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동 에코하우스' 저자 고금숙씨 인터뷰

 

우리 사회는 몇 차례 환경의 역습을 당했다. 가습기 살균제, 여성용품, 화장품, 물티슈 등 일상 용품에서 유해물질이 발견됐다. 다중이용시설, 회사 사무실, 심지어 아이들의 교실에서도 반(反) 환경 물질들이 검출된다. 여기에 바깥으로 나가면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는 등 곳곳에서 반환경적인 것들과 마주한다.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친환경을 추구하는 이유다. 이에 <그린포스트코리아>는 친환경 기업과 친환경 현장에서 직접 뛰고 있는 이들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함께 공유해본다. [편집자주] 

 

평범하게 살다가 에코페미니즘을 만나 세상의 다양한 가능성을 엿보게 됐다는 망원동 에코하우스의 저자 고금숙씨(41). 세상은 남녀, 자연과 문명, 이성과 감성으로 단순 이분화되지 않는다. 존재 만큼의 세계가 있는 것이다.(박소희 기자)2018.10.12/그린포스트코리아
평범하게 살다가 에코페미니즘을 만나 세상의 다양한 가능성을 엿보게 됐다는 망원동 에코하우스의 저자 고금숙씨(41). 세상은 남녀, 자연과 문명, 이성과 감성으로 단순 이분화되지 않는다. 존재 만큼의 세계가 있는 것이다.(박소희 기자)2018.10.12/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박소희 기자] 선생님이 되라는 여느 부모님의 평범한(?) 부추김에 고려대학교 가정교육과에 입학했지만 화장실에 붙어 있던 모집공고 하나로 삶의 좌표가 완전히 뒤바뀐 이가 있다. '망원동 에코하우스' 저자 고금숙(41)씨.

대학 입학을 핑계로 서울로 상경해 그토록 바라던 독립생활을 20여년 이어가로 있는 고씨는 “신도림 가는 열차는 정말 신도림만 가는 줄 알았던 지방 청년이었다. 대학시절 학교 화장실 문에 여성주의 교지 ‘석순’ 모집공고가 붙어 있었는데 보마자마 지원했다. 평소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었서라기 보다 그 모집공고를 그날 거기서 봤기 때문에. 교지 모집공고가 있었다면 교지 편집위가 됐을 것이다. 팔자소관이랄까. 석순에서 여성주의 교지를 만들며 자연스럽게 여성인권, 젠더, 성평등, 피억압자와 억압자, 소수자, 자연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다른 존재를 들여다보기 시작하자 다양한 삶의 메아리가 들렸다. 그건 제 삶의 가능성을 여는 소리였다. 석순에서 에코페미니즘을 통해 세상을 보는 훈련을 한 것 같다”고 말한다.

현재 고 씨가 활동을 하고 있는 망원시장에 가면 곳곳에 특별한 현판이 보인다. “비닐봉지 대신 장바구니 빌려드립니다(보증금 500원)-자기 용기 환영”

재래시장을 플라스틱 없는 곳으로 만들어보고 싶어 망원시장 상인회와 (주)제로마켓(대표 배민지)이 손잡고 진행하는 ‘껍데기는 가라 NO 플라스틱 마켓, 알맹@망원시장(이하 알맹망원)’ 캠페인은 16개의 매장이 자발적으로 협약했으며, 현판이 달린 곳에서는 장바구니도 빌릴 수 있다. 빌린 장바구니는 망원시장 내 카페M으로 가져가 보증금을 돌려받으면 된다. 보증금 반환시 자체 제작한 적립금도 준다. 친환경 실천으로 받은 적립금은 망원시장에서 현금처럼 사용이 가능하다. 고금숙씨는 전통시장 내 검정비닐, 이중포장, 속비닐의 사용을 줄여보자는 알맹망원의 프로젝트 매니저다.  

다음은 고씨와 나눈 일문일답.

-에코페미니즘(ecofeminism)이 뭔가

▲나도 잘 안다 할 순 없지만 환경운동과 여성해방운동 사상을 통합한 생태여성론으로 현재 정의하고 있다. 자연과 문명, 남성과 여성, 이성과 감성 등 이 사회의 이분법을 뒤집는 관점이라 볼 수 있겠다. 인간이 경제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착취했듯 가부장중심의 한국사회는 여성을 모성애라는 이름으로 착취했다. 대지를 어머니에 비유하는 대지모사상조차 사실 그 맥락에 있다. 토지(자연)에서 생활에 필요한 물자의 대부분을 얻어 물질적 풍요로움을 얻었듯 여성 역시 한 사회의 풍요를 위해 희생되야 하는 자연이었다. 한국사회는 엄마의 희생을 ‘숭고’라는 허울로 오랫동안 포장했다. 에코페미니즘은 자연과 여성을 착취의 대상이 아닌 생성의 주체로 전환시켜 생명의 가치, 평등한 삶의 가치를 실현하려는 사상이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하고, 마누라는 빌려줘도 자동차는 안 빌려주는 사회로부터 해방되자?

