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10명 중 4명 암 사망하고 피부병 환자 투성이
부부가 같은 날 목숨 잃고 부자가 함께 사망하기도
오염 의혹 비료공장엔 심한 악취 "흙도 만지지 말라"

전북 익산시 합라면 장점마을 입구.(주현웅 기자)2018.12.17/그린포스트코리아
전북 익산시 합라면 장점마을 입구.(주현웅 기자)2018.12.17/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주현웅 기자] 전북 익산시 함라면 장점마을. 한때는 장수마을로 유명했지만 이제는 ‘암마을’로 불린다. 주민 80여명 중 약 30명이 암에 걸렸다. 암 환자 중 16명은 사망했다. 암이 발병하지 않은 주민도 피부병 등에 시달리고 있다.

“살기 좋은 마을로 전국 최고였어. 이제는 죽기 좋은 마을로 전국 최고가 돼버렸으니 성질이 나서 원. 그러게 공무원이 진작에 잘했어야지. 우리가 몇 년 전부터 민원을 몇 통씩 넣었다고.”

최재철 장점마을 주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그는 “실체가 드러난 모든 문제는 사실상 주민이 다 밝혀냈다”며 “정부와 지자체가 우리 말에 귀 닫은 사이 사람 몇 명이 죽었는 줄 아냐”고 울분을 토했다.

지난 14일 방문한 장점마을은 조용했다. 사람도 보기 드물었다. 겉보기엔 평범하고 평화로운 마을이었다.(주현웅 기자)2018.12.17/그린포스트코리아
지난 14일 방문한 장점마을은 조용했다. 사람도 보기 드물었다. 겉보기엔 평범하고 평화로운 마을이었다.(주현웅 기자)2018.12.17/그린포스트코리아

14일 방문한 장점마을은 고요했다. 멀리서 걷는 할머니의 발소리까지 들릴 정도였다. 겉보기로는 어느 곳보다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주택이 밀집한 골목을 훑어보니 분위기가 달랐다. 사람보다 현수막이 많았다. “고통 속에 죽어가는 마을을 구하자!”라고 적혔다.

최 위원장은 몇몇 집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이 집은 노부부가 같은 날 죽었어. 아내는 오전에 가고 남편은 오후에 가고. 또, 저기 보이는 집은 부자가 같이 죽었어. 아들이 우리 마을 자랑이었는데. 인텔리였거든. 미국 유학까지 다녀왔어. 그럼 뭐해. 이제 다 가버렸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마을 맞은편에 푸른지붕 건물이 눈에 띄었다. 억울한 죽음의 의혹이 감춰진 곳이다. 

“다 저 공장 때문이야. 2001년 처음 지어졌을 땐 ‘아무것도 없는 마을에 공장 하나 들어와도 괜찮겠다’ 싶었지. 그런데 사람 죽이는 공장일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그때 무조건 막았어야 했는데...”

공장으로 향하는 길. 사람이 단 한 명도 안 보였다. 최 위원장이 집 5~6곳 마당에 들어가 “어이~좀 나와봐. 서울에서 기자가 왔어”하고 외쳤다. 인기척조차 없었다. 최 위원장은 “암이나 피부병에 걸린 주민들이 통원치료 때문에 다 서울에 간 것 같다”고 짐작했다.

공장에 다다를 때까지 그는 연거푸 한숨을 내쉬었다. 최 위원장은 “아무리 불러도 대답 없기는 국가나 익산시나 마찬가지”라며 “마을 좀 살려달라고 수년 전부터 외쳐댔는데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비료공장은 큰 규모를 자랑했다. 하지만 입구에서부터 악취가 진동했다. 주민들은 이 공장이 가동됐을 때 송장타는 냄새가 가득했다고 증언한다.(주현웅 기자)2018.12.17/그린포스트코리아
비료공장은 큰 규모를 자랑했다. 하지만 입구에서부터 악취가 진동했다. 주민들은 이 공장이 가동됐을 때 송장타는 냄새가 가득했다고 증언한다.(주현웅 기자)2018.12.17/그린포스트코리아

“기자 양반, 여기서 너무 오래 머무르면 안 돼. 냄새가 얼마나 역겨운지 몇 분만 있어도 머리가 어지럽고 숨쉬기도 힘들다니까. 난 저번에 쓰러져서 응급실도 실려 갔었어. 훑어보고 빨리 나오자.”

공장 내부는 기계와 벽의 녹이 슨 부분만 빼고 온통 새카맸다. 최 위원장은 “조심히 걸어야 한다”며 주의를 줬다. 물마저도 새카만 탓에 맨바닥인 줄 알고 걷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이유였다.

실제로 그랬다. 곳곳에 침출수가 고였다. 부유물이 가득해 쳐다보기도 꺼림칙 한데다, 코를 막아도 10초 이상 가까이서 버티기 힘들었다. 주의를 주지 않았다면 물인 줄도 모른 채 그 위를 걸을 뻔했다.

겉보기에도 매우 큰 규모의 공장 내부는 온통 쓰레기 더미였다. 지난 4일부터 이틀간 벌인 굴착조사 당시 발견된 쓰레기의 ‘일부’라고 했다. 최 위원장은 “전국에서 모인 쓰레기라 정확히 뭐가 뭔지는 알 수 없다”면서 “다만 1급 발암물질이란 사실은 확실하다”고 강조했다.

익산시 등이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공장에서는 슬레이트, 폐아스콘, 폐수, 오니 등 다양한 종류의 폐기물이 발견됐다. 전부 심한 악취를 풍기는 것은 물론 1급 발암물질을 함유한 유해성분이다.

