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2019]살아남은 돼지의 슬픔..."기해년, 돼지답게 살고싶어요"
[출발 2019]살아남은 돼지의 슬픔..."기해년, 돼지답게 살고싶어요"
  • 박소희 기자
  • 승인 2019.01.0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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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틀에 갇혀 3년여 6~7차례 새끼 낳다 식탁 위로
감전사는 나은 편...병들면 새끼도 망치로 죽이기도
동물복지 인증 농가 고작 0.2%, 도축장은 3곳 뿐

예부터 우리는 돼지꿈을 길몽으로 여긴다. 이처럼 돼지는 복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하지만 인간이 사육하는 돼지의 삶은 전혀 복스럽지 않다. 인간의 식욕을 채워주고 수익을 불려주는 죄밖에 없는데 출생부터 도축까지 끔찍하고 비인도적인 환경에서 생을 마쳐야 한다. 대한민국 돼지에게 '동물복지'는 아직 그림의 떡이다. 기해년 황금돼지해를 맞아 돼지의 비극적 현실을 1'돈'칭 시점으로 재구성했다.

[그린포스트코리아 박소희 기자] 새해가 밝았다. 2019 기해년(己亥年)은 육십간지의 36번째로 황금돼지 해다. 기(己)가 노란색을 나타내는 천간이기 때문이다. 본래 복을 상징하는 돼지에 황금까지 붙었으니 올해 출산계획을 잡는 부모들도 많겠다. 그러나 '0.2%' 동물복지국가에 사는 나는 출산에 반대한다. 돼지공장의 삶을 새끼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 

◇ '처음 만나는 자유' 탈옥에 성공하다

그날 공장 팀장은 우리를 트럭으로 몰았다. 한참을 달리는데, 옆 스톨(stall, 쇠틀)에서 지내던 동기 어미돼지가 멀미가 나는지 점심으로 먹은 사료를 모두 게워냈다. 토사물이 4차선 도로 위로 길을 만들었다. 역한 냄새에 다른 어미돼지가 몸을 돌려보려고 했지만, 앞뒤 좌우 틈이 없었다. 겁먹은 돼지들이 싸지른 분뇨로 트럭 바닥이 질척거렸다. 

차가 한 번씩 기울 때마다 왼쪽 끝에 있던 나는 마리당 100kg이 훌쩍 넘는 돼지들의 무게를 받아내야 했다. 나는 차가 오른쪽으로 기울길 바랐다. 오른편 돼지가 짜부라진 만큼 왼편 돼지들에겐 여유가 생겼다. 동물보호법 제9조에는 '동물을 운송하는 차량은 동물이 운송 중에 상해를 입지 아니하고, 급격한 체온 변화, 호흡곤란 등에 따른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을 것'으로 정하고 있지만 어림도 없었다. 

차가 갑자기 덜컹거리더니 오른쪽으로 완전히 넘어졌다. 분뇨를 뒤집어쓴 어미돼지들이 뒤엉켜 굉음을 질러댔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트럭에서 탈출해 도로로 빠져나가는 친구의 꽁지가 보였다. 따라나가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른 돼지들도 우르르 움직였다. 트럭이 포트홀을 밟아 중심을 잃었다는 소리가 들렸다.

쇠틀에 갇혀만 지낸 돼지들은 처음 만나는 자유를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했다. 나는 불편한 다리를 끌며 수풀에 몸을 숨겼다. 곧 경찰과 몇 대의 트럭이 몰려왔다. 사람들이 안전펜스로 돼지들을 한쪽으로 몰았다. 

100kg이 넘다 보니 마리당 여러 사람이 달라붙었다. 어떤 사람은 차에 타지 않으려고 버티는 돼지의 귀를 잡아끌었다. 저항이 거셀수록 사람은 돼지를 거칠게 다뤘다. 우리를 이송하던 인부가 수를 세더니 한 마리가 모자란다고 했다. 절규와 광기로 가득한 풍경을 숨죽이고 지켜보았다. 사람들이 나를 찾아 나서려는 순간 밀려있던 차들이 클랙슨을 울렸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였다. 나는 최선을 다해 도망쳤다. 

◇ 나는 돼지공장에서 태어난 출산기계였다

분만 틀에서 수유를 하고 있는 어미돼지.(출처=www.wvpublic.org)
새끼에게 젖을 물리는 어미돼지/그린포스트코리아

나는 아직 살아남은 돼지다. 살아남은 돼지로서 나의 사명은 우리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 믿는다. 

