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로 폐허가 된 인근 도시. (Pixabay 제공) 2018.10.26/그린포스트코리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폐허가 된 인근 도시. (Pixabay 제공) 2018.10.27/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홍민영 기자]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23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제4호 원자로가 폭발했다. 원자로 뚜껑이 날아가면서 인간과 환경에 치명적인 방사능이 아무런 제약 없이 공기 중으로 쏟아져 나왔다.

20세기 최악의 사고로 손꼽히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사고다. 사고후 방사능 처리 작업에 투입된 22만6000명이 피폭됐고, 이중 2만5000명이 사망했다. 유엔은 이 사고로 최소 900만명이 방사능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했다. 인간뿐 아니다. 동식물도 피폭됐고, 식수 및 환경 역시 오염됐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2011년 3월 11일. 이번에는 일본 후쿠시마에서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발생했다. 규모 9.0의 대지진으로 원자로를 식혀주던 긴급 노심냉각장치가 작동을 멈추고 수소폭발이 일어나 엄청난 양의 방사능 물질이 유출됐다. 

이 두번의 원자력발전소 사고는 인류에게 ‘위험사회(risk society)’라는 말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켰다. 

위험사회란 1986년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이 저서('위험사회’)에서 처음 언급한 말이다. 

이 책은 근대사회로 접어들어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인류의 삶은 한층 풍요로워졌지만 예전에 없던 새로운 위기를 맞게 됐다고 경고한다. 

대형 건축물의 붕괴, 비행기 추락, 선박 침몰, 신종 질병의 발생, 이상기후와 자연재해, 화학약품이나 독극물·방사능에 의한 오염, 환경오염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일시적이 아닌 일상적이고 지속적이라는 점에서 더욱 위험하다.

이 책이 출간된 해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발생하면서 ‘위험사회’는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됐다. 전 세계 국가들은 하나 둘씩 사회 안에 도사리고 있는 각종 위험 요소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일본의 경우 이를 매우 빨리 깨달은 국가 중 하나다. 경제가 고도로 발전하던 시기인 1950년대에서 1970년대에 환경오염으로 인한 치명적인 질병이 발생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미나마타병, 니가타 미나마타병, 욧카이치 천식, 이따이이따이병 등 4가지 질병을 그들은 ‘4대 공해병’이라 부른다.

미나마타병은 1950년대 중후반 일본 구마모토현 미나마타시에서 발생했다. 인근의 질소(CHISSO)주식회사가 오염된 폐수를 하천에 방류하면서 폐수 속 메틸수은이 어패류에 축적되고, 어패류를 먹은 주민들이 수은중독에 걸린 사건이다.

수은에 중독된 주민들은 중추신경이 마비돼 감각장애, 시야협착, 난청, 언어장애, 손발떨림, 정신착란 등에 시달렸으며 심하면 사망하기도 했다. 임산부의 몸에 축적된 수은이 태아에 영향을 미쳐 태아성 미나마타병도 발생했다.

미나마타병은 1956년 공식화되면서 ‘먹이사슬’과 ‘환경오염’의 연쇄작용으로 일어난 인류 최초의 공해병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칭을 얻었다. 

니가타 미나마타병은 1964년 화학회사인 쇼와전공(昭和電工)에 의해 일어난 수은중독사건이다. 첫 번째 미나마타병과 원인 및 증상이 비슷해 ‘제2의 미나마타병’이라고 불린다. 이 역시 화학공장에서 배출된 폐수 속 메틸수은이 원인이었다.

욧카이치 천식은 1960년대 미에현 욧카이치시에서 천식 환자가 집단 발병한 사건을 말한다. 석유화학단지 욧카이치 콤비나트가 뿜어대는 아황산가스로 환자들은 목과 머리의 통증, 만성폐쇄성폐질환, 호흡곤란 등에 시달렸다. 1000여명 이상의 환자가 발생했다.

이따이이따이병은 4대 공해병 중 가장 유명하다. 1910~1970년대 일본 도야마현에서 발생한 병으로 가미오카광업(神岡鉱業)이 카드뮴이 함유된 폐수를 강에 버려 그 물을 마신 주민들이 카드뮴중독을 일으켰다. 환자들은 뼈가 물렁해져 재채기만 해도 골절이 됐고, 고통이 너무나 심해 연일 "이따이 이따이"(아프다 아프다)라고 외쳤다고 한다. 2014년 9월말 기준으로 국가에서 인정한 환자 수는 198명, 주요 관찰자는 408명이며 환자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들 질병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환경오염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병이라는 것이다. 4대 공해병에 충격을 받은 일본은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위험사회’의 개념을 인식하고 연구했다. 잊을 만 하면 언론이나 방송매체에서 ‘위험사회’에 대해 언급한다.  

(Pixabay 제공) 2018.10.27/그린포스트코리아
(Pixabay 제공) 2018.10.27/그린포스트코리아

우리나라에서는 그보다 늦은 1990년대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을 계기로 ‘위험사회’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후 그 틀이 점점 넓어져 환경문제에 이르고 있다. 특히 최근 발생한 가습기살균제 참사, 살충제 계란 파동, 독성 생리대, 라돈 침대, 미세 플라스틱 문제 등이 사람들의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다.

현대 위험사회의 특징은 통신기술의 발달로 사람들이 ‘집단 기억(collective memory)’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 사건과 연관된 집단이 실시간으로 사건 진행을 지켜보며 동일한 기억을 갖게 되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우리 모두는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했는지 알고 있다. 살충제 계란 파동 때 사람들은 계란이 들어간 모든 음식을 꺼렸다. 독성 생리대 사건이 터지면서 안전하다고 알려진 생리대 한 박스의 가격이 평소보다 15배 폭등한 것도 보았다. 즉 우리는 같은 트라우마(정신적 상처)를 공유하게 된 것이다. 

위험사회의 환경문제는 원인이 복잡하고 다층적이어서 입증하기도 어렵고, 피해자들이 보상받기도 어렵다. 기업과 돈이 얽혀 있을수록 더하다. 설령 보상을 받는다 하더라도 원상복구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미나마타병을 앓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말 그대로 목숨만 건졌을 뿐, 평생을 폐인처럼 지내야 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 역시 평생 호흡기 질병과 싸워야 한다. 아무리 많은 돈이 있어도 인간의 삶을 통째로 살 수는 없다.

그러므로 위험사회의 환경문제는 예방이 최우선이다.

최근 중국은 수도권지역 미세먼지 농도 감축 목표를 5%에서 3%로 하향 조정했다. 미국과의 무역전쟁에 대비해 환경오염 방지보다 경제성장을 우선시하겠다는 것이다. 그런 중국의 뒷모습에서 미나마타병이 두 번 반복됐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이 우선인가. 가치의 무게를 잴 때 대다수의 인간은 눈에 보이는 것부터 선택한다. 돈은 눈에 보이지만 환경은 보이지 않는다. 

그 선택이 또 다른 위험사회로 이어질 수 있음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hmy10@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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