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집중 이끄는 뉴 키워드 ‘디지털 전환’
로봇프로세스자동화, 클라우드 등으로 업무 효율화
전자·화학·통신 3대축으로 신사업 육성
과감한 변화로 선택과 집중 나선다

코로나19 여파로 재계와 산업계 전반에 위기감이 감돕니다. 세계 곳곳의 공장과 상점이 문을 닫고 소비자들의 생활 습관이 변하면서 기업들은 줄줄이 타격을 입었습니다. IMF와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은 또 한 번의 시련입니다.

대한민국은 이 위기에서 슬기롭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절망할 필요 없습니다. 난세에는 영웅이 등장합니다. 코로나 최일선에서 밤낮으로 바이러스와 싸운 의료진의 노력이 빛을 본 것처럼,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경제위기에 굽히지 않고 정면으로 맞설 또 다른 영웅들이 있습니다.

동방의 작은 나라, 내수 시장 규모가 크지 않은 국가지만, 우리에게는 세계 시장을 이끌만한 여러 기술과 앞선 제품이 있습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던 선배,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던 선배가 지금은 없지만, 그들 못잖은 후배 기업인들이 앞선 세대가 일군 땅에서 또 다른 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떨어진 ‘기운’을 확실하게 ‘업’시켜 줄 경제 주역들, 국내 대표 기업과 CEO의 ‘포스트 코로나 전략’을 연재합니다. 세 번째 순서는 선택과 집중으로 미래 먹거리 전략을 세우고 있는 LG입니다. [편집자 주]

영상 메시지를 통해 임직원들에게 신년사를 전달하는 구광모 ㈜LG 대표(LG그룹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구광모 회장은 1978년생으로 이른바 'X-세대'다. 재계 최상위권 그룹에서는 최초의 4세 경영진으로 그의 행보는 ‘젊은 리더십’으로 주목 받는다. 사진은 영상 메시지로 임직원에게 신년사를 전하는 모습 (LG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코로나19 사태 이후의 LG 행보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이 있었다. 구광모 LG 회장은 지난 3월 27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코로나19 확산으로 불확실한 경영환경이 이어지고 있으나, 모든 어려움에도 기회가 있기에 LG는 슬기롭게 대처하며 위기 이후의 성장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메시지, 어려움에 슬기롭게 대처하며 미래 성장을 준비하겠다는 각오로 읽힌다. 사실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대한민국 모든 CEO가 늘 하는 얘기고, 과거 어느 시절에든 소위 ‘사장님’들은 ‘올해는 경영환경이 녹록지 않으니 긴장해야 한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고 미래를 개척하자’고 말해왔다. 아마 미래에도 이런 메시지는 늘 나올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광모 LG회장의 메시지는 재계에서 남다른 주목을 받고 있다. 두가지 이유다. 첫째로 구광모 회장은 1978년생으로 이른바 'X-세대'다. 재계 최초의 4세 경영진으로, 이재용과 정용진 등 주요 3세 경영진과 비교해도 10살 어리다. 그의 행보는 곧 재계의 대표적인 ‘젊은 리더십’으로 주목 받는다. 두 번째 이유는 LG가 정말로 변하고 있어서다.

◇ 선택과 집중 이끄는 뉴 키워드 ‘디지털 전환’

구광모 회장 체제 이후 LG는 ‘선택과 집중’에 주력하고 있다. LG그룹은 지난 2018년 하반기부터 최근까지 비핵심 사업을 정리하고 주력 사업 부문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LG화학의 LGD소재사업부문과 LG유플러스 전자결제, LG전자 연료전지 자회사 등을 매각했다. 전기차 관련 자회사 우지막코리아도 매각설이 나돈다. 필수 성장동력 중심으로 선택과 집중에 나서겠다는 의도다.

