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싱쿠키' 마니아 김유하씨

마니아. 어떤 한 가지 일에 몹시 열중하는 사람, 또는 그런 일. 세상이 넓고 복잡해지면서 마니아의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다. 비교적 대중적인 마니아부터, 남들은 모두 외면하는 아주 소소한 것에 몸 바치는 마니아까지. 이들은 말한다. “99명이 오른쪽이라 해도, 내가 왼쪽을 택하면 그것이 바로 내 길이다.” 좋아하는 일에 열중하는 것만으로 사회를 한층 다채롭게 만드는 그들. 이들이 새롭게 만들어내는 ‘마니아 문화’를 통해, ‘흥에 겨운 소수’가 인생을 즐기는 방식을 알아본다. [편집자주] 

김유하씨가 직접 만든 아이싱쿠키. (김유하씨 제공) 2018.09.26/그린포스트코리아
김유하씨가 직접 만든 아이싱쿠키. (김유하씨 제공) 2018.09.26/그린포스트코리아

쿠키(cookie)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납작하고 향긋한 냄새에 바삭바삭하고 달콤함까지 갖춘 과자. 

쿠키라는 말 자체는 ‘작은 케이크’라는 뜻의 네덜란드어 코에케(koekje)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밀가루, 버터, 계란, 설탕, 향료 등을 섞은 뒤 화학적 팽창제를 넣어 굽는다.  

빵이나 과자를 만드는 '베이킹(baking) 마니아'가 늘어나면서 쿠키의 세계에도 변화가 생겼다.

쿠키하면 떠올릴 수 있는 납작하고 밋밋한 모양의 과자가 아닌, 상상을 뛰어넘는 다양한 모양과 맛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김유하씨가 직접 만든 아이싱쿠키. (김유하씨 제공) 2018.09.26/그린포스트코리아
김유하씨가 직접 만든 아이싱쿠키. (김유하씨 제공) 2018.09.26/그린포스트코리아

◇새로운 세계 '아이싱쿠키'

서울에 거주하는 회사원 김유하(30대)씨는 지난해 이 무렵, 야근을 마친 후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하고 있었다. 

“이렇게 몸이 부서져라 일하는 것이 정말 내 인생에 도움이 될까?” “내가 정말 잘 할 수 있는 일이란 뭘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김씨는 문득 그런 일을 찾아보자고 생각했다.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 평소 관심 있는 분야를 검색했다. 가죽 공예, 팔찌 만들기, 베이킹 교실…. 그 중 ‘아이싱쿠키 만들기’에 눈에 들어왔다. 쉽고 간단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말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바로 원데이 클래스를 신청했다.

쿠키를 만드는 과정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너무나 재미있고 행복했던 김씨는 원데이 클래스가 끝난 뒤에도 계속해서 쿠키를 구웠다.

책을 사 보고, 유튜브 영상을 검색하며 열심히 구웠지만 혼자 힘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쿠키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다, 더 맛있고 예쁜 쿠키를 굽고 싶다는 김씨의 마음은 전문가 강의를 듣는 것까지 이르렀다.

지금은 자격증까지 딴 김씨는 어엿한 ‘아이싱쿠키 마니아’다.

쿠키 굽는 재미? 직접 구워보지 않으면 몰라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말하는 김씨는 백 번 듣는 것보다는 한 번의 원데이클래스에 참여해 보기를 권한다. 
 

김유하씨가 직접 만든 아이싱쿠키. (김유하씨 제공) 2018.09.26/그린포스트코리아
김유하씨가 직접 만든 아이싱쿠키. (김유하씨 제공) 2018.09.26/그린포스트코리아

◇ ‘까다롭지만 재미있게’

아이싱쿠키란 쿠키 위에 아이싱(슈가파우더)으로 원하는 모양을 만들거나 그림을 그린 쿠키를 말한다. 바탕이 될 쿠키로는 버터쿠키를 주로 사용한다.

사브레(Sablés), 더치비스킷(Dutch biscuits)이라고도 하는 버터쿠키는 버터가 많이 들어가 향긋하고 부드러운 맛이 특징이다.

우선 박력분, 무염버터, 설탕, 계란, 바닐라오일을 반죽해 원하는 모양의 버터쿠키를 굽는다. 그 다음 슈가파우더와 계란흰자, 레몬즙으로 만든 아이싱을 짤주머니에 넣은 뒤 쿠키 위에 도포하면 끝.

