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등에 불' 핵폐기물 대책 마련 촉구 시민선언
116개 단체 2074명 참여…"둘 곳 없음 멈춰야"

"핵폐기물 답이 없다" 시민선언 참가자 일동이 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핵발전소 가동 중단을 외치고 있다.(박소희 기자)/2019.03.06/그린포스트코리아
"핵폐기물 답이 없다" 시민선언 참가자 일동이 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핵발전소 가동 중단을 외치고 있다.(박소희 기자)/2019.03.06/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박소희 기자] 처분시설 없이 쌓이고 있는 방사성 폐기물(사용후 핵연료). 원자력발전소를 ‘화장실 없는 멘션’이라 부르는 이유다. 우리나라 최초 원전인 부산고리 1호기가 사업운전을 시작한지 벌써 40년이 지나고 있지만 아직 고준위 핵폐기물을 보관할 처분장도 마련하지 못한 상황이다. 이에 시민들이 6일 '핵폐기물 답이 없다' 선언으로 포화상태인 고준위 핵폐기물 논의에 불을 지폈다.

원전 인근 주민, 환경단체, 전문가, 정치인 등 각계 인사들은 이날 대책 없는 핵폐기물 처리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핵폐기물 둘 곳 없다면 핵발전소를 멈춰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 했다. 또 핵산업계와 이와 결탁한 일부 정치권을 향해 "원전의 계속 가동을 주장하는 것은 세대간 형평과 윤리를 배반하는 행위"라고 경고했다. 

이날 시민선언 참가자 일동은 △핵폐기물 책임을 지역에 떠넘기는 임시저장시설 건설 반대 △핵발전소 확대 주장만 일삼는 무대책 정치인 규탄 △핵발전소 폐쇄를 주장하며 함께 구호를 외쳤다.

세슘, 스트론튬 등 치명적인 방사성물질이 들어있는 고준위 핵폐기물은 총 1만 4000톤 쌓여있다. 신규 건설 5기에서 발생할 핵폐기물을 제외하더라도 현재 가동중인 원전에서 발생할 폐기물은 750만톤 정도다. 완전히 소멸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만년이다. 임시방편으로 보관 중인 핵발전소 내 저장 수조도 이미 포화상태다.

최근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분석조차 잘못한 것으로 알려진 원자력계가 고준위 폐기물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특히 한빛4호기 격납건물 내 콘크리트 공극까지 발견되며 한수원의 총체적 관리 부실 문제도 여실히 드러났다. 

국내 원전의 내진 설계 기준은 6.5다. 2016년 경주 지진은 5.8규모였다. 국내 최고 원자력 전문 연구기관이 기술력의 바닥을 드러낸 상황에서 후쿠시마와 같은 규모 9.0 이상의 지진이 발생한다고 가정하면 정말 답이 없다. 우리의 원전 안전 신화는 이미 깨졌고, 안전을 책임져야 할 국가조직은 사실상 전무하다. 

이러한 문제는 외면한 채 자유한국당 등 일부 야당에서는 미세먼지 농도 증가를 정부의 탈원전 탓으로 돌리며 원전의 계속 가동을 주장하고 있다. 법원은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사회가 부담해야 한다는 이유로 신고리 5·6호기 취소소송에 대해 “위법하지만 건설은 허가한다”는 ‘사정판결’을 내렸다. 이는 우리 사회가 잠재적 위험 요소를 어떻게 보는지 극명하게 보여주고 일례이다. 

이날 모인 시민들은 "도덕적 판단능력이 부재한 일부 정치권과 보수언론, 원자력계를 대신해 국민 스스로가 원전 규제에 나서 안전을 확보하겠다"고 선언했다. 

조현철 녹색연합 상임대표는 이날 고준위 폐기물을 ‘발등의 불’이라고 규정하고 “급할수록 본질을 대면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이어 “핵폐기물 문제는 답이 없다. 그것이 본질이다. (인류가) 감당할 수 없는 원전을 40년 동안 가동해왔다. 안전하다, 문제없다는 신화로 회피하지 말고 답이 없음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그래야 출구를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핵폐기물 논의는 배출원인 핵발전소를 빼고 할 수 없다. 답 없는 핵폐기물 문제에 대한 출구는 배출원인 핵발전소 가동을 멈추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게 조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이러한 상황에서 핵발전소를 더 짓자는 건 (눈앞의 이익만 챙기는) 지극히 무책임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중앙집권적 에너지 정책도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전력을 국민 모두 사용하고 있지만 이로 인한 고통은 원전 지역주민들이 고스란히 감내하고 있기 때문이다. 

월성 핵발전소 지역 인근 주민들의 소변에서 방사성물질인 삼중수소가 검출됐으며 전국 원전지역 갑상선암 발병자 600명은 공동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대조지역에 비해 핵발전소 주변지역 주민들의 갑상선암 발병률이 2.5배 높다’는 역학조사 결과도 이미 법원에 제출된 상태다. 

장하나 ‘정치하는 엄마들’ 대표는 이날 “우리가 쓰는 전기가 누군가의 암세포를 키우고 있다”며 "(원전 중대사고 발생) 가능성이 0.00001%가 있다면 답이 없는 문제라도 엄마, 아빠들이 다음 세대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위원장은 “핵폐기물 처리 문제는 정치권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무지한 정치권부터 사용후핵연료(핵폐기물)의 위험성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현정 정의당 생태에너지본부장은 “올해 초부터 고준위 핵폐기물에 대한 연속 간담회를 전국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면서 원내 목소리가 되어줄 것을 약속했다. 

이날 시민선언에는 116개 단체와 2074명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앞으로 창원(6일)과 부산(7일) 등 지역별 선언도 이어갈 예정이다. 

ya9ball@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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