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살, 흙'

붓다는 "공정심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살피는 마음에서 온다"고 했다. 그러나 '다원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현대사회는 하나의 중심이 사라지고 다양한 관점들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쉽게 가치판단하기 어렵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 했던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세상의 옳고 그름을 살피기 위해 격주 화요일과 목요일 번갈아 '화목한 책읽기' 코너를 운영한다. [편집자주]  

'말, 살, 흙'∥저자 스테이시 앨러이모∥그린비∥424쪽∥2018년 10월 5일 출간∥생태·환경 일반
'말, 살, 흙'∥저자 스테이시 앨러이모∥그린비∥424쪽∥2018년 10월 5일 출간∥생태·환경 일반

 

이 책의 한 단락 : 예를 들면 플라스틱판으로 만들어진 가구는 꾸준히 기침, 천식, 발작, 피부 발진, 피로,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 그리고 암을 유발할 수 있는 포름알데히드를 방출(또는 가스 배출) 할 것이다. 신체의 경계선들을 째는 것- 외과 수술, 주사제 투입, 이식수술, 그리고 여타 과정들-이 표준적인 의료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근대 의학 모델은 인간 몸을 환경과 서로 이웃한다거나 또는 카펫과 소파처럼 겉보기엔 불활성적인 물건들에 취약한 것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하지만 환경질병을 가진 이들은 자기 몸이 물질세계와 인접해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경험한다. 따라서 어떤 것도 ‘외부적’이라거나 변함없이 ‘외부에’ 머문다고 확신할 수 없다.

[그린포스트코리아 권오경 기자] “환경은 ‘살된 존재’의 세계이다.”

환경은 개발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환경’을 ‘빈 공간’으로 인식하고 개발을 위한 토대로 바라봤다. 살아있는 생명체들, 상호작용, 관계들···. 자연으로 간주되던 모든 것을 빼앗겨버린 환경은 점점 자연세계와 맺는 관계로부터 분리됐다. 이제 도시계획가나 산업가, 경제학자, 개발자 등도 ‘환경’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물질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물질을 수동적으로 의미화를 기다리는 ‘조각’들로 인식하면서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빈 서판’으로 평면화시켰다. 물질은 인간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변형돼왔으며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인간은 각종 화학물질, 독성물질 등 ‘물질의 힘’에 의해 오히려 변형당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 스테이시 앨러이모(Stacy Alaimo)는 이 같은 구성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나 ‘물질과 환경’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비인간 자연을 단순히 비활성적이고 텅 빈 공간으로 취급할 것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의 필요, 요구, 행위를 지닌, ‘살된 존재’의 세계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인간 신체성과 인간을 넘어서는 세계가 맺는 물질적 상호연결을 중시하고, 이 물질 작용 능력이 더 광범위한 인식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인식할 때 제대로 된 ‘인간’과 ‘환경’이 결코 분리된 것으로 여겨질 수 없는 현실들과 씨름할,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입장들을 정립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몸은 우리 사회에서 정말 ‘생물학적’일까

자연과 페미니즘의 관계는 독특하다. 서구에서 ‘여성의 신체성’은 인간의 초월성, 합리성, 주체성, 행위능력의 영역 바깥에 놓여 왔다. 여성은 오랫동안 자연이라는 ‘진흙탕’에 빠진 피조물로 묘사돼 왔다.

따라서 많은 중요한 페미니즘 논쟁과 개념은 자연과 문화를 엄격히 대립시켰다. 페미니즘의 가장 혁명적 개념인 사회적 성(gender)이라는 개념과 생물학적 성(sex)의 구분또한 자연과 문화 사이의 날카로운 대립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이처럼 수없이 쏟아져나오는 페미니즘 이론들은 어떻게 ‘몸’이 사회적, 문화적, 경험적으로 '생산‘되는지 설명하는 데 집중한다.

그러나 앨러이모는 “페미니즘 이론이 자연으로부터 도망치지 말아야 했다”고 말한다. 그는 “특정 그룹의 인간들과 비인간 생명체를 모욕하고 그들에게 침묵을 강요하기 위해 조성돼 온 ‘젠더화된 이원론’으로부터 도망칠 것이 아니라, 자연·문화, 몸·마음, 대상·주체, 자원·행위능력 등을 타파하기 위해 노력해야 마땅했다”고 강조한다.

