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하고 귀찮아도 뒤로 미뤄둘 수 없는 환경 문제들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복세편살’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는 뜻을 줄여 말한 단어다. 2015년 전후부터 유행했으니까 신조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예전에는 없던 말이다. 참 좋은 얘기처럼 들린다. ‘편하게 살자’

직업적인 얘기를 하자면, 기자는 복잡하고 불편한 것들과 늘 마주해야 한다. 우선 한 마디 전제하자면, 기자라는 일 자체가 불편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두 가지 의미인데, 첫째는 복잡하게 얽혀있는 개념과 여러 문제를 다루되, 그걸 누구나 쉽게 읽고 정확히 이해할 수 있게 써야 한다는 의미다. 기사는 논문이 아니고 현학적인 작품도 아니다. 전문직 종사자가 읽든, 중학생이 읽든 비슷한 속도로 읽고 비슷한 수준으로 이해할 수 있게 써야 한다.

둘째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불편한 일이나 현상들을 외면하지 않고 마주보면서 그 이면의 것들을 캐야 한다는 의미다.

편하지 않다는 것은 여러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데 불합리한 일, 윤리적이지 못한 일, 법률에 위배되는 일,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제도상의 허점이 존재하는 부분, 편리하지 않은 것을 더 편리하게 만드는 것도 여기 해당할 수 있겠다.

개인적인 성격 얘기를 하자면, 기자는 불편하게 싫다. 단순하고 직관적인 걸 좋아한다. 배경설명을 길게 늘어놓는 사람에게는 ‘그래서 결론이 뭐야?’라고 묻는 편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쓰는 시간이나 수고로움을 차단하고 철저히 개인만을 위해 시간을 쓰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기자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내 시간을 빼앗으려는 사람, 그리고 불편하고 복잡한 과정이 필요해서 시간이 많이 드는 일이다.

생각해보면, 이건 기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불편함보다 편리함이 좋고, (본인이 좋아하는 분야가 아닌 이상) 복잡한 일에 머리와 시간을 쓰는 것 보다는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갖기 원한다. 시간 빈곤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이 '편리함'을 소비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의미로 ‘편리미엄’이라는 키워드가 마케팅적으로 주목받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살다 보면 불편함과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할 때가 있다. 그것을 언제 감수하고 어느 상황에서 차단할 것인지는 각자의 기준이 있겠지만, ‘개인적인’ 기준만 가지고 판단하기는 좀 어려운 분야가 있다.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환경이다. 지구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문제 말이다.

‘인류가 멸망을 향해 가고 있다’는 주장이 있다. 지구가 뜨거워져서 여러 가지 변화가 생기고 그 변화가 생물들의 삶을 위협한다는 주장이다. ‘1999년에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던 과거의 예언과는 결이 좀 다르다. 기후위기와 환경에 대한 여러 경고에는 과학적인 근거도 있고, 실제 과거의 사례들도 있어서다.

비극적인 미래를 막기 위해 일회용품이나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쓰레기를 규정에 맞게 잘 버리자고 말한다. 누구나 그게 ‘옳은 얘기’라고 받아들인다. 하지만 실천은 하지 않는다. 실천하지 않는 이유는 둘 중 하나다. 그 문제에 관심이 없거나, 아니면 귀찮고 불편해서다.

작은 페트병 하나를 버린다고 가정해보자. 페트병을 재활용해서 최상의 재생원료 품질을 얻으려면 라벨지를 모두 제거하고 병과 뚜껑을 따로 분리해서 버려야 한다. 환경부도 ‘부착상표, 부속품 등 본체와 다른 재질은 제거한 후 배출하라’고 홍보해왔다. 그런데 최근 서울시에서는 다른 방법을 제안했다. ‘부피를 줄여서 따로 배출하라’는 방식이다. 서울의 한 구청 자원순환과장은 기자에게 “뚜껑을 같이 버려도 된다”고 했다. 왜 그럴까?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홍수열 소장은 “현실적으로 뚜껑이 따로 모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홍 소장이 기자에게 들려준 얘기는 이랬다.

“원칙적으로 가장 좋은 방법은 뚜껑을 떼는 겁니다. 그런데 뚜껑은 크기가 작아서 따로 모으기가 어렵고 사람들이 그렇게 버리지도 않죠. 대단지 아파트라면 분리배출 할 때 건전지 수거함처럼 뚜껑만 따로 모아 옮기는 게 가능할 수 있지만, 뚜껑만 따로 모으는 정책을 보편적으로 적용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일반 가정에서 분리배출 할 때는 뚜껑을 닫아서 배출하되 압축한 다음 마개를 닫으라는 겁니다. 뚜껑을 그대로 붙여서 유출하면 선별공정에서 압축이 잘 안 되거든요. 결국 최선 대신 차선을 선택한거예요.”

가장 이상적인 선택 대신 현실을 고려해 대안을 마련했다는 의미다. 여기서 현실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으나 ‘귀찮고 불편한 일’이라는 의미가 함께 읽힌다. 소비자들은 일일이 따로 버리기가 불편하고 귀찮으며, 동전 크기의 작은 뚜껑을 따로 모아서 처리하는 것도 속도나 효율성 등을 생각하면 불편하고 귀찮은 일이라고 들린다. (홍수열 소장이 불편이라는 단어를 언급한 것이 아니고 기자가 그렇게 해석했다는 의미다.)

실제로 플라스틱을 줄이거나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려면 불편하고 귀찮다. 한번 쓰고 버리는 게 아니라 일일이 다시 닦고 말려서 재사용하려면 시간과 노동력이 필요하다. 텀블러와 장바구니를 사용하고, 늘 다회용기에 음식을 담아 먹으며 버리는 걸 줄이고 버릴 때도 꼼꼼하게 무언가를 체크 하려면 불편하고 귀찮다. 하지만 불편해서 모두 그걸 안 하면 어떻게 될까?

기자는 서울 송파구에 산다. 얼마 전 집으로 커다란 비닐봉투 여러 장이 배송됐다. 투명페트병을 담아서 버리라고 지자체에서 보내준 봉투다. 크기는 100리터 쓰레기봉투와 비슷할 만큼 컸다. 플라스틱을 제대로 분리배출 하려고 커다란 비닐을 사용해야 하는 이 순환의 고리는 과연 누가 끊을 수 있을까.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는 인류’ 아니면 대신할 사람이 없다. 여기서의 인류는 소비자 개인과 기업, 사회, 정부 모두를 뜻한다.

복잡한 세상이지만 편하게 사는 걸 기자도 원한다. 하지만 편리함에만 매몰되면 편하게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환경운동가들은 기후변화나 환경 관련 문제가 미래 세대에게 닥칠 숙제가 아니라 지금 당장의 문제라고 말한다. 귀찮음에 굴복하면, 더 불편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경고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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