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걸 '커피큐브' 대표 인터뷰

우리 사회는 몇 차례 환경의 역습을 당했다. 가습기 살균제, 여성용품, 화장품, 물티슈 등 일상 용품에서 유해물질이 발견됐다. 다중이용시설, 회사 사무실, 심지어 아이들의 교실에서도 반(反) 환경 물질들이 검출된다. 여기에 바깥으로 나가면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는 등 곳곳에서 반환경적인 것들과 마주한다.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친환경을 추구하는 이유다. 이에 <그린포스트코리아>는 친환경 기업과 친환경 현장에서 직접 뛰고 있는 이들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함께 공유해본다. [편집자주]

[그린포스트코리아 주현웅 기자] 임병걸 커피큐브 대표는 외국계 기업에서 영업컨설팅 업무를 했었다. 꽤 잘 나갔다. 부지런하고 싹싹한 성격에 주변 사람의 칭찬이 잇따랐다. 스스로도 일이 즐거웠고, 덕분에 꽤 고액 연봉을 받아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샀다.

그랬던 그가 현재 경기도 김포시의 한 외곽 지역에서 논밭에 둘러싸인 채 밤낮없이 일을 한다. 수입은 예전에 훨씬 못 미친다. 그런데 지금이 더 좋단다. 비록 과거처럼 화려하진 못해도 '커피큐브'를 통해 삶의 의미와 새로운 꿈을 얻었기 때문이다.

커피큐브는 커피찌꺼기(커피박)로 아기자기한 인형과 얇은 벽돌(파벽돌) 등을 만드는 곳이다. 단순히 커피박을 다른 용도로 재사용하기보다, 기술을 입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게 가장 큰 경쟁력이다. 커피박의 고체화 기술 관련 특허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김포시 월곶면에 위치한 커비큐브의 공장(주현웅 기자)2019.2.10/그린포스트코리아
김포시 월곶면에 위치한 '커피큐브' 공장.(주현웅 기자)2019.2.10/그린포스트코리아

“동네 카페를 보면 ‘커피찌꺼기 가져가세요’하면서 그것을 내놓는 곳이 있잖아요. 직장 생활하던 때에 그런 커피박을 보고 궁금증이 생겼어요. 저걸 다른 데에다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혼자 궁금해서 인터넷과 문헌으로 알아보니까 정말 방법이 많더라고요.”

2008년 회사 일을 하며 우연히 마주한 커피박은 그의 호기심을 불렀다. 임 대표는 커피박이 일부 퇴비로서 유용하단 사실은 알았지만 보다 특별한 걸 만들고 싶었다. 화학공학과 출신으로서 도전감도 있었다. 커피박을 고체화해 모양을 내보고 싶었다.

그렇게 임 대표는 커피박을 만지는 게 일상화됐다. 퇴근 후 집에 오자마자 자체 연구에 돌입했다. 곳곳서 수집해 온 커피박을 만지작거리며 고체화에 도전했다. 다음날 빤히 출근임을 알면서도 2~3시간만 자는 일이 허다했다.

“뭔가 만들어질 듯한데 잘 안 되더라고요. 또 이것저것 해보다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곤 했죠. 어찌됐던 핵심은 커피박을 예쁜 조형물로 만들어서 사람들한테 선물해 주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기본 수지나 일반 화학성분을 섞으려 했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바꿨다. 손으로 작업을 하는 만큼 해당 물질들이 녹으면 신체에 유해한 영향을 끼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커피박에 화학물질 대신 천연재료들을 가미하게 된 이유다.

“화학공학과 출신들은 항상 ‘반응’이란 걸 생각하거든요. 집에서 연구를 했는데 화학물질 섞인 커피박을 냉장고에 두거나 만질 때 반응이 일어나면 어떻게 하지? 걱정됐어요. 그래서 그냥 먹는 것 혹은 천연 자연에서 온 걸로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임 대표는 연구를 시작한 지 3년여 지나 고체화에 처음 성공했을 당시를 설명했다.

“회사에 있는 연구설비까지 동원해 이것저것 정말 많이 시도했어요. 결국 되긴 되더라구요. 그 순간 너무 깜짝 놀라서 쾌재를 외쳤죠."

씨울은 커피박으로 만들어졌다.(커피큐브 제공)2019.2.10/그린포스트코리아
씨울은 커피박으로 만들어졌다.(커피큐브 제공)2019.2.10/그린포스트코리아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한 게 ‘씨울(C-Owl)’이다. 씨울은 커피박으로 만든 부엉이 인형이다. 지금은 커피큐브를 세상에 처음 알린 효자 상품이지만, 직장생활을 병행했을 땐 그저 지인들에게 건네주는 귀여운 선물이었다.

