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일상 언어의 과도한 우리주의 꼬집는 '차별의 언어'

붓다는 "공정심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살피는 마음에서 온다"고 했다. 그러나 '다원주의'를 표방하는 현대사회는 하나의 중심이 사라지고 다양한 관점이 팽팽하게 맞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쉽게 가치판단하기 어렵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 했던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세상의 옳고 그름을 살피기 위해 격주 화요일과 목요일 번갈아 '화목한 책읽기' 코너를 운영한다. [편집자주]  

차별의언어∥지은이 장병업∥글담∥240쪽∥2018년 10월 1일 출간∥정치비평
차별의언어∥지은이 장병업∥글담∥240쪽∥2018년 10월 1일 출간∥정치비평

이 책의 한 단락 : (버지니아 공대 살인 사건) 범인이 중국계가 아니라 한국계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한국인의 반응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들은 이 사건으로 미국 내 한국인의 이미지가 나빠지지는 않을까, 또 한인들에 대한 보복 살인이 발생하지는 않을까 걱정했지요. 그런데 미국의 반응은 뜻밖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한국과는 무관한 일, 즉 조승희라는 한 사람의 개인적 일탈로 규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민자들을 미국 사회에 잘 적응시키지 못한 자신들의 정책을 탓했습니다. 

[그린포스트코리아 권오경 기자]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언어는 지식습득의 도구이기 때문에 ‘갇힌 언어’를 쓸수록 사고의 폭이 좁아지고 편견이 생기기 쉽다. 평소 사용하는 일상 언어만 살펴봐도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문화와 사고방식을 지녔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언어는 사고를 지배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여전히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문화적 혹은 윤리적으로 적절하지 못한 표현과 단어를 의식하지 못하고 사용한다.

저자인 장한업 이화여대 교수는 이 책에서 언어가 한 개인의 사고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살핌으로써 다문화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한국인의 언어풍경을 지적한다.

◇ 왜 한국인은 ‘우리’라는 표현을 과도하게 사용할까

100% ‘토종’ 한국인이 존재할까? 유튜버 A씨는 외국인 남자친구와 재미로 유전자 검사를 신청했다. 그는 100% 비율 혹은 95% 비율로 한국, 나머지는 몽골 혹은 중국 유전자가 나올 거라 예상했지만 결과는 달랐다. 그의 유전자 구성비율은 일본 48.2%, 중국 32.2%, 몽골 17.3%, 네팔 1.2%, 핀란드 1.1%였다.

유전자 검사 업체에 한국인 샘플이 없어 일본인으로 나왔다고 하더라도 네팔과 핀란드 등 예상치 못한 혈통이 섞여 있는 걸 보면 ‘순수혈통 한국인’은 자의적 개념으로 보인다.

한국을 단일민족국가로 여기는 것도 마찬가지다. 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국제결혼이 적어 사람들은 한국을 ‘순수 한국인’이 사는 ‘단일민족국가’로 착각하기 쉽다.

이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단어가 바로 ‘우리나라’다. 외국어에는 나라를 표현할 때 ‘우리’를 붙이지 않는다. 반면 한국에선 나라 앞에 ‘우리’를 붙이는 것이 한국인의 '공동체 의식'을 나타낸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우리’ 외 사람을 배척하는 말로 비칠 수 있다. 우리라는 단어에 속한 집단은 자신도 모르게 울타리를 치고, 울타리 밖의 사람을 가른다. 울타리는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보호막이 되지만 그 밖에 있는 사람에겐 차단막이 된다.

저자는 이 같은 표현이 '우리'와 다른 것을 포용하지 못하는 사고방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 왜 '틀리다'와 '다르다'를 혼용하는 사람이 많을까

저자는 “왜 ‘틀리다’와 ‘다르다’를 혼용하는 사람이 많을까? 왜 이탈리아 국수는 ‘스파게티’라고 부르면서 베트남 쌀국수는 퍼라고 부르지 않는 걸까?”라고 반문한다.

