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친환경 추천, 요즘은 필환경 의무?
점점 커지는 환경에 대한 인식과 실천의 중요성
‘착한 실천’ 넘어 필수 활동 인식하는 기업들
소비자도 ‘필환경 시대’ 공감...실천 확대는 숙제

환경과 경제를 각각 표현하는 여러 단어들이 있습니다. 그런 단어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환경은 머리로는 이해가 잘 가지만 실천이 어렵고, 경제는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도 왠지 복잡하고 어려워 이해가 잘 안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요즘은 환경과 경제를 함께 다루는 용어들도 많습니다. 두 가지 가치를 따로 떼어 구분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영역으로 보려는 시도들이 많아져서입니다. 환경을 지키면서 경제도 살리자는 의도겠지요. 그린포스트코리아가 ‘환경경제신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이런 까닭입니다.

여기저기서 자주 들어는 보았는데 그게 구체적으로 뭐고 소비자들의 생활과 어떤 지점으로 연결되어 무슨 영향을 미치는지는 잘 모르겠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그런 단어들을 하나씩 선정해 거기에 얽힌 경제적 배경과 이슈, 향후 전망을 묶어 알기 쉽게 소개합니다. 열두 번째 순서는 환경의 중요성을 과거보다 더욱 강조하는 마케팅 키워드 ‘필환경’입니다. [편집자 주]

필환경은 공식적인 용어는 아니지만 최근 널리 통용되는 단어다. 네이버 어학사전 오픈사전에는 '반드시 필(必)과 환경의 합성어로, 필수로 환경을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사진은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플라스틱 없는' 칫솔 모습. (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필환경은 공식적인 용어는 아니지만 최근 널리 통용되는 단어다. 네이버 어학사전 오픈사전에는 '반드시 필(必)과 환경의 합성어로, 필수로 환경을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사진은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플라스틱 없는' 칫솔 모습. (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포털사이트에 ‘필환경’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8월 20일 오후 3시 30분 현재 2,795건의 기사가 검색된다. 내용은 매우 광범위하다. 플라스틱 용기를 없애겠다는 동원F&B 관련 기사에는 ‘필환경기업’이라는 수식어가 붙었고 패션매거진 엘르에서는 ‘필환경시대 속 친환경 패션’이라는 기사를 업로드했다. 여성신문은 ‘친환경 넘어 필환경 시대로 나아가자’고 썼다.

패션뷰티브랜드 TS와 관련해서는 저자극 순한 화장품이 필환경 시대에 주목받는다는 내용이, 식음료업계에서 재활용이 중요해지고 필환경이 가속화한다는 내용이 검색된다. 6월로 넘어가면 비닐·페트 분리배출제 앞두고 기업들이 필환경에 집중한다는 기사도 눈에 띈다. CJ올리브영이 나무 1만그루를 살렸다는 기사에도, 롯데그룹이 선순환 프로젝트에 나선다는 기사에도 어김없이 필환경이 등장한다.

필(必)환경은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 등이 집필한 저서 <트렌드코리아 2019>에 등장한 개념이다. 책은 ‘필환경 시대’라는 카테고리를 통해 “그동안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가 하면 좋은 것 혹은 자신의 개념을 드러내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살아남기 위해서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반드시’를 뜻하는 한자 ‘필’을 사용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오랫동안 마케팅 시장 등에서 사용되던 키워드 ‘친환경’에서 한글자만 바꿔 달라진 의미를 전달한다.

◇ 과거에는 친환경 추천, 요즘은 필환경 의무?

필환경은 공식적인 용어는 아니지만 최근 널리 통용되는 단어다. 네이버 어학사전 오픈사전에는 '반드시 필(必)과 환경의 합성어로, 필수로 환경을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환경부 홈페이지 환경용어사전에는 등록되어 있지 않다.

환경 관련 트렌드 또는 마케팅 용어가 업그레이드 되는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재활용을 뜻하는 리사이클이 새활용을 뜻하는 업사이클이라는 개념으로 이어졌고 쓰레기를 줄이자는 목소리는 제로웨이스트라는 트렌드와 연결됐다.