구광모 회장은 지난해 사장단 워크숍에서 “전례 없는 위기에 제대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는 각오로 변화를 가속해달라”고 요구했다. 이 자리에서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근본적으로 새로운 변화를 위해 사장단께서 몸소 주체가 돼 실행 속도를 한 차원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시기적으로 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나기 전이지만, 과감한 변화로 미래시장에 대비해야 한다는 그룹 기조가 이미 명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구 회장과 LG가 새로운 미래 사업영역을 확정해 구체적으로 발표하지는 않았다. 다만 LG전자와 LG화학이 모빌리티와 배터리, 자동차 소재 중심으로 미래 전략을 일부 공개했고 지주사 LG가 LG유플러스 지분율을 늘리면서 통신 사업에도 힘을 싣는 모습이다. 사업구조를 재편하고 비핵심 분야를 정리하면서 비축한 여력을 새로운 분야와 신 사업에 적극 투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주목받는 키워드가 하나 있다. ‘디지털 전환’이다. 이는 기업의 전략이나 조직, 프로세스, 비즈니스 모델과 업무방식을 디지털 기반으로 바꾼다는 의미인데, 구 회장이 평소 강조하는 내용 중 하나다.

디지털 전환은 기업들의 오랜 숙제다. 지난해 국회에서 열린 디지털 전환 관련 토론회에서 많은 기업 관계자들이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해야 하는지는 아직 고민중”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일부 중소·중견기업 관계자들은 “대기업의 사례를 보면서 적용 가능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도 언급했다. 그렇다면 LG는 이 과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LG 구광모 회장은 1978년생 'X-세대'다. 밀레니얼 세대나 Z세대가 보기에야 똑같은 기성세대로 보이겠지만, 국내 재계를 이끄는 3~4세 총수 중에서는 가장 젊다. 사진은 LG그룹본사(LG그룹제공) / 그린포스트코리아
LG는 전자와 화학 등 전통적인 산업에서 국내 재계를 오랫동안 이끌어온 기업이다. 몸집이 클수록 변화에 둔감하기 쉽지만, 최근의 LG는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LG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 로봇프로세스자동화 기술로 업무 효율화, ‘R 차장’을 아시나요?

LG는 주요 계열사에 이른바 ‘로봇 사원’을 전면 도입하는 등 디지털 전환에 주력하고 있다. LG전자는 올해 말까지 약 400개 업무에 RPA(로봇프로세스자동화) 기술을 추가해 총 900개 업무에 도입할 계획이다. LG전자는 2018년 이후 최근까지 회계와 인사 등 사무직 분야 등의 업무에 RPA기술을 도입한 바 있다.

LG전자는 RPA를 적용한 업무영역을 넓히면서 기존 RPA에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을 결합한 ‘지능형 RPA’도 도입하고 있다. 단순반복 업무 이외에도 분석 등 진일보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예를 들면 글로벌 주요 사이트에 흩어져 공개된 제재 거래선 목록을 찾아 LG전자 거래선과 대조한 뒤 제재 대상으로 의심되는 거래선이 있는지 알려주는 업무도 가능하다.

LG생활건강에는 알(R) 파트장이 근무(?)한다. 알 파트장은 데이터 입력과 조회를 빠르게 처리하고 실적 보고서 등 엑셀 작업도 처리한다. 직원이 요청한 자료를 찾아 메일로 보내주는 것도 주요 업무다. 알 파트장은 로봇이고 정식으로 인사 등록까지 마쳤다. 언론 보도 등에 따르면 사내 전산망에서 검색하면 알 파트장 이름이 나온다.

LG생활건강에서 활약 중인 알 파트장은 모두 8대다. 영업, 회계, 마케팅 등을 담당하는 부서에 나눠 배치돼 있다. 알 파트장이 수행하는 업무는 249개이며 업무 성공률은 95%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코로나19 대응에도 로봇사원이 나섰다. LG CNS 로봇사원은 지난 2월말부터 계열사 임직원의 자가진단을 담당한다. 로봇사원이 매일 임직원에게 자가진단용 URL이 포함된 문자를 발송해 임직원들이 체크한 증상여부와 재택근무 여부, 확진지역 방문 여부 등을 취합하고, 이상이 있는 경우 각 계열사 담당 부서에 자동으로 알려주는 방식이다.

