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원 마을기술센터 '핸즈' 대표 인터뷰

우리 사회는 몇 차례 환경의 역습을 당했다. 가습기 살균제, 여성용품, 화장품, 물티슈 등 일상 용품에서 유해물질이 발견됐다. 다중이용시설, 회사 사무실, 심지어 아이들의 교실에서도 반(反) 환경 물질들이 검출된다. 여기에 바깥으로 나가면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는 등 곳곳에서 반환경적인 것들과 마주한다.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친환경을 추구하는 이유다. 이에 <그린포스트코리아>는 친환경 기업‧단체와 친환경 현장에서 직접 뛰고 있는 이들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함께 공유해본다. [편집자주]

[그린포스트코리아 서창완 기자] “줄넘기 안에 발전기와 정류회로, 배터리 등이 들어 있고요. 줄넘기를 넘게 되면 발생하는 회전운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변환해 전기를 사용할 수 있어요.”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에 있는 마을기술센터 '핸즈'에 들어서자 박범준(19)군이 적정기술 제품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수능일인 지난 15일 친구들은 수리영역 문제를 풀고 있을 시간이었다. 작년부터 핸즈 일원으로 일하고 있는 박군도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책상 앞에 앉아 문제를 풀고 있었을지 모른다. 적정기술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은 박군의 현재이자 미래의 꿈이다.

박군이 꿈을 키워가는 핸즈에서는 다양한 적정기술 실험이 이뤄진다. 태양 전지판으로 전기를 생산해 분수를 뿜고, 나무로 만든 LED 손전등은 보조배터리만 꽂아도 불이 켜진다. 이곳에서는 미세먼지 측정기도 직접 만든다. 더 좋은 기성품이 있는데 왜 불편한 일을 하는 걸까. 박군의 일터인 핸즈의 정해원(45) 대표에게 적정기술이 뭔지 물었다.

박범준(19)씨가 지난 15일 햇빛 분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창완 기자) 2018.11.15/그린포스트코리아
박범준(19)군이 지난 15일 햇빛 분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창완 기자) 2018.11.15/그린포스트코리아

“저는 적정기술을 자전거라고 설명해요. 자전거는 걷는 것보다 빠르지만 환경오염 물질을 내지 않잖아요. 보다 빠른 이동 수단인 자동차, 비행기 등과 비교하면 불편한 기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전히 살아남았잖아요. 완벽하지는 않지만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기술, 만능은 아니지만 의미 있는 기술을 적정기술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적정기술은 기술혁신으로 일어나는 환경오염·자연고갈 등 부정적 측면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했다. 기술이 사용되는 사회공동체의 정치·문화·환경적 조건을 고려해 지속적 생산과 소비를 해보자는 의미다. 1960년대 중반 경제학자 슈마허가 제안한 ‘중간기술’이 시초다. 정 대표는 교육을 통해 적정기술이 시민들 삶에 한 발 다가서는 걸 꿈꾼다.

“원자력 발전소보다는 재생에너지를 개발하자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근데 재생에너지도 완벽한 기술이 아니라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고요. 이런 문제들이 서로 부딪히지만 나에게로 직접 와 닿지 않잖아요. 그런데 시민들이 직접 전지판 가지고 체험해보면 느낌이 달라지는 거죠. 이런 체험으로 적정기술이 실질적으로 시민 삶에 다가서길 바라는 마음에 프로그램을 만들었죠.”

태양전지판에 비친 햇빛으로 물을 뿜는 햇빛 분수. (서창완 기자) 2018.11.15/그린포스트코리아
태양전지판에 비친 햇빛으로 물을 뿜는 햇빛 분수. (서창완 기자) 2018.11.15/그린포스트코리아

정 대표는 세계적으로 적정기술을 널리 알린 제품들이 우리나라 현실과는 맞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적정기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발명품인 '라이프 스트로우' 등이 그렇다. 라이프 스트로우는 전기 충전과 필터 교환 없이도 오염된 물을 깨끗하게 해 주는 휴대용 정수 빨대다. 깨끗한 물을 먹기 힘든 제3세계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적정기술하면 제3 세계를 돕는 기술로 알려진 이유이기도 하다.

