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동단상] 비움을 생각한다-법정스님과 이재철 목사
[삼청동단상] 비움을 생각한다-법정스님과 이재철 목사
  • 도현행·칼럼니스트
  • 승인 2018.12.24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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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法頂)스님 이재철 목사의 깨우침
언제나 비워버려야 할 것들이 많은 시대
버킷 리스트와 함께 바스켓 리스트도 필요
서울 합정동 백주년기념교회는 ‘낮은 교회’다. 

섬김의 자세도, 교인들의 간절한 기도도 낮고 낮다. 그래서 이 교회에서 내가 바라본 십자가는 낮게 내려와 있다. 붉은 혹은 황금빛 네온을 몸에 휘두르고 교회의 가장 꼭대기에 우뚝 세워진, 사람들이 아무리 손을 뻗어봤자 결코 닿지 않는 그 절망적인 거리감의 끝에 우뚝한, 이 땅 크고 작은 교회들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백주년기념교회의 십자가는 우리가 언제든 손을 뻗어 어루만질 수 있는 그 거리감의 안쪽으로 내려와 있다.

 
 
백주년기념교회는 양화진순교자묘역 순교자기념관 등과 함께 있다.(사진 백주년기념교회 홈페이지 캡처)
백주년기념교회는 양화진순교자묘역 순교자기념관 등과 함께 있다.(사진 백주년기념교회 홈페이지 캡처)

 

이 교회의 기도는 그래서 세상을 향한다. 인간으로서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머나먼 그곳이 아니라 가난한 우리의 이웃을 위해 간절함을 바친다. 예수의 십자가가 우리의 십자가로 아주 나지막이 땅에 내려와 있는 곳이다.

내가 이 교회를 처음 간 것은 2012년 12월 마지막 일요일.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미성숙한 정신세계에 살다 보니 심신이 몹시 지쳐 있었던 터에, 무슨 마음에서인지 찾아가게 된 이 교회에서 당시 담임목사이던 이재철 목사의 설교를 듣게 됐다.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는 그리스도인의 참된 자세에 대해 그는 평온하면서도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수필가 피천득은 ‘수필’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천자연적의 연꽃 모양을 묘사하며 “정연히 달려 있는 여러 개의 꽃잎 가운데 살짝 꼬부라진 하나, 그것이 바로 수필”이라고 했는데, 이 목사의 설교가 딱 그랬다. ‘완벽한 균형 속에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이라는 표현 그대로, 이 목사의 설교 스타일은 막 깎아 놓은 밤처럼 지극히 단정하면서도 가끔 다 깎이지 않은 미세한 율피(밤 속껍질)가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듯 한 파격(인간다움)이 있었다. 

이재철 목사의 고별설교 장면.(백주년기념교회 홈페이지 화면 캡처)
이재철 목사의 고별설교 장면.(백주년기념교회 홈페이지 화면 캡처)

 

그 뒤로 나는 한동안 백주년기념교회에 출석했다. 오로지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함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목사의 설교가 나에게 큰 위안이 됐고, 각성의 종소리였기 때문이다.

그가 은퇴 했다. 

추수감사절인 지난 11월17일 “이재철을 버리라”는 고별 설교를 남기고 경남 거창의 한 산골 마을로 내려갔다. 자신의 연고도 아니고 아는 이 하나 없는 그곳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 자신이 섬기던 교회에서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야 '끝내 백주년기념교회 담임목사로서의 이재철이 버려질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그가 오래도록 살아온 집이 교회 바로 옆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그의 선택은 차라리 극단적이기까지 하다. 퇴직금 한 푼 받지 않았고, 그동안 모은 재산도 없기에, 그는 자녀들이 모아준 돈으로 남쪽 산골 마을에 평당 10만원짜리 땅을 산 뒤에 대출을 받아 집을 지었다. 그리고 은퇴하는 그날로 바로 그곳으로 갔다. 

이 시대 이 땅의 목사 가운데 이보다 더 명료하게 비움을 실천한 이가 있는가? 과문한 탓에 나는 알지 못한다. 

시궁창 냄새 진동하는 교회세습, 수십억원대의 퇴직금, 원로목사로 섭정하며 부와 명예를 끝내 움켜쥐고 있는 수 많은 ‘회장목사님들’의 얘기만 들어서 알고 있을 뿐이다. 

종교인의 무소유로 치면 법정 스님을 떠나 얘기할 수 없다.

법정 스님은 1956년 출가 이후 2010년 입적할 때까지 철저하게 무소유를 실천한 것으로 유명하다. 

스님은 우리 시대 삶의 교과서로 일컬어지는 수필집 ‘무소유’를 비롯해 14권의 책과 4권의 번역서를 남겼다. 그는 이들 저서에서 얻어진 적지 않은 인세 수입의 대부분을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눠주었다고 한다. 법정 스님의 법문집, ‘일기일회’를 공동으로 펴낸 덕인 스님 등이 쓴 서문을 보면 법정 스님은 인세 수입을 다 나눠준 바람에 정작 자신이 중병(폐암)에 걸렸을 때는 치료비 일부를 절에서 빌려 써야만 했다. 

법정스님이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며 수행했던 불일암.(그린포트스코리아 자료사진)
법정스님이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며 수행했던 불일암.(그린포트스코리아 자료사진)

 

스님은 화장지를 절반으로 잘라서 썼으며, 종이 한 장도 허투루 버리지 않았다. 스님의 붓글씨를 선물로 받은 이들은 그것이 물건을 쌌던 포장지에 쓰인 것을 보고 놀라기도 했다고 한다. 

