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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포스트코리아 권오경 기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정하지 않는다.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날 것인지도 고를 수 없다. 작위적으로 붙여진 이름이 곧 ‘나’라는 사람을 뜻하게 되듯이 우연히 주어진 가족이라는 이름인데도 우리는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좀 더 많은 관용과 희생을 강요받는다.

‘애인’, ‘친구’, ‘엄마’, ‘아들’ 등 사회에서 통용되는 명칭으로 관계가 정의되는 순간 우리는 그에 맞는 역할과 존재 의미, 목적을 부여받는다. 그리고 "친구라면 이렇게 해야돼" 라든지 "가족이라면 이래선 안되지"라는 식의 의무도 따라붙는다. 특이한 것은 부모-자녀 사이의 경우 친구처럼 구성원 간의 상호 작용에 의해 점차적으로 ‘생성’되는 관계가 아닌, 반자의적인 인과로 단숨에 명명되는 관계인데도 그 형태가 가장 견고하고 단단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에도 에로스, 플라토닉, 아가페 등 다양한 이름이 있듯이 가족 또한 혈연으로 이어진 관계 외에 여러 형태를 갖고 있지 않을까. 내 선택으로 누군가를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가족과 함께 보내는 추석 명절을 맞아 소개하는 다음 세 편의 영화는 이 같은 의문에 저마다의 방식으로 답을 던진다.  

◇ ‘어느 가족’ (2018, 고레에다 히로카즈 연출)

‘어느 가족’ (2018, 고레에다 히로카즈 연출)
‘어느 가족’ (2018, 고레에다 히로카즈 연출)

 

사회적, 윤리적 잣대를 들이댔을 때 ‘어느 가족’을 가족이라고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아빠’라는 사람은 도덕적 판단력이 없는 ‘아들’에게 도둑질을 부추기고, ‘할머니’라는 사람은 ‘손녀’가 성매매로 생을 이어가도 그러려니 하는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가족을 정의하는데 이들이 함께하면서 얻는 행복보다 사회적, 윤리적 기준이 더 중요할까.

‘어느 가족’을 구성하는 사람들은 각각 이전에 ‘맺어진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았거나 고통받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직접 ‘맺은’ 인연은 본인들이 원한 관계인만큼 ‘진짜 가족’ 틈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은 안정과 따뜻함, 행복을 품고 있다.

'어느 가족'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완성작이라고 불린다. “가족은 이래야돼. 이런 게 가족이야” 따위의 단순한 ‘A=B 공식’을 집어던지고, 히로카즈는 ‘이런 가족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 ‘킬링디어’ (2018, 요르고스 란티모스 연출)

‘킬링디어’ (2018, 요르고스 란티모스 연출)
‘킬링디어’ (2018, 요르고스 란티모스 연출)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이 있다. 1 더하기 1이 2가 아니라 ‘하나’라는, 아무리 갈라놓으려고 해도 단절되지 않을 정도로 끈끈한 관계임을 표현하는 속담이다. 또 피로 이어진 사이가 그렇지 않은 관계보다 깊은 정을 갖고 있음을 나타내는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말도 있다.

‘킬링디어’는 가족의 의미에 대해 말하는 이 두 속담에 조소를 던지는 영화다. 아빠, 엄마, 딸 그리고 아들로 구성된 4인 가족에게 일어나는 기괴한 상황을 통해 서로에게 갖는 유대감이나 사랑이 얼마나 얕을 수 있는지 역설한다.

아빠가 나머지 3명 중 누군가 한 명을 죽여야만 본인의 목숨은 물론 다른 2명의 목숨도 살릴 수 있는 이 극적 상황은 개개인의 원초적 본능을 끌어올려 이기심으로 인해 가족공동체가 얼마나 쉽게, 어디까지 무너질 수 있는 것인지를 보여준다.

◇ ‘디판’ (2015, 자크 오디아드, 에포닌 모멘큐 연출)

‘디판’ (2015, 자크 오디아드, 에포닌 모멘큐 연출)
‘디판’ (2015, 자크 오디아드, 에포닌 모멘큐 연출)

 

영화 ‘디판’은 스리랑카 내전을 피해 망명 온 난민 가족이 프랑스에 정착하는 과정을 다뤘다.

이 가족에게 비밀이 있다면 프랑스에서의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맺어진 ‘가짜 가족’이라는 것. 불법체류자 ‘디판’은 더 이상 자신의 것이라 부를 만한 무언가를 갖고 있지 않다. 스리랑카에서 가족을 잃고 본인의 삶과 이름까지 잃었다. 그는 브로커로부터 사망한 스리랑카인의 여권을 사 ‘디판’이라는 이름을 얻고 '가짜 가족’을 꾸린다.

영화는 엉성하고 어색한 기류만 흐르던 이 가짜 난민 가족이 서로에 대해 연민과 보살핌 그리고 사랑을 품게되는 과정을 담았다. 낯선 이들이 서로를 끌어안으며 '진짜 가족'으로 거듭나는 과정은 가족이 갖는 의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roma2017@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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