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포스트코리아 주현웅 기자] “우리도 버스타고 고향에 가고 싶다.”

올해도 많은 장애인들이 고향 가길 포기했다. 매해 명절마다 전국 버스터미널에서 들린 이 같은 외침은 또 반복됐다. 교통체증을 뚫고서라도 온 가족이 한 데 모이는 추석이라지만, 장애인들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다. 휠체어 탑승 가능한 버스가 나왔어도 이들의 심경은 불안하기만 하다.  

국토부가 휠체어 탑승 가능 버스를 시범도입할 예정이다.(전장연 제공)2018.9.22/그린포스트코리아
국토부가 휠체어 탑승 가능 버스를 시범도입할 예정이다.(전장연 제공)2018.9.23/그린포스트코리아

지난 19일 서울 광화문광장.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버스 한 대를 둘러쌌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버스 옆에는 ‘경축’이란 문구와 함께 “이제 나도 버스타고 여행갑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내걸렸다.

국토교통부가 주최한 ‘휠체어 탑승 가능 고속·시외버스’의 시승식 행사였다. 국토부는 이 버스를 일부 노선에 시범도입할 예정이다. 장애인들은 2014년부터 총 15차례에 걸쳐 ‘버스 타기’ 투쟁을 벌여온 결과를 이날 이렇게 마주했다.

이제라도 탑승 가능한 버스가 생겼으니 마냥 기뻐하면 될까. 국토부의 이 사업은 말 그대로 시범적인 사업이다. 또 버스도입 시기도 실은 내년 하반기다. 자연히 장애인들은 이 버스를 타려면 이번 추석과 올 설날, 이어 내년 추석까지 보내야만 한다.

상황이 이런 탓에 “혹시나 시범사업에 그치진 않을까”하는 불안의 목소리도 나온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은 이날 “시범사업을 넘어 상용화까지 지속적으로 확대되어야 하며, 이는 반드시 지켜져야 할 약속”이라고 거듭 촉구했다.

휠체어 탑승 가능 버스는 과거에 거론됐다가 무산된 바 있다.(tbs캡처)2018.9.22/그린포스트코리아
휠체어 탑승 가능 버스는 과거에 거론됐다가 무산된 바 있다.(tbs캡처)2018.9.23/그린포스트코리아

광화문광장에서 ‘내년부터 탈 수 있는 이런 버스가 새로 나왔다’고 소개된 그 다음날. 경남 김해 등 일부지역에서는 어김없이 장애인들의 이동권 투쟁이 벌어졌다. 김해지역 장애인 단체들은 김해여객터미널에서 비를 맞으며 “우리도 버스타고 고향에 가고싶다”고 외쳤다.

이들은 현재 전국에서 운행 중인 시외·고속버스 1만730대 가운데 휠체어 이용자가 탑승 가능한 버스가 한 대도 없음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내년에 예정된 시범사업도 예산이 13억원만 책정돼 있다”며 “여전히 중장기적인 과제로 두고 있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장애인들이 해당 사업 지속성을 줄곧 강조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현재까지 휠체어 탑승 가능한 시외·고속버스가 전국에 단 한 대도 없는 것은 그간의 사회적 외면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5년 12월 국토부는 ‘프리미엄 버스’ 도입을 선언하며 버스도 항공기 일등석처럼 개인 편의시설을 확충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거론됐던 휠체어 장애인 탑승 가능 버스 개발은 예산부족을 이유로 연기했다.

전장연은 이번 추석 서울역에서 농성을 벌인다.(전장연 제공)2018.9.23/그린포스트코리아
전장연은 이번 추석 서울역에서 농성을 벌인다.(전장연 제공)2018.9.23/그린포스트코리아

때문에 장애인들은 명절의 이동권 투쟁을 올해도, 내년에도 멈추지 않을 계획이다. 국토부의 시범사업은 이제 막 걸음마 단계이고, 그밖에도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권리를 누리기까지는 가야 할 길이 멀기 때문이다.

조현수 전장연 정책실장은 “이제라도 휠체어 탑승 가능 버스가 도입되는 것은 분명 환영할만한 일”이라면서도 “해당 사업은 국민참여 예산으로 진행돼 안정적인 시행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예산의 금액마저 13억원에 불과해 버스의 숫자는 물론 노선 수도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관련 예산이 어느정도 규모로 최종 편성될지는 지켜봐야 알겠지만 아직은 부족한만큼 투쟁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장애인 복지 관련 문제가 이동권에 한하지는 않는다. 이번 추석 연휴기간 동안 장애인들은 서울역에서 농성을 벌인다. 이동권을 포함해 장애등급제 폐지 등 장애인의 평등한 권리를 호소하기 위해서다.

조 정책실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국민명령 1호 공약인 장애등급제 폐지를 촉구하기 위해 명절에도 농성을 벌이게 됐다”며 “추석연휴 특히 많이 모이는 시민들이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관심 가져 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chesco12@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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