◇이론적 만남의 장소 ‘횡단-신체성’

앨러이모는 몸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으로 ‘횡단-신체성’ 개념을 제시한다. ‘횡단-신체성’ 개념은 인간 신체와 비인간 자연을 가로지르는 운동이다.

앨러이모는 환경과 물질을 말하는 이전의 이론들과 수사학들이 갖는 문제점을 비판하며 인간 몸과 비인간 자연의 물질성에 생산적으로 개입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춘다.

횡단은 서로 다른 장소들을 가로지르는 운동임을 부각하기 때문에 횡단-신체성은 인간 몸, 비인간 생명체, 생태계, 화학작용물, 그리고 여타 다른 행위자들의 종종 예측 불가능하고 반갑지 않은 작용들을 인정하는 유동적인 공간을 열어준다.

다시 말해 ‘횡단-신체성’은 신체이론, 환경이론, 과학연구가 생산적인 방식으로 서로 만나고 섞이는 이론적 장소를 지칭한다.

◇인간의 몸은 ‘산업 쓰레기’이다?

미국 환경보호청은 "인공·합성·독성물질을 엄청나게 함유하는 미국 시민들의 몸이 산업쓰레기로 재분류됐다"고 경고한 적 있다. 랠프 존슨 환경보호청장은 당시 “인간의 몸은 이제 평균 35%만 유기체일 뿐”이라고 말했다.

현대의 세제, 실리콘 임플란트, 가공 치즈식품 등으로 발생한 변화 때문에 인간의 피부조직이 국토의 표토와 접촉하는 것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오염된 땅이 인간에게 유해하다는 것이 아니라, 오염된 인간의 몸이 땅에게 유해하다는 것이다. 미국 환경보호청장의 경고는 몸, 마음, 물질, 땅, 과학기술 등이 얽히고 설켜 서로에게 ‘침투’하고 있는 현실을 꿰뚫고 있다.

한 독성물질의 이동경로를 면밀히 추적하다 보면 결국 환경보건, 직장보건, 노동운동, 환경정의, 역학(疫學), 환경주의, 생태의학, 장애연구, 인권, 반지구화, 소비자 인권, 아동보건, 아동복지와 같은 활동이 상호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앨러이모는 이렇게 연결된 수많은 분야와 대상을 ‘몸된 자연’이라고 칭한다. 그리고 이 다양한 ‘몸된 자연’들의 상호교환과 상호연결은 ‘횡단-신체성’의 개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순간에 비로소 드러나게 된다.

‘말, 살, 흙’은 이러한 논의를 펼쳐내는 데 있어 다양한 소재와 문학작품을 가져와 활용한다.

1900년대 초반 노동계급의 활력이 스며든 에로틱한 자연의 몸을 묘사한 메리델 르 쉬에르와 규폐증으로 죽어가는 광부를 묘사한 뮈리엘 뤼케이서의 작품 세계를 대조하고, 퍼시벌 에버렛의 소설 ‘분수령’을 통해 환경정의의 위기 앞에서 과학적 객관성이라는 개념이 정치 투쟁에 의해 얼마나 복잡다단 해지는지 보여준다.

다양한 여성들이 남긴 ‘몸의 회고록’을 탐구하는 한편, 토드 헤인즈의 영화 ‘세이프’, 론다 즈윌링거의 사진집 ‘박탈당한 자’ 등도 분석해놓았다. 다나 해러웨이, 마거릿 애트우드, 옥타비아 버틀러 등도 논의에 소환된다.

우리 사회에 ‘몸’에 대한 인식이 많이 높아지고는 있지만 ‘건강한 몸’이라는 평면적 차원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마저도 의료, 운동, 섭식의 차원에서나 다루어질 뿐이다. 그러나 점점 더 다양하고 강력해지는 화학물질들의 존재와 국경에 구애받지 않는 환경 이슈들 속에서 우리는 건강의 문제가 단순히 내 몸 하나를 꼼꼼히 보살핀다고 될 일은 아님을 이미 깨닫고 있다.

새집증후군, 방사능 우려 수산물, 초미세먼지 등을 통해 우리의 몸이 과학기술, 정부정책, 심지어 정부의 외교력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게 된 것이다.

이 책은 몸과 몸을 둘러싼 환경을 총체적이고 종합적으로 사고하게 함으로써 우리의 시야를 확장시키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말, 살, 흙'·저자 스테이시 앨러이모·그린비·424쪽·2018년 10월 5일 출간·생태 환경 일반)

roma2017@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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