비료공장 내부는 쓰레기로 가득했다. 침출수들이 고여있기도 했다. 침출수는 부유물들이 가득해 물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른쪽 사진은 침출수의 모습. (주현웅 기자)2018.12.17/그린포스트코리아
비료공장 내부는 쓰레기로 가득했다. 침출수들이 고여있기도 했다. 침출수는 부유물들이 가득해 물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른쪽 사진은 바닥이 아니다. 오염된 물이다. (주현웅 기자)2018.12.17/그린포스트코리아
비료공장 외부에 컨테이너 식당이 있었다. 하지만 바닥을 부수어 보니 폐기물들을 불법으로 매립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이곳에서 발생한 쓰레기들은 저장탱크를 거쳐 마을 곳곳에 배출됐다.(주현웅 기자)2018.12.17/그린포스트코리아
비료공장 외부에 컨테이너 식당이 있었다. 하지만 바닥을 부수어 보니 폐기물들을 불법으로 매립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이곳에서 발생한 쓰레기들은 저장탱크를 거쳐 마을 곳곳에 배출됐다.(주현웅 기자)2018.12.17/그린포스트코리아

기막힌 광경은 또 있었다. 공장 외곽으로 가니 85㎡ 크기의 컨테이너가 있었다. 불법으로 건축된 식당이었다. 지난번 굴착조사 영향으로 바닥이 부서져 있었다. 그 밑을 보니 깊이 파인 땅이 모습을 드러냈다.

은색 긴 막대를 식당 밑 땅속에 한 차례 넣었다 빼니 막대가 새카맣게 변했다. '오니'(오염물질을 포함한 진흙)라고 했다. 식당 밑 침출수 등은 식당 외부 벽면에 부착된 저장탱크를 거쳐 마을 곳곳에 배출됐다.

식당과 가까운 뒷산의 나무들이 전부 고사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정말 뒷산 나무들은 맥없이 쓰러진 채 널부러져 있었다. 산에 올라 나무 밑을 조금 파보니 새카만 흙이 또 나왔다. 최 위원장은 “그 흙에도 발암물질이 있을지 모르니 만지지 말라”고 당부했다.

공장을 돌아볼수록 최 위원장의 목소리는 거칠어졌다. 눈시울도 붉어졌다. 그는 공장이 17년째 이런 일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은 정부와 지자체의 무관심 때문이라며 개탄했다. 공장을 볼 때마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이 떠오른다고 했다. 모두 가족과 다름없던 이웃이었다.

“마을이 작아서 다들 잘 지냈어. 그런데 한 둘씩 암으로 먼저 가는 거야. 공장이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민원을 몇 번 넣었어. 아무런 조치가 없더라고. 내가 화가 치밀어서 팔자에도 없던 방송에 나가고, 신문에 나오고, 청와대 가서 시위까지 하고 있는데, 심신이 다 힘들어.”

금강농산이 운영했던 비료공장은 현재 폐쇄된 상태다. 사진은 비료공장 입구.(주현웅 기자)2018.12.16/그린포스트코리아
금강농산이 운영했던 비료공장은 현재 폐쇄된 상태다. 사진은 비료공장 입구.(주현웅 기자)2018.12.16/그린포스트코리아

공장 아래쪽에서 김인수 장점마을 이장을 만났다. 그도 예전부터 비료공장을 의심했다. 무언가를 가득 실은 트럭이 공장에 들어올 때마다 내용물이 미심쩍었다. 공장에 방문한 익산시 공무원에게 물어도 봤지만 대답은 못 들었다.

익산시는 뒤늦게 비료공장을 폐기물관리법 위반 혐의로 형사고발했다. 공장 부지 토양이 오염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국립환경과학원에 조사도 맡겼다. 이와 함께 환경부 의뢰로 환경안전건강연구소도 역학조사를 진행 중이다. 조사는 이달 중 마무리될 전망이다.

이 비료공장을 운영한 업체는 ‘금강농산’이란 곳이다. 언론의 관심이 커진 작년에 부도처리됐다. 지난 6월부터 해당 공장 경매가 진행됐고, 경남 양산에 있는 H농산이 최근 소유권을 확보했다.

금강농산은 왜 이런 짓을 저지른 걸까. 최 위원장에 따르면 금강농산에서 일했던 직원은 20여명 정도로 추정된다. 직원 대부분은 외지에 거주하는 이들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금강농산을 취재하기는 아마 어려울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 사장마저 작년에 폐암으로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익산 장점마을 사태는?

장점마을은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신등리에 있다. 인구 80여명의 작은 농촌 마을이다. 2001년 7월 마을 내 함라산 밑에 비료공장이 들어선 이후 17년 동안 암환자 30명이 발생하고 16명이 목숨을 잃었다. 2010년 한해 동안 10명이 암으로 목숨을 잃고 인근 저수지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자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익산시와 전북 보건환경연구원 등이 시료조사를 벌였으나 검출된 유해물질은 공장을 가동 중단 시킬 수 있는 기준치에는 미치지 못 했다. 공장은 주민과 계속 갈등을 빚었지만 2017년 4월 폐쇄되기 전까지 정상 가동됐다. 환경부는 주민 청원에 따라 환경오염 역학조사에 들어갔다. 7월 중간조사 발표 결과 마을 내 나뭇잎에서 1급 발암물질인 다핵방향족탄화수소(PAHs)가 청정지역보다 5배 높게 검출됐다. 최종 조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주민은 불안에 떤다. 정부에게 마을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주민 이주대책을 지원해달라고 요구하는 중이다. 

chesco12@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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