사람이 발표한 지난해 3분기 가축동향조사결과(9월 기준)를 살펴보면 돼지 사육 농장은 6196가구로 지난해보다 151가구가 줄었다. 사육 마릿수는 1164만 1000마리로 전년보다 14만 7000마리(1.3%) 늘었다. 나같은 어미돼지들이 2018 무술년에도 열심히 새끼를 낳은 거다. 

양돈장은 줄었지만 마릿수가 늘었다. 우리 사육환경이 더욱 과밀해졌다는 뜻이다. 규모별로 살펴보면 1000마리 미만 사육하는 농장은 261가구 줄었다. 그러나 1000마리 이상 사육하는 농장은 110가구 늘었다.

국내 어미돼지는 106만 3000마리로 나는 5000마리 이상 사육하는 양돈장에서 모돈, 즉 출산 기계로 태어났다. 내가 태어난 곳은 스톨에서 사육하는 돼지공장이다. 

우리 같은 어미돼지들은 ‘스톨’(stall)이라 부르는 폭 60~75㎝의 좁은 쇠틀에 갇혀 3~4년간 오로지 새끼 낳는 일만 되풀이한다. 유럽연합(EU)은 2013년부터 스톨사육을 금지했지만 대한민국은 동물복지 축산농장이 13곳(약 0.2%) 밖에 안된다. 5000마리 이상 사육 농장(390가구)은 단 한 곳도 동물복지 인증을 받지 않았다.

지난해 기준 연간 1인당 육류 소비량은 24.5kg이다. 그 '먹성'을 다 채워주려면 우리는 '열일' 해야 한다. 직접 교미를 하는 건 아니다. 교배할 어미돼지들은 교배틀로 옮겨간다. 이때 쇠창살 바깥으로 수퇘지를 풀어놓는데, 발정이 나면 미리 짜놓은 정액을 포궁에 밀어 넣는다. 한 발짝 옮길 공간조차 없는 1인용 감옥에서 어미돼지는 보통 3~4년 동안 6~7차례 새끼를 낳는다. 옛날에는 독성이 있는 돼지발정제를 사용해 흥분을 유도하기도 했지만 다행히 지금은 금지됐다.

교배틀에서 인공수정을 마친 어미돼지는 100일 이상 임신틀에서 지낸다. 분만한 어미돼지는 새끼들 압사를 방지한다는 이유로 분만틀로 옮겨진다. 이렇게 틀을 옮겨 다녀야 하는 이유는 교배·임신·분만이란 생산공정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란다.

◇내 새끼 한 번 핥아주지도 못하고 쓸모를 다했다

우리는 명색이 산업 동물이다. 새끼를 빠르게 많이 낳아서 농가 수익에 기여해야 한다. 따라서 배란 주기를 앞당긴다며 호르몬제를 주사하기도 한다. 20마리 정도 사육하는 한 소규모 농가는 한마리씩 띄엄띄엄 수정·분만하는 것이 귀찮다며 발정제를 주입해 발정동기화 했다는 소문을 듣기도 했다. 발정동기화는 대량생산체계에 아주 유용한 방법이라고 사람들이 좋아한다. 

분만하고 나면 새끼들이 어미라고 찾아와 젖을 물고 빨지만 나는 쇠틀에 갇혀 새끼들을 한 번도 품거나 핥아주지 못했다. 내 새끼들 역시 사람이 키우기 편하도록 꼬리도 잘리고, 송곳니도 뽑혔다. 새끼들이 젖을 떼면 어미돼지는 다시 스톨로 옮겨가 최대한 빨리 임신 가능한 몸을 만들어야 한다. 새끼들은 자돈사(새끼방)로 이동한다. 이중 수컷은 먹을 때 노린내 나지 말라고 일찍부터 거세를 당하기도 한다. 

그렇게 6번의 분만 끝에 숙명을 끝냈다. 왼쪽 뒷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을 공장 팀장이 눈치 챈 것이다. 팀장은 나를 스톨에서 꺼낸 뒤, 몸에 푸른색 스프레이로 '도태'라고 썼다. 몸이 성했으면 틀림없이 1년 더 새끼를 낳아야 했을 테다. 쓸모없어진 게 서럽기보다 아픈 다리가 고마웠다. 

◇ 살처분된 가축들의 피가 매립지 위로 끓어 오르고

'스톨'이라고 불리는 좁은 쇠틀에서 사육되는 어미돼지들(Aussie Farm Repository)/그린포스트코리아
'스톨'이라고 불리는 좁은 쇠틀에서 사육되는 어미돼지들(Aussie Farm Repository)/그린포스트코리아

도태란 여럿 중에서 불필요하거나 부적당한 것을 줄여 없애는 것을 말한다. 쓸모를 다하거나 병든 돼지는 공장에서 도태시킨다. 나야 몸이 쇠약해질 때까지 살아보기라도 했지만 새끼 몇마리는 태어난 지 1개월도 되지 않아 분뇨와 퇴비 속에 버려졌다. 최근 사천의 한 농장에서 새끼돼지를 망치로 내리쳐 죽인 일도 도태가 목적이었다. 농장 내에서 도륙한 사체는 불법 소각되기도 한다. 

