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격의 품격’이 필요하다

이기주 책 ‘말의 품격’.(황소북스, 2017)
이기주 책 ‘말의 품격’.(황소북스, 2017)

 

‘품격의 홍수’다.

너나 할 것 없이 걸핏하면 품격을 얘기하고, 어떻게 하면 품격 있게 살 수 있을까 고민하기도 한다. TV 방송프로그램도, 서점 책꽂이를 가득 메운 책들도 품격에 대한 얘기로 넘쳐난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품격 예능프로그램’으로 검색했더니 ‘~품격’이라는 타이틀의 프로그램이 10여개나 뜬다. 여행의 품격, 중년의 품격, 리더의 품격, 한 끼의 품격, 도시의 품격, 내 방(房)의 품격 등등. 의식주부터 취미 여행에 이르기까지 품격이라는 이름으로 다루지 않는 프로그램이 없다. 사랑이 빠질까? ‘고품격 짝사랑’도 있다. 이 쯤 되면 품격 빼면 시체나 다름 없다.

책으로 치면 방송프로그램은 ‘저리 가라’다. 한 인터넷서점에서 역시 ‘품격’이라는 주제어를 쳤더니 그야말로 헤아릴 수 없는 책이 주르륵 꼬리를 문다. 지난해부터 베스트셀러의 상단을 점하고 있는 ‘말의 품격’을 필두로, 수백 권이 검색된다. 인간의 품격, 태도의 품격, 아내의 품격, 남자의 품격, 여성의 품격, 국가의 품격, 생각의 품격, 학교의 품격, 비서의 품격, 보수의 품격, 연애의 품격, 냉면의 품격, 외식의 품격, 한식의 품격 등등. 뿐만 아니라 불만의 품격, 잔소리의 품격, 술꾼의 품격까지 있으니 리스트만 쳐다봐도 ‘품격홍수’에 익사할 판이다.

한편으로는 이 많은 책들이 팔려 나갔다는 게 신기한 노릇이지만, 뒤집어 보면 그만큼 우리가, 우리 사회가 품격이 없음을 반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긴 ‘품격 열풍’에 편승해 비슷한 책을 쏟아내는 것이나, ‘~품격’ 방송에 국적 없는 비속어를 남발하는, 그것도 친철하게(?) 자막으로 내보내는 것이나 이미 품격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품격의 저자’와 ‘품격의 연출가’들이 오히려 더 품격 없어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요즘 품격의 열풍은 작가 이기주의 ‘말의 품격’(황소북스,2017)이 촉발(?)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저자가 ‘인향(人香)은 사람의 말에서 뿜어져 나온다’고 했듯이, 평소에 사용하는 말이 곧 그 사람의 인품과 인격을 가늠하는, 결정짓는 잣대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인간으로서의 품격은 언어를 통해 명확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향 싼 종이에서 향내 나고, 생선 싼 종이에서 비린내 나듯 한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는 그 사람을 싸고 있는 종이, 바로 그것이다.

말의 품격은 우선, 얼마나 긍정적이고 밝은 언어를 골라내어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어떤 상황 어떤 순간에서라도 따뜻하고 밝고 행복하고 위로가 되는 말을 쓰는 것이 품격의 토대다. 그리고 그런 말의 품격은 좋은 상황은 더 낫게, 어려운 상황은 어떻게든 타개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이 된다. 짜증나, 화나, 힘들어 같은 부정적인 말을 수시로 뱉거나, 비속어 또는 욕설을 입에 달고 사는 인생은 그 삶 자체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 함부로 뱉어 낸 말이 허공에서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화살이 되어 다시 자신에게 꽂히는 데야(이기주 작가가 지적한 말의 귀소본능) 천하장사라도 당할 재간이 없을 테다.

말의 품격을 좌우하는 또 하나는 정확성이다. 때와 처지에 맞는 말을 제대로 쓸 줄 알아야 한다.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들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오만함을 표현하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전후좌우 무시, 거두절미 한 뒤에 되는대로 지껄여 놓고서는 상대에게 자신의 뜻을 잘 파악하라고 하는 것은 억지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갑을의 관계에서는 폭력에 가깝다. 실제 요즘 자주 TV에 등장하는 대기업 오너 일가의 이른바 ‘갑질횡포’에서도 이런 사례를 종종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말을 글로 표현했을 때의 정확성도 그 사람의 품격을 가늠하는 중요한 단서다. 누군가에게 이메일 또는 편지를 써 보냈는데, 오탈자가 많고 계속해서 맞춤법이 틀린다면 상대방은 그 글의 신뢰도에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고, 결국 보낸 사람의 수준(품격)도 ‘오탈자 투성이’로 규정될 것이리라.

수년 전에 어느 경제일간지의 부사장을 만나러 갔을 때의 일이다. 부사장실 내의 작은 회의용 테이블에 큼지막하게 이렇게 써 있었다. ‘오탈자가 있는 결재 문서는 아무리 급한 것이라도 결재하지 않습니다.’ 그 부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명색이 언론사인데, 결재문서에 오탈자가 있다면 얼마나 창피한 일입니까? 우리 회사의 품격이 딱 그 수준으로 드러나는 일 아니겠습니까?”

비단 이 언론사 뿐 아니라, 제대로 돌아가는 회사들은 이에 목숨을 건다고 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다. 규모가 크고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는 회사일수록 내부에서 사용하는 언어의 적확성과 정확성에 극도로 철저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글자 하나 틀려서 수백만달러의 계약이 송두리째 날라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쓰는 말이 정직하고 정확해야 하는 단적인 이유이다. 그것이 그 회사의 수준을 결정하고, 미래를 결정한다.

비단 개인이나 조직, 회사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국가를 운영하는 정부의 언어도 작게는 정권, 크게는 국가의 품격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정부 당국자들의 언어는 더욱 정확하고 정제되고 절도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최근 장하성 정책실장은 “내가 강남 살아서 하는 얘기인데…”라고 말했다가 온갖 비난과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으니 참 한심하고 안타깝다. 그런가 하면 어떤 부처의 장관은 기자들과 간담회 자리에서 “해 보니까 나는 장관 체질”이라고 말해 기자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 장관의 수준이 딱 이 정도인 것이다.

어디 정부 뿐인가. 우리가 뽑은 국회의원들의 품격도 그 정제되지 않은 언어를 통해 바닥을 보인지 이미 오래다. 향 싼 종이는 찾아보기 어려운 선량들의 품격이란.

품격에 대한 콘텐츠는 차고 넘쳐나지만, 이처럼 우리는 계속 품격상실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제 절실하게 ‘품격의 품격’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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