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운동가 안백린씨 인터뷰
비건으로 살기 힘든 이유? 채식 인프라 부족
미식가란 식탁 위의 죽음을 존중...균형 깨지면 질병

"인간의 식단에서 육류를 제외시키는 것은 인간 의식의 역사에서 인류학적 전환을 의미한다."(제레미 리프킨 '육식의 종말') 독일에만 800만명으로 추산될 만큼 전세계적으로 육식을 절제하고 채식을 실천하는 '채식주의자'가 늘어난다. 건강한 삶, 동물복지, 환경보호 등 채식주의의 동기는 다양하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소수의 문화다. 채식주의에 대한 막연한 반감도 없지않다. <그린포스트코리아>는 육식이 환경에 끼치는 영향, 법.제도.문화적 국내외 현황, 채식주의 기본지식을 알아보는 Q&A와 인터뷰 등을 통해 채식주의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기획기사 '비건 라이프'를 마련했다. 이제 식성도 '다양성'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근 사막에 위치한 농장동물보호소 '젠틀 반(The Gentle barn)'에서 동물과 놀고 있는 채식 운동가 안백린(26)씨. 이곳 동물들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좋아한다고 한다.(안백린 씨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근 사막에 위치한 농장동물보호소 '젠틀 반(The Gentle barn)'에서 동물과 놀고 있는 채식 운동가 안백린(26)씨. 이곳 동물들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좋아한다고 한다.( 안백린@dailyveganchefactivist @narrativeontheplat)/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박소희 기자] 미식은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아름다울 미(美)를 써서 본래 좋은 음식이라는 뜻이다. 미식가란 좋은 음식을 찾아 즐기는 사람을 일컫는다. 맛있는 음식이야 차고 넘치는데 좋은 음식이란 뭘까. 21일 채식운동가 안백린(26) 씨에게 대답을 듣기 위해 서울 남부터미널 근처로 향했다. 식당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싶었지만 마땅한 곳을 찾지 못했다. 국내 최초로 채식주의자들의 야간 선상파티를 기획한 '제법 놀줄 아는' 그가 비건(고기는 물론 유제품, 동물성 제품 등도 이용하지 않는 가장 엄격한 채식주의자)이기 때문이다. 결국 안씨는 근처 복합 단지 내 도서관 카페로 가자고 제안했다. 

“‘먹을 수 없는 상태’에 익숙하다. 보통은 배가 고프면 근처 식당에 들어가 먹는데 저는 배고프면 그나마 채식 식당들이 몰려있는 홍대나 이태원 쪽으로 이동해야 한다. 굳이 차를 타고 먼 거리를 가야 한다면 집에 가서 해 먹는다. 오랫동안 외출해야 하는 날이면 도시락을 싸서 다닌다. 미국에 있을 땐 채식이 어렵지 않았는데 한국에서는 먹는 것도 일이다."

왼손잡이가 왼손잡이용 가위를 사기 위해 문구점을 찾아 돌아 다녀야 하 듯, 국내 채식주의자들은 늘 채식 식당 찾아 삼만리다. 채식이 활발한 독일, 프랑스, 미국 등에서는 채식 인프라가 다양해 언제 어디서든 식사가 가능하지만 국내는 인프라가 부족해 굶거나 계란 뺀 김밥으로 떼우는 게 비일비재하단다.

"채식하는데 가장 힘든건 인프라 부족이고, 두 번째는 주변의 편견이다. 분자요리(분자의 성질을 변형시켜 만드는 요리) 등 전문적으로 채식요리를 배우기 위해 올초 로스앤젤레스에 갔을 땐 마트에도 채식 코너가 따로 마련돼 신념에 따른 가치 소비가 가능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비건은 멸치 육수와의 싸움이다. 그래서 '비덩'(덩어리 고기만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으로 타협하는 경우가 많다. 청국장이나 된장찌개에도 들어가니까. 정말로 웬만한 각오 없이는 힘들다. 저 역시 완전히 비건이라 할 수 없다. 가죽 쇼파에 앉은 적도, 어머니의 오리털 잠바를 입기도, 멸치 육수로 만든 된장찌개를 먹은 적이 있으니까. 단지 비건으로 살기위해 노력한다."

''를 집필중인 안백린씨. (박소희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인간은 맛으로만 사나(가제)'를 집필중인 안백린씨. (박소희 기자)2018.11.22/그린포스트코리아

안씨가 웬만한 각오 없이 살기 힘든 삶을 선택한 이유는 사실 ‘다이어트’였다. 날씬하면 사람들이 좋아해 주니까. 역설적이게 사회가 요구하는 날씬한 사람이 되기 위해 채식을 시작했는데, 채식을 시작해서 알았단다. 이 사회가 얼마나 잔인한 방식으로 여자와 음식을 소비하는지.

“채식해야 하니까 이것저것 찾아보는 중에 도축 관련 다큐멘터리를 봤다. 인간의 식탁을 채우기 위해, 나아가 우리의 식탐을 채우기 위해 동물들이 얼마나 끔찍한 시간을 사는지 보고 말았다. 우유는 임신한 소에게 짜낸 젖이다. 물론 대량생산 체제에서 소의 자연 임신을 기다릴 리 만무하다. 소에게 인공임신을 시키기 위해 포궁(자궁)에 사람 손을 넣는다.”

