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혈장치료제 'GC5131A' 개발 순항중

성장 모멘텀 다수 확보 ... 연구개발 역량 집중

산업을 이끄는 여러 업종들은 저마다의 장점과 특색을 가지고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한다. 세상에 중요하지 않은 산업이 어디 있겠냐만, 그 중에서도 ‘미래 먹거리’ 분야에서 글로벌 공룡과 치열하게 경쟁하는 기업에게는 상대적으로 더 많은 관심이 쏠린다.

K-POP이 문화컨텐츠를 주도하고 반도체가 세계 시장에서 남다른 점유율을 보이는 요즘, 또 다른 ‘한류'를 꿈꾸며 내일을 준비하는 기업들이 있다. 제약·바이오 기업들이다. 이들은 ‘보건안보 산업’이라는 기존 틀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국가경제를 책임질 미래 주력 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이제는 K-바이오 시대다. 해당 산업을 이끄는 국내 기업의 역사와 최근 동향, 그리고 미래 전망과 리더십을 심층 취재해 연재한다. [편집자주]

연구원이 GC녹십자 경기도 용인 연구개발센터에서 실험 결과를 확인하고 있다 (GC녹십자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실험 결과를 확인하고 있는 GC녹십자 연구원 (GC녹십자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민선 기자] 코로나19의 진단부터 치료·예방까지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기업이 있다. 바로 GC녹십자. 녹십자는 반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백신과 혈액제제 등 특수의약품 분야에서 생명공학을 선도해온 우리나라 대표 '백신 명가'다.

특히 녹십자는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코로나19 치료제 후보로 녹십자의 혈장치료제가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강력한 치료제 후보로 꼽혔던 렘데시비르와 클로로퀸의 임상 과정에서 부실한 효능과 부작용 사례가 나타나며 기대에 미치치 못한 것이다. 녹십자가 개발 중인 혈장치료제는 과거 회복 환자의 혈장 투여만으로도 신종 감염병 치료 효과를 이미 입증한 바 있다.

현재 녹십자가 개발 중인 'GC5131A'는 코로나19 회복환자의 혈장에서 다양한 항체가 들어 있는 면역 단백질만 분획해서 만든 고면역글로불린이다. 녹십자가 남들보다 빠르게 개발에 뛰어들 수 있었던 것은 오랜 기간 인체에 사용된 면역글로불린제제를 보유한 덕분이다. 이미 상용화된 동일 제제 제품들과 작용 기전 및 생산 방법이 같아 개발 과정이 간소화했다는 분석이다. 

GC녹십자는 올 하반기 출시 예정인 혈장치료제를 필두로 서브유닛 백신, 단일클론항체치료제를 연구하며 코로나19를 잡기 위해 전사적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다.

 

‘만들기 힘든, 그러나 꼭 있어야 할 의약품’ 개발 집중

 
허영섭 회장
녹십자 창업주 故 허영섭 회장 (GC녹십자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녹십자가 코로나19를 잡기 위해 뛰어든 것은 바로 선대 회장의 정신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녹십자그룹을 세운 故 허영섭 회장은 국내에서 ‘만들기 힘든, 그러나 꼭 있어야 할 의약품 개발’에 매진했다.

허영섭 회장은 부친인 허채경 한일시멘트 창업주로부터 지분을 출자받아 전신인 1967년 수도미생물약품판매주식회사를 인수해 같은 해 녹십자를 설립했다.

설립 후 허 회장은 생명과학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우리나라에서 필수의약품의 국산화를 외치며 ‘백신 상용화’에 한 획을 그었다. 

녹십자는 1969년 일본뇌염백신과 디프테리아·백일해·파상풍 백신을 시작으로 백신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약 12년간의 연구개발 기간을 거쳐 1983년 세계 세 번째로 순수 국내 기술을 사용한 B형간염 백신 ‘헤파박스’를 선보였다.

‘헤파박스’는 기존 수입 백신 가격의 3분의 1가량 저렴하게 공급돼 국민들의 부담을 줄였다. 약 13%에 달하던 국내 B형간염 보균율을 선진국 수준인 2∼3%대로 감소시켰다. 허영섭 회장은 헤파박스를 통해 얻은 이익으로 1983년 ’목암생명공학연구소(現 목암생명과학연구소)‘를 세웠다.

설립 당시만 해도 환경이 좋은 외국에 연구소를 설립하거나, 돈 되는 사업에 투자하자는 의견이 다분했다. 하지만 허 회장은 다른 기업들이 선뜻 나서지 못한 공익 연구재단을 설립해 생명과학 연구기반 조성과 후학양성을 도모했다. 그의 열정은 B형간염백신뿐 만 아니라, 유행성출혈열백신, 수두백신, 유전자재조합 혈우병 치료제 등의 개발 성공으로 이어졌다.

자신에게는 엄격하리만큼 검소했지만, 공익을 위한 일이라면 그 누구보다 아낌이 없었던 만큼, 업계는 허 회장을 경제적인 득실보다는 국가와 사회를 먼저 생각하는 가치관이 강했던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글로벌 진출 위한 R&D ‘집중’

허은철
허은철 대표이사 이력 (이민선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현재 허영섭 회장의 차남인 허은철 사장이 GC녹십자를 이끌고 있다. 그는 목암생명과학연구소 기획관리실장을 거쳐 녹십자 R&D 기획실 상무이사, 전무이사를 거쳐 최고기술경영자, 기획조정실장 등을 역임했다. 

