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감수성 심어주는 김성현 '그린디자이너' 인터뷰

우리 사회는 몇 차례 환경의 역습을 당했다. 가습기 살균제, 여성용품, 화장품, 물티슈 등 일상 용품에서 유해물질이 발견됐다. 다중이용시설, 회사 사무실, 심지어 아이들의 교실에서도 반(反) 환경 물질들이 검출된다. 여기에 바깥으로 나가면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는 등 곳곳에서 반환경적인 것들과 마주한다.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친환경을 추구하는 이유다. 이에 <그린포스트코리아>는 친환경 기업‧단체와 친환경 현장에서 직접 뛰고 있는 이들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함께 공유해본다. [편집자주]

 
김성현 작가가 '핵맹' 작품 이미지를 넣은 그릇을 소개하고 있다.(권오경 기자)2018.11.1/그린포스트코리아
김성현 작가가 '핵맹' 작품 이미지를 넣은 그릇을 소개하고 있다.(권오경 기자)2018.11.1/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권오경 기자] “인간은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한 생명체 중 한 종일 뿐, 지능이 있다고 해서 환경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얻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그린디자이너로 10년 이상 활동하고 있는 김성현 작가는 환경이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이 같이 말했다.

그는 "도시로 사람들이 몰리면서 사람들은 환경과 거리가 멀어졌고, 이로 인해 환경문제를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생태 감수성 및 환경 감수성은 사라져버렸다"고 지적했다.

김 작가도 도시에서 나고 자라 자연이나 환경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책을 읽다가 '생태맹'이라는 단어를 알게 됐는데 내가 바로 '생태맹'이었구나 싶었다"면서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나는 방학 때마다 할머니댁에 내려가 곤충채집을 하거나 바깥에 나가 뛰어 놀기도 했는데 요새 아이들은 미세먼지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나가거나, 아예 나가지를 않으니 이런 상황을 마주하면 환경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환경문제 해결의 출발점은 ‘환경 감수성’ 키우는 일

그렇다면 급격히 악화되는 환경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김성현 작가가 ‘그린디자이너’로서 환경문제에 첫 발을 들여놓은 것은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했다.

김 작가는 2006년 우연히 그린디자이너이자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교수인 윤호섭 작가의 전시 ‘디자인 앤 오더 에브리데이 인 라이프’(Design and order everyday life)를 보게 됐다.

‘친환경적 삶과 디자인’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 전시에서 김 작가는 환경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당시만 해도 제게 환경문제는 개인이 해결하기엔 너무 큰 과제였다”면서 “산업사회다, 자본주의 사회다하면서 생산과 소비가 너무 많아지니까 사회 전반적으로 각성을 하고, 생산을 줄이거나 소비를 줄이는 등 제도적 압력을 통해 거시적인 수단을 동원하지 않으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이어 “그런데 윤호섭 교수님의 전시를 보면서 ‘그린아트가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또다른 방법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품게 됐고, 직접 이에 대한 답을 찾고자 그린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어느새 10년이상 그린디자이너로서 활동하고 있는 김 작가는 여전히 환경문제를 위한 묘안을 찾는 중이다. 그는 “환경문제를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하고,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면서 “그래도 10년 전보다 한 가지 알게 된 것은 ‘환경 감수성’이 사회 저변에 깔리면 자연스럽게 환경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본질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억지로 사회의 속도를 조절하기보다 사람들이 환경문제를 자발적으로 의식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환경위기의식’ 느끼게 하는 그의 작품들

김성현 작가의 첫 그린디자인 작품은 지구온난화를 주제로 한 포스터였다. 그는 파도가 밀려오는 모래사장에 발자국을 찍어 포스터에 담았다. 이 발자국은 인류가 걸어온 과거의 흔적을 의미하는 동시에 미래에 찾아올 발자국까지 함의한다.

김 작가는 “2007년 동해 망상 해수욕장을 방문했을 때, 한 꼬마아이가 모래사장에서 성벽을 만들며 흙장난을 치다가 파도가 오니까 헐레벌떡 도망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면서 “해수면이 점점 높아지는 상황에서 그 꼬마 아이의 모습이 전 인류의 모습처럼 보였다. 아이가 만들어둔 성벽은 파도에 휩쓸려 자취를 감췄는데 이것도 마치 우리 인류가 일궈온 모든 것이 자취를 감추는 듯 보였다”고 말했다.

김성현 작가의 지구온난화를 주제로 한 포스터.(권오경 기자)2018.11.1/그린포스트코리아
김성현 작가의 지구온난화를 주제로 한 포스터.(김성현 작가 제공)2018.11.1/그린포스트코리아

그의 두 번째 작품에서 낭비와 소비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김 작가는 늘어나는 소비를 강압적으로 줄여보자는 메시지를 담아 화장지를 반으로 잘랐다. 그는 “작품을 만들면서 알게 된 건데, 각 나라마다 화장지 크기가 다르다”면서 “애기들 손은 작고 어른 손은 크니 사이즈별로 규정을 달리해서 작게 만드는 방법도 소비를 줄이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고 덧붙였다.