실제 많은 한국인이 “너와 난 생각이 틀리구나”라고 말한다. 사실에만 사용할 수 있는 ‘틀리다’를 잘못될 수 없는 성질의 것에 자주 혼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언어 습관은 차이를 마치 틀린 것으로 여기게 만들 수 있다. 피부색이나 종교가 다른 사람을 틀린 사람처럼 여길 수 있단 것이다.

차별의 언어는 음식에도 적용된다. 한국에서 베트남 국수는 쌀로 뽑았다는 의미에서 쌀국수로 불린다. 베트남 쌀국수는 베트남식 명칭인 ‘퍼’라고 부르지 않으면서 밀로 만든 이탈리아의 국수는 밀국수가 아니라 스파게티라고 부른다.

저자는 이 차이가 우리 사회에 깔린 고정관념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한국인은 ‘베트남은 못사는 나라, 이탈리아는 잘사는 나라’로 인식한다. 못사는 나라에서 온 음식은 음식만 받아들이고 언어는 받아들이지 않지만 잘사는 나라에서 온 음식은 그 음식과 함께 언어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저자는 국제결혼가정을 '다문화가정'이라고 부르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는 사실도 지적한다. 한국인 아버지와 외국인 어머니로 이루어진 가정을 다문화가정이라고 부르려면 한국인 부모를 둔 가정을 ‘단문화가정’이라고 전제해야 하는데 이 전제 자체를 단일의식의 산물로 보는 것이다.

저자는 ’다문화‘라는 잘못된 단어가 갖는 파급력을 경고한다. 다문화를 혼성 문화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문화, 즉 타[他]문화로 보는 점을 지적하면서 그는 이로 인해 이민자 교육 및 정책 역시 차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말한다.

한민족으로도 일컫는 조선족도 예외가 아니다. 재미동포, 재일동포라는 말은 자주 쓰지만 재중동포라는 말은 잘 쓰지 않는 세태를 지적한다. 그는 조선족을 중국 정부가 소수 민족 중 하나의 이름으로 쓰는 조선족이 아니라 재중동포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사고는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 수준을 넘지 못한다. 그런데 한국인이 쓰는 언어를 보면 스스로 ’사고의 울타리‘를 치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은 한국인의 일상 언어에서 나타나는 과도한 ’우리주의‘를 꼬집고, 단일민족과 단일문화의 허상을 드러낸다. 나아가 우리 곁에 있으면서 ‘우리가 되지 못한 사람들’을 돌아보고, 어떻게 하면 이들과 더불어 잘 살 수 있는지를 고민한 결과도 녹아 있다.

저자는 “이제 무심코 사용하던 말에 의문을 제기하고 사고의 변화를 이끌어낼 때”라고 말한다. 이 책은 독자에게 ‘습관적으로 쓰던 언어가 혹시 내 사고를 깎아내리고 있던 것은 아닌지’, ‘어떤 언어로 어떤 미래를 지향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차별의언어·장병업·글담)

 

◆신간소개 

'트로이의 여인들' : 트로이 전쟁 직후, 그리스군의 노예로 전락한 트로이 여인들의 비극적인 운명이 묘사된다. 헤카베와 그녀의 며느리인 안드로마케, 그녀의 딸 카산드라의 입을 통해 전쟁이 트로이 여인들에게 가져다준 끔찍한 결과가 밝혀진다. 에우리피데스는 이 작품을 통해 전쟁의 참혹한 양상과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잃고 고통으로 신음하는 인간 존재의 덧없음을 드러낸다. (지식을만드는지식/1만4800원)

 

'잘 살고 있나요' : 신간 '잘 살고 있나요'는 살아오면서 삶의 본질과 가치를 찾기 위해 흔들림 없는 마음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들려주는 일상의 생각거리로 가득한 고백서이다. 사람들은 성공한 인생, 행복한 삶, 나이 들어도 끄떡없는 건강한 삶의 가치를 높이 치고 또 애써 추구하며 살고 있다.  살면서 원하는 것을 이루려는 의지와 함게 삶을 향한 긍정적인 에너지로 만들어내는 지혜도 필요하다. 그런 지혜는 '마음공부'를 통해 가능할 것이다. (모아북스/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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