LG그룹은 RPA 소프트웨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현재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화학, LG생활건강, LG유플러스, LG CNS, LG상사 등 12개 계열사에서 로봇 사원을 활용하고 있다. 임직원들이 단순반복업무에서 벗어나 문제 해결 등 더욱 가치 있는 일에 몰입하며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이에 대해 재계 한 관계자는 “사업영역을 정돈하고 재배치하는 것 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역량이 중요한 곳에 투입되도록 만드는 것도 선택과 집중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 클라우드·비대면 협업 시스템으로 경쟁력 강화  

LG 디지털 전환의 또 다른 한 축은 클라우드와 협업시스템 등의 적극적인 도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LG는 현재 LG전자와 LG화학, LG유플러스, LG CNS 등 17개 계열사가 클라우드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 해외법인을 포함해 약 14만명이 사용중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언론 보도 등을 종합하면 2023년까지 IT시스템의 90%를 클라우드로 이관시킬 예정이다. 이를 위해 올해는 전 계열사의 클라우드 전환율을 50% 이상으로 끌어올릴 예정이다.

비대면 협업 시스템 구축에도 적극적이다. LG화학은 마이크로소프트의 메신저 기반 협업 솔루션 '팀즈'를 한국, 중국, 미국, 폴란드 등 전 세계 사업장 사무기술직 임직원을 대상으로 적극 도입했다. 국내 기업의 팀즈 도입 사례 중 최대 규모다. LG화학은 이를 통해 비대면, 무중단, 무제한이 가능한 ‘3U 업무시스템’ 구축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U는 ‘언택트’ 등 앞선 세 단어 영문 철자 앞글자를 딴 용어다

LG화학은 임직원의 효율적인 업무를 위해 사내 시스템에 다국어 번역 시스템도 도입했다. 이메일과 메신저, 전자결재는 물론 첨부파일까지 사내 시스템에 올라온 다양한 정보를 빠른 시간안에 최대 22개 언어로 번역할 수 있다. AI기능을 통해 번역 기능의 정확도를 높인 것으로 전해진다.

LG는 디지털 전환을 통해 제품과 서비스의 가치를 혁신하겠다는 목표다. 이를 위한 IT시스템 구축 등을 꾸준히 강화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구 회장은 사장단 워크숍에서 “디지털전환이 더 나은 고객 가치를 창출하는 핵심 수단이자 우리의 경쟁력을 한 차원 끌어올리기 위해 꼭 필요한 변화 중 하나”라고 밝힌 바 있다.

배우 최불암씨가 지난 1969년 광고모델로 출연했던 옛 금성사의 백조세탁기 광고(LG전자 제공)
LG는 '백색가전 명가'로 통했다. 코로나19 여파가 재계를 흔든 지난 1분기에도 LG전자는 생활가전의 호조속에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는 평가다. LG는 가전명가의 자존심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사진은 배우 최불암씨가 출연한 1969년 금성사 세탁기 광고 (LG전자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 백색가전 명가 신화, H&A사업이 다시 이끌까

일부 사업을 재편하고 직원들의 업무환경을 효율화하는 LG가 ‘되는 일’로 판단하고 주력하는 분야는 어느 지점일까. 재계에서는 ‘가전 명가’로 꼽히는 LG전자를 주목한다.

머니투데이 보도에 따르면 LG전자는 최근 1년새 가전사업 인력을 70% 가까이 늘렸다. 생활가전사업을 담당하는 H&A사업본부 임직원은 3월 말 기준 1만 1000명 수준으로 1년 사이 4500명 가까이 늘었다. 조직 개편과 인력충원 등으로 규모를 키운 결과다. 연구개발 조직 등을 사업본부로 흡수한 것도 조직 규모가 커진 이유로 꼽힌다. 지난해 LG전자 전체 영업이익(2조 4361억원) 가운데 81.9%가 H&A사업본부에서 나왔다.

