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EPR 제도, 환경부 '공제조합' vs 제조사 '대행법인' 부딪혀

자동차를 해체하면 150개 정도 결합 부품을 얻을 수 있다. 사진은 해체한 부품을 팔기 위해 진열해 놓은 모습. (리싸이클파크 제공) 2018.10.11/그린포스트코리아
자동차를 해체하면 150개 정도 결합 부품을 얻을 수 있다. 사진은 해체한 부품을 팔기 위해 진열해 놓은 모습. (리싸이클파크 제공) 2018.10.11/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서창완 기자] 자동차 수명은 10~20년 정도다. 수명을 다한 자동차는 폐차장으로 모인다. 약 2만5000개 부품이 있는 자동차는 재활용 가치도 높다. 결합 부품 150여개를 분리해 되파는 재사용도 가능하다. 시트, 범퍼, 엔진 등을 분리하는 폐차장을 자동차 해체 재활용업체라고도 부르는 이유다.

자동차해체재활용업협회 자료를 보면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폐차된 자동차는 88만3865대다. 자동차 등록대수는 올해 말 2300만대를 넘어설 전망이다. 자동차산업 규모만큼 자동차 재활용 시장의 잠재력이 큰 이유다. 재활용에 따라 환경에 미칠 영향도 상당하다. 환경부는 그런 점을 고려해 2011년부터 생산자책임재활용(EPR)제도에 자동차를 포함하는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EPR제도는 제조·수입업자가 재활용 목표치를 의무적으로 달성하게 해서 목표 미달시 재활용분담금을 내도록 하는 정책이다. 물건을 만든 사람이 처리까지 책임지도록 하는 것이다.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 제16조에 근거해 제품(형광등, 전지, 윤활유, 타이어 등)과 포장재 관련 내용을 담고 있다. 전기·전자와 자동차는 분리돼 ‘전기·전자제품 및 자동차의 자원순환에 관한 법률’로 지정돼 있다.

해당 법률로 정한 목표치는 자동차 재활용률 및 에너지회수를 더해 95% 이상이다. 2015년 달성이 목표였지만 지난 2016년 기준 88%에 머물러 있다.

목표 달성을 가로막는 건 경제 논리다. 철금속, 비철금속, 재활용 가능 부품 등은 걱정이 없다. 문제는 돈이 안 되는 비유가성 물질(플라스틱, 유리, 고무, 시트 등)이다. 분리하는데 드는 시간과 인건비를 생각하면 남는 게 없다. 환경부 관계자는 “비유가성 물질의 80% 이상이 소각처리되고 있다”고 밝혔다.

제조사와 재활용업체가 이해관계가 다른 것도 자동차 EPR 제도가 통과되지 않는 주요 이유다. 환경부 관계자는 “전기·전자 제품은 2007년부터 EPR제도에 해당되는 품목을 확대하고 있지만, 자동차는 제조사와 폐차업계간 입장 차가 존재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환경부는 자동차 EPR 제도를 도입하면 공제조합을 두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러면서 국내 자동차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현대·기아차가 대행법인제도를 인정해 달라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제조사 입장에서는 대행법인을 두고 일부 재활용업체와 함께 해체·재활용을 하겠다는 취지다. 환경부는 이럴 경우 재활용업체의 대기업 종속과 업체 줄세우기, 일감 몰아주기 등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자동차 EPR 제도 도입에는 '공제조합'과 제조사 '대행법인'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8일 서울새활용플라자에서 열린 '자동차 해체쇼' 모습. (서창완 기자) 2018.9.8/그린포스트코리아
자동차 EPR 제도 도입에는 '공제조합'과 제조사 '대행법인'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8일 서울새활용플라자에서 열린 '자동차 해체쇼' 모습. (서창완 기자) 2018.9.8/그린포스트코리아

환경부 관계자는 “하나의 단일한 공제조합이 있을 경우 적정하게 재활용할 수 있도록 효율적 관리가 가능한데다 통계 자료 만드는 데도 더 효율적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활용업체 측에서도 자동차 제조·수입업자가 대행법인을 두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한국자동차해체재활용업협회 관계자는 “자동차 시장을 한 두개 업체가 석권하는 상황에서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라는 명분 아래 폐차시장까지 지배하려고 한다”면서 “제조사가 재활용 사업자를 종속 계열화하는 일이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홍수열 자원순환경제연구소장은 현대·기아차가 우려하는 지점도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공제조합 시스템으로 EPR제도가 운영되면 제조사가 통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재활용 비용이 높아질 수 있어서다. 공제조합 주도권을 폐차업계 등이 갖게 되는 일도 현대·기아차가 우려하는 부분이다.

홍 소장은 “EPR제도 원칙에 따르면 공제조합과 생산자 회수 체계를 통한 의무 이행 중에 선택하게 하는 게 맞다”면서 "다만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3월 기준 현대·기아차 점유율이 82.7%에 달하는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자동차 EPR제도가 도입되면 재활용률을 높인다는 보장은 있을까. 해외 사례를 보면 답이 나온다. 독일에서는 비유가성 물질로 분류되는 플라스틱과 유리 등의 재활용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한국환경정책평가원구원의 2015년 연구보고서 인용 자료를 보면 독일에서는 2012년 기준 재이용·재활용되는 플라스틱과 유리가 각각 1611톤, 1558톤이었다. 반면, 폐기되는 플라스틱과 유리는 24톤, 3톤이다. 일본은 2011년 기준 철·비철금속이 아닌 비유가성 물질 같은 파쇄잔재물(ASR) 재활용률이 93.3%다.

홍 소장은 “비유가성 물질 등이 문제인 상황에서 자동차 재활용률을 끌어올리는 방안은 EPR제도 도입 외에는 없다”면서 “폐차 매입 비용을 감소하는 방법은 재활용 주체가 다양한 시장 구조상 실현하기 어려운 방법이다. 공제조합 시스템을 도입하되 운영 측면에서 현대·기아차가 우려하는 부분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해 합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2년 독일의 폐자동차 부품별 재활용 현황.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제공) 2018.10.11/그린포스트코리아
2012년 독일의 폐자동차 부품별 재활용 현황.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제공) 2018.10.11/그린포스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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