안씨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가 고등학교 때 처음 고기를 줄이기로 한 이유는 비록 다이어트였지만, 채식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인공 수정을 위해 소의 포궁을 헤집는 사람 손의 끔찍함이다.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임신을 당하는 소. 그렇게 태어난 송아지가 암컷이라면 다시 매일매일 젖을 짜는 어미의 시간을 산다. 우유에서 소, 소에서 송아지로 이어진 생각은 자연스럽게 에코페미니즘으로 외연을 넓혀갔다. 

“자연과 나, 나와 타자는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균형을 이룬다. 생태계의 균형이 깨지면 자연이 파괴되고, 몸의 균형이 깨지면 질병이 발생한다. 우리는 삼겹살을 안 먹어도 살 수 있지만 돼지는 기업의 상품이 되기 위해 가학적인 방식으로 사육된다. 우리가 돼지에 가한 폭력이 구제역으로 발현되고, 살처분 당한 돼지가 묻힌 땅에서는 한동안 농작물이 자라지 않는다. 균형이 깨지면 병이 난다. 공장식 축산 농가를 가보면 정말 끔찍하다. 그 끔찍한 시간을 견디며 축적된 스트레스와 두려움, 고통을 우리가 먹는다고 생각해보라. 제가 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다. 해외에서는 축산 농가 CCTV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는데 우리도 법제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료생물학을 전공하고 영성신학 석사과정을 밟은 안씨는 정신과 육체 역시 유기적 관계로 본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몸의 면역력이 떨어지듯 몸과 정신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좋은 음식이란 가학이 아닌 유기적 관계속에서 자연스럽게 자란 것을 말한다. 미식가란 식탁 위의 죽음을 존중할 줄 아는 이라 믿는다. 좋은 음식을 먹으면 몸이 건강해지고, 몸이 건강하면 생각이 건강해지며, 건강한 생각은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가고, 건강한 사회는 생명을 존중할 줄 안다. 선순환, 그가 채식을 고집하는 까닭이다. 

안 씨가 수박으로 만든 '참치' 사시미와, 루꼴라, 김, 그리고 너트류로 만든 비건 '계란' 노른자.(안백린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안백린씨가 수박으로 만든 '참치' 사시미와, 루꼴라, 김, 그리고 너트류로 만든 비건 '계란' 노른자 분자 요리. 분자 요리는 음식의 질감 및 요리 과정 등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새롭게 변형시키거나 전혀 다른 형태로 음식을 창조하는 것을 말한다(안백린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채식을 선언한 뒤 받는 질문이 있다. 너 하나 그런다고 달라질 것 같냐고. 그는 지구를 구할 수는 없지만 오늘 하루 채식이 병아리 한 마리를 살렸다고 말한다. 농림축산식품부 추산 지난해 도축된 닭은 9억마리에 달한다. 국민 1인당 연간 18마리의 닭을 먹고 있으니, 그의 채식이 다른 생명을 살렸다는 말은 아주 틀린 건 아닌 듯 하다.

프랑스 채식주의 단체 '비건 임팩트'에 따르면 가축 사료 재배에 쓰이는 비료와 가축들의 분뇨에 따른 질소산화물 배출량은 전체 배출량의 65%에 이른다. 농장 동물들이 소화과정에서 배출하는 방귀(메탄)는 이산화탄소보다 23배 온실효과가 있다. 안씨에게 채식은 지구에 대한 인간의 영향을 제한하는 실천 가능한 해결책 중 하나다.

“육식을 한 사람보다 채식을 한 사람의 방귀가 이산화탄소를 덜 배출한다고 한다. 제가 대기오염을 덜 시키고 있는 셈이다.(웃음) 소 1kg당 15000리터의 물을 사용하지만 감자는 1kg당 900리터의 물만 사용하면 된다. 자원도 덜 소비하고 있는 셈이다." 

채식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영양 걱정을 많이 한다. 안씨는 "채식하는 사람은 몸보신을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한약은 약이 되는 초로 달인다. 우리는 그걸 보약이라고 부른다"고 전한다. 채식만 한다고 영양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고기를 먹는다고 영양이 넘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채식 한다고 감자튀김만 먹으면 영양이 부족할 것이고, 지나친 육식 위주의 식단은 각종 성인병을 일으키기도 한다. 어떻게 먹느냐가 문제지 채식이 문제는 아닌 것이다. 

안씨는 요즘 인디밴드 ‘전범선과 양반들’의 전범선씨와 세를 모았다. 12월 중순이면 사찰음식을 재해석한 ‘소식(@soseekseoul)’을 용산구 해방촌에 함께 문을 연다. 안씨가 그곳 주방장이다. 물론, 육식은 팔지 않는다.  

"생명의 가치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 자원 소비와 대기오염은 더 줄어들 것이다. 하나 둘 모이다보면 그게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되지 않을까.”

 

ya9ball@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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