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토기들과 금귀걸이 한 쌍 함께 부장

문화재청은 강릉 초당1처리분구 하수관로 정비사업부지 내 유적에서 신라 찰갑(札甲)이 출토됐다고 1일 밝혔다(문화재청)2018.11.01/그린포스트코리아
문화재청은 강릉 초당1처리분구 하수관로 정비사업부지 내 유적에서 신라 찰갑(札甲)이 출토됐다고 1일 밝혔다(문화재청)2018.11.01/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박소희 기자] 문화재청은 강릉 초당1처리분구 하수관로 정비사업부지 내 유적에서 신라 찰갑(札甲·쇠, 구리, 가죽 등의 작은 조각을 가죽끈으로 엮어 만든 갑옷)이 출토됐다고 1일 밝혔다. 

찰갑은 직사각형 형태로 동-서 방향으로 놓인 토광목곽묘에서 출토됐다. 토광목곽묘 일부는 조사지역의 남동쪽 경계 밖으로 나와 있는데, 지금까지 확인된 규모는 길이 약 3.05m, 폭 1.4m, 깊이 25cm 정도다. 바닥에는 지름 5~10cm의 작은 돌을 사용해 시상대(屍床臺)를 마련했으며 시상대 가장자리로 목곽의 흔적이 남아 있다. 

찰갑은 시상대의 서단벽 쪽에서 발견됐으며 몸통을 보호하는 부분 이외에 목의 뒷부분을 보호하는 목가리개(경갑, 頸甲), 어깨를 보호하는 어깨가리개(견갑, 肩甲)가 함께 확인됐다. 찰갑 옆에는 긴목항아리(장경호, 長頸壺), 짧은목항아리(단경호, 短頸壺) 등 신라 토기들과 금귀걸이 한 쌍이 함께 부장됐다. 신라 토기의 연대를 고려하였을 때 4세기 대 강릉지방에 주둔했던 신라 장수의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395년(신라 내물왕 42년) 말갈이 북쪽 변방(현재 강릉 인근)에 침입해 신라가 크게 패했고, 450년(신라 내지왕 34년)에는 하슬라(강릉의 옛 지명) 성주 삼직(三直)이 고구려의 변방 장수를 살해한 사건 등이 전하고 있어 4~5세기대 강릉지역을 중심으로 고구려와 신라 간에 국경 충돌사건이 빈번했음을 보여준다.

그동안 강릉지역에서는 많은 수의 신라 고분이 조사된 바 있는데, 특히 초당동 고분군의 대형 석곽묘에서 금동관, 관장식(관식, 冠飾), 호접형(蝴蝶形, 나비모양) 금동 관모장식 등 신라 상류층의 물건들이 출토된 바 있어 이른 시기부터 신라가 강릉 지역을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인식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발굴기관인 강원고고문화연구원에 따르면 이번에 초당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찰갑 역시 이른 시기부터 신라가 강릉 지역을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인식해왔음을 보여주는 고고학적 자료다. 

강원고고문화연구원은 “완전한 형태의 찰갑이 영동 지역에서 발견된 첫 번째 사례로서 신라의 영동지역 진출의 시점과 의의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학술적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ya9ball@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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