환경 관련 키워드가 꾸준히 다른 모습으로 변하고 업그레이드되는 이유는 뭘까. 그만큼 누군가의 관심이 쏠리거나 경제적으로, 또는 환경적으로 절실한 이유가 있어서다.

<트렌드 코리아 2020>에서는 2019년을 강타했던 키워드로서 필환경 개념을 설명하면서, 배송 서비스의 새로운 강자 마켓컬리 사례를 예로 들었다. 2018년 기준, 마켓컬리는 직원 급여로 74억원을 지출했는데 포장비 지출은 177억원에 달했다. 책에서는 “이는 단순한 비용 구조의 문제만은 아니었다”고 지적하면서 “제품을 신선하게 배송하기 위한 포장재, 완충재, 냉매 등이 환경을 파괴한다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마켓컬리는 소포장과 테이프 등 모든 포장재를 재활용이 가능한 종이로 바꾸고 껏을 다음 배송때 회수해 재활용하는 올 페이퍼 챌린지 계획을 발표했다”고 소개했다.

트렌드 코리아는 이 변화가 과거 소비자들은 배송이 얼마나 신선하게 이뤄졌는지를 중요하게 여겼을 뿐, 환경 영향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그런 경향에 변화가 생겼다고 짚었다. 불편하고 비용이 발생해도 편의보다 환경을 추구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과거의 친환경이 요즘의 필환경으로 바뀐 상징적 장면 중 하나다.

◇ 점점 커지는 환경에 대한 인식과 실천의 중요성

필환경은 사실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기업들이 단순한 마케팅 키워드나 일회성 이벤트로 환경을 다룰 게 아니라 과거보다 더 절실한 자세로 이 문제를 다뤄야 한다는 의미, 그리고 소비자들 역시 단순히 ‘착한 실천’으로서가 아니라 앞으로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전략으로서 환경을 바라보자는 의미다.

이런 의미로 보면, 기업 입장에서도 환경 활동이 사회공헌에만 머무는 개념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 또는 자신들을 위한 투자로서의 가치로 여겨질 수 있다.

해외 기업들은 어떨까. 기자는 과거 독일과 스웨덴을 방문해 현지 기업들의 그린 비즈니스에 대해 취재한 적이 있다. 당시 일렉트로룩스 본사 환경감독관은 “기후 변화 등에 대처하기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적다. 자발적으로 실천하고 힘을 보탠다는 측면에서는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은 결국 기업과 국가다”라고 말했다.

밀레 본사에서 만난 환경 사무관은 기자가 ‘환경 분야에 투입하는 예산과 투자비 규모가 어느 정도냐’고 묻자 “환경 정책과 제품 개발을 별개의 건으로 분리해서 보는 것은 구시대적인 발상”이라고 말하면서 “예산을 책정하는데 ‘환경 분야에 얼마’라는 식으로 딱 잘라 구분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 사무관은 “환경을 고려하는 것은 기업의 윤리가 아니라 매우 당연한 일”이라고도 말했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착한 행동이나 사회공헌이 아니라 기업의 당연한 책무이자 꼭 필요한 행동으로 인식하는 발언들이다. 그런데 기자가 저 관계자들을 만난 건 2009년이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 환경에 대한 인식이 요즘보다 상대적으로 한발 뒤지던 시대였다. 11년이라는 시간을 감안하면 저런 인식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훨씬 더 커졌다고 봐야 한다. 국내 기업들도 이런 인식이 필요하다.

삼성전자 국내외 모든 반도체 사업장은 글로벌 안전인증 회사 UL로부터 세계 최고 수준의 ‘폐기물 매립 제로’ 사업장으로 인정받았다. 사진은 삼성전자 자원순환센터 모습. (삼성전자 뉴스룸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삼성전자 국내외 모든 반도체 사업장은 글로벌 안전인증 회사 UL로부터 세계 최고 수준의 ‘폐기물 매립 제로’ 사업장으로 인정받았다. 사진은 삼성전자 자원순환센터 모습. (삼성전자 뉴스룸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 ‘착한 실천’ 넘어 필수 활동으로 인식하는 국내 주요 기업들

다행인 것은, 국내 기업들도 환경 관련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경우가 늘었다는 점이다. 주요 기업들은 대부분 매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등을 통해 에너지저감이나 배출가스 관리, 제품 생산 공정에서의 환경적인 고려에 대해 설명한다. 매출액과 영업이익 뿐만 아니라 환경 관련 활동들도 이해 관계자들에게 설명하는 게 당연해졌다는 의미다.