동물보호법 제8조에는 '노상 등 공개된 장소에서 죽이거나 같은 종류의 다른 동물이 보는 앞에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도축·살처분 시 동물보호법 제10조에 따라 반드시 의식 없는 상태에서 도살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농장주 마음이 곧 법이다.

내가 본 가장 끔찍한 도태는 구제역 예방을 명분으로 한 집단 살처분이다. 가축전염병예방법에 따르면, 어떤 곳에서 돼지가 한 마리라도 구제역에 걸리면 둘레의 모든 돼지를 죽여 없애야만 한다.

농가당 평균 2000마리 정도가 사육되니 구제역이 돌기 시작하면 수천 마리가 살처분된다. 지난 2010년 구제역 창궐로 돼지, 소, 염소 등 발굽이 2개인 우제류 가축 346만 마리 이상이 매립됐다고 한다. 구덩이에 산채로 묻힌 가축들의 피가 매몰지 밖으로 흘러넘치기도 했다. 수많은 돼지의 엄마가, 엄마의 엄마가 그렇게 죽어갔다. 비좁은 쇠틀의 간격이 돼지를 대를 이어 처참한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살처분은 과밀 사육이 낳은 참사다.

◇돼지도 고통없이 죽을 권리가 있다

돼지는 공간이 허용된다면 배변자리와 잠자리를 구분할 줄 아는 청결한 동물이다. (출처=픽사베이)
돼지는 공간이 허용된다면 배변자리와 잠자리를 구분할 줄 아는 청결한 동물이며 더울 땐 진흙 샤워를 좋아한다. (출처=픽사베이)

한돈팜스에 따르면 국내 엄마돼지 마리당 연간 출하 마릿수(MSY)는 지난해 기준 17.8마리다. 동년 기준 덴마크 31.3마리, 네덜란드 28.8마리, 독일 28마리, 미국 24.2마리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이유 후 육성율을 비교해도 언급한 국가들은 90% 이상이나 국내는 아직 85% 수준에 머무른다. 

MSY가 낮다는 것은 환기도 잘 안 되는 낙후된 시설에서 어미돼지들이 체온조절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비좁은 쇠틀에서 제 분뇨를 뒤집어쓰고 살아야 하는 스트레스도 한몫 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공장식 축산에 따른 만성소모성 질병(PED, PRRS)도 원인으로 꼽았다.  

그날 도축장으로 끌려간 임신틀 동기들은 컨베이어벨트에 올랐을 것이다. 운이 좋으면 가스나 전살(전기로 가축을 도살하는 방법)로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고, 운이 나쁘면 쇠꼬챙이에 매달려 제 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고통을 고스란히 맛봤을 것이다. 도축장 동물복지 기준은, 도축되는 동물이 고통을 느끼지 못하도록 완전히 기절시킨 뒤 작업을 하도록 요구하고 있지만 기절했는지 일일이 살피는 도축장은 별로 없다. 도축단계에서 축종별 적절한 기절방법을 준수하는 동물복지 포유류 도축장은 전국에 단 3곳 뿐이다. 가령 제주도 양돈장에서 동물복지 도축장을 이용하려면 배를 타고 경상남도 김해까지 가야한다. 

돼지는 본래 더럽고 게으른 동물이 아니다. 공간이 허용된다면 배변자리와 잠자리를 구분할 줄 안다. 많은 연구를 통해 밝혀졌지만 돼지는 개보다 학습능력도 뛰어나다. 사람으로 치면 3살 정도의 지능이라고 한다. 사람 나이 3살이면 여든까지 써먹을 제 버릇까지 만들 때다. 

우리도 충분히 느낄 줄 알며, 고로 고통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동물에게도 △배고픔과 갈증, 영양불량으로부터의 자유 △불안과 스트레스로부터의 자유 △정상적 행동을 표현할 자유 △통증·상해·질병으로부터의 자유 △불편함으로부터의 자유가 있다. 나는 이대로 고기나 소시지가 되고 싶지 않다. 자유를 위해 나는 여전히 도망치고 있다. 2019년 돼지해에는 똥오줌 가리며 돼지답게 살고 싶다.

ya9ball@greenpo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