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산업 탄소 배출량, 항공기·선박 합한 것보다 많아
“2050년엔 패션산업이 전세계 탄소 1/4 소비” 전망도
‘한국도 폐의류에 생산자책임 부여를’ 주장 힘 실릴듯

유행에 맞춰 자주 사고 자주 버리는 ‘패스트패션’ 현상이 환경오염 ‘주범’으로 지목됐다.(퀸즐랜드 대학교 제공).2018.11.20/그린포스트코리아
유행에 맞춰 자주 사고 자주 버리는 ‘패스트패션’ 현상이 환경오염 ‘주범’으로 지목됐다.(퀸즐랜드 대학교 제공).2018.11.20/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권오경 기자] ‘패스트 패션’ 현상을 업은 패션산업이 전 세계 환경을 망가뜨리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연구 결과는 충격적이다. 항공기와 선박을 합한 것보다 많은 탄소를 패션산업이 배출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도 유럽처럼 폐의류에 생산자책임을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환경매체 노트르플라넷은 “지난 17일부터 오는 25일까지 이어지는 유럽 폐기물감축 주간(SERD)을 계기로 프랑스자연환경연합이 환경에 섬유산업이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결과, 탄소 배출량이 항공기와 선박의 것을 모두 합한 것보다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최근 보도했다.

매체에 따르면 ‘패스트 패션’ 현상 심화로 인한 의류 소비 증가는 심각하고 다양한 환경 문제를 낳는다. 섬유 생산과정에서 독성 화학물질이 쓰이고 의류를 매장까지 유통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대기오염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패션산업이 석유 다음으로 치명적인 오염원으로 꼽히는 이유다.

먼저 섬유 산업은 물 소비와 수질오염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청바지 벌을 만드는 데는 7000~1만1000ℓ, 티셔츠 한 장을 만드는 데는 2700ℓ의 물이 필요하다. 이런 식으로 패션산업은 전 세계 배출량의 20%에 해당하는 폐수를 만든다. 영국 카우스에 본사를 두고 있는 엘런맥아더재단은 섬유 염색이 물을 오염시키는 세계 두 번째 요인이라는 보고서를 펴낸 바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특히 합성섬유의 오염 문제가 심각하다. 매년 바다에 50만톤의 플라스틱을 배출하기 때문이다. 생수병 500억개와 맞먹는 양이다.

대기오염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섬유산업의 탄소 배출량은 연간 120억톤이다. 이는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10%에 이른다. 국제선 비행기나 선박이 뿜는 탄소를 합한 것보다 많은 수치이기도 하다.

프랑스자연환경연합에 따르면 매년 전 세계에서 약 1억개의 옷과 장신구가 팔린다. 특히 유럽의 의류 소비는 15년 만에 두 배로 치솟아 폐기물량도 그만큼 늘었다. 이 같은 추세는 ‘일회용 패션’ 혹은 ‘패스트 패션’이 과소비로 이어지는 현상을 방증한다.

문제는 패션산업의 지속가능성이다. 유엔환경계획(PNUE)은 “의류 폐기물 재활용률이 1%도 되지 않는다”면서 “대부분의 옷이 그대로 버려지는 경향이 유지되면 2050년엔 세계 탄소 4분의 1이 패션산업에서 소비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프랑스자연환경연합에서 폐기물 배출방지 및 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엘레노어 큐빅은 “패션산업을 통해 토양과 해양에 버려지는 독성 물질과 플라스틱까지 감안하면 패션산업의 지속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할 수 있다”며 “소비자들이 질 좋은 옷을 오래 입고 적게 사는 습관을 들이면 산업의 관행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패스트 패션’에 중독된 한국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패션산업 규제가 느슨한 까닭에 유럽보다 상황이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환경부 환경통계포털에 게시된 ‘폐기물 처리현황’ 통계표에 따르면 전국에서 발생하는 폐섬유류 규모는 2016년을 기준으로 284톤에 이른다. 2012년엔 186톤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폐섬유류 급증세를 짐작할 수 있다. 같은 기간 소각 처리된 폐섬유류의 비율은 62톤에서 78톤으로 늘었다.

이처럼 폐섬유가 급증하는 까닭은 가계의 의류 소비액은 줄었으나 섬유를 생산하는 제조업체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월평균 가구 소비지출 구성에서 의류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2년 6.8%에서 2016년 6.2%로 줄었고, 같은 기간 월평균 지출액은 16만5883원에서 15만7964원으로 줄었다. 반면 섬유 및 의복과 관련한 제조업 공장의 수는 같은 기간 1만2338곳곳에서 1만2844곳으로 늘어났다.

생산이 늘고 소비가 줄면 폐기물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옷값이 저렴해지면서 총 지출액이 줄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패스트 패션’이 한창 유행하고 있다는 걸 고려하면, 낭비 자원이 증가하고 환경오염이 가중됐다는 점 또한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패션산업이 유발하는 환경 유해성을 어떻게 규제하느냐다.

유럽의 경우 섬유제품 화학성분의 잠재적인 유해성을 소비자들에게 정확히 알리고 폐의류에 생산자책임을 부여하기 위해 2007년 6월1일 화학물질의 등록·평가·허가·제한 규정(REACH)을 만들었다. 이 규정은 의복 제조업체 및 수입업체에 제품의 화학성분을 수량화하고, 엄격한 검사 절차를 진행하도록 요구한다. 많은 양의 원유를 필요로 하는 폴리에스테르로 섬유제품을 제조하기 때문이다. 매립한 폴리에스테르는 분해될 때까지 최소 500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각하면 발암물질인 휘발성 유기화합물을 방출한다.

유럽과 달리 한국은 폐의류에 대해 생산자책임을 부과하지 않는 것은 물론 패션산업의 위해성에도 관심이 없는 형편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에서 의류가 빠진 이유에 대해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는) 위해성이 있는 것만 관리하는 제도로서 폐의류가 위해성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의류는 제도로 특별히 관리하지 않는다. 시장 내에서 발생하는 편익이 있기 때문에 재활용센터에 자율적으로 처리를 맡긴다”고 말했다.

roma2017@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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