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80여명 중 28명 암 발병, 16명 이미 사망
주민들, 특별재난구역 지정ㆍ긴급이주지원 요구

[그린포스트코리아 주현웅 기자] “아름답고 작은 시골마을이었어요. 이곳에서 80여명의 주민들이 평화롭게 모여 살았죠. 오순도순. 하지만 이제 모든 게 변했어요. 비료공장이 가동되면서 주민들의 평온했던 삶이 초토화됐습니다. 정부가 도와주세요.”

전북 익산시 함라면 장점마을 이야기다. 80여명의 주민들 중 28명이 암에 걸렸고, 이 가운데 16명이 사망했다. 공포에 떨고 있는 주민들이 정부에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정부 도움이 없다면 앞으로 몇 명이 더 사망할지 모른다”며 긴급구제를 호소했다.

앞서 장점마을 주민들은 지난 4일부터 이틀간 지자체 관계자 및 시민단체 등과 마을의 한 비료공장을 굴착했다. 이 공장은 오래 전부터 집단 암환자 발생 원인으로 지적돼 온 곳이다. 굴착 조사 결과 건물 지하에서 4m 깊이의 대형 불법폐기물 저장탱크가 실제로 발견됐다.

집단 암환자가 발생해 환경부 등이 역학조사를 벌이고 있는 장점마을의 주민들이 지난 7일 상경했다. 이들은 청와대 분수대광장 앞에 모여 정부가 장점마을을 특별재난구역으로 지정할 것을 요구했다.(장점마을 주민대책위 제공)2018.12.8/그린포스트코리아
집단 암환자가 발생해 환경부 등이 역학조사를 벌이고 있는 장점마을의 주민들이 지난 7일 상경했다. 이들은 청와대 분수대광장 앞에 모여 정부가 장점마을을 특별재난구역으로 지정할 것을 요구했다.(장점마을 주민대책위 제공)2018.12.8/그린포스트코리아

지난 7일 오전 장점마을 주민들로 구성된 ‘장점마을 주민대책위원회’와 ‘글로벌에코넷’ 등 시민단체가 상경했다. 이들은 청와대 분수대 광장 앞에 모여 “정부는 장점마을을 특별재난구역으로 선포해 주민들의 긴급 이주를 지원하라”고 요구했다.

주민들과 시민단체는 이날 “지금도 피해자는 계속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비료공장 굴착조사에 함께 참여한 최재철 주민대책위원장은 독한 화학물질 냄새로 인해 현장에서 쓰러지기까지 했다고 밝혔다.

최 위원장은 “주민들의 의심대로 비료공장의 페기물 불법 매립이 사실로 확인됐다”며 “국립환경과학원이 성분분석을 실시할 테지만, 마을 주민들은 비료공장 폐기물이 암 발병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최근 익산시는 “폐기물 매립여부 확인 및 성상조사를 위해 총 5개 지점을 굴착해 조사했다”며 “그 결과 깊이 4m가 넘는 불법폐기물 저장탱크가 발견됐고, 저장탱크로 폐수를 옮기기 위한 배관도 설치돼 있었다”고 발표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굴착 조사 당시 발견된 폐기물들은 슬레트, 폐아스콘, 폐수, 오니 등 종류가 다양하다. 전부 심한 악취를 풍기는 것은 물론 1급 발암물질을 함유한 유해성분이다. 그마저도 대량으로 발견된 탓에 추가피해가 우려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김선홍 글로벌에코넥 상임회장은 “현재 1차 환경부 등의 주민건강영향조사가 진행 중이고 결과가 이달 중 나올 예정”이라면서 “내년도에 2차 정밀조사가 시작되는데 그때까지 몇 명이 더 사망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집단 암환자 발생 원인으로 지적된 비료공장에 대한 굴착조사가 지난 4일부터 이틀 간 벌어졌다. 조사결과 상당량의 불법폐기물이 발견됐다. 폐기물 물질들은 슬레트 등 1급 발암물질로 분류되는 유해성분들이었다.(장점마을 주민대책위 제공)2018.12.8/그린포스트코리아
집단 암환자 발생 원인으로 지적된 비료공장에 대한 굴착조사가 지난 4일부터 이틀 간 벌어졌다. 조사결과 상당량의 불법폐기물이 발견됐다. 폐기물 물질들은 슬레트 등 1급 발암물질로 분류되는 유해성분들이었다.(장점마을 주민대책위 제공)2018.12.8/그린포스트코리아

주민들은 관리·감독 주체인 익산시의 무기력한 행정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비료공장에 정밀조사가 추가로 필요하지만, 불법폐기물을 은폐하려는 시도가 벌어지는 가운데 지자체가 아무런 힘도 못 쓴다는 것이다.

최 위원장은 “최근 공장부지 경매가 있었는데 소유권을 확보한 낙찰업체가 공장 철거작업을 진행했었다”면서 “익산시가 철거중지 명령을 내렸지만 공사가 한동안 이뤄졌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주민들 분노가 더해지는 이유는 비료공장의 불법폐기물 은폐가 수년 전부터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들은 해당 공장이 폐기물처리시설층을 설치한 다음 식당을 건축, 그 후 문을 폐쇄하면서 지자체 감독을 피해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장 익산시는 비료공장을 폐기물관리법 위반 혐의로 형사고발한 상태다. 또한 공장 부지의 토양오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국립환경과학원에 조사를 의뢰했다. 익산시 관계자는 “국립환경과학원의 결과가 나오는 대로 관련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전했다.

주민들과 시민단체 등은 정부가 나서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이날 청와대 분수대광장 앞에 모인 이들은 “문재인 정부가 직접 나서서 장점마을을 특별재난구역으로 선포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주민이주 대책 등 긴급구제에 나서달라”고 호소했다.

송운학 개혁연대민생행동 상임대표는 “이번 정부는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만든다고 약속하지 않았냐”며 “귀중한 인명을 보호하려면 정부도 함께 나서서 장점마을이 평화를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구했다.

한편, 현재 장점마을에서는 토양과 수질의 오염실태 및 주민건강 등에 대한 역학조사가 벌어지고 있다. 환경부 의뢰로 조사를 진행 중인 환경안전건강연구소는 이달 중 최종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chesco12@greenpost.kr

저작권자 © 그린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