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수 사 먹듯 산소도 등급 골라 마시는 시대오나'
'생수 사 먹듯 산소도 등급 골라 마시는 시대오나'
  • 박소희 기자
  • 승인 2018.09.26 13: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리의 역습] ② 생필품이 된 환경제품에도 빈부격차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그린포스트코리아 박소희 기자] #미국으로 1년 교환학생을 갔다가 2017년 겨울 한국으로 돌아온 안태란(20)씨는 오자마자 마스크부터 구입했다. 쾌청했던 곳에 있다가 온 탓인지 서울의 공기는 텁텁하고, 쇳냄새까지 나는 듯했다. 미세먼지는 일반 마스크를 착용해도 소용없다길래 고르고 골라 코리아필터(KF) 인증을 받은 꽤 유명한 브랜드 제품을 장만했다. 장당 1000원 정도의 가격은 부담됐지만, 건강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스크를 착용한 입 주변에 뾰루지가 나기 시작했다. 마스크를 착용한 날이면 피부가 뒤집혔다. 피부를 위해 미세먼지를 마실 것이냐, 호흡기를 위해 피부를 포기할 것이냐 고민에 빠졌다. 

21세 인류 최고의 발명 ‘편리’는 이제 환경오염이라는 거대한 괴물이 되어 인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무분별하게 생산한 일회용 용기에 의해 우리의 식탁은 미세플라스틱이 범람하고 있으며, 자동차, 공장에서 발생하는 질소산화물, 석탄 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황 등이 유발하는 미세먼지로 우리의 호흡은 자유롭지 못하다.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는 미래에는 오염된 공기로 인해 깨끗한 공기 역시 사야 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공공재인 물이 오염되자 정수된 생수를 사먹고 있듯, 올봄 경험했던 미세먼지 나쁜 수준이 365일 계속된다면 인류는 산소통을 달고 출퇴근해야 할 지 모른다.

이같은 환경의 역습이 호재로 작용하는 곳이 있다. 이념의 대립점에 있던 체게바라까지 티셔츠의 모델로 기용한 자본주의의 위력은 성역 없는 수용력에 있다. 환경오염이 심각해지자 문제해결과 관련된 산업은 블루오션이 됐다. 공기, 물, 토양 등 인간 삶의 필수재가 오염됐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정화할 수 있는 제품이 불티나게 팔린다는 것이다.  

◇'환경제품'이 생필품이 된 시대

올 봄 정부는 미세먼지에 대응요령으로 외출시 보건용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따라 보건용 마스크의 수요도 빠르게 증가해 한 업계에 따르면 지난 2월부터 4월까지 온라인몰과 편의점 등에서 판매된 마스크의 양은 최대 1546%까지 늘어났다.

마스크가 외출 필수품처럼 떠오르자 한 방송인은 ‘마스크 벗고 미세먼지를 마실 것이냐. 마스크 쓰고 내 입냄새를 마실 것이냐’라며 세태를 풍자하기도 했다. 

미세먼지 주의보로 건강에 비상등이 켜지자 마스크와 더불어 공기청정기 시장 역시 호황을 이뤘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3월 공기청정기 판매량은 전년 대비 54% 상승했으며 번거로운 필터 교체나 청소를 대행해주는 공기청정기 임대사업 역시 전년 동기와 비교해 매출이 2배 이상 증가했다. 

차량용 공기청정기의 경우 A업체의 미세먼지용 필터는 올해 1/4분기 매출이 전년 4/4분기 대비 532%로 급격하게 성장했다. 

이와 더불어 틈새 가전으로 분류됐던 의류 건조기나 의류 관리가 같은 제품들도 미세먼지 기승으로 판매량이 증가하며 새로운 주류 상품으로 급부상했다. 

◇ "돈 있어야 공기청정기도 사지"

문제는 심각한 환경오염으로 생필품처럼 여겨지는 이같은 제품들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올 봄 아침에 일어나 양모(33)씨가 옥탑방에서 내다본 세상은 주로 뿌옜다. 가시거리가 좋은 날에는 멀리 남산 타워도 보였지만 미세먼지에 포위된 도시는 시위가 흐릿했다.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양씨는 집에서 작업할 때가 많은데 미세먼지 탓에 창문을 열지 못하자 공기청정기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나 공기청정기는커녕 일회용 마스크를 매일 구비하는 것도 사실 부담스러웠다. 

양씨는 “소비할수록 건강을 담보할 수 있는 시대다. 그런데 어쩐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집에는 에어컨이 없다. 공기청정기도 없다. 물론 의류 건조기도 없다. 다시 말해 그런 것들을 갖춰놓고 사는 집보다 탄소배출량이 적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세먼지는 차 없이 걸어다니는 제가 더 많이 흡입한다”며 씁쓸해했다. 

그는 "맹맛인 생수도 브랜드를 고른다. 미래 사회에는 주머니 사정에 맞춰 산소 등급을 골라 호흡하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환경가전'이라 불리는 공기청정기는 그 시작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ya9ball@greenpost.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