선물이 상품이 될 수 있었던 건 사람들의 응원 덕분이었다. 씨울을 받은 임 대표 지인들은 모두들 신기해하며 “이걸로 돈 벌어도 되겠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다가 정말로 일이 커지더니 2011년 국내외 특허를 모두 받아냈다.

그 무렵 1024개의 아이디어가 모인 ‘서울시 사회적경제 아이디어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임 대표의 직장 선배는 함께 기뻐하며 투자를 결심했고, 서울시도 지원에 나서며 커피큐브가 탄생했다.

“사실 대학생때 교육용 완구사업을 했었어요. 자본 등 문제가 있어서 중도에 포기했었죠. 돌아보니 그때 끝까지 했더라면 어땠을까 싶더라고요. 왠지 ‘포기를 안 했더라면 잘 될 수도 있었겠다’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커피큐브는 제대로 한번 해봐야겠다 다짐했어요.”

야심차게 출발했지만 그 길이 꽃길만은 아니었다. 사무실을 얻을 때마다 커피박 냄새는 민원이 되어 돌아왔다. 옥상 등에서 커피박을 말리니 바람에 날려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1년에 한 번, 심할 땐 6개월에 한 번씩 쫓겨나듯 사무실을 옮겨야만 했다.

서울의 화려한 풍경을 뒤로하고 김포의 외곽지역으로 오게 된 이유다. 논밭의 중심에서 목재를 다루던 한 공장을 분양받았다. 서투른 솜씨지만 직접 리모델링까지 했다.

“서울에서 30평 안팎의 사무실에서는 사실 대량 생산이 불가능했죠. 김포에서는 200평 이상의 용지를 쓸 수 있다 보니 확실히 좋아요. 나중엔 이곳을 커피점토 만들기 체험공간으로도 활용하고 싶어요.”

지난해 12월 20일에 열렸던 환경부와 한국환경산업기술원 주최·주관 ‘2018년도 혁신형 에코디자인 사업공모전’ 시상식에서 임 대표는 마지막으로 단상에 올랐다. 씨울이 아닌 벽돌로 대상을 수상했다.

커피큐브 공장 내부 모습. 벽돌은 커피박으로 만들어졌다.(주현웅 기자)2019.2.10/그린포스트코리아
커피큐브 공장 내부 모습. 벽돌은 커피박으로 만들어졌다.(주현웅 기자)2019.2.10/그린포스트코리아

커피큐브는 조만간 커피로 만든 벽돌을 시장에  내놓을 예정이다. 커피벽돌은 더 많은 커피박을 유용하게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구상한 끝에 나온 아이디어다. 또 우리의 주변 공간에 친환경성을 더하려는 의도이기도 하다.

커피박으로 만든 파벽돌은 은은한 커피향을 낸다. 그래서 카페 등에 인테리어용으로 제격이다. 시장 반응이야 두고 봐야 알겠지만, 임 대표는 ‘내 주위를 천연으로 바꿔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을 고민하고 있다.

임 대표가 수년째 환경캠페인에 나서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커피큐브는 전국을 돌며 커피박 수거 및 재활용 필요성을 알리고 있다. 임 대표는 초등학교에서 이런 내용의 커피환경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커피박은 통상 1톤 처리할 때 약 338kg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때문에 연간 9만2000톤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하는데 이는 자동차 1만1000여대가 내뿜는 양과 맞먹는 양이다.

임 대표의 꿈은 세상 모든 커피박을 모아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것이다. 그는 커피의 환경캠페인은 커피박 처리를 위한 것만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커피는 요즘 사람들한테 거의 필수잖아요. 그런데 커피는 사실 원두의 99.8%는 찌꺼기로 배출돼요. 커피박이 환경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만만치 않겠죠. 이런 커피박을 버려기만 해서 될까요? 커피박은 뭐든 될 수 있어요. 커피박의 재탄생은 우리의 미래세대를 위한 일이기도 해요."

커피큐브는 ‘2018년도 혁신형 에코디자인 사업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사진은 임병걸 커피큐브 대표.(주현웅 기자)2019.2.10/그린포스트코리아
커피큐브는 ‘2018년도 혁신형 에코디자인 사업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사진은 임병걸 커피큐브 대표.(주현웅 기자)2019.2.10/그린포스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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