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포스트코리아 홍민영 기자] 일본의 인기 만화 ‘미스터 초밥왕’(원제 '쇼타의 초밥')에는 고래고기 이야기가 나온다.

일본 최고의 초밥 요리사가 되려고 요리 경연에 참가한 주인공 쇼타는 과제로 나온 ‘고래고기 초밥’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쇼타는 고래를 잡는 사람이 거의 없는 까닭에 재료 확보부터 난항을 겪고, 그 과정에서 일본인의 추억 속 고래고기의 초상을 더듬어간다. 이 에피소드는 '일본인에게 고래고기란 어떤 의미인가'의 파편을 전하는 한편 포경을 지나치게 미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일본 정부는 지난 26일 국제포경위원회(IWC)를 탈퇴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1988년부터 지켜 온 '상업 포경 포기' 방침을 버리고 30년 만에 포경을 재개하게 됐다. 내년 7월부터 일본 근해나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고래를 잡겠다는 방침이다. 국제사회로부터 비판의 화살을 맞아가면서도 일본이 포경을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Pixabay 제공) 2018.12.30/그린포스트코리아
(Pixabay 제공) 2018.12.30/그린포스트코리아

일본인에게 고래고기는 말 그대로 ‘추억’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일본은 극도의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렸다. 고심하던 일본 정부는 포경선을 남극으로 보내 고래를 잡게 했다. 이에 따라 고래는 1940~1960년대 일본의 가장 중요한 식량 자원이 됐다. 1964년엔 2만4000여마리의 고래를 잡았을 정도였다. 잡힌 고래들은 전국으로 팔려나갔고 학교에선 급식 단골 메뉴가 됐다.

그러나 일본이 세계적인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면서 고래고기 의존도도 떨어졌다. 일본의 고래고기 소비량은 1962년 23만3000톤에서 2016년 3000톤으로 급감했다. 최근 일본에서 유통되는 고래고기의 양은 전체 육류의 0.1%에 불과하다. 예전처럼 먹으려고 포경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포경 재개 후 잡을 고래의 숫자조차 제대로 설정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일본이 줄기차게 강조해 온 ‘조사를 위한 포경’이 목적일까.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딱 잘라 “아니다”라고 했다. IWC에서 탈퇴하면 지금까지 한 것 같은 조사용 포경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정부가 그토록 강조했던 조사용 포경의 중요성은 어디로 간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아사히신문은 “정부의 결정도, 그 결정을 낳은 논의 과정도 납득할 수 없다”며 강하게 우려했다. 그러면서 “포경을 계속해야 한다는 주장이 통용되지 않는다고 해서 IWC에서 탈퇴하는 것은 외교에 악영향을 미치는 경솔한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언론과 함께 야당과 시민단체들 역시 입을 모아 국제사회의 비판을 염려했다. 

IWC를 비롯한 국제사회는 고래의 개체 수 회복을 위해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때문에 “주변 해역의 고래 수가 충분히 늘어났기 때문에 포경을 재개한다”는 일본의 주장은 이른 바 ‘뒤통수치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제사회 노력의 결과를 독식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Pixabay 제공) 2018.12.30/그린포스트코리아
(Pixabay 제공) 2018.12.30/그린포스트코리아

국제사회는 일본을 겨냥한 비판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대표적인 반(反) 포경국인 호주는 외무부 장관과 환경부 장관이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이들은 “일본의 IWC 탈퇴 결정은 매우 유감이고 실망스러운 일”이라며 일본이 IWC에 돌아올 것을 촉구했다.

샘 앤슬리 그린피스 재팬 사무총장은 “일본은 해양 자원에 크게 의존하는 국가인 만큼, 상업 포경을 재개하기보다 해양 생태계 보전에 긴급히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양생물보호단체 씨셰퍼드도 “일본은 국제 사회의 맹렬한 비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에서도 동물보호단체 핫핑크돌핀스가 일본 정부의 결정을 맹비판하며 서울과 제주의 영사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포경을 재개하는 이유에는 뜻밖에도 ‘정치적 배경’이 있다. 

(Pixabay 제공) 2018.12.30/그린포스트코리아
(Pixabay 제공) 2018.12.30/그린포스트코리아

NHK 조사에 따르면 이달 일본 정부의 지지율은 41%다. 지난달보다 5%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또 제3차 아베 신조 내각이 조성된 지난해보단 무려 12%포인트나 떨어졌다. 집권 여당인 자유민주당과 아베 총리가 온갖 스캔들에 휩쓸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NHK 여론조사에서 “정부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이들은 그 이유로 “정책이 실망스럽다”, “인품을 신뢰할 수 없다”를 가장 많이 꼽았다. 자민당으로선 어떻게든 지지율을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법하다.

이번 IWC 탈퇴 결정에는 홋카이도, 아오모리, 미야기를 지역구로 둔 자민당 의원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곳은 오래 전부터 상업 포경이 활발히 진행된, 일본 고래잡이의 고향이다. 

아베 총리와 니카이 도시히로 자민당 간사장의 정치적 고향인 야마구치, 와카야마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와카야마의 다이치마을은 온 바다가 핏빛으로 물드는 잔혹한 돌고래잡이로 유명하다.  

또 하나는 예산이다.

BBC 재팬은 “포경은 일본 정부 관할로 실시되고 있다. 거기에는 막대한 예산과 그 예산을 필요로 하는 관료들이 뒤얽혀 있다”고 설명한다. 

일본의 관료들은 자신이 맡고 있는 관할 부서의 사업이 취소되거나 예산이 사라지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한다. 사업의 의미와 성공 여부는 두 번째 문제다. 

결국 포경 마을을 지역구로 갖고 있는 국회의원과 관련 예산을 확보하려는 관료들의 이해관계가 IWC 탈퇴를 불렀다는 것이다.

(Pixabay 제공) 2018.12.30/그린포스트코리아
(Pixabay 제공) 2018.12.30/그린포스트코리아

일본 정부가 IWC 탈퇴를 선언한 지난 26일 자민당 본부에선 포경 문제를 논의하는 회의가 열렸다. 회의에는 다이지 마을을 포함한 포경 마을 대표자들도 참석했다. 이들은 “포경을 재개해 준 자민당 의원들은 우리 입장에서 보면 신 같은 존재”라고 극찬했다. 

IWC 탈퇴로 자민당은 삐걱거리던 지지도의 톱니바퀴에 윤활유 몇 방울을 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 톱니바퀴에 끼어 죽어가는 고래의 비명은 외면했다.

상업 포경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일본의 외교에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국제사회는 냉정한 비판의 눈으로 일본을 지켜보고 있다.  

hmy10@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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