음으로 텀블러를 매일 들고 다니지만, 텀블러와 일회용컵에 관한 한 기자의 일상은 매우 ‘비환경적’이다. 이유는 그 동안 텀블러를 너무 많이 구매했고, 텀블러를 매일 사용한지 고작 7개월밖에 되지 않아서다.

텀블러를 만드는데도 재료와 에너지가 필요하다. 플라스틱이 사용되는 경우도 있고, 스테인리스 등을 사용하더라도 제작 과정에서 탄소배출은 피할 수 없다. 다 쓴 텀블러를 없애는 과정도 일회용컵보다 상대적으로 어렵다. 텀블러 1개를 일회용컵 1개와 단순 비교하면 오히려 텀블러가 환경에 더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중요한건 일회용과 다회용의 차이다. 여러번 쓰면 텀블러는 기대대로 '환경템'이 된다. 반대의 경우라면 문제가 될 수 있다.

KBS가 기후변화행동연구소와 함께 연구한 바에 따르면, 300ml 용량 텀블러를 매일 1번씩 쓰면 2주 만에 플라스틱컵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상쇄한다. 한 달이 지나면 종이컵 온실가스배출량보다 적어진다. 6개월 후에는 플라스틱 컵 온실가스 배출량이 텀블러의 약 12배가 된다. 물론 플라스틱컵 또는 종이컵 역시 매일 1번씩 사용한다고 가정했을때다.

쉽게 말하면 텀블러를 1개 생산하거나 없애는 과정에서는 종이컵이나 플라스틱컵 1개보다 많은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많이 사용해야 배출량이 역전된다. 기자는 7개월째 텀블러를 쓰고 있지만 지금 가지고 있는 텀블러만 20여개, 지금까지 구매한 텀블러는 그 3배가 넘는다.

물론 텀블러도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스테인리스 텀블러 등의 경우 보온·보냉 기능을 위해 진공 기술이 적용되는데, 통상 2~3년 정도 지나면 진공이 약해지면서 기능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관리 상태에 따라 위생도 달라져, 주기적으로 교체해 주는 것이 좋다. 다만, 2~3년간 꾸준히 사용한다면 환경 ‘손익분기’는 넘을 수 있다.

◇ 카페 브랜드 등도 텀블러 관련 행보 확대

카페 브랜드 등에서도 텀블러 등이 정말로 환경에 더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여러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스타벅스는 플라스틱 소모품이나 플라스틱 텀블러 등에 관해서도 지속적으로 개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플라스틱 사용 절감을 위해 그리너 스타벅스 캠페인 이후 스테인리스 소재 대비 플라스틱 소재 텀블러 상품 출시 비율을 점진적으로 줄여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락앤락은 연중 캠페인 ‘러브 포 플래닛(Love for planet)’ 일환으로 텀블러를 수거해 재활용하는 캠페인을 진행한다. 올해 말까지 서울 및 수도권에 위치한 플레이스엘엘 매장에서 진행하며, 오래되거나 사용하지 않는 텀블러를 가져오면 락앤락 텀블러 제품을 최대 40% 할인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쿠폰을 지급한다.

매장에서 수거한 텀블러는 스테인리스 소재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에 기부할 예정이다. 락앤락에 따르면 텀블러는 내병, 외병, 뚜껑, 차망, 손잡이 등이 다양한 재질로 구성돼 있어 제대로 분리 배출하면 재활용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다.

텀블러가 일회용 컵보다 더 환경적이고 자원순환 구조에 좋은 영향을 미치려면 가능한 오래 사용하고, 다 쓴 텀블러 역시 자원으로 재활용해야 한다. 텀블러가 환경적이기 위한 필수 요소다. 사용하지 않는 텀블러는 일회용컵보다 못하다. 기자의 텀블러가 환경적이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할까? 정답은 모르지만, 일단 일회용 컵은 그만 쓰기로 했다. 불편하긴 한데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적응이 된다. 편리한 것만 찾으면서 환경을 얘기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물론 기업들이 항상 친환경 제품만 만들면 소비자들이 편리미엄과 환경을 함께 누리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상적인 얘기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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