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피스 필리핀 사무소 관계자가 필리핀 민다나오섬 미사미스 오리엔탈에 압수 보관 중인 한국발 플라스틱 쓰레기 5100톤을 지난 6일 조사하고 있다. (사진=그린피스 동아시아 서울사무소 제공)
그린피스 필리핀 사무소 관계자가 필리핀 민다나오섬 미사미스 오리엔탈에 압수 보관 중인 한국발 플라스틱 쓰레기 5100톤을 지난 6일 조사하고 있다. (사진=그린피스 동아시아 서울사무소 제공)

 

[그린포스트코리아 채석원 기자]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가 한국이 불법 수출한 폐기물이 필리핀 현지에 쌓여 있는 모습을 ‘충격’이란 말까지 써가며 묘사했다. 그린피스 동아시아 서울사무소는 10일 홈페이지에 ‘한국발 플라스틱 쓰레기 필리핀 현장 충격’이라는 글을 올려 프란시스코 노베다 그린피스 필리핀 사무소 코디네이터(캠페이너)의 베르데 소코 플라스틱 재처리 시설 방문기를 전했다.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섬에 위치한 수입업체 베르데 소코는 지난 7월부터 미사미스 산타클루즈 어퍼부가치에 있는 자사 소유 부지의 플라스틱 재처리 시설에 한국에서 수입한 플라스틱 쓰레기 5100톤을 쌓아뒀다.

플라스틱 쓰레기 더미는 4만5000㎡ 넓이 폐플라스틱 하치장의 간이막에 둘러싸여 노상에 방치돼 있다. 노베다는 "흉측하고 역겨운 광경이 위압적으로 보일 정도로 엄청난 넓이의 노천 시설에 펼쳐져 있었다"고 말했다.

노베다에 따르면 찢어진 포장 비닐 사이로 생활 폐기물과 밧줄, 세탁기 부품, 용기, 페트병 등 플라스틱 폐기물이 가득한 쓰레기 더미가 축구장 6배 넓이의 하치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노베다는 "엄청난 규모의 플라스틱 쓰레기 더미에 압도됐고 그 더미마다 한글이 쓰인 쓰레기가 가득해 놀랐다"고 말했다.

노베다는 지난 3, 4일 이틀에 걸쳐 한국발 쓰레기 더미를 조사했다. 그는 쓰레기 더미를 밟고 다니며 폐플라스틱 더미의 내용물을 일일이 확인했다. 복사열에 달궈져 바싹 마른 탓에 잘게 부숴진 플라스틱이 바람에 날렸다. 쓰레기 더미에 열대성 소나기가 수시로 쏟아지는 까닭에 일부 플라스틱 쓰레기는 인근 하천으로 흘러들어갈 우려도 있었다. 쓰레기 더미를 조금만 들추면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쓰레기가 들어온 첫 주에 인근 주민은 플라스틱 쓰레기가 내뿜는 악취로 고생했다고 한다. 인근 마을 주민은 "화물이 들어온 뒤 한참 역겨운 냄새가 민가까지 날아오다가 열과 바람에 다 말라버렸는지 요즘엔 악취가 많이 가셨다"고 했다.

쓰레기 더미에서 20~30m 떨어진 곳엔 민가가 있고, 임시 가림막에서 가까운 곳엔 어린이 놀이터가 있었다. 노베다는 쓰레기 더미 위에서 가림막 너머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봤다고 전했다. 플라스틱 쓰레기 가림막에 인접한 텃밭에는 농작물이 자라고 있었다. 주민은 플라스틱 쓰레기가 들어온 뒤 농작물의 수와 성숙에 이상이 생겼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열대성 기후답게 소나기 수시로 쏟아지면서 플라스틱 쓰레기 더미 사이에 물웅덩이가 생기면서 파리, 모기 등 해충이 발생하고 병원균이 증식할 환경이 조성돼 인근 주민의 건강까지 위협했다.

올해 필리핀에 도착한 한국발 플라스틱 쓰레기는 총 6500톤이다. 이곳 쓰레기 하치장에 있는 5100톤 외 나머지 1400톤은 미사미스 오리엔탈 터미널에 있는 컨테이너 51개에 분산 보관돼 있다. 필리핀 관세청은 쓰레기 더미를 수시로 조사하며 한국 반송에 필요한 절차를 밟고 있다. 또 지역 언론에 폐기물을 쌓아둔 현장을 공개한 탓에 지역 방송사들이 한국발 플라스틱 쓰레기를 고발하는 뉴스를 내보기도 했다.

필리핀 세관당국은 지난 7월 21일과 10월 20일 두 차례에 걸쳐 들어온 한국발 플라스틱 쓰레기 6500톤을 미사미스 오리엔탈 터미널 일대에 압류 보관하고 있다. 필리핀 환경단체 에코웨이스트연합은 지난달 15일 플라스틱 쓰레기 불법 수출을 규탄하는 시위를 주필리핀 한국 대사관 앞에서 열었고, 지난달 28일엔 마닐라 퀘존시의 관세청 앞에서 플라스틱 쓰레기를 성탄절 이전에 반환하라고 요구하는 시위를 갖고 가두행진을 벌였다.

한편 한국 환경부는 지난달 21일 관세청, 외교부 등 관계부처와 공조해 필리핀 불법 수출 폐기물 반입을 위한 행정 명령 절차를 시작했다. 환경부 자원순환정책과 관계자는 "필리핀에서 반입을 위한 비용은 원칙적으로 수출 업체의 부담이며 국내 반입한 후 폐기물 처리는 국내법에 따라 업체가 처리한다"고 말했다. 그린피스는 환경부를 상대로 책임 소재 규명, 재발 방지 대책 수립과 함께 근본적인 플라스틱 문제 해결을 위한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서수정 그린피스 플라스틱 캠페이너는 "플라스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한국 정부는 일회용 플라스틱 소비량 자체를 감축하는 규제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캠페이너는 "현재 한국의 폐기물 처리 및 재활용 시스템은 엄청나게 쏟아지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소비량 규제 없는 재활용은 답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이번 사태에서 알 수 있다"고 말했다.

jdtimes@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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