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지도 않고 타지도 않는 ‘고흡수성 폴리머’ 아이스팩
연간 2억개 생산...집집마다 냉동실에 쌓인 애물단지
지자체·기관 등 재사용 정책 추진 중, “적극 확대 되어야”

현대홈쇼핑은 마장축산시장 상인들에게 재사용 아이스팩을 전달했다. (현대홈쇼핑 제공) 2019.12.2/그린포스트코리아
버려진 아이스팩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을 고려, 적극적인 재사용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은 현대홈쇼핑이 마장축산시장 상인들에게 재사용 아이스팩을 전달하는 모습. (현대홈쇼핑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냉동실에 쌓인 ‘아이스팩’이 환경 파괴 원인 중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사용하고 남은 아이스팩은 불에 잘 타지 않고 물에 제대로 녹지도 않아서 결국 땅에 묻어야 하는 애물단지다. 환경을 위해 재사용을 권고하지만, 1~2개만 있으면 충분한 아이스팩이 집집마다 너무 많이 쌓여 있어서 문제다.

녹은 아이스팩은 무겁고 부피가 커서 처치가 곤란하다. 환경부와 한국환경공단에 따르면 아이스팩은 재활용이 어려운 폐기물로 쓰레기 종량제봉투에 버려야 한다. 하지만 일부 소비자들은 제품을 뜯어 내용물을 싱크대나 변기에 버리고 비닐만 따로 버리는 경우가 있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한 주부는 “수질 오염이 신경 쓰여서 재활용 봉투에 통째로 버리려고 하지만, 부피가 커서 물에 희석해 싱크대에 버릴 때가 많다”고 말했다. 성남시 분당구에 사는 한 워킹맘은 “버리기가 애매해 다용도실에 쌓아뒀다”면서, “재활용 품목이 아닌 것은 알지만, 효과적인 재사용을 위해 분리수거 걷어갈 때 같이 가져가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두 사람 모두 아이스팩을 종량제 봉투에 그대로 버려야 하는 사실은 잘 몰랐다고 했다.

아이스팩 내용물은 일반적으로 ‘고흡수성 폴리머(SAP)’다. 물에 안 녹고 얼음보다 냉기가 오래 지속되어 보냉 효과가 좋다. 젤 형태여서 부서지거나 파손될 염려도 적다. 문제는 이 물질을 싱크대나 변기에 버리면 수질오염 문제가 있다는 것.

올바른 방법으로 버려도 문제다. 불에 잘 타지 않고 기본적으로 아이스팩이 워낙 많이 유통되고 있어서다. 업계에 따르면 아이스팩 연간 생산량은 약 2억개 내외로 추산된다. 앞서 기자가 만난 두 소비자도 냉동실에만 크고 작은 아이스팩이 5~6개 쌓여있다고 했다.

◇ 소비자 개인의 노력보다 폭넓은 재사용 필요

대안은 있다. 재사용이다. 아이스팩은 고흡수성 폴리머가 두껍고 단단한 비닐에 쌓여 있는 물체여서 버리기가 애매하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포장이 튼튼하고 내용물도 오래가서 다시 얼리면 바로 재사용할 수 있다.

물론 재사용을 해도 문제는 있다. 일반적인 가정에서는 아이스팩 1~2개 정도만 있으면 충분히 돌려가면서 쓸 수 있다. 평소 쌓이는 수량을 감안하면 가정에서 각자 재사용하는 물량 만으로는 충분한 재사용이 이뤄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기업이나 지자체 등에서 대대적인 재사용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아이스팩 크기나 모양이 제각각이고 겉면에 회사 로고나 제품명 등이 적혀있는 경우가 많아서 기업 등에서 전면적인 재사용에 나서기에 어색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기업과 지자체 등이 재사용에 적극 나서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현대홈쇼핑이다. 이들은 지난해 8월부터 '아이스팩 재사용 캠페인'을 벌여 연간 80만개를 수거한 뒤 재사용하고 있다.

현대홈쇼핑은 H몰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에서 매월 선착순 4000명을 모집해 아이스팩을 수거했다. 집에 20개의 아이스팩을 모아두면, 현대백화점그룹 멤버십 포인트를 주고 CJ대한통운·롯데택배가 수거하는 방식이다.

수거한 아이스팩은 자원재활용업체에서 크기별로 분류하고 세척한다. 재활용 가능한 팩은 현대백화점그룹 계열사와 협력사에서 다시 사용한다. 계열사나 협력사가 아니더라도 냉동창고 나 식품기업, 슈퍼가 아이스팩이 필요하다고 요청하면 무료로 보내준다.

이들은 아이스팩 재활용 관련 공로를 인정받아 ‘2019 친환경 기술진흥 및 소비촉진 유공’ 저탄소 생활실천 부문 대통령표창도 받았다.

◇ 물 활용한 친환경 아이스팩도 주목

지자체와 관련 단체 등도 재사용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나섰다. 서울 송파구는 아이스팩 재활용을 위해 관내 주민센터에 수거함을 설치했다. 수거된 아이스팩은 롯데슈퍼가 주 1~2회 회수해 세척해서 신선식품 배송에 재사용한다.

부천시는 10개 행정복지센터와 대규모 공동주택 단지에 아이스팩 수거함을 설치하고 재사용이 가능한 아이스팩을 수거해 관내 식품업체에 제공한다.

인천 서구도 지난해 12월 전통시장 상인회와 아이스팩 재사용을 포함한 '환경사랑 실천운동 업무협약식'을 맺고 관내 22개 동 행정복지센터에 아이스팩 수거함을 설치했다.

한국환경공단 부산울산경남지역본부는 아이스팩을 수거해 전통시장과 축산업체에서 재사용하는 시범사업을 추진한다. 이를 위해 부산광역시 상인연합회 등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환경부도 지난해 추석을 앞두고 명절 선물류 과대포장 등을 집중 점검하면서 물로 이뤄진 아이스팩 등 친환경 포장재를 사용하도록 독려했다. 환경부는 지난 5월 대형 유통 및 물류 업체와 ‘유통포장재 감량을 위한 자발적 협약’을 체결해 포장 폐기물 발생을 줄이려고 노력해왔다.

제조사에서도 환경을 고려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아이스팩 대신 얼린 생수를 사용하는 사례도 있고, 물을 사용하는 친환경 아이스팩도 늘어나는 추세다. AK플라자는 아이스팩을 가져오면 친환경 싱크대 거름망을 증정하는 서비스를 진행했고, NS홈쇼핑은 물을 충전재로 사용하고 종이로 포장한 아이스팩을 적용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는 아이스팩 내용물을 용기에 담고 허브오일 등을 첨가해 방향재로 쓰는 등 재활용 노하우를 공유하는 사례도 있다. 환경부에서는 최근 아이스팩에 폐기물부담금 부과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회용 비닐과 플라스틱 등 유통과정에서 생기는 환경 이슈에 대해 많은 논의가 이뤄졌으나 아이스팩은 상대적으로 논의가 미비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물 등 친환경 소재를 활용한 아이스팩을 늘리고 재사용을 적극 장려할 시점이다.

유통업계 및 환경관련 전문가들은 “주위에 아이스팩을 수거해 재사용하는 프로그램이 있는지 확인해보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좋다”고 권한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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