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가 쌓여있다. (픽사베이 제공) 2020.3.31/그린포스트코리아
폐지가 쌓여있다. (픽사베이 제공) 2020.3.31/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김형수 기자] 플라스틱, 비닐, 스티로폼 등으로 만들어진 포장재를 쓰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일어나면서 고민에 빠진 유통업계는 대안으로 종이를 선택했다. 업체들은 종이 소재 포장재가 재활용이 쉽다는 점을 앞세우고 있지만 국내 폐지 재활용 시스템이 원할하게 돌아가려면 풀어야 할 과제가 있다.  

◇플라스틱・비닐・스티로폼 대신 종이 포장재

31일 업계에 따르면 마켓컬리는 지난달 말 국제산림관리협의회(Forest Stewardship Council)의 산림경영인증시스템(FSC 인증)을 받았다. 비영리단체인 국제산림관리협의회가 만든 FSC인증은 산림의 생물 다양성 유지 등 10가지 원칙과 56개 기준을 가진 국제인증이다.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생산된 종이와 상품에 부여되는 친환경 인증이다.

마켓컬리는 지난해 9월24일 100% 재활용 가능한 종이로 모든 포장재를 전환하는 '올페이퍼 챌린지’라는 친환경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친환경 행보에 박차를 가했다. ‘올페이퍼 챌린지’ 시행 다음 날인 작년 9월25일부터 새벽배송의 냉동상품 포장재를 스티로폼에서 종이박스로 변경했다. 상품의 파손을 막기 위해 사용하던 비닐 충전재 및 비닐 포장도 종이 포장재로 바꿨다.

마켓컬리는 종이 박스의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 수분차단처리를 위해 쓰이는 포장 부자재도 필름이 아닌 코팅을 사용해 별도의 분리없이 바로 재활용할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종이 박스에 사용되는 테이프는 비닐이 아닌 종이테이프를 쓴다. 마켓컬리는 이번달 부직포 소재에 100% 물을 얼려 배송하던 워터 아이스팩도 종이 소재 워터 아이스팩으로 교체했다.

마켓컬리가 '올페이퍼챌린지'를 시작하며 도입한 종이소재 포장재 (마켓컬리 제공) 2020.3.31/그린포스트코리아
마켓컬리가 '올페이퍼챌린지'를 시작하며 도입한 종이소재 포장재 (마켓컬리 제공) 2020.3.31/그린포스트코리아

롯데는 지난달 중순 2025년까지 유통사에서 판매하는 명절 선물세트의 친환경 포장 제품 비율을 50%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올해 설에 판매한 굴비 선물세트는 특허 기술이 접목된 종이 골심지 등 내외부에 모두 100% 재활용할 수 있는 종이 포장재를 사용했다. 

현대백화점도 올해 설 과일 선물세트에 ‘올 페이퍼(All Paper) 패키지’를 도입했다. 사과・배 등 설 과일 선물세트에 사용되는 플라스틱 소재의 완충재를 재활용이 쉬운 종이 소재로 바꾼 것이다. 이번에 교체하는 포장재는 과일이 서로 부딪혀 흠이 생기지 않도록 개별로 감싸는 ‘완충 받침’으로, 종전까지 폴리프로필렌(PP) 등 플라스틱 소재를 사용해왔다.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설부터 상자 안의 과일이 움직이지 않도록 하는 ‘고정틀’, 과일 윗면의 충격을 줄여주는 ‘완충 패드’ 등 과일 선물세트에 사용되는 플라스틱 소재의 내부 포장재를 종이 소재로 교체해왔다. ‘완충 받침’ 적용에 따라 현대백화점에서 판매되는 과일 선물세트는 플라스틱 없는 ‘올 페이퍼 패키지’에 담기게 됐다. 또 현대백화점은 올해 설부터 한우 등 정육 상품 배송에 사용되던 보냉용 ‘스티로폼 박스’도 전체 물량(1만5000여개)의 약 20%를 ‘종이 상자’로 교체했다. 

현대백화점은 적용 품목을 순차적으로 확대해 내년에는 모든 과일 선물세트를 ‘올 페이퍼 패키지’로 구성한다는 계획이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올 페이퍼 패키지’란 플라스틱 소재의 과일 선물세트 포장재를 모두 종이 소재로 바꿔 고객 입장에서 분리 배출이 쉽도록 한 것”이라면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포장재 폐기물’ 발생을 줄이고 자원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폐지 수거 거부 예고했던 수거운반업체

상품 포장을 위해 쓰인 종이 소재의 상자나 포장 부자재 등이 재활용되려면 우선 사람들이 집밖에 내놓은 종이 쓰레기를 수거운반업체에서 가져가야 한다. 지난달 이 과정에서 탈이 났다. 서울, 경기도 등 수도권 지역에 있는 65개 공동주택 단지에서 폐지를 수거해가는 23개 수거운반업체가 수거를 거부하겠다고 예고한 것이다.

