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원전 지역주민 등 배제한 ‘중립’ 위원회 구성
지역주민·환경단체 “이해당사자 없이 존재이유 없어”

고준위핵폐기물 전국회의 회원들이 29일 서울 강남구 위워크 타워 앞에서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 출범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였다. (서창완 기자) 2019.5.29/그린포스트코리아
고준위핵폐기물 전국회의 회원들이 29일 서울 강남구 위워크 타워 앞에서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 출범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였다. (서창완 기자) 2019.5.29/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서창완 기자]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이하 위원회)’가 논란 속에 출범했다. 국민과 지역주민에 대한 의견수렴 과정을 공정하게 관리하기 위해 ‘중립’적 인사로 위원회를 꾸렸다는 정부 발표에 원전 지역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은 이해당사자 목소리 없는 재검토위원회는 존재 의미가 없다고 비판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9일 오후 서울 강남구 위워크타워에서 재검토위원회 출범을 알리는 현판식을 가졌다. 이번 위원회 출범은 지난 2016년 7월 수립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이 지역주민, 시민사회 등 다양한 분야의 의견 수렴이 부족했다는 지적에 따라 국정과제로 추진됐다. 정부는 지난해 5월~11월 재검토준비단을 꾸려 사전 준비 과정을 거쳤다.

준비단 종료 6개월여 만에 출범한 위원회는 첫날부터 반발에 부딪혔다. 경주·부산·영광 등 원전 인근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은 재검토위원회 출범 1시간여 전부터 집회를 열어 정부의 정책을 규탄했다. 최근 한빛 1호기 출력 제한치 초과 사태를 겪은 영광 주민들은 집회 초반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는 등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한빛원전 고준위 핵폐기물 영광군 공동대책위원회원들이 29일 오후 사용후핵연료 재검토위원회 출범식이 열리는 서울 강남구 위워크 타워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서창완 기자) 2019.5.29/그린포스트코리아
한빛원전 고준위 핵폐기물 영광군 공동대책위원회원들이 29일 오후 사용후핵연료 재검토위원회 출범식이 열리는 서울 강남구 위워크 타워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서창완 기자) 2019.5.29/그린포스트코리아

집회 참석자들은 이번 위원회가 중립적 인사로 구성된 데 불만을 표시했다. 재검토위원회가 추진된 취지를 지역주민과 시민사회단체 의견을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밝혀 놓고 정반대 결과를 내놨다고 지적했다.

황대권 영광핵발전소안전성확보를위한공동행동 대표는 “박근혜 정부에서는 위원회 구성에 지역 주민을 배제한 점, 주민 의사를 묻지도 않고 임시 저장 시설을 원전지역에 지으려고 시도한 점 때문에 졸속 처리하려다 반대에 부딪혔다”면서 “문재인 정부가 이전 정부 정책의 재검토를 약속해 놓고 당시 지적한 문제들이 전혀 수정되지 않은 위원회를 구성했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발표한 위원 명단을 보면 15명 가운데 10명이 교수다. 나머지 5명 중 3명이 변호사로 꾸려졌다. 원전 문제와 멀찍이 떨어진 인사들로 위원회를 구성한 셈이다. 사용 후 핵 연료 문제와 관련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온 환경단체들은 위원들이 다양한 고려 없이 기계적 중립만 지키다 결국 정부와 핵발전소 입맛에 맞는 결과가 나올 것을 우려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9일 오후 서울 강남구 위워크 타워에서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 출범식 열었다. (서창완 기자) 2019.5.29/그린포스트코리아
산업통상자원부는 29일 오후 서울 강남구 위워크 타워에서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 출범식 열었다. (서창완 기자) 2019.5.29/그린포스트코리아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정부와 핵산업계는 고준위 핵폐기물 임시저장고를 핵발전소 지역에 짓고, 이를 통해 핵발전소도 계속 가동하고 싶어한다”면서 “지역에서 이 문제를 떠안고 있길 원하는 점까지 고려하면 지역주민 참여 없이는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 때와 같은 결과가 나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사용 후 핵연료 관리 자체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현재 국내 유일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시설(방폐장)인 경주 방폐장은 5개월째 운영이 중단됐다. 지난 2015~2017년 경주 방폐장으로 이송된 원자력연구원 폐기물 2600드럼 중 945드럼에서 ‘핵종 분석’ 오류가 발견돼서다. 방사능을 간접적으로 측정하는 핵종 분석의 오류는 방사성 폐기물의 방사능 측정이 잘못됐다는 의미다.

일각에서는 경주 방폐장에 보관된 2만여 드럼의 핵종 분석 오류 여부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가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데,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를 잘 할 수 있겠냐는 근본적 비판도 이어진다. 이런 상황에 관리주체인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이 졸속으로 일을 처리하려 한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이상희 녹색당 탈핵특별위원장은 “차성수 원자력환경공단 이사장은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주최한 특강 발표문에서 올해 하반기 공론화를 마치고 관리 기준 계획을 정부 제출하는 안을 갖고 있다고 적었다. 출범도 하기 전 이미 답을 정해 놓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차 이사장은 지난달 19일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주최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 사업 현황’ 발표문에서 올해 하반기까지 재검토위원회 운영 및 권고안을 산업부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원전 지역 주민들과 환경단체 회원들은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 출범식이 끝난 뒤에도 자리에 남아 집회를 이어갔다. (서창완 기자) 2019.5.29/그린포스트코리아
원전 지역 주민들과 환경단체 회원들은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 출범식이 끝난 뒤에도 자리에 남아 집회를 이어갔다. (서창완 기자) 2019.5.29/그린포스트코리아

정부는 이해당사자가 없는 위원회 구성이 더 적절하다는 판단이다.

신희동 산업부 원전산업정책관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는 일부 이해관계자가 모여서 하는 게 아니라 국민에게 이걸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의견을 물어야 하는 일”이라며 “그런 문제를 잘 관리할 수 있는 중립적 인사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위원회 출범 취지와 역할을 묻는 질문에는 지난 정부 수립된 고준위 관리 기본계획에 국민과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이 부족했다는 반성 아래 시작됐다고 충돌되는 답을 내놨다. 이번 위원회에서는 다양한 국민 의견을 수렴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 방향성을 제시하고 절차와 관리 방식에 대한 의견을 구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도 이어갔다.

신 정책관은 위원회 활동 시기는 구체적으로 못박지 않았다고 전했다. 국민 의견 수렴이 필요한 일인만큼 국민 의견을 잘 담을 수 있는 토론을 해나가겠다는 설명이다. 현판식과 인터뷰가 15분 남짓 진행된 뒤 위원들은 따로 회의를 진행했다. 원전 지역 주민들과 환경단체 회원들은 출범식이 끝난 뒤에도 자리에 남아 집회를 이어갔다.

seotive@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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