기사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필환경 키워드가 업종과 분야를 가리지 않고 꾸준히 보도되는 것도 기업들의 환경 활동과 관심이 상대적으로 늘었다는 증거다.

주요 기업들의 사례를 보자. 삼성전자는 지난 2018년 중장기 재생에너지 확대 선언을 발표하고 재생에너지 사용과 확대를 지원하는 단체 BRC에 가입했다. 삼성전자는 미국과 유럽·중국 전 사업장에서도 재생에너지 사용을 확대하고우리나라에서는 태양광 및 지열에너지를 포함한 다양한 재생에너지 활용 방안을 도입한다고 발표한 후 꾸준히 관련 활동을 이어왔다.

LG전자는 2030년까지 제품 생산단계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2017년 대비 50% 수준으로 줄이는 동시에 고효율 가전제품을 활용한 외부에서 탄소감축활동을 통해 획득한 탄소배출권으로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현대자동차는 수소전기차·전기차 등 친환경차 개발 및 보급, 사업장별 온실가스 고효율 감축 설비 도입, 아산공장·울산공장 태양광 패널 설치, 아산공장 무방류시스템 등 중장기적인 환경경영 강화 활동을 꾸준히 이어왔다. 선택적인 사회공헌 활동이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기업 활동 중 하나로 인식한 결과다.

◇ 소비자도 ‘필환경 시대’ 공감...실천 확대는 숙제

필환경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은 어떨까. 지난 6월, 한국피앤지와 자원순환사회연대가 국내 소비자들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인식과 실천 행태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이고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조사에 따르면 국내 소비자의 95% 이상이 환경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95.5%가 “환경오염과 쓰레기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응답해 심각성에 절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81.6%의 응답자는 “환경문제가 육체적, 정신적 건강의 조화를 추구하는 생활방식에 영향을 미친다”라고 답했다. 당시 한국피앤지는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는 더 이상 실천하면 좋은 행동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선택해야 하는 ‘필환경 시대’에 공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소비자들의 실천 면에서는 다소 아쉬운 부분이 드러났다. 전체 응답자의 82.2%가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생활용품을 구매할 의향이 있다”라고 대답했으나, 이들 중 실제로 지난 3개월간 친환경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노력한 응답자는 25.5%에 불과했다. 응답자의 73.3%가 “제품을 구입하거나 집안일을 할 때 편의성을 포기하더라도 환경에 도움이 되는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라고 답했으나, 실제로 포장이 간소하거나 제조에서 폐기까지 자원이 절약되는 농축 제품을 의식적으로 구매하고 있는 인원은 10.9%였다.

실천도가 떨어지는 부분에 대해 도움을 제공할 실질적인 가이드가 부족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쓰레기나 재활용품 분리배출 기준을 비교적 잘 알고 있냐는 질문에 31%만이 “매우 그렇다”라고 대답했으며, 헷갈리는 분리배출 방법에 대해 적극적으로 찾아보는 사람 역시 20.2%에 불과했다. 이에 반해, 전체 응답자의 76.8%가 “올바른 분리배출 방법 등 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하는 지식서비스가 있다면 구독하고 싶다”라고 답했다.

당시 조사결과를 두고 자원순환사회연대 김미화 이사장은 “지속가능한 환경은 소비자의 실천, 기업의 자발적 노력, 그리고 정부의 정책 정비 이 세 측면이 동시에 이뤄져야 가능하며,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균형 잡힌 참여가 동반돼야 한다”라며, “특히 미래 세대를 위해 불필요한 생활 폐기물을 줄이는 재포장 금지와 같은 규칙은 제조, 유통 및 판매 업체와 정부, 시민사회가 적극 참여해서 이루어내야 한다”라고 말했다.

친환경을 넘어 필환경 시대가 본격화하려면 기업들의 노력과 함께 소비자들의 실천 역시 조화를 이뤄야 한다.

leehan@greenpost.kr

저작권자 © 그린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