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셀피한다 고로 존재한다'

《나는 셀피한다. 고로 존재한다》저자_엘자 고다르/ 역자_선영아 / 지식의 날개 / 224쪽/ 2018년 9월 20일 / 인문·심리
《나는 셀피한다. 고로 존재한다》저자_엘자 고다르/ 역자_선영아 / 지식의 날개 / 224쪽/ 2018년 9월 20일 / 인문·심리

이 책의 한 단락 : 인정은 언제나 교환의 상호성, 즉 나와 너 사이에 편재하는 관계를 전제로 한다. 그런데 가상 세계는 대개의 경우 소통 없는 교환, 언어 없는 이미지다. 덧없음과 (재화, 사물, 사람의) 과소비, 무절제한 조급증과 근거 없는 행동,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환상과 자유의지의 붕괴, 이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우리는 아무런 확신도 없이 실존한다. 실존한다는 사실 자체 안에서 안도감을 느끼려는 욕구, 현사실성과 연루된 의심에서 벗어날 필요성을 늘 느끼면서 말이다.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셀피 뒤에는 비극 배우의 가면을 쓴 우리의 모습이 감춰져 있다. 그 결과 우리는 인정 욕구를 충족시키려 끊임없이 애쓰다가 결국 타자와 편향된 관계를 맺고 만다. 우리는 끊임없이 묻는다. “셀피야, 셀피야.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페이스북 친구들아, 페이스북 친구들아. ‘좋아요’를 최대한 눌러 오늘 아침에 내가 정말 존재한다는 걸 알려주렴.” 그런데 이런 인정 욕구로 인해 우리는 자유를 잃어버렸다. 누군가의 마음에 들려 애쓰지 않고, 누군가를 실망시키거나 거절당할까봐 혹은 연극 무대에서 쫓겨나듯 ‘싫어요’의 대상이 될까 두려워하지 않고 자유롭게 우리 자신이 될 수 있는 자유를. -p.122, 4장 '사회·문화 혁명-화면으로 만나는 타자' 속에서

[그린포스트코리아 권오경 기자] “나는 셀피한다. 고로 존재한다.”

담론의 시대가 끝나고 세계는 ‘이미지의 시대’를 맞았다. 이제 역사는 텍스트가 아닌, 무수한 이미지로 기록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넘쳐나는 기록물에도 왜 우리는 이토록 공허한 것일까.

르네상스시대는 인간이 신 앞에 무릎을 꿇고 기꺼이 자유를 헌납하던 시절 꽃을 피웠다. 마찬가지로 디지털화면 앞에 고개를 숙이고 가상의 자아를 위해 실재를 헌납하는 우리는 이제 제2의 르네상스, 이른바 ‘셀피 단계’를 맞이 하는 중이다.

셀피 단계에서 사람들은 존재를 피력하기 위해 셀피(혹은 셀카)를 활용한다. 르네상스시대 사람들이 인간의 주체성을 강조하기 위한 방법으로 자화상을 많이 그렸던 것처럼 이제 우리는 가상현실에서의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해 수많은 이미지를 생성해낸다. 그리고 이 존재의 단면들을 통해 존재를 재정의하고 정체성을 재확립한다.

존재를 피력하는 방법으로 익명의 대중에게 끊임없이 나의 ‘실존’을 드러낸다면, 현실에서 벗어나 SNS를 오가며 가상의 친구들과 ‘좋아요’를 주고받는다면 당신은 이미 ‘셀피 단계’에 들어섰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가상현실에서의 단절된 소통으로 결핍 혹은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허황된 화합을 꿈꾸는 디지털시대 인간들 속에서 실존적 의미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마음 속을 파고든다면, 가상 세계에 몰입하면서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보다’ 인간적이고 ‘보다’ 진실한 무언가를 상실한 것은 아닌지 불안한 느낌이 든다면 고다르가 말하는 ‘나는 셀피한다 고로 존재한다’ 속에 숨은 의미를 찾아볼 필요가 있다.

프랑스 철학자 엘자 고다르는 ‘나는 셀피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제시하고, 인간이 주체성을 되찾아 책임감 있고 자유로운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그는 셀피 단계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출현을 맞아 ”가상에 의해 관통되고 변모된 새로운 자아의 종착점은 과연 어디인가”라고 묻는다.

‘나는 셀피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도달하는 곳 없이 뻗어나가는 ‘가상의 자아’, 그것이 퍼뜨리는 공허한 울림에 조소를 던지면서도 동시에 셀피가 불러일으킬 수 있는 실존에 대한 의혹과 깨달음의 긍정적 기능을 인정하는 명제다.

언어로부터 ‘존재’를 말할 수 있는 권력을 넘겨받은 ‘인스턴트 이미지’는 사람들로 하여금 현실 공간에서 직접 만나는 자아보다 화면 안에 가둬두는 ‘이미지로 가공된 정체성’, 즉 가상의 자아를 수용하도록 했다.

언어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즉각적인 이미지가 우세해진 세상에서, 가상의 자아 앞에 주체성을 잃어버린 개인은 화면 너머로 타자와 만나면서 공허함을 느낀다.

저자에 따르면 실재와 가상의 대립은 이 같은 상실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이 두 현실을 대립시키는 것은 그다지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플라톤이 지성의 세계와 감각의 세계를 구분했지만 결국 이 둘이 하나의 세계임을 상기시킨 것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현실에서 가상의 부록들을 내려 받아 현실에 적용하는 증강 현실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나는 셀피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를 통해 강조하고 싶은 것도 ‘탈(脫)주체화’에 맞서는 주체의 재주체화 가능성이다. 재주체화 가능성은 도덕적 주체가 그를 혼란에 빠트렸던 의미를 되찾고, 자신의 내면을 다시 제 것으로 삼아 자유의 가능성을 되찾도록 하는 능력을 말한다.

저자가 ‘셀피 단계’를 두고 ‘제 2의 르네상스시대’라고 칭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디지털시대의 사람들이 그들의 실존을 피력하는 수단으로 ‘인스턴트 이미지’를 사용하면서 비록 소통없는 관계를 만들어내고 실존에 대한 회의를 증폭시키지만, 저자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가상의 나’를 ‘실재의 나’와 연계시키면서 르네상스의 토대를 닦을 수 있다”고 말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맞이하는 태도에 관해서도 저자는 “일단 이 변모를 받아들이고, 이에 대해 사유하는 것이 가장 ‘본질’에 가까워지는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roma2017@greenpost.kr

저작권자 © 그린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