폐지 가격이 폭락하면서 수익성도 덩달아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2018년 폐지 주요 수입국으로 꼽히는 중국이 폐기물 수입을 제한하면서 폐지 공급이 늘어나면서 빚어진 현상이다. 한국환경공단 자원순환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폐지(골판지) 가격(원/㎏)은 2018년 1월 각각 136.4원에서 올해 1월 58.5원으로 절반 아래로 뚝 떨어졌다. 그 이후로도 하락세가 이어져 3월 폐지(골판지) 가격은 55.6원까지 내려갔다.

폐지가 남아도는 상황이지만 제지업체들은 외국에서 폐지를 계속 수입하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8년 약 155만톤, 지난해 약 146만톤 등 연간 150만톤 안팎의 폐지가 수입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폐지 수출량(약 39만톤)이 2018년(약 74만톤)에 비해 크게 줄어들면서 지난해 수입량에서 수출량을 뺀 순수입량은 크게 늘어났다.

한국환경공단 재활용시장관리센터에 따르면 제지사들은 국내에서 나온 폐지(86%)와 수입 폐지(14%)를 혼합해서 쓰고 있다. 한국골판지포장산업협동조합은 국산 폐지의 품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생산하는 재활용 종이의 품질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려면 상대적으로 품질이 좋은 미국과 일본의 폐골판지를 섞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산 폐지가 잘 재활용되게 하려면 풀어야 할 숙제가 무엇인지 나타나는 대목이다. 낮아지는 폐지 가격과 함께 하락한 수익성, 수입 폐지에 비해 떨어지는 국산 폐지의 품질 두 가지다.

◇제지 산업 의존도 줄이고 폐지 활용범위 넓혀야

환경부는 2월 수거운반업체가 폐지 수거 거부를 예고하자 강경책을 꺼내들며 대응에 나섰다. 폐지 수거를 거부할 경우 공공수거체제로 전환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폐지 수거를 거부하거나 수집・운반된 폐지 납품을 제한하는 업체에는 과태료 부과와 영업정지・시설폐쇄 명령을 내리겠다고 밝힌 것이다. 환경부가 입장을 밝히자 수거운반업체들은 수거 거부 의사를 물렸다.

또 환경부는 2월17일 국제 폐지가격 등 전반적인 재활용품의 가격이 하락추세를 보이는 상황을 감안해 관련 지침에 따라 재활용품 가격변동률을 수거 대금에 반영토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환경공단 등 산하 전문기관의 시장조사를 거친 '가격연동제' 적용지침을 지자체에 통보한다는 계획이다. 또 1월 22일 제지업계, 제지원료업계와 체결한 자율협약에 따라 국내 제지업계가 폐지 수입을 최대한 자제하고, 국내에 적체된 폐지를 우선 매입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지하철역 입구 앞에 종이 박스를 비롯한 폐지가 쌓여있다. (김동수 기자) 2020.3.31/그린포스트코리아
지하철역 입구 앞에 종이 박스를 비롯한 여러 쓰레기가 쌓여있다. (김동수 기자) 2020.3.31/그린포스트코리아

제도적으로는 '종이류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를 조기에 도입해 폐지 재활용을 위해 오염물질을 제거하고 종류별로 분류하는 선별 기능을 강화하고 관련 업체를 등록・관리하는 등 재활용 유통구조를 투명화한다는 계획이다. '종이류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는 제지를 생산하는 주체가 재활용 비용을 부담하는 제도다. 또 국내에서 발생하는 폐지의 재활용 품질을 높이기 위해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폐지류 분리배출 방법 홍보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계획이다.

최주섭 자원순환정책연구원장은 환경부가 내놓은 폐지 대책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공공 수거체계로 전환하거나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를 도입해도 국내 폐지 적체 현상을 풀리기 어렵다는 시각이다. 최주섭 원장은 종이 분리배출방법을 적극 홍보해 질이 좋은 폐지만 공급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또 필요한 대책으로 △제지산업에서 벗어나 압축 목재 등 새로운 용도의 재활용 제품 개발 △생활폐기물자원화시설에서 저품질 폐지 소각 △고물상 및 수거 노인들의 수익 보충 방안 마련 등을 제시했다. 

최주섭 원장은 “쌓인 폐지를 소진할 방법이 없다면 폐지를 비축한다고 해도 경기회복 후 소진할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진단했다. 최주섭 원장은 이어 “폐지를 재활용하는 데 있어 제지산업 의존도를 줄이고 제지 업계에 쏠린 폐지 공급량을 다른 쪽으로 돌릴 방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면서 “풍년이면 배추나 무밭을 갈아엎는 것처럼 지자체의 생활폐기물자원화시설에서 소각하거나 골판지로 질이 떨어지는 포장재를 만들어서 수출하는 등의 방안을 통해 공급을 안정화시키면 가격도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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