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올림픽부터 2018년까지 30년 논쟁사
설치 이후 녹조·생태계 논란으로 철거 여론
내년 3월까지 임시개방 결과 따라 운명 갈릴듯

한강 자연성 회복 논쟁의 최대 쟁점은 신곡수중보 개방-철거다. 신곡보 문제 해결에 큰 관심을 보인 박원순 서울시장 취임 7년만에 보를 4개월간 임시개방하기로 결정하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개방 후 결과에 따라 30년간 한강 물길을 막아온 회색 콘트리트 벽을 허물 수 있다.  <그린포스트코리아>는 보 철거 실현 후 달라질 한강의 풍경을 그려보는 기획기사 '신곡보 열리나'를 마련했다. 큰고니가 돌아오고 상괭이가 오가는 '한강의 기적'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그린포스트코리아 권오경 기자] 신곡수중보를 둘러싼 논쟁은 30년 전, 전두환 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강의 흐름을 통제해 수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물막이' 신곡수중보는 한강종합개발사업 일환으로 건설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2년 9월,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이 계획을 발표했다.

“우리는 필요와 편의에 의해 그동안 일방적으로 혹사하여 왔던 한강에 우리의 정성을 되돌려 주어야 할 바로 그 때를 맞이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정성을 통하여 맑은 강, 깊은 물 속에 온갖 어족이 활개 치며 '살아있는 한강'을 만들 것을 다 함께 다짐해야 합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이날 여의도에서 열린 한강종합개발사업 기공식에서 한 말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86년 9월 한강종합개발 준공식에 참석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국가기록원)/그린포스트코리아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86년 9월 한강종합개발 준공식에 참석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국가기록원)/그린포스트코리아

그는 이 사업으로 한강의 수질을 개선하고 하수처리능력을 향상해 농업용수 공급과 취수원 확보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올림픽 개최 시기에 맞춰 도시미관을 정비하고 한강에 대형 유람선을 띄워 한강을 관광자원화하기 위한 목적도 컸다. 특히 신곡보는 올림픽 때 북한의 테러를 우려해 서해에서 침투를 막기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짓는다는 해석도 나왔다. 

그러나 ‘살아있는 한강’을 만들겠다는 청사진과는 달리 올림픽에 등 떠밀리듯 추진된 이 사업은 한강의 ‘자연화’가 아닌 인공적 개발에 방점을 두고 추진됐다. 여름에는 '강수욕장'으로, 겨울엔 썰매장으로 변신했던 시민의 공간에서 고수부지로 둘러싸인 관조의 대상으로 변해갔다.

한강개발사업에 따라 신곡수중보는 1988년 5월 완공됐다. 김포 신곡리와 고양 신평동을 잇는 1007m 길이의 신곡수중보는 김포대교 아래 위치했다. 김포 쪽으로는 길이 124m의 가동보(높이 5m, 수문 5개)에 댐처럼 수문을 설치했고, 고양 쪽은 물속에 길이 883m의 고정보(높이 4.2m)를 쌓았다. 가동보와 고정보는 작은 섬으로 연결됐다. 가동보는 한강 수위를 2.7m로 일정하게 유지해 사실상 한강 서울시 구간을 담수호의 기능을 하도록 했다.

물론 하수 처리 기능을 개선하고 취수원을 확보하는 등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다. 그러나 지난 30여년간 한강에선 녹조현상, 생태계 파괴, 인명피해 등 환경 재난이 잇따라 발생했다. 신곡수중보가 원인이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신곡수중보가 완공된 이후부터 팔당, 덕소, 구의, 뚝도 등 수질이 전반적으로 악화됐다. 팔당의 경우 1985년(1.8PPM)보다 1987년(2.1PPM), 1988년(1.9PPM)에 수질 오염도가 상승했다. 당시 서울시는 “신곡수중보가 한강의 흐름을 막아 물을 썩게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서울시는 신곡수중보를 열어 제한 수위가 될 때까지 한강 물을 빼내 각종 부유물 및 퇴적물을 흘려보낸 뒤 상류쪽 잠실 수중보를 열어 깨끗한 물을 채우는 세정(플러싱)을 실시했으나 근본적 개선을 이루기엔 역부족이었다.

1980년대 한강 모습.(서울 역사박물관 제공).2018.11.30/그린포스트코리아
1980년대 한강 모습.(서울 역사박물관 제공).2018.11.30/그린포스트코리아

1990년대에 들어서는 신곡보 상류뿐 아니라 하류도 오염됐다. 신곡수중보로 하루 500만톤 이상의 하수와 폐수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채 방류되고 있는데다가 물길이 차단돼 오염물질이 침전, 부영양화 현상도 나타났다. 여기에 수온상승까지 겹쳐 물속 산소량이 격감하면서 녹조 현상이 일어났다.

