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가는 편의점, 얼마나 아세요?'

붓다는 "공정심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살피는 마음에서 온다"고 했다. 그러나 '다원주의'를 표방하는 현대사회는 하나의 중심이 사라지고 다양한 관점이 팽팽하게 맞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쉽게 가치판단하기 어렵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 했던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세상의 옳고 그름을 살피기 위해 격주 화요일과 목요일 번갈아 '화목한 책읽기' 코너를 운영한다. [편집자주]   

매일가는 편의점, 얼마나 아세요?2018.11.27/그린포스트코리아
매일가는 편의점, 얼마나 아세요?∥저자 봉달호∥시공사∥270쪽∥사회학

이 책의 한 단락 : 매장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그게 손님 탓인지 우리 탓인지 따지지 않고, 어쨌든 “화가 많이 나셨겠네요”라거나 “걱정이 많이 되시겠습니다” 혹은 “어디 다친 데는 없으신가요”라고 운을 떼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한다. 이건 동감이 아니라 공감의 메시지다. 동감은 상대의 견해와 입장에 대한 동의와 찬성을 전제로 하지만 공감은 그와 상관없이 상대의 감정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일이다. 

[그린포스트코리아 권오경 기자] 1인가구가 늘고 ‘혼밥’(혼자먹는 밥)이라는 말이 생겼다. 일일이 끼니를 챙겨먹기 귀찮은 직장인은 편의점을 제집처럼 드나든다. 물건만 사면 되는 곳이니 카운터 안 사람은 관심사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편의점에서 일하는 사람도 카운터 밖 손님에 대한 기억은 없다. 통신사 할인 바코드를 보여주고 카드를 내민 것까지는 생생한데 상대의 얼굴만은 백지다. 편의점에 기대하는 건 딱 그 정도의 관계다.

그런데 여기 손님 관찰과 별명 붙이기가 취미인 편의점 주인이 있다. ‘매일 가는 편의점 얼마나 아세요?’의 저자인 그는 아침 6시부터 저녁 8시까지 하루 14시간 동안 만나는 손님의 이야기를 듣는다. 짬짬이 글도 쓰고 책도 읽는다.

편의점 주인은 카운터 안으로 독자를 초대한다. 그곳에서 우린 하루 수백명의 손님을 맞는 어려움과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의 하루를 더욱 선명히 볼 수 있다.

◇ “손님과 주인도 좋지만 사람 대 사람이 더 반갑습니다"

일명 ‘사직서’로 불리는 손님은 저녁 무렵 나타나 컵라면을 사 가는 직장인이다. 평소엔 1~3개, 많을 때는 6,7개 컵라면을 일일이 뜯어 물을 부어 간다. 궁금한 건 못 참는 편의점 주인이 사무실에 정수기가 없느냐 물으니 손님은 “내 말이 그 말입니다. 그런데 그놈이 꼭 편의점에서 물을 부어 오라고 시킨단 말입니다. 그게 더 맛있다나요”라고 답한다.

우리는 '그놈'이 누군지 본능적으로 안다. 이른바 '라면셔틀'을 당하고 있는 ‘사직서’는 어느 날 진짜 사직서를 품에서 꺼내 보여준다. 사직서를 두고 신세 한탄을 하는 손님과 “밖은 지옥”이라며 위로를 건네는 편의점 주인. 저자는 "이런 광경은 보통 편의점에서 보기 힘들다"고 말한다.

또 다른 단골손님 지효는 어린이집 하원 후 엄마와 편의점에 들러 ‘1일 1피자젤리’(하루에 피자젤리 하나는 꼭 먹는)를 사간다. 그런데 편의점 주인은 지효가 걱정된다. 모든 가맹점에서 피자젤리가 사라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편의점은 지효가 이해하기 어려운 질서로 움직인다. 판매량이 주춤하는 상품은 방출당하고 만다. 저자는 "편의점 본사에 전화해 피자젤리를 살려내라 화를 내고, 우리 매장에만이라도 넣어달라 사정해보고 싶지만 그건 능력 밖의 일"이라면서 "편의점 아저씨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꼬마 지효에게 '사실 버거젤리가 더 있다'고 우겨보는 것뿐"이라며 씁쓸해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조금 불편해질지도 모릅니다”

저자는 작은 일상과 큰 세상을 동시에 껴안는다. 애써 진열해놓은 줄을 망가뜨리며 아득바득 뒤에 있는 물건을 꺼내 가는 손님을 몰래 욕하거나, 무엇이든 진열해 버릇하는 직업병 때문에 지하철 의자에 나란히 앉은 사람들을 머릿속으로 재배열하는 모습은 실소를 자아낸다.

그러다 최저임금 인상 이슈를 향해 현실적인 문제를 제기하거나 프랜차이즈 본사와 제조사의 관계를 드러내며 생각할 거리를 남기기도 한다. 그가 손에 쥔 이야기의 뜰채가 이렇게나 촘촘한 건 매일 관찰과 기록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편의점 주인의 이토록 성실한 기록을 읽고 나면 한편으론 편의점 나들이가 예전보다 불편해질지 모른다. 뒤에서 물건을 빼려 할 때 괜히 눈치가 보인다거나 라면 국물이 덜 튀게 조심히 버리게 되는 일, 수백 종의 담배를 등지고 있는 근무자가 주문한 담배를 찾을 때까지 재촉하지 않는 마음 씀씀이 등.

그러나 저자의 인간애가 담긴 시선을 통해 편의점 카운터 안쪽의 삶을 들여다본다면 이 불편함에는 이전보다 한결 따뜻한 마음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더불어 1+1 행사의 비밀, 주요 상품별 매입가와 판매가 비교, '탕진잼'(탕진하는 소비습관)을 부르는 진열의 법칙, 요일별로 잘 팔리는 상품 목록 등 손님이 쉽게 접할 수 없는 정보를 통해 편의점의 뒷모습까지 속속들이 알 수 있다.(매일가는 편의점, 얼마나 아세요?·저자 봉달호·시공사·270쪽·사회학)

 

◆신간소개  

'고려 후기 한문학과 지식인' 고려 시대를 빛낸 한문학 작가를 꼽으라면 누굴까? 이규보, 이제현, 이색이 전부일까? 고려 후기를 ‘신흥사대부’라는 이름으로 모두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책은 고려 후기 한문학을 다양한 각도에서 탐구한다. 신흥사대부론에 대한 회의로 시작해 그간 공백기로 남아 있던 ‘원간섭기’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기존 연구의 시야를 확대하고 더 앞선 논의로 이끄는 출발점이다. (지식을만드는지식·3만8000원)

 

 

'다시 종려나무를 보다' 타이완 작가 우리화의 대표 작품이자 그의 미국 유학 체험이 녹아 있는 자전적인 소설이다. 1960년대, 타이완에서 미국 유학 열풍이 돌 당시 화인 디아스포라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타이완에선 유학생 소설로 불리기도 했으며 1960년대 북미 지역 화인화문문학의 대표 작품으로 꼽힌다. 2006년 '아주주간'에서 선정한 ’20세기 중국어 소설 100권’ 중 한 편이기도 하다. (지식을만드는지식·2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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