“이건 슈마허가 얘기한 중간기술이란 철학의 핵심을 뭐로 보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한국에는 적정기술이 필요 없고, 아프리카나 제3 세계에 필요한 기술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재생에너지를 말한 것처럼 에너지문제 등에 목적성을 갖는 운동도 적정기술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2014년에 설립된 핸즈는 올해로 5주년을 맞았다. 그 시간 동안 시민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상시 직원 3명으로 안정적인 체계가 갖춰진 지금은 교육프로그램 요청이 부쩍 늘었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바쁜 일정을 소화해 온 정 대표가 조금은 버겁다고 느낄 정도다.

정해영 대표가 지난 15일 줄넘기 발전기 키트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서창완 기자) 2018.11.15/그린포스트코리아
정해원 대표가 지난 15일 줄넘기 발전기 키트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서창완 기자) 2018.11.15/그린포스트코리아

교육이 잦아지면서 근본적인 물음도 생겼다. 환경을 지키는 교육이 또 다른 소비가 돼 버린 건 아닌가 싶어서다. 정 대표는 많은 인원이 와서 똑같은 물건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을 보면서 우리가 더 많은 쓰레기를 만들고 소비를 조장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런 고민은 키트(조립용품 세트)만들기로 이어졌다. 정 대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름의 철학을 지키기 위해 재료를 소비하지 않고 교육적 의미를 전달하는 일을 꾸준히 고민한다.

핸즈에서는 에너지 효율보다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자연에너지를 이용해 보면서 전기를 만드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도 새삼 알 수 있다. 태양광 핸드폰 충전기의 경우 옥상에서 3~4시간 정도 충전해야 마음 놓고 쓸만한 양을 충전할 수 있다. 서울시에서 보조하는 태양광, 빗물저금통 등을 교육프로그램으로 마련해 놓은 것도 그런 이유다. 전문가가 오면 설치는 빠르지만 원리는 이해할 수 없다.

정 대표 스스로도 체험을 꾸준히 하고 있다. 금산에 있는 부모님 집을 직접 설계해 짓고 태양 전지판도 달았다. 전기 사용량은 0킬로와트, 전기요금은 800원 남짓 나온다. 정 대표 가족은 국내 최초 제로에너지 공동주택 단지인 노원에너지제로주택에 준전문가로 입주해 살고 있다. 이곳에 살면서 재생 에너지 효율과 에너지 비용 부과 방법 등을 조율하는 일을 한다. 정 대표는 효율이 입증된 태양광에 비해 지열 효율은 검증이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지난 15일 햇빛 건조기 안에 음식물들이 말라가고 있다. (서창완 기자) 2018.11.15/그린포스트코리아
지난 15일 햇빛 건조기 안에 음식물들이 말라가고 있다. (서창완 기자) 2018.11.15/그린포스트코리아

직접 느끼고 체험하는 게 중요해서일까. 정 대표는 최근 진행되는 '쓰레기 제로 캠페인' 등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일회용컵 제로’ 등 무거운 문제들이 충분한 논의없이 쉽게 진행되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다. ‘제로’란 말이 상징성은 있지만 무조건 쓰지 말라는 게 쉽게 와닿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저도 일회용컵 안 쓰려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써야 할 때가 있잖아요. 직장 출근하는 엄마들한테 쓰레기 제로 하라고 하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우리가 뭘 위해서 일회용품을 쓰지 말아야 하는 건지 알았으면 좋겠어요. 일회용컵 쓰지 말자면서 비싼 텀블러 1000원에 파는 게 답은 아니잖아요. 뭐 하나만 바꾼다고 되는 단순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회사를 설립하긴 전 정 대표는 대안 학교 교사로 9년 동안 일했다. 환경에 대한 고민이 대안학교를 선택하게 했다. 충청남도 금산군에서 농사짓고, 과학을 가르치며 처음 적정기술을 접했다. 사정이 생겨 서울로 올라오게 됐지만 여전히 교육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셈이다. 15년 가까이 교육자로 살아온 그가 우리나라 환경교육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적정기술이 환경교육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론 중심이거나 ‘북극곰 힘들다’는 식이면 현실에 와 닿지 않잖아요. 적정기술은 내 손으로 직접할 수 있는 걸 보여주고 실천으로 이어가게 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죠.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환경을 느낄 수 있게 해줘야 해요. 무조건 ‘아껴라, 쓰지 마라’가 아니라 환경과 인간이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걸 느끼고 고민할 수 있는 사람으로 키워야 하지 않을까요.”

seotive@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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