설명은 간단하지만 막상 해보면 쉽지 않다. 정확한 계량은 물론이고 구울 때 시간이나 온도가 잘못되면 덜 익거나 타기 일쑤다.

아이싱을 도포할 때도 보통 긴장되는 것이 아니다. 아이싱은 공기 중에 노출되면 빨리 굳기 때문에 스피드와 정확함이 생명이다.

또 식품이다보니 신선하고 질 좋은 재료를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서 김씨는 재료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고른다. 밀가루와 버터, 설탕은 질 좋은 것을 그때 그때 사서 바로 사용한다. 오래 보관하면 질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레몬은 과일가게에서 파는 것 중 색이 가장 예쁘고 통통한 것으로 선택한다. 

 

김유하씨가 직접 만든 아이싱쿠키. (김유하씨 제공) 2018.09.26/그린포스트코리아
김유하씨가 직접 만든 아이싱쿠키. (김유하씨 제공) 2018.09.26/그린포스트코리아

쿠키를 굽다 보니 이런 저런 에피소드도 많이 생겼다.

어느날 오븐 앞에서 한눈을 파는 바람에 팔에 화상을 입고 말았다. 다행히 심한 화상은 아니었지만 다 나은 후에도 흉이 남았다. 그 흉터가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의 로고 모양과 닮아 의외로 마음에 들었단다.

김씨는 지금도 그 흉터를 볼 때마다 그 때 일을 추억한다.

하루는 이런 일도 있었다.

그날 따라 쿠키가 평소보다 잘 구워졌다. 흥이 난 김씨는 ‘카페’ 흉내를 내고 싶어졌다.

테이블 위에 예쁜 식탁보를 깔고 쿠키를 장식한 다음 친구를 불렀더니 친구들이 정말 카페에 온 것처럼 흔쾌히 쿠키를 사 주었다. 

친구는 김씨가 구운 쿠키를 사 먹으며 모양도 예쁘고, 맛도 좋다고 ‘폭풍 칭찬’을 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만의 가게가 갖고 싶다

김유하씨가 직접 만든 아이싱쿠키. (김유하씨 제공) 2018.09.26/그린포스트코리아
김유하씨가 직접 만든 아이싱쿠키. (김유하씨 제공) 2018.09.26/그린포스트코리아

◇ 버터 향 가득한 꿈

순간적인 생각은 상상으로 이어졌고, 상상은 현실화를 위한 준비로 맺어졌다.

김씨는 언젠가 정말 가게를 낼 생각으로 이것저것 알아보고 있다. ‘허니버드’라는 가게 이름까지 미리 지어 두었다. 소소한 ‘카페놀이’가 그에게 진짜 꿈이 된 것이다.

아이싱쿠키에도 유행이 있다. 빠르게 바뀌는 유행을 파악하기 위해 김씨는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교류를 하고 있다.

대부분 카페를 운영하거나 아이싱쿠키 원데이클래스를 진행하는 사람들이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어린 자녀와 함께 쿠키를 굽는 기혼자가 많다는 것이다.

다른 쿠키보다 만들기 쉽고, 만들 때 즐겁기 때문이라고 김씨는 말한다. 재료를 직접 골라 만들면 어린아이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김유하씨가 직접 만든 아이싱쿠키. (김유하씨 제공) 2018.09.26/그린포스트코리아
김유하씨가 직접 만든 아이싱쿠키. (김유하씨 제공) 2018.09.26/그린포스트코리아
 

무엇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 좋아하는 모양으로 꾸밀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에요

그래서 김씨의 쿠키도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다. 꽃, 동물, 별 모양부터 영화 속 캐릭터까지. 때로는 주변 사람들에게 의뢰도 받는다.

사람들이 기뻐하며 맛있게 먹어 줄 때마다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뿌듯함과 행복을 느낀다. 그리고 쿠키를 굽는 즐거움을 보다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고 진심으로 생각한다. 

쿠키를 살 수도 있고, 원하는 사람은 직접 만들어볼 수도 있는 작고 소박한 가게.

그런 가게를 만들기 위해 ‘아이싱쿠키 마니아’ 김유하씨는 오늘도 꿈의 선로 위를 달린다. 

hmy10@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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