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포스트코리아 박소희 기자] 나경원 의원님, 지난 이레 동안 꼼짝하지 않는 미세먼지로 국내가 한동안 시끄러웠습니다. 하루아침에 어찌해볼 수 없는 일임을 알면서도 ‘호흡권 박탈’에 민심은 출렁였고, 파행을 일삼던 국회는 그제야 미세먼지를 재난으로 규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얼마 전 “환경단체들이 미세먼지에 대해 아무런 말이 없다”며 “환경단체가 ‘이념환경’을 한 것 아니냐”는 말을 하셨습니다. 마음에 오래 남는 말들이 있는데 나 의원님의 말씀이 그랬습니다. 그간 주창한 환경단체들의 요구를 ‘전혀 듣지 않았다’라고 받아들여야 할지, 세상을 다양하게 읽지 못한 탓으로 해야 할지(관련기사: 조선일보 '미세 먼지' 포기한 정부, 꿀 먹은 벙어리 된 환경단체), 환경단체 측 주장대로 “정치인의 의도적 오인”으로 여겨야 할지 쉽게 판단할 수가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이념이란 무엇인가?’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일례를 먼저 들려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제주도에서 초등학생들을 가르칠 기회가 있었습니다. 4학년 1학기 사회에 민주주의와 주민자치 과정이 있는데, 이때 지방정부와 지방의회 역할에 대해 배웁니다.

견제와 협력이라는 정부와 의회의 관계를 지역에서 발생한 실례를 들어 설명했습니다. 4학년이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 여겼지만, 큰 착각이었습니다. 한 친구가 물었습니다. “둘 다 일을 제대로 안 해서 예산을 막 쓰면 누가 견제해요?” 그 친구의 질문으로 시민단체 이야기까지 나눴습니다. 

사회는 나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며 발전합니다. 정치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라면, 시민단체는 우리와 ‘그들’을 위해 모인 자발적 집단입니다. 우리에 포함되지 않아 소외된 그들을 우리는 성소수자라고도, 하도급 노역자라고도, 동물이라고도, 환경이라고도 부릅니다. 물론 자성해야 할 부분이지만 '그들'을 수단으로 여긴 몇몇 비양심자들을 빌어 시민단체의 본질을 폄훼하는 일은 없길 바랍니다. 

그들을 우리로 부르기 위해 모인 이들은 각자의 이념에 따라 정부와 의회를 감시하고 정책을 제안합니다. 추구하는 가치와 준수할 규범을 사회에 제시하는 이들을 ‘원외 교섭단체’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칸트는 순수 이성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 관념을 이념이라 정의했지만, 때론 ‘정치색’으로 오인되기도 하니 ‘가치관’ 정도로 정리하는 건 어떨까요.

시민단체를 취재하다 보니 환경단체들의 요구를 들을 기회가 많습니다. 메일에는 하루에도 수십 개의 논평과 성명서가 쏟아집니다. 청와대나 국회, 광화문 광장뿐 아니라 경북 낙동강 일대, 경기도 팔당댐 일대, 경북 월성원전 일대, 제주 제2공항 건설부지 일대 등에서 이들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한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초등학생의 우려대로 정부와 의회가 그들의 문제를 외면하고 있었으니까요. 시민단체는 문제를 직접 해결할 수 있는 입안자가 아닙니다. '그들'의 문제를 사회가 수용하도록 요구하는 제안자들입니다. 

환경단체들은 이명박 정부 시절 클린디젤 정책이 미세먼지 오염을 심화시킬 것이라며 반대했습니다. 물론 이들의 목소리는 외면됐고, 문재인 정부가 클린디젤을 폐기했지만, 이미 국내 경유차 대수는 1000만대를 육박합니다. 박근혜 정부가 2016년 발표한 ‘미세먼지 특별대책’을 두고 “SK가스, 삼성, 포스코 등 대기업의 석탄발전소 건설 계획이 담겼다”며 미세먼지 주요 배출원인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 계획을 취소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신규건설 반대를 넘어 점진적 ‘탈석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과거에 비해 크게 후퇴한 ‘2030 배출전망치 대비 37% 탄소 감축(2015년)’이라는 국가 목표를 설정할 당시, 집권당은 어디였는지 묻기도 했습니다. 온실가스 배출감소 국내 기여 목표(NDC)치가 국제 사회로부터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은 사실은 나 의원님도 잘 아실 겁니다. 지난해 삼성전자 등 국내 시가총액 상위 10대 제조기업 모두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어난 책임, 당시 정부 정책을 견제하지 않은 국회에도 있습니다. 

대기 정체가 고농도 미세먼지를 묶어둔다고 합니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도 미세먼지를 기후변화 대응과 함께 풀어야 할 문제임을 언급했습니다. 한국당을 비롯한 일부 야당, 보수 언론은 온실가스와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만, 배출전망치를 상향 조정하고 기업의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것이 더 실효성 있어 보입니다. 

한국당은 원전이 온실가스 배출이 적은 친환경 에너지원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친환경은 환경과 잘 어울리는, 다시 말해 위해요소가 적다는 뜻으로 알고 있습니다. 원전 인근주민 600여명이 갑상선암에 걸려 한수원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핵피아'가 만든 '원전 안전신화' 역시 돈뭉치에 뚫렸습니다. 2013년 신고리 1·2호기와 신월성 1호기가 멈춰서며 유착비리라는 한수원의 '고질병'이 백일하에 드러났던 사실 기억하실 겁니다. 원전 부품 납품에 얽힌 일련의 사건들 배경엔 ‘돈’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후쿠시마 원전 참사 우리 모두 지켜보았습니다. 현재 제염작업에는 안전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그들', 소외계층이 동원되고 있다고 합니다. 한반도는 일본보다 국토가 좁아 원전 밀집도는 높습니다. 국내 원전 중대 사고가 발생하면, 누가 자국에 남아 제염작업을 하게 될까요. 피폭으로부터 안전한 면적은 얼마나 될까요.

세계 최고 원전 기술력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일본에서 발생했던 사고였습니다. 국내에서 발생하는 지진 이제 무시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닙니다. 최근 경주와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은 규모 5.0 이상이었으니까요.

환경단체는 원전과 석탄발전 중심 에너지 정책은 이제 폐기해야 할 때라고 주장합니다. 이들이 제안하는 신재생에너지가 국내 실정과 어울리는 대안인지 판단은 유보적이지만, 세계적 추세임은 분명합니다.

환경단체들의 주장은 지금이 아니라 미래를 제시하기 때문에 늘 급진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이 제안한 정책에 피해를 보는 주체가 있기도 합니다. 현재(행정)와 미래의 균형을 만들어내는 것이 국회라고 생각합니다. 에너지 전환이 불가피하다면, 원전이나 석탄발전소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처우도 고민해야 합니다. 실업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마련해야 합니다. 

국회의원이 선출직인 까닭, 정부에게 '국민의 수석대변인'이 돼 달라는 뜻 아닐까요. 지역 곳곳에서 귀동냥한 시민들의 성명을 환경이란 이념에 입각해 이렇게 전해봅니다. 

 

ya9ball@greenpost.kr

저작권자 © 그린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