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양환경보전법 위해성평가제도 업계 불만 고조

[그린포스트코리아 주현웅 기자] 건물이 세워진 한 땅이 중금속이나 유류 등에 오염됐다고 하자. 정화를 해야 하는데 방법이 다양하다. 생물학적 공정, 식물재배 정화법, 고형화를 통해 오염물질 확산을 막는 방법도 있다. 심지어 건물을 부수고 토양을 갈아서 세척하는 법도 있다.

그런데 이들 중 마지막 방법은 겉보기에 ‘최후의 수단’처럼 비친다. 실제로 그렇다. 건물주는 정화·철거비용을 다 내야하고, 그 안의 사람들은 이사를 가거나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마지막 방법은 대개 ‘적극적 정화방법’으로 불린다.

하지만 이 방법은 최후의 수단인 동시에 의무이기도 하다. 다만 차별이 존재한다. 만약 오염된 부지가 공공기관 소유라면 적극적 방법 외 다른 방법으로 정화해도 된다. 하지만 민간이 소유한 건물이라면 반드시 이런 식의 적극적 방법으로만 정화해야 한다.

자연히 민간에선 억울함을 토로한다. 토양오염은 분명 잘못된 일이지만, 다른 정화방법이 빤히 있음에도 구태여 건물을 부숴야 한다는 사실을 선뜻 받아들이긴 어렵다. 무엇보다 공공기관은 예외라고 하니 황당하기까지 하다.

토양환경보전법 위해성평가제도는 업계에서 대표적인 악법으로 꼽힌다.(픽사베이 제공)2018.10.13/그린포스트코리아
토양환경보전법 위해성평가제도는 업계에서 대표적인 악법으로 꼽힌다.(픽사베이 제공)2018.10.13/그린포스트코리아

토양정화 관련법인 ‘토양환경보전법 토양오염 위해성평가 제도’. 2005년 7월 도입된 이 법은 집단간 갈등을 유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해 수년 전부터 개정이 추진됐지만 여러 이유로 번번이 무산됐다. 업계에선 대표적인 ‘악법’으로 손꼽는다.

오는 25일 환경부 국정감사가 예고돼 있다. 이를 기점으로 해당 법안의 개정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환경부도 앞서 개정을 시도한 전력이 있는 만큼 불가능한 일도 아니란 시각이 다수다.

환경부는 지난해 5월 17일 이 법 개정안을 입법예고를 했다. 토양오염 위해성 평가 대상 확대를 골자로 한 ‘토양환경보전법 하위법령 개정안’이다. 적극적 정화가 곤란한 부지에 도로, 철도, 건축물을 새로 포함하려고 했다.

적극적 정화는 통상 ‘토양세척법’을 의미한다. 고로 개정안은 도로, 철도, 건축물 부지가 오염됐을 때 건물을 부수고 땅을 갈아엎는 토양세척법 외 다른 방법으로도 토양정화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게 내용의 골자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개정안은 물거품이 됐다. 환경단체 반발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환경단체는 이를 기업에 대한 특혜로 규정했다. 건축물을 위해성평가 대상에 포함함으로써 토양오염에 기여한 기업의 정화 책임을 사실상 면제하려는 것 아니냐는 논리였다.

환경단체의 이런 주장은 김은경 환경부 장관이 취임하면서 힘을 받았다. 환경단체 출신인 김 장관이 이들의 입장을 반영하면서 개정안이 없던 일이 된 것이다. 환경부는 이를 여론수렴의 결과라고 말했지만, 환경업계를 비롯한 재계의 생각은 정반대다.

당시 환경부가 말한 ‘여론’은 환경단체의 목소리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입법예고 당시 개정에 따른 환경적·사회적 기대효과까지 나열했던 환경부였다. 그런데 3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돌연 입장을 바꾼 것이다.

환경부
환경부

당시 환경부에 따르면 위해성평가 대상을 확대하면 기대되는 효과가 상당하다. 대표적으로 위해도를 고려한 맞춤형 오염관리 등으로 환경적 위해 저감과 토양 생태계의 지속가능한 관리가 가능해진다.