녹조에 따른 생태계 파괴도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1990년 서울시가 국내 연구진에 의뢰해 1989년 7월부터 1990년 9월까지 팔당호에서 신곡수중보 사이 한강 본류와 샛강의 생태계를 조사한 결과, 민물고기 46종 중 28종이 사라졌다. 여기엔 은어, 농어, 숭어, 외몰개, 살치 등이 포함됐다. 1987년부턴 52종 중 갈매기, 새매, 솔개, 알락오리 등 25종이 줄어들어 27종만 발견됐다.

1992년에도 한강 물고기가 산소 부족으로 떼죽음을 당하는 일이 일어났다. 강바닥에 쌓인 오염물질은 팔당댐 방류량을 줄이고 수온을 높여 산소 부족을 일으켰다. 1992년 7월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보름간 매일 수백마리의 물고기가 떼죽음된 채 발견됐다. 당시 환경처(현 환경부) 관계자는 “신곡수중보로 오물이 지천 어귀마다 쌓인 것이 이번 물고기 떼죽음 사태의 근본원인”이라고 답했다.

인명피해도 발생했다. 1990년엔 둑이 붕괴돼 10만명의 이재민을 낳았다. 일부 학자는 신곡수중보를 원인으로 꼽았다. 수중보로 한강 물 흐름이 막히면서 소용돌이가 발생했고, 제때 빠져나가지 못한 거대한 힘이 제방으로 밀려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에 신곡수중보 철거 주장은 꾸준히 이어졌지만 2000년대 들어 이전 정권의 한강개발계획을 계승한 이명박, 오세훈 서울시장이 당선되면서 힘을 얻지 못 했다. 한강개발계획을 높이 평가했던 이명박 시장은 대통령 후보로 출마해 대운하와 4대강 개발 공약을 제시했다. 오세훈 시장은 2006년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로 한강의 자연성을 회복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사실상 토목 개발사업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2010년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신곡수중보 철거 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당시 한명숙 민주당 후보, 노회찬 진보신당 후보는 당선되면 신곡수중보 철거를 추진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오세훈 한나라당 후보가 재선에 성공하면서 없던 일이 됐다.  

불씨가 되살아난 때는 2011년. 무상급식 논란에 따른 오세훈 시장의 중도 사퇴로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박원순 시장은 신곡보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 박 시장은 2015년 철거 타당성을 검토하는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같은 해 기승을 부린 '녹조라떼' 충격으로 철거 주장은 더 거세졌다.

용역 보고서는 신곡보 철거가 바람직하다고 결론내렸다. 신곡보 철거의 비용 대비 편익이 보 이동이나 개방보다 높다고 판단했다. 철거하면 백사장은 162만㎡(49만평)가 늘어나고, 밤섬의 넓이는 58%까지 커지며, 서강대교 부근의 물길 너비는 99~215m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생화학적산소요구량(BOD)이나 녹조도 모두 개선될 것으로 전망했다.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은 4대강 사업에 반대한 박창근 관동대 교수팀의 편파적인 연구라고 비난했다. 한강 취수와 각종 개발 계획 백지화 문제와도 이어지는데다가 당시 박근혜 정부도 부정적이었다. 결국 이 연구 결과는 묻혀버렸고 서울시도 철거에 신중한 입장으로 물러섰다. 

하지만 박원순 서울시장의 1기 시정부터 이어진 해묵은 숙제였던 만큼 정권교체 이후 박 시장은 다시 한번 신곡수중보 철거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지난 6·13 지방선거 결과 3선에 성공한 후엔 민간전문가 15명으로 구성된 신곡수중보 정책위원회를 만들어 보 철거 문제를 논의하도록 했다. 정책위원회는 지난 12일 박원순 시장에게 보 개방 실험 결과를 보고 철거할지 결정하자는 권고안을 전달했다. 이에 따라 신곡수중보는 다음달부터 내년 3월까지 임시 개방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수중보 철거 최종 권한은 국토교통부에 있기 때문에 예상되는 수위 변화, 사회적 편익 등에 대해 어민, 수상시설물 관계자 등 유관기관과 충분히 협의한 후 결정하겠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강수욕을 즐기고 있다.2018.11.30/그린포스트코리아
한강 개발 전 여름철 한강에서 강수욕을 즐기고 있는 서울 시민의 모습.(서울시 제공)2018.11.30/그린포스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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