▲그렇다. 우리는 태아가 성장하는 여성의 생식기관을 자궁(子宮)이라고 부른다. 아들 '자'에 집 '궁'자를 쓴 것이다. 자궁이 어디 아들만 품나. 태아를 품는 집이라는 포궁(胞宮)이라는 단어가 사전에 버젓이 있는데 말이다. 에코페미니즘은 남성중심사회(Hestory)에서 억압당한 여성, 동물, 환경 등의 존재감을 투척하는 움직임이랄까. 여성도, 자연도, 동물도, 성소수자도 사회·경제·문화의 주체로 보자는 거다. 

-자연을 경제 주체로 본다? 잘 와닿지 않는다 

▲'도롱뇽 소송 사건'을 생각하면 쉽다. 정부가 경부고속철도 건설 노선을 발표하며 도롱뇽의 서식지가 파괴될 위기에 처했고 지율스님이 천성산에 사는 ‘도롱뇽’을 원고로 내세워 경부고속철도 공사 중지 가처분 신청을 낸 사건이다. 이같은 경우를 '자연대리소송'이라고 하는데, 대부분  말 못하는 동물이 어떻게 피해 당사자가 될 수 있냐고 치부한다. 기업대리소송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말이다. 자연을 주체로 보았다면 인간이 버린 플라스틱에 고통받는 해양생물은 없었을 것이다. 자연의 주체성을 말살하고 정복해온 결과가 어떤가. 천일염에도 미세플라스틱이 발견됐다. 저는 플라스틱을 먹으면서 살고 싶지 않다. 

-망원시장 장바구니 대여 프로젝트도 그런 의미에서 시작한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거다.  상인들 설득하는 일이 참 만만치 않았고 결국 과대포장을 막는 ‘소포장(묶음포장) 해체’는 실패했다. 

‘껍데기는 가라 NO 플라스틱 마켓, 알맹@망원시장(이하 알맹망원)’사업에 자발적으로 협약한 가게 입구에는 “비닐봉지 대신 장바구니 빌려드립니다(보증금 500원)-자기 용기 환영”이라는 문구가 적힌 현판이 달려 있다.(박소희기자)2018.10.12/그린포스트코리아
‘껍데기는 가라 NO 플라스틱 마켓, 알맹@망원시장(이하 알맹망원)’사업에 자발적으로 협약한 가게 입구에는 “비닐봉지 대신 장바구니 빌려드립니다(보증금 500원)-자기 용기 환영”이라는 문구가 적힌 현판이 달려 있다.(박소희기자)2018.10.12/그린포스트코리아

 

-전통시장은 비닐봉투값을 받지 않던데 맞나

▲시장은 마트와 달리 비닐 사용 규제를 받지 않는다. 규제 대상도 아니니 비닐 인심이 참으로 후하다. 찢어질까봐 한 번 더 넣어준다는 시장인심 한 번쯤은 받아보지 않았는가. 그래서 장바구니 대여, 자기 용기 사용과 함께 소포장 벗기기 독려도 진행했다. 비닐봉지 한 장은 170만개의 미세플라스틱이 된다.

-원하는 양을 각자의 용기에 담아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싶었던 것인가

▲콩나물 한 봉지, 당근 세 개 들이 한 봉지, 사과 8개 들이 한 봉지가 아니라 콩나물 500원어치, 당근 한 개, 사과 2개 등 원하는 양을 승강이 없이 살 수 있는 전통시장이 됐으면 했다. 혼자 사는 가구는 늘었는데 사는 양은 많으니 그게 다 음식물 쓰레기다. 더군다나 묵음포장된 물건을 다시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주는 겪이니 비닐사용 억제를 위해 묶음포장을 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런데 상인 설득에 실패했다

▲판매 시간을 절약하고 상품을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단다. 이용객들이 준비된 상품을 빨리 사가기를 더 원한다는 거다. 산업화시대의 '빨리빨리'가 우리의 삶에 내면화된거다. 그 관성을 깨는 것이 참 쉽지 않더라. 저울에 무게를 달고 과일의 갯수를 세며 나눌 수 있는 대화가 얼마나 많은데. 가령 생선을 살 때 주의해야 할 점이나 맛있는 과일을 고르는 방법같은 삶의 고급 기술들 말이다. 

