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를 구하라“ 현지 의료계 향한 온정 봇물
기부가 기부 낳고, 나눔은 또 다른 나눔으로 이어져
지자체, 개인 등도 온정 손길 속속 동참

그래픽(최진모 기자) / 그린포스트코리아
그래픽(최진모 기자) / 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코로나19 확산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피해 규모가 가장 큰 대구와 경북을 향한 온정의 손길이 연일 이어진다. 기부가 또 다른 기부를 낳으면서 대구 살리기는 마치 범국민 운동처럼 번져가고 있다.

최근 성북구 길음2동 주민센터에 기초생활수급자이자 5급 지체장애인 강모씨가 7년 동안 가입한 암보험을 깨 118만 7360원을 코로나19 극복에 써달라며 기부했다. 강씨의 경제사정을 잘 아는 담당 공무원이 오히려 만류했으나 강씨는 “대구에서 고생하는 환자와 의료진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며 뜻을 꺾지 않았다. 주민센터는 강씨의 뜻을 존중해 해당 기부금을 대구에 전하기로 했다.

기자는 2일 대구에 사는 지인에게 마스크 몇 장과 알콜솜을 우체국 택배로 보냈다. 그 지인과 잘 아는 다른 사람도 십시일반 마스크를 보냈다. 기자 역시 가지고 있는 마스크가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지만, 서울보다 대구 사정이 훨씬 급하고, 아이 키우는 그 지인과 가족들의 건강이 더 염려되어서다.

이날 우체국 직원은 “대구 지역 택배가 평소보다 조금 늦게 도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마스크와 의료용품 등 코로나19 관련 유통망이 해당 지역으로 집중되어야 할 시기인데다. 여러 곳에서 대구지역으로 온정의 손길을 보내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경기도 일산에 사는 심모씨(53)는 최근 대구의 한 의료기관으로 생수와 먹거리를 보냈다. 코로나19 최전선에서 싸우는 의료진들에게 작게나마 힘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서다.

심씨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구매하고 배송지를 해당 지역 의료기관으로 선택해 바로 보냈다”고 말하면서 “물건이 필요한 의료기관 주소를 정리해 SNS에 공유하는 등 자발적으로 기부활동에 나선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 ”대구를 구하라“ 현지 의료계 향한 온정 봇물

전국의 마음이 대구로 향하고 있다. 현재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는 대구의료원이나 대구·경북 지역 병원에 부족한 물건을 보내자는 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대구 등 지역에 기부 택배가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지난달 25일 즈음부터, 환자들을 치료하는데 인력과 물품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지난달 25일 이성구 대구시의사회 회장이 ‘동료 여러분들의 궐기를 촉구합니다’라는 제목의 호소문을 통해 ‘의료인력이 모자라 신속한 진단이 어렵다’고 호소했다. 그러자 250여명의 의사들이 현장으로 갔다. 자원 의사들은 격리병동·선별진료소 등 코로나19 방역·치료 관련 시설에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간호사 2명과 함께 지원한 서울 강남구의 한 의사는 “2015년 강남구가 메르스를 심하게 겪었을 때 너무 힘든 것을 알기 때문에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자원했다”고 밝혔다.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임상병리사 등도 대구 의료봉사에 속속 지원했다. 해당 소식이 전해진 후 의사회에 후원금이 쏟아졌고 서울의 한 시민은 의사회관을 직접 방문해 300만원의 성금을 내놓고 가기도 했다.

그 마음들이 전해진 덕일까. 이후 대구 등 지역에는 기부가 쏟아지고 있다. 대구의료원 대외협력팀 관계자는 언론을 통해 "의료진 물이 부족하다고 하면, 물을 기부해주고 의료진의 생활용품이 부족하다고 하면 곧 생필품이 답지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인스타그램 등에는 대한적십자 대구광역지사 계좌번호를 공유하는 등 ’기부릴레이‘가 이어지고 있다. 유완식 대구의료원장이 인력, 장비, 물자가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얼마가 필요한지 묻지 마시고, 무조건 주시면 아껴쓰겠다”고 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기부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계명대 동산병원(대구 달서구 신당동)과 코로나19 지역거점병원 계명대 대구동산병원(대구 중구 동산동)에도 의료진들을 격려하는 도움의 손길이 전국에서 속속 도착하고 있다. 두 병원에는 서울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보내온 기부물품들이 100여 박스 이상 쌓였다,

최근 아이유가 보낸 방호복이 보건소에 전달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일반인 기부 인증 글도 이어지고 있다. 대구 현지의 한 게스트하우스가 의료 자원봉사자들을 위해 숙소를 제공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 해당 게스트하우스로도 기부 택배가 쏟아졌다. 이런 사실들이 알려지면서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는 "자발적으로 금을 모으고 태안 바다를 살려냈던 기억으로, 이번에는 대구와 경북을 돕자"는 글이 이어지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대구 경북으로 온정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기업과 지자체는 물론이고 익명의 시민들이 보낸 작은 힘들이 한데 모이는 중이다 (독자 제보)/그린포스트코리아
전국 각지에서 대구 경북으로 온정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기업과 지자체는 물론이고 익명의 시민들이 보낸 작은 힘들이 한데 모이는 중이다 (독자 제보)/그린포스트코리아

◇ 기부가 기부 낳고, 나눔은 또 다른 나눔으로 이어져

서산시의 한 노인은 ‘대구시민 여러분 힘내십시오, 우리가 남입니까’라는 편지와 함께 98만원을 내놨다. 편지와 기부금을 전달 받은 담당자가 이름 등을 물었으나 그는 끝내 신분을 밝히지 않고 돌아갔다. 배우 김보성은 대구를 직접 찾아 트럭을 타고 시내를 돌며 시민들에게 마스크를 나눠줬다. 