지난 2015년 조순태 녹십자 대표이사와 함께 공동 대표이사를 맡았고, 이듬해 녹십자 단독 대표가 됐다.

그는 2018년 시작과 함께 녹십자라는 회사 이름을 기존 녹십자(Green Cross)의 영문 이니셜을 조합한 GC로 변경했다. 글로벌 제약사로의 도약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허은철 사장은 혈액제제를 시작으로 글로벌 신약을 개발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GC녹십자는 연구개발비로 매출액의 11%를 쓰고 있다. 이는 연간 1507억원에 달하는 규모로 한미약품에 이어 제약업계 2위를 차지한다.

연구개발 인력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박사급 43명, 석사급 230명 등 총 463명의 연구개발 관련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신약후보 물질 발굴부터 생산 최적화 연구, 안전성 확보, 초기 임상까지를 집중적으로 수행하는 종합연구소와 RED 본부로 나뉘어 있다. RED 본부는 석·박사급 인력의 비중이 84%에 달한다.

신약 개발 강화를 위해 2018년 3월 이재우 박사를 개발본부장으로 영입했고, 같은 해 5월에는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 미국 자회사 ‘큐레보’를 세우며 차세대 프리미엄 백신 개발 본격화를 알렸다. 

6월에는 희귀질환 신약 개발을 위해 유한양행과 손을 잡았다. 업계 1, 2위를 다투는 제약사가 함께 신약개발에 나선 것은 이례적인 일로 시너지 효과를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해 업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매출 ‘1조 클럽’ 가입, 성장 모멘텀 다수 확보

2019 매출액 1조원 이상 제약사 실적 (이민선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2019 매출액 1조원 이상 제약사 실적 (이민선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녹십자는 지난해 3분기 누적 매출 1조원을 넘어서며 매출 ‘1조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말 기준 GC녹십자의 매출은 전년보다 0.41% 증가한 1조1461억원으로 유한양행(1조4633억원)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419억원으로 전년보다 9.61% 줄었고, 당기순이익은 적자 전환했다. 연구개발비 등 판매관리비가 전년 대비 12.3% 증가했고, 영업 외 항목에서 금융 자산 평가손실 등 일회성 비용이 발생하면서 연간 순이익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주력인 혈액제제와 백신, 소비자헬스케어 사업 부문 등 내수에서 고른 매출 성장세가 이어졌다. 국내 매출은 전년 대비 3% 늘어났다. 부문별로는 혈액제제 사업의 매출 규모가 2.2% 증가했다. 백신과 소비자헬스케어 사업 부문은 각각 15%, 23% 성장했다. 독감백신은 내수와 수출 모두 실적을 보이며 33.5%의 높은 성장세를 나타냈다.

이러한 녹십자의 매출 성장은 1분기를 지나서도 이어질 전망이다. 

하나금융투자 선민정 애널리스트는 “GC녹십자는 상반기 중국으로부터 헌터라제 승인, 하반기에는 미FDA에 면역결핍치료제(IVIG) 10%의 생물의약품 허가신청서 제출 등 R&D 모멘텀을 보유하고 있다”며, “상반기 헌터라제가 승인된다면 하반기부터 중국으로 수출되면서 2021년 성장 모멘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글로벌 제약사로 도약 꿈꾸는 GC, 미국 진출 가속화

아이글로불린-에스엔(IVIG-SN) (GC녹십자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혈액제제 아이글로불린-에스엔(IVIG-SN) (GC녹십자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글로벌 제약사로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GC녹십자는 3년 안에 임상 승인 7건과 품목허가 신청 8건, 출시 5건의 연구개발 성과를 달성할 계획이다. 이에 지난해 6월 기업설명회를 열고 혈액과 백신제제, 희귀의약품 등 세 가지 주력사업 분야에 연구개발 역량을 집중한다는 전략을 발표했다. 

우선 백신사업부문에서 수입 백신을 자급화하고 국내 품목허가를 획득한 수두백신 '배리셀라주'를 통해 세계 수두백신 시장에서 현재 10% 수준의 점유율을 끌어올릴 방침이다. 

출혈성과 대사성 희귀질환 치료제 분야에서는 혁신 신약 개발에 나서 2022년까지 임상 승인과 글로벌 기술수출 각각 2건씩을 목표로 하고 있다.

회사 주력 사업인 혈액제제 부문은 알부민, 아이글로불린-에스엔(IVIG-SN)의 생산 효율성을 높여 수익성을 개선하고 다양한 부산물을 활용한 신제품 개발에도 나설 계획이다.

현재 알부민, 아이글로불린-에스엔은 중남미와 중국 시장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전 세계 30여 개국에 수출되고 있다. 올해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아이글로불린-에스엔의 미국 시판 허가를 위해 전력을 다할 방침이다. 아이글로불린-에스엔의 시장 가격은 미국이 한국에 비해 4배가량으로 형성돼 있어 향후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된다. 

구자용 애널리스트는 “올해 신약 개발 일정은 상반기 헌터라제 중국허가, 4분기 그린진에프 중국허가, 10% IVIG 미국 BLA 신청 등이 있다”며 “현재까지 코로나19로 인한 임상시험 또는 허가 일정 지연 이슈는 없는 상황으로 안정적 실적이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minseonlee@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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