-장바구니를 대여하는 이용객들은 많나

▲많지 않다. 빌리고 반납하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니까. 대안으로 집에 남아도는 종이봉투를 기증받아 자발적 협약 매장에 드리고 있다. 비닐보다 종이봉투에 상품을 담아주는게 재활용 면에서 더 낫지 싶어서다. 가장 활발하게 종이봉투를 사용하시는 분이 반찬가게 사장님이다. (고씨는 기증된 종이봉투를 모아 망원시장의 한 상점으로 향한다. 밑반찬을 판매하고 있는 사장님은 고씨를 익숙하게 맞이한다. 고씨 역시 가게 사정을 훤히 알고 있다는 듯 종이봉투를 제위치에 놓는다.)

사람들이 기증한 종이봉투를 비닐봉투 대신 사용하라고 건네는 고금숙씨.
망원시장의 한 반찬가게에 기증받은 종이봉투를 가져다주는 고금숙씨.(박소희 기자)2018.10.12/그린포스트코리아

 

-‘인간이 멸망하는 것이 진정한 친환경’이라는 말이 나돌 지경인데 이런다고 세상이 바뀔까

▲우주의 개미똥구멍만한 존재가 무슨 큰 변화를 줄 수 있겠나. 옳다고 여기는 것에 불씨를 만드는 것, 그정도면 충분하다고 본다. 나는 선물처럼 태어났고, 많은 이들이, 그들로 구성된 사회가 나를 키웠다. 사회적 돌봄이 없었다면 나는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혼자 자라는 존재는 없다. 나를 키운 이 사회에 소임을 다 하는 것뿐이다. 사회와 무관한 사람이 어딨나. 제아무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라고 해도. 

-모두 자신의 삶에 책임지며 살지 않는다 

▲물론 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의식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강요할 수 없는 문제다. 여성환경연대라는 시민단체에서 11년을 일했고, 지금도 이렇게 '알맹망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는 있지만, 참 손으로 모래를 쥐는 일 같다. 아주 조금이지만, 조금씩 나아가는 느낌이 드는데, 그게 원동력이다. 꽤 즐기고 있고, 즐겁다. 오랫동안 몸담고 있던 조직을 나와 프리랜서로 활동하다보니 생존에 대한 맛도 꽤 쫄깃하다. 

-사회적 책임에 무심한 이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그래서 제도가 있는거다. 제도만큼 단기간 내 실효성이 큰 것도 없다. 생태운동도 그렇고 여성해방운동도 그렇고 개인의 실천도 중요하지만 제도 없이는 바위로 계란치기다. 규제가 풀리자마자 일회용 용기에 배달되는 자장면을 보자. 제도가 그들이 쓰레기를 함 부를 버릴 수 없도록, 불편해도 다회용 용기에 자장면을 배달하도록 만들면 된다. 물론 제도는 사람들의 실천으로 완성된다. 

플라스틱을 삼킨 알바트로스 새를
빌려간 장바구니는 망원시장 내 카페M에서 보증금을 반환받을 수 있다.(박소희 기자)2018.10.12/그린포스트코리아

-그렇지만 ‘쓰레기 대란’처럼 큰 사고가 일어나야 문제라고 인식하지 않나

▲선사고, 후개선은 사실 근본적인 해결이라고 볼 수 없지다. 특히 환경은 한 번 오염되면 되돌리는데 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이 소요된다. 그래서 어렸을때부터 생태감수성을 키워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건 교육의 몫이다. 

-그래서 지금 가장 시급하게 해결됐으면 하는 것인 뭔가

▲재활용 등급제를 환경부가 공개하는 것이다. 환경부의 재활용 등급제 정책에 모순이 많다. 손으로 쉽게 분리되거나 접착제가 병에 잔존하지 않는 라벨을 권고하면서도 본드를 사용해 라벨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페트병을 ‘재활용 1등급’ 카테고리에 포함시킨다. 재활용 등급제는 1등급부터 3등급으로 나뉜다. 우리가 사용하는 제품 용기는 어떤 등급인가. 모른다. 재활용 등급 표시 의무화를 시행해 소비자들도 재질에 따라 제품을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럼 나 같은 경우 2-3등급 제품은 구입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 더 있다. 환경부는 오는 2027년까지 플라스틱 빨대를 단계적으로 없앨 것을 약속했다. 보다 강력하고 구체적인 로드맵이 더 제시돼야 한다. 미세플라스틱으로 배부르고 싶지 않다면.

ya9ball@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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