환경부는 개정안을 통해 “사회적으로도 정화책임자에게 합리적 수준의 법적 책임을 부여할 수 있다”며 “능동적 정화를 유도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정화 의지가 있음에도 오염부지 특성상 이행 기간 내 정화가 곤란할 경우 등을 두루 고려해 법 적용이 가능하단 의미였다.

이 같은 분석을 환경부만 내놓은 게 아니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도 연구자료를 통해 같은 결과를 발표했다. KEI는 새로운 환경부 장관으로 내정된 조명래 전 단국대 교수가 원장을 맡았던 곳이다.

이 기관은 2016년 7월 ‘토양정화 곤란 부지의 최적 관리방안 연구’를 통해 위해성평가제도의 개정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에 따르면 현행 토양환경보전법 위해성평가제도는 경제성은 물론 환경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먼저 경제성 측면을 보면 현행법은 토양오염원의 차단 및 차폐기술, 오염물질의 유리화 등 고형화 기술 등이 토양오염원의 정화방법에서 배제돼 있다. 따라서 관련 산업이 발전하기 힘든 구조를 갖고 있다.

오염물질을 유리화, 고형화함으로써 확산을 막는 기술 등은 이미 국제적인 환경기술이다. 해외에서는 여러 오염부지 정화에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 기술 활용도가 낮은 우리로서는 국내는 물론 외국 공장의 오염부지에 대해서도 정화업체들이 경쟁력을 가질 수가 없다.

환경성 면에서도 마찬가지다. 현행법이 지정하고 있는 오염 부지의 정화방법은 카드뮴, 납, 비소 등의 중금속 및 윤활유, 다이옥신과 같이 자연적 분해가 힘든 오염물질로 오염된 부지를 정화하기 어렵다. 이는 대다수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또한 이처럼 오염물질이 복합적으로 존재할 경우에는 적정한 세척제의 선정이 어렵고, 세척제가 또 다른 오염을 일으킬 우려도 따른다. 특히 이 공법에 소요되는 비용은 오염토의 굴착 비용보다 훨씬 높아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를 종합하면 토양오염의 원인과 상태 등에 따라 적합한 정화방법이 따로 있지만, 현행법은 그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드문 경우다. 수년째 개정이 요구된 이유고, 업계가 환경부를 불신하는 이유기도 하다.

KEI 연구팀은 “미국 등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현재까지 국가재산부지만을 대상으로 위해성평가를 적용하고 있다”며 “이번 연구결과를 토대로 민간재산부지이며 ‘정화곤란부지’까지 위해성평가를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KEI는 위해성평가제도 대상 범위 확대 필요성을 역설했다.(KEI제공)2018.10.13/그린포스트코리아
KEI는 위해성평가제도 대상 범위 확대 필요성을 역설했다.(KEI제공)2018.10.13/그린포스트코리아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환경부는 민간의 부지에 대한 위해성평가제도 적용 대상 확대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 그 대신 공공부문 부지 대상 확대를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이 같은 내용을 핵심으로 한 하위법령 개정안을 현재 추진 중이라고 전했다.

민간 부지 적용 확대가 안 된다는 이유는 궁색하기만 하다. '민간기업 등이 위해성평가 후 각종 검증과 운영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마련된 법 내용이 부실해 시기상조'.

업계의 불만은 커지고 있다. 한 토양조사 업계 관계자는 “불과 1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현행법이 현장의 문제를 반영하지 못해 개정한다더니 이제와 딴 소리를 한다”며 “그 배경이 무척 궁금할 따름”이라고 푸념했다.

실제로 개정안 입법예고 당시 환경부는 “개정안이 시행되면 환경적 측면에서는 오염부지의 특성과 위해도를 고려한 맞춤형 토양오염 관리로 환경적 위해 저감 및 예방이 가능해 질 것”이라며 "사회적 측면에서는 정화책임자에게 합리적 수준의 책임을 부여함에 따라 정화책임자가 보다 능동적으로 정화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 국민생활 또는 공익에 지장을 최소화하면서 토양오염을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환경부도 물론 이러한 입장변화에 할 말은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작년에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후 전문가·환경단체와 포럼 등을 진행한 결과에 따라 계획을 바꾼 것”이라며 “보다 세심한 법제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포럼은 비공개로 단 3차례만 진행됐다. 

chesco12@greenpost.kr

저작권자 © 그린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