재계에서는 올해 1분기 코로나19 사태로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LG전자가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한 것도 H&A사업본부 공이라고 평가한다. 지난 7일 발표한 잠정실적에 따르면 LG전자는 매출 14조 7287억원, 영업이익 1조 904억원을 기록했다. 이날 사업부문별 상세 실적이 공개되지는 않았으나 H&A가 실적을 견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교보증권 최보영 연구원은 당시 LG전자 실적을 전망하면서 “H&A사업부는 코로나 영향으로 인해 공기청정기와 청소기 등 위생 가전 판매가 호조를 보였으며, 신성장 가전과 해외 판매 및 렌탈 사업이 꾸준히 성장 중”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한 바 있다.

최근 증권가에서도 LG전자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을 다수 발표했다. 키움증권 김지산 연구원은 “하반기에는 주요국 경기 부양책과 수요에 힘입어 빠른 회복이 기대된다”고 전망하면서 “코로나 국면에서도 건강 가전 위주로 견조한 수익성을 유지하고 있는 가전의 경우, 미국 월풀과 유럽 일렉트로룩스 등이 더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어, 확고한 품질 경쟁력을 바탕으로 점유율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이투자증권 고의영 연구원은 <코로나19를 이겨낸 실적>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1분기 영업이익이 기대치를 웃돈 것은 H&A사업본부 실적 호조 때문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와 더불어 “공기청정기, 스타일러, 식기세척기 등 수익성 높은 신성장 제품군이 위생 가전으로 인식되면서 시장 수요가 견조했다”고 전망했다.

◇ 전자·화학·통신 3대축으로 신사업 육성...과감한 변화로 선택과 집중 나선다

알으로 LG는 가전과 화학 등 경쟁력 있는 주력사업에 집중하면서 신사업으로 발을 넓혀갈 것으로 보인다. 큰 그림은 나와있다. 구 회장은 “전자·화학·통신 3대축으로 신사업을 육성해 LG의 미래를 준비하겠다”는 전략을 밝힌 바 있다. “4차산업혁명으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기술의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의지도 함께 밝혔다.

전자는 전기차 부품과 차세대 디스플레이, 광학솔루션 등 부품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전기차 전지사업과 LG화학 바이오사업에서 성과를 내겠다는 계획이다. 통신에서는 5G 특화 서비스 등 소비자의 삶을 혁신하겠다는 구상이다.

LG와 구광모 회장은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까. 취임 이후 지금까지의 행보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다. 구 회장은 취임 직후 미국 3M출신 신학철 부회장을 LG화학 최고 경영자로 영입했다. 이후 한국타이어 연구개발본부장 출신을 자동차부품팀장으로 영입했고, 보쉬코리아 영업총괄 출신을 LG전자 자동차부품 사업본부장으로 임명했다. 인재육성을 담당할 임원으로는 이베이코리아 인사부문장 출신을 데려왔다. 과거 LG가 내부승진 위주의 이른바 ’순혈주의‘문화가 남아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달라진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재계의 모범생 이미지이자 기업 첫 번째 가치를 ‘인화’라고 여겨왔던 LG의 최근 행보에 변화가 보인 것도 구광모 회장의 과감한 리더십 영향이라고 본다. 삼성전자와 8K TV 등을 두고 정면으로 맞붙은 것,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과 소송을 벌이는 과정에서 언론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도 과거의 LG와는 다르다는 평가다. 한 언론에서는 이런 과정들을 일컬어 ‘재계의 범생이가 싸움닭으로 변했다’고도 평가했다.

지난해 9월 수장을 전격 교체한 LG디스플레이 소식도 과거의 LG와 달라진 모습이다. 인화 대신 실리를, 안정 보다 변화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최근 코로나19 여파로 상반기 채용 일정 등이 미뤄지는 가운데서도 LG그룹은 AI와 빅데이터 관련 경력 채용을 추진하는 등 그룹 차원의 인력확보 노력을 기울여 왔다. 과감한 선택과 집중으로 ‘되는 일’에 몰두하고 디지털 전환을 통해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는 것이 LG의 ‘포스트 코로나’ 전략으로 읽힌다.

LG화학 여수 탄소나노튜브 공장 전경. (LG화학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LG는 전자·화학·통신 3대축으로 신사업을 육성해 미래를 준비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진은 LG화학 여수 탄소나노튜브 공장 전경. (LG화학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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