그는 화장지뿐 아니라 유리컵도 반으로 잘라냈다. 그는 “식당에서 우리가 먹는 음료나 물도 컵의 크기에 따라 낭비되는 경향이 있다”면서 “사선으로 컵을 잘라서 아주 조금만 채울 수 있게 만들었다. 사선을 부각한 이유는 각도에 따라 시각적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도 있지만 원래 컵의 크기에 비해 얼마나 소비량이 줄었는지 알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충격요법”이라고 설명했다.

김 작가는 늘어나는 소비를 강압적으로 줄여보자는 메시지를 담아 화장지와 컵을 잘랐다.(권오경 기자)2018.11.1/그린포스트코리아
김 작가는 늘어나는 소비를 강압적으로 줄여보자는 메시지를 담아 화장지와 컵을 잘랐다.(김성현 작가 제공)2018.11.1/그린포스트코리아

 

김 작가는 늘어나는 소비를 강압적으로 줄여보자는 메시지를 담아 화장지와 컵을 잘랐다.(권오경 기자)2018.11.1/그린포스트코리아
김 작가는 늘어나는 소비를 강압적으로 줄여보자는 메시지를 담아 화장지와 컵을 잘랐다.(김성현 작가 제공)2018.11.1/그린포스트코리아

◇나도 혹시 생태맹?...‘가시방석’에 앉은 인간

색맹 검사지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 ‘생태맹’과 ‘핵맹’도 있다. 김 작가는 재생사회로 들어서면서 ‘생태맹’, ‘핵맹’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켜 ‘문맹’이라 표현하고, 컴퓨터 활용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을 ‘컴맹’이라고 말하듯 생태맹·핵맹은 환경문제에 공감하지 못하고 생태계가 처한 위험성 혹은 핵이 가져오는 위협 등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을 표현하는 말이다.

도롱뇽과 황새 그림을 넣은 작품 '생태맹'.(김성현 작가 제공)2018.11.1/그린포스트코리아
도롱뇽과 황새 그림을 넣은 작품 '생태맹'.(김성현 작가 제공)2018.11.1/그린포스트코리아
도롱뇽과 황새 그림을 넣은 작품 '생태맹'.(김성현 작가 제공)2018.11.1/그린포스트코리아
도롱뇽과 황새 그림을 넣은 작품 '생태맹'.(김성현 작가 제공)2018.11.1/그린포스트코리아
원전이 가장 많은 나라 미국.2018.11.1/그린포스트코리아
원전이 가장 많은 나라 미국.2018.11.1/그린포스트코리아
원전이 두번째로 많은 나라 프랑스.2018.11.1/그린포스트코리아
원전이 두번째로 많은 나라 프랑스.2018.11.1/그린포스트코리아

김 작가는 ‘생태맹’에는 황새·도롱뇽 등 위기에 처한 생물종을 그려 넣었고 ‘핵맹’에는 원전이 많은 국가 순으로 국기를 그려넣었다. 그는 “도시에서 생활하면서 환경과 멀어지다 보니 사람들이 생태계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들게 되고, 그 중요성에 대해서도 실감하기 어려워진 것 같다”면서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마주했을 때는 우리가 얼마나 불안한 위험을 안고 살아가는지 절실히 깨닫게 됐다. 이 사실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자 '생태맹'과 '핵맹' 작업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김 작가는 '핵맹' 전시에 방사능 모양의 ‘가시방석’을 만들어 선보이기도 했다. 그는 “원전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없다. 만져지지도 않기 때문에 원전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서는 시각적, 촉각적 매개물이 필요했다”면서 "우리 모두 결국엔 가시방석 위에 불편한 마음으로 앉아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설명했다.

방사능 마크로 만든 '가시방석'.2018.11.1/그린포스트코리아
방사능 마크로 만든 '가시방석'.2018.11.1/그린포스트코리아

◇ 인류가 후대에 남길 유적은 '쓰레기 더미'?

김 작가는 현재 다양한 환경문제를 담은 사진이나 그림, 잘라지고 버려진 은행나무와 같은 기타 환경이슈를 담은 소재를 사용해 모아이 석상을 재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우리가 쓰고 버리는 쓰레기의 양이 너무나 많은데 여기에 분해되는데 필요한 시간도 우리 수명보다 훨씬 길다. 결국 쓰레기는 우리가 후세대에 남긴 유적처럼 될 것”이라면서 “인류의 선조들은 우리에게 모아이 석상 같은 신비로운 것을 물려줬지만 우리 후손은 우리가 남긴 쓰레기를 보고 어떤 느낌을 받을까”라며 우려를 표했다.

김 작가는 "완벽하지 않더라도, 단 1%만이라도 좋은 흔적을 이 세상에 남겼으면 좋겠다"면서 "무수한 1%가 모여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린디자이너로서 사람들에게 좋은 정서적 '흔적'을 남기고자 작품활동을 통해 꾸준히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환기하겠다"고 전했다.

roma2017@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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