법정스님이 2009년 5월11일 부처님 오신 날 정기법회에서 설법하는 모습.(길상사 홈페이지 화면캡처)
법정스님이 2009년 5월11일 부처님 오신 날 정기법회에서 설법하는 모습.(길상사 홈페이지 화면캡처)

 

그런 스님이었기에, 2007년 당시 세간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승려들의 재산 다툼 등은 그냥 보고 있을 사안이 아니었을 터. 스님은 2007년 10월21일 가을 정기 법회에서 ‘동국대 승려들간의 다툼’ ‘마곡사 비리 주지 구속사건’ ‘관음사 주지 다툼’ ‘백담사 공금횡령사건’ 등을 통렬하게 비판하면서 “승복 입은 도둑들”이라고 일갈했다. 

법정 스님은 입적 직전 임종게(마지막으로 남기는 말 또는 글)를 남기라는 상좌스님의 말에 이렇게 답한 것으로 전해진다. “간다, 봐라” 

'무소유의 스님' 다운 마지막 말이다. 

마침 지난 16일에 길상사 창건 21주년을 기념하는 법회가 열렸다. 길상사는 법정 스님이 1996년 서울 성북동의 대원각을 시주 받아 이듬해 지은 절이다. 스님은 6년간 길상사 회주(주지)로 있으면서 길상사에 별도로 '주지스님의 방'을 갖지 않았다. 그는 1992년 이후 아무도 거처를 모르는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 기거하면서 정기법회 때 설법을 위해 손수 차를 몰고 길상사까지 오가곤 했다. 

법정 스님의 속명은 박재철이다.

요즘 시중 서점에 가면 연말연시를 겨냥한 다양한 서적들이 서가에 가득하다.

인문, 경제, 트렌드, 자기계발 등 분야별로 수 없이 많은 책들 가운데 ‘비움’을 주제로 한 서적들도 적지 않다. 이런 류의 책 가운데는 마음 비우기를 주제로 한 것이 가장 기본이고, 물건을 덜어내는 방법부터 심지어는 휴지통 비우는 방법까지 소개하는 책이 있을 정도다. 

책 뿐만 아니라, ‘정리컨설턴트’라는 직업이 따로 있어서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의뢰를 받아 대신 버리고 정리하는 일을 해주기도 한다. 나 역시 1년에 한번 쓸까 말까 한 물건들을 잔뜩 짊어지고 사는 부류인지라, 최근에 정리비법을 소개하는 책을 사서 밑줄까지 그어 가며 읽었다.

우리가 이처럼 비움에 간절한 이유는 우리가 필요 이상으로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순간 풍족함을 안겨 줬던 물건들이 어느 순간 짐이 되어 쌓이기 시작하고, 그것들은 결국 처치 곤란한 골칫덩어리로 창고와 거실과 주방과 방안을 점령한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끊임 없이 모으고 모은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주목 받기 위해 사랑 받기 위해 때로는 분노와 복수심으로 과도하게 마음을 쓰다 보니 마음에는 이도 저도 어찌하지 못하는 수 많은 마음들이 켜켜이 쌓여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그러다가 페북친구들이 더 이상 ‘좋아요’를 안 눌러주거나, 카톡에 ‘읽씹’이 늘어나기 시작하면 쌓여 있던 마음들이 한 순간에 뒤집어지면서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힌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정리가 필요하다. 물건도, 관계도, 마음도 수시로 덜어내고 정리해야 삶이 간결하고 쾌적해 진다. 카이스트의 정재승 교수는 습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삶(생활방식)에 리셋(새로 고침)이 필요하다고 했다. 컴퓨터 바탕화면에 가득한 파일들을 정리하듯 딜리트(delete)-리셋(reset) 두 버튼을 자주 눌러 생활을 청소해야 한다.

'또 다시' 연말이다. 올해도 이제 꼭 일주일 남았다. 

 한 해를 보내고 또 맞으며 우리는 하고 싶은 일의 목록을 담은 이른바 버킷 리스트(bucket list)를 쓰곤 한다. 동시에 바스킷(basket) 리스트를 만들면 어떨까. 덜어내고 버려야 할 것들을 골라내는 목록을 만들어 실천하다 보면 삶이 간결해지면서 윤기가 흐를 것이다. 

법정 스님은 2005년 12월11일에 있었던 그해 마지막 법회에서 이렇게 설법했다.

“가난이 미덕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가 맑은 가난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탐욕을 버리고 분수를 지키자는 것입니다. 지나친 소비와 넘침에서 벗어나 맑고 조촐하게 가질 만큼만 갖자는 뜻입니다.”

이재철 목사는 지난달 고별 설교에서 이렇게 말했다.

“버리지 않으면 얻을 수 없습니다. 육체의 소욕을 거침없이 버려야 깊은 영성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을 거침 없이 버려야 새로운 내일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낡은 부대를 거침없이 버려야 새 포도주를 담는 새 부대를 지닐 수 있습니다.”

 

사족.

나랏일 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이 바스켓 리스트에 오를 사람이 적지 않다. 국민 걱정 않고 제 잇속만 챙기는 그들을 우리가 바스켓 리스트에 담아 '딜리트(delete)' 할 수만 있으면 원이 없겠다. 

<2018. 12. 24.  도현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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