기부는 기부를 낳았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작지만 따듯한 마음이 점점 모이면서 그 힘이 더욱 강해졌다. 선한 영향력이 주위로 퍼지면서 대구살리기가 마치 범국민 운동처럼 확산되는 모양새다.

실제로 대구에서는 ’착한 건물주 운동‘을 통해 임대료를 감면 받은 점포 임차인이 소독용품을 구청에 기부하는 릴레이가 이어지기도 했다. 해당 임차인은 “임대료를 감면해준다는 소식이 고마웠고, 나도 작은 힘을 보태 코로나19를 이겨내고 싶다”고 밝혔다.

대구 감삼동 한 쌀국수 매장은 본사에서 휴점을 결정하자 남은 식재료를 활용해 음식을 만들었다. 그 음식은 돈 대신 마스크와 바꿔줬다. 본인이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위에 마스크를 나눠주기 위해서다. 그러자 “음식은 안 줘도 되니까 내 마스크도 가져가서 함께 기부해달라”며 나서는 손님들이 등장했다.

나눔 릴레이 사례는 끝이 없다. SNS등에는 마스크가 없는 대구 사람에게는 마스크를 보내주겠다는 기부 릴레이가 이어졌다. 국내외 코로나 현황을 알려주는 앱을 만든 대구지역 청소년들도 사이트 광고 수익으로 마스크를 기부했다. 

서울 강동구에 사는 직장인 강모씨(47)는 최근 대구에 손소독제를 보냈다. 그는 지난 2007년 12월 태안에서 기름 유출 사고가 났을 때 현장으로 달려간 자원봉사자 123만명 중 한명이다. 강씨는 “당시 태안과 아무런 연고도 없는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맨몸으로 달려와 기름때를 닦아냈다”고 회상하면서 “그때를 두고 다들 ’기적‘이라고 말하는데, 그 힘이 이번에도 꼭 발휘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네이버 해피빈을 통한 대구 코로나19 기부금 모금(네이버 캡쳐) / 그린포스트코리아
네이버 해피빈을 통한 대구 코로나19 기부금 모금(네이버 캡쳐) / 그린포스트코리아

◇ 기부 '큰 손' 자처한 기업, 나눔 동참한 지자체도 힘 보태

온정의 손길이 이어지는 가운데, 기업들도 ‘큰 손’을 자처하고 나섰다. KCC는 2일 사랑의 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0억원을 기부했다. 성금은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의 의료지원 봉사자와 방역 인력 등을 위한 방호복, 마스크 등 의료물품 구매에 쓰일 예정이다.

11번가도 2일 대한적십자사 대구광역시지사에 ‘마스크 2만장과 손소독제(500ml) 1만개 등 총 1억원 상당의 물품을 전달했다. 해당 지원 물품은 대구 지역거점병원 및 자가 격리자에게 우선 쓰일 예정이다.

CJ올리브영은 건강 및 위생 관련 물품 4천여 개를 오는 5일 전국재해구호협회에 기탁한다고 밝혔다. 해당 물품들은 대구와 경북 지역의 ‘코로나19’ 감염병 전담병원 의료진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지자체에서의 온정도 이어진다. 용인시 신봉동과 상현1동 주민자치위원회가 컵밥, 햇반 등 300만원 상당의 간편 조리식품을 용인시자원봉사센터에 전달했다. 이 물품은 대구시민들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앞서 지난달 28일에는 포곡읍 지역사회보장협의체가 200만원 상당의 간편 조리식품을 기탁한 바 있다.

광주시 북구와 한국케이블TV푸른방송 등도 대구지역을 위해 마스크와 성금 등을 전달했다. 광주시 북구는 대구 달서구와 도시 상호교류를 목적으로 자매결언을 맺은 후 매년 교류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광주시는 대구 지역 경증 확진자에게 병상을 제공하기로 했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1일 광주공동체 특별담화 발표 기자회견을 열어 "우리 광주에서 코로나19 대구 확진자를 격리 치료하겠다"며 "시민 여러분께서 하나 된 마음으로 동참해달라"고 밝혔다. 아울러 이 시장은  "대구와 광주는 달빛동맹으로 맺은 형제 도시"라고 강조했다.

전남 진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진도군협의회는 대구남구협의회에 성금 400만원을 전달했다.  대구남구협의회는 지난 2012년 진도군이 태풍 피해로 어려움을 겪자 적극적으로 지원한 바 있다.

바이러스를 둘러싼 공포와 경제적 어려움 등이 날로 커져가는 가운데, 이웃을 도우려는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따듯한 위로로 이어지고 있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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